목회 자료실 1

CYBER SCHOOL OF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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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감사로 예배를 드리자[ 맥추감사주일 설교 ] 운영자 2019-03-082022-07-13 10:04
작성자 Level 10

감사로 예배를 드리자
시50장 16절 ~ 23절

우리모두는 지난주일 6.25 50주년을 맞아 새 성전에서 온 성도가 감격스러운 예배를 드린바 있습니다. 너무도 사모했던 성전인지라 더러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주보를 나눠주면서 한 손으로 눈물을 계속 닦고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 시간 다시 한 번 호남에서 제일가는 성전이요 또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교회가 될 것을 믿고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영광의 박수를 드렸으면 싶습니다. ... 이 시간에도 맥추감사주일로 지킬 수 있음을 감사하면서 감사로 예배를 드리자는 메시지를 통하여 은혜를 사모코자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악한 자에 대한 권고의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첫째, 악인의 행위입니다.
본문 17-20절을 보면 악인의 행위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크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미워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뒤로 던지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를 향하여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특징이 있는데 악인과 함께 짝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는 악과 더불어 항상 템포를 같이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혀를 함부로 놀리는 죄입니다. 본문의 악인은 그 혀로 형제를 헐뜯고 비난하고 모함하는데 사용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 할 때에 조심할 것 셋이 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말이 섞이게 되고 남의 말이 끼게됩니다. 따라서 말이 많으면 꼭 해야 될 말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삼사일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혜를 모아 말에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말이 빨라도 실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전후 사정과 앞 뒤 형편을 살펴보지 아니하고 빠른 속도로 혀를 놀릴 때 실수가 많습니다. 말은 발도 없으면서 천리 길 만리 길을 달려갑니다. 말은 천천히 하고, 옮기고, 생각하면서 해야 할 것입니다.
말이 거칠면 상처를 만듭니다.
흉기에 찔린 상처는 치료하면 됩니다. 그러나 말에 찔린 상처는 치료가 어렵고 성형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남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 사람이 있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사무직원을 택하는데 심사 끝에 두 사람이 남았습니다. 목사님이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선발해야 되는데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 성함을 물었습니다. 한 명은 \"홍길동이에요.\" 또 한 명은 \"홍자 길자 동자예요.\"이렇게 말했을 때에 그 목사님은 나중 아가씨를 직원으로 채용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자 셋을 더 붙여서 합격을 했다는 말입니다. 말에는 지혜가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가 입에 자갈을 물리라고도 한 것입니다.

둘째, 악인의 바탕입니다.
건물에 바탕이 있고 인격에도 바탕이 있습니다. 본문 22절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바로 여기에 악인의 바탕이 있습니다. 왜 악을 행하는가요?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 비유가 있습니다. 어떻게 탕자가 되었습니까? 아버지 품에 있어야 될 아들이 아버지를 멀리 떠남으로 탕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재산을 창기와 함께 탕진해버렸습니다. 그 재산이 누구의 재산입니까? 아버지의 재산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물질관이 올바르게 서있어야 됩니다. 곰팡이가 어디서 생기던가요? 태양이 없는 그늘진 곳에서 생깁니다. 파리떼가 어디서 생기던가요? 냄새나는 시궁창에서 생겨납니다. 포도를 맺으니까 물론 포도나무입니다. 그러나 칼빈에 의하면 포도나무이기 때문에 포도를 맺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범하니까 죄인이라기 보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범한다는 말입니다. 본문에 \"네가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하나님이 너를 찢으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말은 하나님대신 다른 것들에게 관심을 빼앗긴다는 말입니다. 그렇게되면 영적으로 탈진상태에 빠집니다. 따라서 성경 말씀, 기도, 찬송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교회도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감사가 없어집니다. 대신에 불평이 앞장섭니다. 사람들 뒤에 숨어 불평하고 원망하고 짜증을 내는 삶을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믿음생활이 파괴됩니다.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가 없으리라\" 이 말씀에서 찢는다는 말은 분열과 파괴를 뜻합니다. 따라서 삶의 통일이 없어지고 인격에 분열이 생겨나는지라 감사대신 불평이 앞서게 됩니다. 감사가 없는 삶은 심히 불행한 삶입니다. 색깔로는 음산한 색이요 삭막한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긴다는 성도들 중에 더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성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성도는 저절로 감사를 잊어버리기 일수입니다.

