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원 5학기

CYBER SCHOOL OF THEOLOGY

신대원 5학기

제목북한의 성도의 신앙과 교회의 형태 2022-07-13 16:56
작성자 Level 10

북한의 성도의 신앙과 교회의 형태


1.북녘 땅에 남은자들

중국의 어느 무역 도시에 북한에서 공무차 온 한 무역 회사원과 호텔방에서 나눈 대화의 내용이다. 만나러 간 사람은 조선족 기독교인이었다.

\"선생님께 전도하러 찾아 왔습니다.\" 그러자 50대 후반쯤 되는 그 사람은 조금도 당황해 하지 않고 \"멀 겁내하십니까 같이 온 동무는 잠깐 어디 갔으니 말씀하세요.\" 선생님은 예수를 믿으십니까?라고 묻자 그는 스스럼없이 \"무슨 말씀인지 알갔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유년 주일학교를 다녔었습니다. 아직도 제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교회에서 배운 찬송가 두 곡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고요한밤 거룩한 밤과 구주 예수나신 날\"입니다. 지금은 제가 노동당에 가입이 되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로동당을 믿고 있습니다. 그간 환경의 지배로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 선생님 이 세상 뜨는 날 천국 못가고 지옥가면 어떻하시겠어요? 하니 그는 아주 진지하게 \"믿어야지요. 나도 창세기를 보았었는데 정말 과학적으로 해명 설명치 못하는 문제를 성경에서는 해명할 수가 있고 구절 구절마다 진리의 말씀이지요\" 그러면 선생님은 천지 창조에 대해 믿습니까? \"아 그럼 믿습니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하나님을 잘 믿겠습니다. 앞으로 연락을 가지고 많은 협조를 주십시오.\"

이분의 가족들은 다 기독교인들이었고 친지들도 교회를 다녔던 분들이었다는 것이다. 그 친척 가운데 한 가정은 공산화 되면서 중국으로 건너오게 되었고, 이들을 통해 그분을 소개받아 짧은대화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만일 이 기독교인이 부모와 함께 남쪽으로 피난을 왔었다면 그분은 아마 장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그 가족은 무슨 사정으로 월남을 안했는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그루터기와 같이 그들을 남겨 놓으셔서 때가 되면 북녘 땅의 교회 재건과 복음화를 분명 이루실 것이다.

\"그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니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6:13)

2. 지상교회와 지하교회

1) 지상교회

북한에서는 현재 평양에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건축해 놓고 그들에게도 신앙의 자유와 교회가 있다는 면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봉수교회는 1988년 평양시 봉수동에 북녘에 공산화된 이후 최초로 세워진 교회로서 출석교인은 약 350명 정도인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두번째로 1992년에 세워진 교회는 평양시 칠골이라는 지역에 칠골이라는 교회 이름을 갖고 있으며, 이 교회는 김일성의 모친이 이곳에서 어린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했던 고을로서 김일성은 자신의 어머니를 기념하기위해 세웠다는 말이 있다. 현재 출석교인은 약 15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교회들은 자유롭게 개개인들이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자의에 의해 자유롭게 아무 간섭과 통제없이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교회를 출석하는 교인들은 당의 지시에 따라 정해진 관제 교인만이 출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교인들은 평일에 정치사상 교육을 받으며 예배시에 그들이 들은 설교 내용은 이러한 사상 재교육을 통해 이들이 기독교화 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교회는 외국인들이나 특히 한국의 해외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얼마전에 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기독교인이 여러 차례에 걸쳐 친지 방문을 한바 있었는데, 최근 그곳을 방문시에 한 안내원에게 주일에 교회를 가야겠다고 하니까 그 안내원은 아주 자랑스럽게 \"평양에는 교회가 두 군데 있는데 어느 교회를 가시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길래 칠골교회를 선택하여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매우 흥미있는 얘기는 세계적인 복음 전도사인 빌리 그레함목사의 부인이 선교사의 자녀로소이다. 평양에 살았었다고 한다.

