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원 5학기

CYBER SCHOOL OF THEOLOGY

신대원 5학기

제목추도예배의 교육적 의미 2022-07-13 16:38
작성자 Level 10


추도예배의 교육적 의미



목회란? 넓은 의미로 말한다면 목회자가 교회봉사를 위하여 실행하는

모든 행위와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 그것을 좀 구체적으로 구분

한다면 제사장으로서의 예배 인도자, 복음 증인으로서의 설교자, 교인을 돌

보는 치료자,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교사, 교회를 감독하는 행정가, 신자

를 양육시키는 지도자, 교회와 세상을 섬기는 봉사자, 사회적 책임을 수행

하는 예언자등으로 구분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능들이 엄격하게 구별된 독립적인 기능은 아니다. 때

에 따라서는 두기능 또는 세기능이 함께 수행되는 경우도 있다.

그 예를 추도예배에서 찾을수 있다. 추도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는 복

음의 증인으로서의 설교자의 기능도 수행하면서 한편 교회에서 공중 예배때

에 설교자의 자세와는 달리 슬픔을 당한 교인 또는 사별의 아픔때문에 괴로

워하는 이들을 돌보는 치료자의 기능도 함께 수행하여야 할것이다.

뿐만아니라 추도예배의 의미를 가르치며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추도예

배를 드리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교사의 기능도 수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목회자의 목회사역이 어느하나 쉬운것은 없지만 필자의 경험에서는 장례

를 치르는 일과 추도예배를 인도하는 일이 어려운 일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추도예배를 둘 수 있다.

추도예배가 어려운 사역이 되는 이유는 조금전에 언급한 바와같이 복음

전도자로서의 설교와 사별의 아픔을 돌보는 치유자로서 그리고 추도예배의

의의와 의미를 가르치는 교육자의 기능을 함께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추도예배 인도가 어려운 사역이 되는것은 내세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아주는 일에 어려움 때문이다. 믿는 사람의 사후에 대한

교훈은 성경에 교훈하신대로 설명하면 어렵지 않으나 믿지않고 돌아가신 부

모님이나 형제들의 추도예배때에는 각박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믿지않고 돌

아가셨 으므로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없는 소망이 없는 영혼으로 단언하기

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인의 의식구조로서는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 믿음에 있지 않

고 선행에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전에 의하면 극락에 갈 사람은 임금에 극간하여 나라에 충성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여 가범을 세웠으며 배고픈 이에게 밥을주어 구제하였

고, 헐벗은 이에게 옷을 주어 공덕을 쌓았고, 병든 자에게 약을 주어 활인

공덕( )등에 선행이 곧 내세에서의 상 받고 내세에서 영생복락

을 누릴 기준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때로는 추도예배때 교인중에서 우리 부모님들은 예수는 믿지 않

았으나 믿는 사람보다 더 착한 일을 많이 했으니 천당에 가셨겠지요? 하고

물어올때에 면전에서 각박하게 밝혀 말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

다.

세번째 추도예배가 어려운 것은 추도예배를 원하는 교인들의 의식문제이

다. 즉, 옛날에 부모님의 기일에 거행하던 제사를 우리 한국교회는 우상

숭배라고 금지시키고 그 대신 추도예배라는 제도를 권장했다. 그러나 추

도예배가 이름과 방법만 바꾸었을뿐 의식구조는 부모님께 제사드리는 마음

으로 추도예배에 앉아 있는데 목회자의 고민이 있다.

또 추도예배란 말자체가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그것은 자

칫 잘못하면 부모가 예배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올바른 추도예

배를 인도하기 위해서는 (1) 성서적 내세관의 확립 (2) 구원과 심판에 명확

한 성서적 기준 (3) 추도예배의 올바른 의의등이 선행되어야 올바른 추도예

배를 인도할 수 있을것이다.

따라서 내세관의 확립, 구원과 심판의 기준 그리고 추도예배에 대한 올

바른 인식을 위해서는 먼저 추도 예배전에 교육을 하여야 할 것이며 또한

교육하면서 추도예배를 인도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목회사역 전 교육과 목회사역 중 교육이라고 구분 할 수 있을것

이다. 먼저 목회사역 전 교육이다. 우리교회는 평신도 교육이다. 제직

교육 또는 지도자 교육, 교사 교육, 새신자 교육등 특별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또한 실시 하면서도 아직도 무관심속에 외면하고 있는 특별 교육분

야가 있는데, 그것은 가정교육이나 신혼 교육, 부모 교육 그리고 추도예배

를 위한 준비 교육등이다.

이런 특별 교육들은 설교를 통해서나 성경공부를 통해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런 특수교육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당되는 사람이 따로 있고, 관심이 있는 사람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교육은 교육내용이 피 교육자의 관심과 필요가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론 교육만으로는 완전한 교육이 되지않고 이론 교육과 함께 실제

교육, 현장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런 구체적인 교육은 남선교회나

여전도회 주관으로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목회자가 계획을 세워 실행할 수

도 있을 것이다.

두번째 교육 내용이다. 교육에서 무엇을 가르칠것인가?는 매우 중요하

다. 교육의 내용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첫 단계가 필요에서 출발하여

야 한다.

필요한것이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교육 내용이

편성되어야 한다. 추도예배의 사전교육은 추도예배가 무엇인지 가르쳐야

할 필요성과 추도예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아야 할 필요 때문이

다.

때문에 이러한 필요에 바른 해답을 주는 내용이 곧 교육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추도예배의 근원은 분명히 성서적인 것에서 출발된 것은 아니

다. 한국인 또는 동양인의 오랜 내세관 내지 사생관과 효도의식에서 그

유래를 찾아야 할것이다.