셋째, 악인의 변화입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이제 이를 생각하라\" 너의 죄를 기억하라는 뜻이요,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제 변화를 받으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다시한번 돌아온 탕자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탕자는 절규했습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돼지우리에 앉아만 있지 아니했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고 일어선 것입니다. 아버지께로 발길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이 찬송을 부르면 참 은혜가 됩니다. 우리의 삶이 마치 이러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탕자는 빈 손들고 돌아오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시50:15을 기억했을지도 모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성경에 상세한 기록은 없지만 돌아온 탕자는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본문 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감사로 제사를 드린다는 말은 감사로 예배를 드린다는 말인데 이렇게 하는 사람이 누리는 축복은 셋입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축복 그 행위가 옳게 되는 축복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축복입니다. 생각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면서 살아온 백성들입니다. 홍해에서는 바로의 군대를 수장시키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현장을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여리고 성에서는 일주일만에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는 장엄한 감격을 체험하기도 했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뢰소리로 인하여 블레셋 군대가 혼비백산하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고 또한 삶 속에 그러한 은혜가 산재해 있음을 부인치 못합니다. 여름철이 되면 바닷가로 가기 일수입니다. 모래사장에 뒹굴면서 일광욕을 하기도 합니다. 모래로 만리성을 쌓기도 합니다. 제 손 안에 한줌의 모래가 있다고 합시다. 상세히 봐도 쇠붙이가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자석으로 휘저어보면 새까만 쇳가루가 달라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신사의 삶이나 숙녀의 삶 다 비슷합니다. 평범한 눈으로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살필 때에 수많은 죄악의 쇳가루가 수두룩할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결코 범죄하지 아니했다고 말하는 사람 있을 수 있으나 이것은 거짓말쟁이의 말입니다. 성경이 이것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셨습니다. 더더구나 그의 형상대로 말입니다. 그리고 만물의 영장되게 하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에게 이목구비를 주시고 세계를 생각할 수 있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믿음, 양식, 의복을 주셨으니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찬송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감사거리가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무엇이며 축복이 아닌 것이 무엇인가! 감사하지 않을 것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주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생각하면서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하면 금새 눈에서 눈물이 주루륵 흘러내릴 수 있습니다. 감사하지 아니해도 좋을만한 인생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한 번 예수님께서 불쌍한 문둥병자 열 사람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 감사했을 때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맥추 감사주일로 지키는 우리 모두를 향해서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왜 우리의 믿음생활에 감사가 모자랍니까? 바른 믿음대로 살지 못함 때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난번 주간에 전국에서 동참한 50여 목회자들이 우리교회에서 국제전도폭발 임상훈련을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훈련 중에 암기해야 될 내용 가운데 의자 예화가 있습니다. 짧게 이시간에 실습해보고 싶습니다. 나는 훈련자요 성도님들은 훈련생입니다. 물을 때에 \"예\"라고 하십시오. 여기에 의자가 있는 것을 믿습니까? (예) 제가 여기에 앉으면 편안할 것도 믿습니까? (예) 죄송스럽지만 이 의자를 예수님이라고 비유하십시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질 문제, 자녀, 사업, 직장, 결혼 문제 등 몽땅 우리 주님께 맡깁니다. 이것이 나의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의자되신 예수님 따로 있고 나는 여기 가만히 서 있으면 여전히 다리가 아프고 피곤합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이 모든 문제를 내가 안은채로 나 자신까지를 다 맡겨버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안고 내가 의자에 앉습니다. 그러면 아픈 다리도 시원해지고 없었던 평안함도 생겨납니다. 이 평안함이 어디에서 오는 평안함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니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 이것을 받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이유는 의자 따로, 나 따로 이것 때문입니다. 나의 산 믿음이 예수님께 전적으로 맡겨지는 믿음이 되어질 때에 내 삶 속에서 샘물이 솟구치는 것처럼 감사가 솟구치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감사하지 아니할 것 한 가지가 없습니다. 이 순간에도 병원을 둘러보십시오. 중환자실에 수많은 병자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금방 숨이라도 넘어갈 것만 같은 불쌍한 환자가 있습니다. 견딜 수 없으니까 고함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사랑하는 우리 김인규 장로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장지에 와서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건강합니다. 아침을 먹었고 맥추 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 건강 어디에서 났습니까? 우연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물론 좋은 음식을 먹고 비타민을 섭취하고 적당한 운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떨어지는 법이 없고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신바 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을 하나님께서 가게 하실 것입니다. 