지금의 이 두교회는 앞으로 북한이 종교 분야에서 대폭적인 개방과 자율권을 허락 할 경우 실질적인 대외 교회 교류를 이루는 중요한 역활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로서는 이 교회를 상대로, 인내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문을 두드려야하는 현실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2) 지하교회

몇 해전에 모 일간지에 북한에 지하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므로, 그간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얘기를 구체적으로 그 증거를 제시해 주어 그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 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필자의 경우도 과연 북한에 지하교회 조직이 현존하고 있나에 대해 늘 궁금해 하고 있었다. 몇년 전에 어느 이산 가족이 친척을 찾아 달라는 부탁이 있어 북한에 친척을 두고 자주 왕래하는 사람에게 인적 사항과 주소를 알려 주고, 생사 여부와 형편을 알아 봐 달라고 하여 수소문한 적이 있었다. 그 대상인은 공산화 되기 전에 10대 소녀였고 모 교회의 주일학교의 학생이었다. 북한의 모 도시에서 현지인을 통해 그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공산화되기 전에 그 근처의 다른 교회의 중고등부 교사로 집사였으며, 그 당시 20대였던 청년이 이제는 80이 다된 노인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사람을 찾기 위해 중국에서 건너간 이분은 현지인의 도움으로 이 노인 집사의 집을 밤에 방문을 하게 되었다. 물론 사전에 그분이 옛날에 교회를 다녔었다는 사실을 안내인으로부터 전해 듣고 그 집을 간 것이다. 물론 사전에 그분이 옛날에 교회를 다녔었다는 사실을 안내인으로부터 전해듣고 그 집을 간 것이다. 이분은 자신이 오게된 모든 배경을 설명하였으나,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경계를 하자, 그분이 입국할 때에 몰래 짐속에 숨겨가지고 간 한국 성경을 내 보이면서 \"나도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하고 하자,놀란 표정으로 그 성경책을 만져 보면서 마음을 누그려트리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놀랍게도 한국에 살아있는 그 목사님을 그 당시에 알고 있었다고 하면서 그분이 정말 아직 살아 있으면 그분의 사진을 보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예상치 못한 놀라운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분은 농짝 깊은 곳에서 한 보따리를 꺼내어 옛날에 그 당시에 그 교회의 주보와 관련된 사진과 인쇄물 등을 보이시면서 지난 날의 교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 노집사님은 \"아직 우리는 신앙을 갖고 있으며, 그 교회 조직을 노인들 뿐만 아니라 청년들도 결성이 되어 있습니다\"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하였다. 그 참혹한 폭압 속에서도 신앙인으로서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의 모습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는 그의 온 식구들이 한자리에 있었고, 김일성 뺏지를 단 안내원도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보다 더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 노인이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이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남한의 교회가 우리 교회들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계획을 알고 싶습니다.\" 이 노인 집사님은 북녙 땅의 교회를 회복시키기 위해 기도로 준비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통일 시에는 남녙의 교회들과 합력하여 무너진 제단을 재건하기 위한 소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그 땅의 남은자들(Remnant)을 이끌어가고 있는 노 선지자와도 같은 분이며,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분들을 지금까지 보호해 주시고 있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크고도 놀라우신 계획하신 일을 이루시기 위해 이와 같은 거룩한 자녀들을 통해 역사하실 것이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 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 오고 너를 헐며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사49:14-17).

이와는 달리 한 가족 단위로 지난날에 장로로 기름부음을 받고 믿음의 가정을 이끌었던 성도는 몇 해전 북한의 어느 지방의 친척집을 방문하였을 때 중국에서 온 모교회 집사님에게 간곡한 부탁을 한바가 있었다. 이분은 평생동안 성경을 가까이 하면서 말씀에 의지하는 삶을 살아왔으나 최근에 와서는 50여년 가까이 보아온 성경책이 더 이상 볼 수 없을 정도로 헤어져서 친척되는 집사님한테 다음에 올 때는 성경책을 꼭 갖다 달라고 한바가 있었다고 한다. 북녘 땅의 그 성도님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성경책을 은밀히 보기위해 방바닥의 구석에 성경책을 감추어 둘 수 있을 정도로 파내어 벽돌로 막아두었다가 밤에는 이 성경책을 꺼내어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게 해오기를 반세기동안 마치 날마다 쌀독에서 쌀을 꺼내듯이 한 것이었다.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3;3).