한국인의 내세관은 독특했다. 한국인의 의식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사

람속에 있던 넋(영혼)은 저승같은 곳에 곧바로 가지 않고 이승(이세상)이나

그와 가까운 사람들 곁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믿었다.

즉, 심장이 멎으면 완벽하게 없어지는 것도, 떠나는 것도 아닌, 그렇다

고 그 넋(영혼)이 영원히 존재한 것도 아니라 마치 석양의 붉은 빛처럼 윤

곽도 없이 존재하다가 어느 만큼의 세월이 지나면 일반 혼령 가운데 용해되

어 버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죽은 후 얼마동안은 그 넋을 현세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것으

로 알고 또한 현세에 머물도록 하지 않으면 화를 당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때문에 사람이 죽은후에 시체는 흙속에 묻으나 넋은 신주로 삼아 죽은

후에 일정한 기간 제청( ) 을 만들어 집 식구들과 함께 먹고 같이 잔

다. 그리고 그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사당으로 신주를 옮겨 놓고 집을 출

입할때 마다 사당에 고해야 하고,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때면 사당의 영혼

에게 고해야 한다.

또한 맛있는 음식이 생기거나 특별한 절기가 되면 먼저 그 음식을 죽은

넋에게 바친 후에야 먹도록 되어있다. 사당에 모시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

면 기일( )에 불려 제사를 지내고 명절마다 차례 ( )를 지내

고 성묘도 가야한다.

이처럼 한국의 내세관은 죽음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어정쩡한 사생

관에서 기일제사가 유래된것이다. 기일제사가 무상적 행위가 된다고 하여

교회는 그것을 추도예배로 바꾸게 된것이다. 또하나의 추도예배의 근거는

효( )사상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인간의 가치를 효도에

두었다.

그 효도의 크기에 따라 명예가 주어 졌으며, 심지어 효도에 따라 조세부

담도 가감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효행풍습은 살아 계신 때보다 죽어서 더

했다. 친상때에는 무덤에 이슬이나 비를 가리는 초려를 짓고 3년동안 묘

를 지키는 일이 보편화 되었고, 그리고 친상때에는 관직도 버리고 먹고 싶

은 음식도 안먹고, 입고 싶은 옷도 안입고, 농사일도 안하고 심지어 집에

불이 나도 달려가지 않았다.

즉, 먹고 입는 것 보다 가산이나 가족보다 부모의 무덤을 더 소중하게

어겼던 것이다. 3년 동안은 고기, 술, 담배를 피했고, 3년 상중에 아이를

낳으면 가문의 수치로 여겼으며, 3년 동안은 죄인이라는 의식으로 하늘을

우러러 보지 못하고 땅만 쳐다 보고 다녔고, 베옷 차림으로 허리띠를 풀지

않고 살아야 했다.

이렇게 체질화된 효행풍습은 부모님이나 조상들의 기일이 되면 그 날에

음식을 마련하여 대접하여야 돌아가신 분에게 효도한다고 생각하여 장손의

경우 연중 거의 계속되는 조상에게 대한 제사일로 시달리고 가산을 탕진하

게 되는 폐습을 낳기 까지 했다.

이런 낡은 폐습이 기독교와 함께 들어온 서구 문명의 물결에 밀려 극단

적 효도행위는 사라졌으나 아직도 부모님의 넋을 위로하고 대접하므로 효도

할 수 있다는 뿌리깊은 의식은 한국인의 마음속에 남아있고 이런 의식때문

에 부모님 또는 조상의 기일은 그대로 지나갈 수 없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조상의 기일 제사를 추도예배로 대신하는 제도가 생기게 된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기독교적인 사생관과 효행을 가르쳐야 할것이다. 아

직도 기독교인이 되면 조상의 제사를 못지내고 그렇게 되면 조상에 대한 불

효요 반역이라 생각하여 부모의 제사문제 때문에 기독교인이 되기를 주저하

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할때에 추도예배에 대한 교육이야말로

올바른 신자의 생활을 지도하는 일과 부모에 대한 제사 문제로 갈등을 겪는

성도들의 그 갈등을 해소시켜 주는 치유의 목회를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서

효율적인 선교를 위해서도 추도예배에 대한 사역전 특수교육이 반드시 이루

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향을 피울것인가? 상을 차릴것인가? 사진을 걸

을 것인가? 하는등의 방법문제도 교육해야 할것이다.

즉, 사전에 교육받지 못한 가정이나 교회에서 추도예배를 위한 특수교육

을 실시하지 못했을 때에는 추도예배를 인도하면서 예배 인도와 교육을 병

행하는 방법이다.

교육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경험을 토대로 한 교육이다. 그래서

교육학자인 쟌, 듀이는 교육은 곧 경험이다라고 말했다. 더욱히 인간들이

애써 외면하려는 죽음의 문제는 눈앞에서 숨을 거두는 부모 또는 형제를 바

라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교육해야 효과적인 교육이 된다.

죽음이 나와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후에야 가장 진지하게 죽음의 문제를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

야기로 받아 들이게 되므로 죽음의 준비 또는 사생관의 확립을 위한 좋은

교육적 기회가 바로 추도예배를 인도하는 시간이 될것이다.

그리고 추도예배를 통해 기독교적인 효가 무엇이며 어떻게 효를 할것인

가?를 가르치고 더 나아가 교인에 생존의 교훈과 유지를 기억하고 계승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교육이 되어야 할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추도예배는 단순한 옛날 우리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형

식을 기독교적인 옷만 입힌 관습적인 의식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목회의

장으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