다가오는 서늘한 가을을 막을 인생이 없습니다. 내가 건강한 것 주님의 은혜요,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 형통한 것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멕시코 어느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나오는 것이 있는데 한 쪽에서 부글부글 뜨거운 물이 솟구치는 것 비해서 다른 쪽에서는 서늘한 냉천이 땅에서 솟구칩니다. 동네 부인들은 빨래 바구니를 가져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구면서 돌아가곤 합니다. 이 광경을 본 외국의 관광객 한 사람이 안내자에게 물었습니다. \"이곳 부인네들은 참 행복하군요\" \"왜요?\" \"한 곳에서 냉천과 온천이 나오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리고는 덧붙였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온천에 또 냉천에 이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겠군요\" 그랬더니 안내자의 말이 반대입니다. \"아니에요. 도리어 불평을 토한답니다. 꼭 나와야 될 것이 안나오기 때문입니다\" \"무엇입니까?\" \"빨래할 때 필요한 비누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요? 감사보다는 불평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링컨의 일생]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너무 가난한지라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독학함으로 자수성가한 위인입니다. 몇차례 선거에 낙선한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선했을 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힘을 내서 이발관으로 달려와 머리를 곱게 단장하고 의복도 더 단정히 입고 힘차게 활보를 했다는 것입니다. 누가 봐도 링컨이 실패했다고 여길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제 나는 또 시작한다. 다시 힘을 내자. 하나님! 링컨에게 힘을 주세요\" 그러면서 반복하더니 결국은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패 없는 성공은 없습니다. 실패 없이 성공할 수 있으나 성공은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실패를 통해서 지도자를 만듭니다. 실패는 지도자가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실패했을 때에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를 훈련시키시는구나 하고 여겨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작은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스펄젼은 \"밤하늘에 별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밝은 달빛을 주실 것이고 달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더 밝은 햇빛을 주실 것이다. 햇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햇빛도 필요 없는 천국을 주실 것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별빛부터 감사하는 경건을 배워야합니다. 다시 말하면 작은 것부터 감사하는 성도라야 큰 것도 감사할 수가 있고 그 믿음을 가지고 이삭을 바칠 수가 있고 나의 옥합을 깨뜨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만났던 그 IMF가 많은 성도들에게서 감사를 빼앗아 갔습니다. 그래서 그후로부터 감사헌금이 줄어들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는데 감사를 빠뜨린 예배를 드리고는 합니다. 그런데 본문 22절입니다. \"이제 이를 생각하라\" 돌이키라는 말입니다. 뉘우치라는 말입니다.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말이요, 하나님 앞에 진실된 감사 예배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인디언 마을에 들어가 전도하고 있었습니다. 그곳 추장이 선교사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만물을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추장이 감격하고 \"나도 하나님께 드리지요\"하면서 2달러를 내놓았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까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자 추장은 더욱 감사하면서 \"저도 제 것을 드리겠어요\" 하면서 담요를 내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사 33년 동안 걸어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했더니 \"선교사님, 제가 타고 다니는 말을 예수님께 드릴께요\" 다시 설교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고 했을때에 추장은 울먹거리면서 \"저를 예수님께 온전히 바치겠습니다\" 무릎을 꿇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정말 감격하다 보면 눈물 가지고는 부족한지라 내 몸을 드리겠습니다 하는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에게 크레디 카드가 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호텔, 식당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마치 크레디 카드와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빌4:19에 \"네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했습니다. 롬8:32을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마6:25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생활이 어렵습니까? 답답하고 아프십니까? 그러나 염려하지 말아야합니다. 주님께서 마침내는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의 말대로 그냥 범사에 감사하면 됩니다. 모리아 산에 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삭대신에 양을 준비하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까. 벳세다 광야에 주린 백성들만 두지 아니하시고 어린 소년을 통해서 오병이어를 내놓음으로 놀라운 이적을 만드셨습니다. 원컨대 맥추 감사주일로 지키는 이 자리가 모리아 산이 되고 벳세다 광야가 되어질 수 있기 원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이레를 만나 뵙고 또 오병이어의 넘치는 열 두 광주리를 남길 수 있는 그러한 이적적인 축복이 이 자리에 있어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는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믿음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믿음만 가지면 천 가지 만 가지가 다 감사할 조건입니다. 감사하지 아니해도 좋을만한 것 한 가지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감사 감사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