우리는 이 실화를 통해 북한의 곳곳에, 즉, 지난 날에 교회가 있었던 지역에는 1세대 신앙인들은 아직도 성도의 신앙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어느 가정들은 대를 이어 산 순교자적인 독실한 믿음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북녘 땅에 하나님의 의인들이 결코 적지 않은 수가 있으며,그중에는 피난을 통해 고통과 환란을 면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환난과 순교의 쓴잔을 마다하지 않고 그 땅을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땅으로 확신하는 가운데 무형의 교회를 끝까지 지키고 있는 것이다.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5-16).

이 사실을 통해 또한 가지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북녘땅의 성도들은 우리보다도 더 간절히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고, 만나기를 소원하고 있으며 지금은 그 황무한 땅이 하나님의 언약의 때가 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부요함으로 충족되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정오의 해처럼 빛나고 강물처럼 흐르게 될 것을 소원하고 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부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기 범하면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성에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렘33:6-9)

북한의 어느 도시보다도 교회가 많았던 그곳에는 현지인 (지하교회 성도) 의말에 의하면 아직도 주일이 되면 어느 노인은 육이요 때 폭격을 맞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교회의 터를 빙빙돌면서 혼자 중얼중얼 거리며 기도하다가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 터 위에는 젊은 시절 예배를 드렸던 성전은 사라졌으나,그 성도의 마음엔 아직도 남아 있어 주일을 성수하고자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산 제사를 이날까지 드리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요4:21-23).

3. 가정교회(북한측 주장)

통일원에서 발표한 북한의 종교 자료에 의하면 기독교의 경우 가정교회가 전국에 500여개와 여기에 속한 기독교인들이 약 1만명이라고 한다. 물로 ㄴ이자료는 북한 당국의 발표한 자료를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정교회라는 개념은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뜻하는 것도 아니고,암암리에 예배 모임과 활동을 하는 지하교회도 아닌 제3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에 대한 상식으로는 과연 가정교회가 북한의 통제된 체제에서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실체가 어떠한가에 의문을 갖을 수밖에 없다.

외국 시민권을 갖은 어느 한국인 목사님의 체험담에 의하면, 그분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안내인에 의해 평양에 어느 가정 교회를 방문하였고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성경책도 그 증거로 갖고 왔다고 한다.

다음 기사 내용은 1995년 2월 26일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해외동포원호회\"부원장인 전경남이 미국을 방문하여 버지니아의 Founders Inn에서 교민들과의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두레신문에 소개한 내용의 일부로서 가정교회에 대한 언급을 발췌한 것이다.

기자질문 : 현재 교포사회의 접촉이 주로 기독교 단체 혹은 종교인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그만큼 북한에서의 종교활동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해석해도 좋겠습니까?

리종혁단장은 웃으며 대답하기를 \"활성화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신자들 중에서 핵심적인 인물들은 육이오 때 다 이남으로 갔고,전쟁중에 다 파괴되었는데 우리가 뭐 교회부터 짓겠습니까? 당상 살 집부터 짓고 했지 교회를 세우고 종교생활이 활성화하고 이런 것은 있을 수가 없었지요. 최근에 와서는 국제적인 냉전이 종식됨으로서 여건이 달라지면서 지금까지 교인이던 것을 숨기던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몇년전부터 많이 늘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 질문 중에서 나온 대답 도중에 평양의 봉수교회, 칠골교회, 천주교회 등의 교회 이름이 나왔다....

