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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설교는 짧게 하고 원고는 보지 말라 운영자 2019-03-092022-07-13 11:42
작성자 Level 10

설교는 짧게 하고 원고는 보지 말라

박철목사

설교는 짧게 하고 원고는 보지 말라

설교자 자신이 감동 받지 못하면 청중도 마찬가지


목사로서 제일 괴로운 일 중에 하나는 설교 준비가 안 되었는데 설교를 해야 하는 경우이다. 준비가 부족하면 횡설수설하게 되어 있다. 어느 때는 설교랍시고 마구 지껄이고 나서 서재에 들어오면 그렇게 부끄럽고 참담할 수가 없다.

성경말씀을 잘 해석해서 먹기 좋게 요리를 해서 주어야 하는데, 마구 잡탕을 만들어, 밥인지 죽인지 모를 정도로 만들어놓고 누구 보고 먹으라고 한 것인지? 그럴 때에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나는 교우들에게 설교할 때는 가급적 설교를 짧게 하려고 노력한다.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놓아서 좋은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예배 시간은 99% 정확하게 지켜진다. 설교 언제 끝날 것인가?걱정할 것 없다. 딱 정해진 시간에 끝나기 때문에 시계를 볼 필요가 없다.

농번기 때에는 교우들의 심신이 지쳐 있다. 그럴 경우에는 더 간단하게 한다. 그러면 교인들이 좋아한다. 교인들이 좋아하면 목사도 좋다.

내가 아는 어느 후배 목사가 자기네 교회 교인 중 한 사람이 찾아와서 목사님, 설교를 어쩌면 그렇게 은혜롭게 하세요?하더란다. 목사가 설교를 은혜롭게 잘 한다고 교인에게 칭찬을 들었으니 얼마나 기분 좋겠는가? 어느 날 후배 목사가 자기를 칭찬해 준 분에게 물었단다. 요즘도 내 설교에 은혜를 받느냐?고, 그리고 내 설교가 어째서 그렇게 은혜롭게 느껴지냐?고. 그랬더니 그 교인이 목사님 설교는 하나도 졸리지가 않아요!그러더란다.

설교가 하나도 졸리지 않다…그럼, 어째서 하나도 졸리지 않으세요?하고 물었더니 목사님은 교인들이 졸 시간을 주지 않잖아요, 이제 좀 졸려고 하면 설교를 끝내고 말아서 한 사람도 안 졸아요. 그러면, 내 설교가 은혜롭다고 한 것은 설교를 짧게 해서 한 말이었던가?

나는 후배 목사가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을 듣고 나서 바로 실천했다. 설교가 짧다고 명설교이고 은혜로운 설교는 아니다. 짧지만 설교의 주제와 내용이 농축되어 있어야 한다. 내용이 깔끔하고 분명해야 한다. 그러니 준비는 더 많이 해야 한다. 생각도 더 많이 해야 한다.

3년 전 지방 목회자들의 세미나에서 어느 선배 목사님이 강의 도중 엉뚱한 질문을 던지셨다. 지난주 자기가 한 설교 제목을 기억하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그랬더니 목사들이 멈칫멈칫 눈치를 살피더니 절반쯤 손을 든다. 또 묻는다. 그러면 지난주 자기가 한 설교 본문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그랬더니 3분의 1도 못 들었다.

바로 며칠 전에 한 설교 제목과 본문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일단 설교 준비를 소홀히 한 것이고, 그리고 자기 설교에 감동과 은혜를 받지 못한 증거라고 하신다. 백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나는 최근까지 원고설교를 했다. 지난 20년 동안 한 설교노트가 30권이 넘는다. 여기서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 설교집을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도 있는데, 젊은 목사가 설교집을 내놓는 것도 우습고 해서 그냥 보관하고 있다. 정성껏 설교를 준비해서 설교 시간에 그걸 능숙하게 읽었다. 읽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그런데 요즘은 원고설교를 안 한다. 원고를 가급적 안 본다. 어느 때에는 설교노트를 아예 덮고 할 때도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설교원고를 충분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설교 내용에 익숙해야 한다. 처음에는 조금 불안했다. 괜히 엉뚱하게 헛소리나 하는 것이 아닌가? 횡설수설하다가 망신당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설교 준비가 부족한 경우에는 괜히 소리를 크게 지르고 횡설수설하는 수도 있으나, 설교 준비가 잘 되어 있으면 오히려 원고를 덮고 해도 자신감이 생긴다.

설교가 내 몸을 통해 말로 전달되는 것이, 마치 관악기 연주자가 관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 관악기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그 바람이 달팽이 같은 관을 지나는 동안 공명(共鳴)되어 아름다운 소리가 되어 나온다. 설교자 자신을 하느님께 맡기고 나는 철저하게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준비되어 있는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다.

설교자 자신이 자신의 설교에 감동 받지 못하면 청중들도 감동을 받지 못한다. 자신의 설교에 감동 받는 것과 자기도취는 다르다. 노트를 덮고 설교해 보자. 그것이 정 어려우면 간단한 메모를 들고 해 보자.

A4용지 4분1 크기만한 종이에 간단한 줄거리만 적어서 그날 설교의 흐름만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설교 요약을 너무 길게 하면, 또 그걸 읽으려고 할 테니. 길게 해서는 안 된다. 가급적 그것도 보지 말라.

설교자의 시선을 교인들의 눈과 마주쳐야 한다. 그러면 청중들도 설교에 집중하게 된다. 교인들이 설교 시간에 딴청을 부리는 이유는 설교자와의 소통(疏通)이 안 되기 때문이다. 설교도 훈련이고 경험이다. 원고를 준비하되 원고를 보지 말라.

설교를 길게 늘어놓지 마라. 설교가 길면 교인들은 잔소리로 듣는다. 나는 설교 전문가가 아니다. 너나 잘 하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설교를 하나님이 주신 업(業으)로 하고 살아갈 사람이라면 귀담아 들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설교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난 다음이다. 설교준비는 하나도 하지 않고 원고 없이 하면 저자거리의 가짜 약장수의 약 파는 소리와 다름없다.

목사에게 있어서 설교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그 꽃이 싱그럽고 아름다운 향기로 전해져 설교를 듣는 이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아름다운 향기를 전하기 위해 더 많은 기도와 묵상과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