이어진 질문에 전경남부위원장의 대답이 계속된다. \"아, 우리는 그것 신봉하니까 우리는 종교는 안믿어도 주체사상을 절대적으로 믿고 우리는 교회를 안가도 우리 사상을 통해서 거기서 우리는 확보한다 그런 입장입니다. 옛날부터 교회를 믿었던 분은 그것을 믿었기 때문에 독실한 교인들은 또 가서 믿는기고 아, 그렇지 않습니까? 아, 그렇게 믿게 해당하게끔 종교를 세우면 되는기고, 제가 알기로는 교회는 없지마는 필요한 분들은 가정에서 회원들이 하는기고, 뭐 이렇게 이해해 주십시오.\"

상기의 내용이 지금까지 간접적으로 확인된 정보였으나, 최근 필자는 근래에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에서 처소교회를 통해 신실한 신앙인이 된 당사자와 북한의 실정과 그분의 탈출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중 가정교회에 대한 실상을 상세히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북한 내에 발생되는 정치,사회등 모든 분야에 걸쳐 북한주민의 모든 동태를 조사하며 당에 보고를 하는 높은 직위에 있었던 당시에 본인이 가정교회에 대해 직접 당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감독을 한바가 있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이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본인이 글로 쓴 내용을 소개하므로 가정교회에 대한 실상을 판단하고자 한다.

1987년 10월경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에서 기독교 생활을 하는 교포가 친척 방문을 온다는 소식이 당 중앙위원회 외교부를 통해 우리 군단에까지 하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미국 교포가 이번 방문길에 신앙인들의 생활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였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하나님소리만 하여도 집단숙청당하는 현실에 기독교라는 말조차 사라졌는데 그 어디에 이런 사람들(기독교인)이 있겠습니까?

평양시에는 외국인들이 오면 보이기 위해 여러 곳에 기독교,불교에 대한 처소를 만들어 놓고 여러 차례 련습들을 하여 숙련이 되었지만 우리 군과 같은 지역은 이런 연극이 처음인 것이었습니다.

군당국에서는 급기야 깨끗한 집을 한채 집 수리도 하고 바람 벽에 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걸어 놓고 몇 명을 선발하여 대기시켜 놓았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 애를 먹었습니다. 이들은 영화에서 본 기억들을 더듬어 무조건 처음부터 상대방이 말마디가 끝날 때마다 아멘 하면 된다는 데 락착이 되여 아멘 훈련을 하였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미국 교포가 \"무엇을 믿습니까?\"라고 물으니, \"아멘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하였고, \"누가 구원했습니까\" 하자 \"아멘이 구원했습니다.\" 오직 아는 것은 \"아멘\"하는 소리뿐이니 그 교포가 이상하여 \"무슨 교파입니까\"라고 물으니 \"아멘교파입니다\". 이분은 너무도 한심스러워 \"북한은 기독교도 창조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같다\"는 소리를 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상부에 보고 되어 이 연극을 담당했던 간부는 제대로 훈련을 못시킨 죄로 혁명화(보수가 없는 노동으로 막일을 하는 기간) 1년을 걸치고야 원대복귀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롱질로 이 사람을 만나면 \"아멘동무\"라고 놀려주곤 하였습니다. 때문에 기독교의 가정교회의 연극이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 서로 발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디음해인 1988년 봄에 세계 어떤 종교단체에서 대표단이 오는데 이들에게 보일 연극 연출이 재수없게 저에게 걸려들었습니다. 제가 나가서 준비시키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보지도 못한 연극을 만들어 내야하는데 씨나리오 대본도 주지 않고 하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는 생각다 못해 집으로 퇴근하다 다리를 상하여 운신을 못한다고 열락을 하고는 성한 다리에 옥도정기를 바르고 붕대로 감고 며칠 동안 꾀병을 하여 내 대신 다른 사람이 하였습니다. 그도 역시 연출을 잘 못해 몇 칠 동안 곤역을 치르었습니다. 저는 그후에 별명이 \"아멘 기피자\"라고 불린 적이 있었습니다.(96.12 탈북자의 증언)

이상과 같이 북한이 주장하고 있고,몇몇 재외 기독교인들이 직접 목격하고 참여해 보았다는 일명 \"가정교회\"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본다.

4.동토에 돋아나고 있는 새순

북녘이 공산화된 이후 이북 5도에는 약 3천개 이상의 교회들이 있었고 평양의 신학교와 이곳을 통해 수많은 목사와 선교사들과 신학자들을 배출시킨 한국교회의 요람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복음화와 성령의 역사가 왕성했던 지역이었다. 그 중심을 이룬 평양을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까지 한바가 있다. 그러나 공산 정권이 설립된 이후 이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환란과 고통을 통하여 순교의 피와 눈물이 스며있는 땅이 되었다.

지금은 황무한 땅이요 장망성과도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버린것이 아니요 다시금 세우시기 위해 정결케 하시는 작업을 하고 계시다. 이 땅이 분단과 공산화 된지 반세기가 지나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 땅이 삼기쿰바 되고 흑암의 땅이요.얼어 붙어 결코 회복될 수 없는 죽음의 땅같이 보이나 그분은 살아 역사하셔서 보이지 아니한 강한 손길을 통해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일을 행하고 계시다.

북녘 땅을 다시 거룩한 땅으로 변화시키시기 위해 성령께서 그 작업을 다양하게 진행하시고 있다.

지금 보기에는 다 죽은 것 같은 그루터기같으나 여기에서 새 싹을 튀우시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이 북녘에 안팎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북녘 땅의 기경하시는 모습을 실례로 증거하고자 한다.

- 북한의 교회를 대표하는 평양의 모 교회와 관제 교인으로서 원래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가운데 있었으나,퇴직후 당에서 교회에 나올 것을 통보 받고 그 교회를 나오라는 날이면 출석을 하게 되었다. 그는 얼마 동안을 그렇게 타율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가운데 그 교회에 비치되어 갖고 다닐 수 없는 성경을 호기심으로 예배시간을 통해 보거나, 국내외의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점차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그후로부터는 성경을 좀더 보기 위해 출석하는 주일에는 남보다도 일찍 가서 성경을 관심있게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예수님을 믿으니 모든 것이 형통하고 마음의 평강과 건강이 좋아지고 영생을 얻으니 참으로 좋습니다. 전에는 가짜로 믿었으나 이제는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다.앞으로 나는 죽도록 열심히 전도를 할 것입니다.\"라는 결심했다고 한다.(96년 평남의 40대 여자)

북한 당국은 예배당을 세워놓고 대외 선전용으로 불순한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감동시키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있다. 비단 이성도 뿐만아니라 같은 체험을 통해 신앙인이 되는 경우는 지속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머지 않은 장래에 북한이 중국과 같이 개방과 개혁을 통해 종교에도 자유를 허락한다면 평양의 두 교회들은 참다운 구원의 방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분명한 점은 하나님께서 평양에서도 구원의 역사를 지금도 행하시는 가운데 새로운 믿음의 세대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 \"저는 이번 방문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되었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앞으로 하나님을 잘 믿어 멀지 않은 장래에 저희 동네에도 교회가 세워지면 제가 핵심이 될 것을 굳게 결의합니다. 명년에도 다시 만나 많은 복음의 은혜를 받을 것을 기대합니다.\" 이분은 성경을 가지고 갈 수 없자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깨알과 같이 써서 자신이 입고 온 외투의 속감을 뜯고 그 속에 쪽지를 바늘로 다시 꿰메어 입고 돌아갔다. 그는 성경을 보는 가운데 자신이 이제껏 헛 살아왔다고 고백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이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96년 평북의 50대 남자)

-\"저가 이번에 심각히 느낀 것이 주안에서 형제자매의 사랑만이 참 사랑인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번에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어 천국나라의 자녀가 되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예수님을 잘 모시고 전도를 잘 하기를 결심하였습니다. 저의 앞날을 위해 기도 많이 하여 주시기를 기대합니다.\"(96년 함북의 50대 여인)

- 북한에 어느 도시로 친지 방문한 조선족 기독교인은 배고픈 친척과 이웃들에게 양식과 생활용품을 나누어 주었다. 도움을 받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30대 청년이 이사람에게 찾아와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좋습니까\" 라고 묻자 그분은 \"우리 아버지가 좋으신 분이니까 나도 응당히 마음이 좋고 선해야지요\"그러자 그 청년은 다시 묻기를 \"선생님의 아버님이 아직도 살아 계신군요\"라고 하자 \"우리 아버님은 하늘에 계셔서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시고 복고 은혜를 부어 주시고,눈에 안보이나 우리와 늘 함께 계시죠\"하자 그 청년은 다시 \"아! 하나님말이죠 저도 들은 적은 있습니다. 그러면 나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라고 되묻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믿으면 됩니다.\" 그러자 다시 그는 \"나도 믿겠으니 앞으로 많이 방조해 주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하고 아주 진지하게 반응하여 오자 그분은 쪽지에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써주면서 설명을 간략히 해주자 그 청년은 마지막으로 \"귀신도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도 계시지 않겠어요.여하튼 잘 믿어 보겠습니다.\" 하면서 결신까지 하였다.(97년 평북의 30대 남자)

- \"저는 조선땅 맨 막바지 땅 외진 산골짜기에 사는 하나님을 믿는 한 여성입니다. 저는 이미 전에 하나님에 대해 들어 보지도 배워보지도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을 믿는 한 여자 친구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성경책도 빌려보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성경책을 볼 때는 우리는 마음대로 볼 수 없고, 내놓고 다니면서 선전할 수도 없기 때문에 김일성 회고록을 밑에 받쳐 놓고 보아 왔습니다. 그래서 신약 전서도 보게 되고 창세기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야기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인자하고 이 땅에 있는 모든 신자들을 위해서 자신의 진짜 모든 것을 다 바쳐 주시는 우리 아버지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번에 목사님을 통하여 더 구체적으로 배우게 되었고, 앞으로 생활에서도 격으면서 내가 하나님을 더욱 진심으로 믿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해야 되겠다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고 하나님을 따를 생각입니다.\"(98년 양강도 30대 여인)

이 성도는 30대의 주부로서 생활고에 어려움을 겪던 중 이웃에 사는 한 친구로부터 전도를 받아 성경책을 빌려 6일동안 신약성경 전체와 창세기를 보는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게 되었고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자매는 이전에는 김일성을 자신의 삶을 보장해주는 아버지로 믿고 살아왔으나, 그도 일반인과 같이 죽자 그에 대한 절대적 신앙이 무너진 상태였다.

최근에 와서 성경을 직접 보게 되었고 확신을 갖게 된 가운데 이제는 성경의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을 나의 아버지로 믿고 모시며 살겠다는 새로운 신앙을 갖게 된 것이다.

- 97년 4월 심양에서 어느 처소교회의 집사의 소개로 압록강을 넘어 온 한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놀라운 점은 그의 가방에는 성경책과 신학책이 여러 권이 들어 있었다. 그 청년은 그 책들을 가장 소중히 지니고 다녔던 것이다. 신변 안정상 한 처소 교회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므로 여러 곳을 다니면서 약 두달 동안 양육을 받으면서 얻은 책들이었다. 그는 성경에 대해 수준 높은 지식과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 청년과 대화를 하는 가운데 평북 모 도시에서 대학까지 마쳤으며, 자신이 사는 곳은 중국과 국경 도시이므로 많은 밀수품들이 들어 오는데 그 가운데에 성경책도 비밀한 방법을 통해 들어 온다는 것이었다. 자신과 친구들은 은밀한 방법을 통해 성경책을 얻게 도었고 서로 돌려 보았다는 것이다. 이 청년은 중국에 오기 전에 이미 자생적 기독교인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었다.(97년 평북의 30대 남자)

나는 이 청년을 앞으로 더욱 양육하기 위해 중국에 체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겠으니 양육을 받도록 권하지 그는 그렇게 할 것을 동의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아침에 심정의 변화가 일어나 나에게 말하기를 \"목사님 제가 중국에 더 이상 머문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들을 우리 동무들에게 빨리 전해 주어야겠습니다.오늘이라도 당장 건너 가겠습니다.\" 나는 무모한 생각이라고 말렸으나, 그는 밤새 생각을 굳힌 것 같았다. 그에게 다시 말하기를 \"만일 압록강을 건너다 국경 경비대에 발각이 되면 죽을 수도 있을 텐데 위험하지 않느냐?\" 그의 결심이 너무도 확고하기에 더 이상 권유하지 않았다. 그 청년이 고백한 \"진리\"라는 말에 다시 묻기를 \"진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가 다시 대답하기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너무도 정확한 명답이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라고 말씀하셨다. 이 청년은 짧은 기간에 중국의 조선족 교회의 신앙 생활과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집중적인 가르침과 자신의 열정적인 배움의 자세로 상당량의 신학 서적과 설교 테이프를 통해 충분한 전도자의 자질을 갖춘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된 모습을 갖고 있었다.

나는 이 청년에게 한국의 교회에 전학 싶은 말이 있으면 녹음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러자 그는 바로 노트를 꺼내어 글을 쓰더니 곧 육성을 녹음하였다.

저는 신의주 청년입니다. 저는 견딜래야 견딜 수 없는 초고압적인 파쑈 통치와 공포의 흑암을 박착 중국 땅에 와서 그렇게도 애타게 갈망하던 진리의 길 영생의 길에 들어 설 수 있는 행운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을 받고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을 여러 형제님들을 통하여 가슴 뜨겁게 느끼게 되었으며 새 생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지금 평양은 사탄들의 활무대로 변하여 복음을 받을 자리를 잃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전쟁보다 더 무서운 불행과 고통을 백성들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평양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북녘 동포들은 반듯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도 더욱더 복음을 갈망하던 우리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복음의 불씨를 받아 안고 전하려고 합니다. 평양은 세계 선교의 마지막 리정표로 되며, 아울러 세계 선교의 중심지로 역할을 감당,수행할 수 있는 커다란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분명 나의 꿈을 만드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성공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이고 하나님의 도움이 반듯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게 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평양에서 지은 노래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사나이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나 나 하나의 안락만 찾다가 말랴 그 누가 이 나라를 구원해 주랴 일어나자 대장부야 목숨을 걸고 감옥도 죽음도 두렵지 말자 예수와 더불어 영생하리라.

우리는 이런 신념의 노래를 부르며 사선을 넘을 것입니다. 세계 진보적 인류의 마음을 담아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드리며 찬송을 드립니다. 평양 찬송가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복있는 이세상 복받은 나는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거치른 이 세상 죄 많은 나는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꿈에서 뵈었다고 생각 마세요 정말 뵙고 울었습니다 너무 기뻐 목이 메어 울었습니다.(1절)

골고다 언덕에 높이 계시는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보혈로 구원된 내 맘 속에서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하나님 모습으로 우리 예수님 온 세상을 부르십니다 주 예수님 모습으로 찾으십니다.(2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즐거운 이 마음, 그 어디서나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그 무엇도 다 주시는 우리 예수님 그 무엇도 받으십니다. 너무 좋아 그 품에 안겼습니다.(3절)

\"성령님 내려요\"

성령님 내려요 어제도 오늘도 성령님 내려요 축복의 성령님 하나님 예수님을 높이 모실 성령님 오셔 이 가슴 언제나 이심장 언제나 예수님 살펴요.

한국에 성도 여러분 전인류의 그리스도화를 위한 성스러운 길에서 서로 어깨 걸고 나갑시다. 북녘 동포들의 구원을 위해 합심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의 언덕에서 영원한 상봉을 이룰 것입니다. 감사합니다.현재 북녘 땅에 살면서 성도로서의 신앙을 갖고 있는 이들은 공산당으로부터 지금까지 기독교와 교회는 제국주의의 침략의 앞잡이며, 미신으로서 처음에는 착함을 통해 사람들을 미혹시켜 결국에는 식민지와 노예로 삼아버리는 타도의 대상인 것으로 어렸을 때부터 쇠뇌 교육을 받아 왔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신앙인이 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 북녘 땅의 복음화를 이루실 것이다. 이들은 어떤 종교나 미신에 물들지 않은 순결한 영혼들로서 마치 마른 땅에서 솟아나는 새순과 같으며, 비록 배고픔과 가난으로 그들의 모습이 초라해 보일찌라도 그 영혼의 깨끗함은 마치 새벽 이슬같다.

신앙계 96년 5월호에 실렸던 글 강석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