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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BER SCHOOL OF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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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물설교 자료 1 운영자 2019-03-092022-07-13 11:49
작성자 Level 10

다윗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

 

1. 인적 사항

1) 다윗은 ‘사랑스러운 자’라는 뜻. 2) 이스라엘의 王政의 두 번째 왕.

3) 유다 지파 이새의 막내 아들로서 베들레헴에서 출생(삼상 17:12).

4) 7명의 형들과 2명의 누이가 있었음(대상 2:13-16).

5) 미갈, 아히노암, 아비가일, 밧세바 등 많은 아내와 첩을 둠, 소생으로는 19남 1녀와 그 외 많은 첩의 아들들이 있음(대상 3:1-9).

6)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서 솔로몬을 낳음(삼하 12:24,25;대상 3:5).

7) 원래 목동이었고, 사울 왕 시대에 궁중 악사와 군대 장관으로 활동함(삼상 16:11.22;18:13).

2.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에 왕정이 시작되던 때인 B.C.1040년에 태어나 B.C.970년을 일기로 사망하기까지 통일 국가의 제2대 왕으로서 국가의 체제를 강력하게 정비해 나간 인물, 당시 이스라엘은 이제 사울을 초대 왕으로 하여 왕정을 수립하게 되었고, 백성들이 여망 하는 바 외적의 압제로부터 막 벗어나는 시기에 있었다. 그러나 사울이 비록 왕이라는 직책을 수행하기는 했지만, 정치적․군사적 입장에서 볼 때 그는 이전의 사사들과 크게 다른 바 없었다. 그리고 근동 국가들이 강력한 왕정 국가를 형성하고 있고 막강한 군대와 병기들을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한 사람의 독자적인 역량으로 이끌어 나가는 이스라엘의 체제로서 그들을 끝까지 대적하기란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도피 시절에 군대의 조직력, 전략적 역량들을 키워 나갔으며, 근동의 왕정 국가들과 대동한 위치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올릴 수 있는 영도력을 키워 나갔다.

한편 구속사적으로 볼 때 당시는 하나님이 인본주의적 동기에서 세움 받은 사울 왕을 폐위하시고 다윗을 통하여 신본주의적 왕국을 세워 나가신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사사시대의 모습을 아직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이스라엘을 당당한 왕정 국가로서 그 기틀을 구축한 시기였다.

3. 주요 생애

 

베들레헴에서 출생

1세, B.C.1040년

삼하 5:4

목동 생활을 함

삼상 16:11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음

15세, B.C.1025년

삼상 16:6-13

사울 왕의 궁중 악사가 됨

삼상 16:14-23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죽임

20세, B.C.1020년

삼상 17:41-54

요나단과 우정이 깊어짐

"

삼상 18:1-4

사울 왕의 군대 장관이 됨

"

삼상 18:13-16

미갈과 결혼

"

삼상 18:17-29

사울의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님

B.C.1020-1015년

삼상 19:8-26:25

요나단과 두 차례의 맹약을 맺음

"

삼상 20:1-42;23:16-18

자기를 ?는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줌

"

삼상 24:16;23:18

아비가일, 아히노암 등과 결혼함

23세, B.C.1070년

삼상 25:2-4

사울이 죽기까지 시글락에 체류함

B.C.1015-1010년

삼상 27:1-30:26

헤브론에서 Ÿ㎢牡?완이 됨

30세, B.C.1010년

삼하 2:1-4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왕이 됨

35세, B.C.1005년

삼하 5:1-5

시온 산성을 정복

37세, B.C.1003년

삼하 5:6-10

예루살렘으로 법궤를ㄹ 옮김

삼하 6:1-23

성전 건축을 허락받지 못함

대상 28:3

1차 정복 전쟁

삼하 8:1-14

2차 정복 전쟁

삼하 10:1-14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함

49세, B.C.991년

삼하 11:1-27

선지자 나단에게 심판을 경고받음

"

삼하 12:1-14

가족간의 싸움이 일어남

삼하 13:1-39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피함

61세, B.C.979년

삼하 15:1-19:8

궁으로의 귀환

삼하 19:9-39

인구 조사를 실시

67세, B.C.973년

삼하 24:1-25

솔로몬에게 왕위를 계승

왕상 1:5-53

다윗 성에 장사됨

70세, B.C.970년

왕상 2:1-11

 

4. 성품

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만큼 겸손하고 신실한 신앙인(삼상 16:7;행 13:22).

② 양을 치던 자로서, 사울 왕의 궁중 악사로서, 또 왕으로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만큼 책임감 있고 성실한 자(삼상 16:11,23;17:20;삼하 5:25;6:18,19).

③ 하나님을 의지하여 몰매만을 가지고 블레셋 장군 골리앗에게 담대히 도전할 만큼 담대하고 강건한 믿음을 소유한 자(삼상 17:40-49).

④ 매번 블레셋의 침입을 재치 있게 대적하여 무훈을 세울 만큼 지혜롭고 용감한 자(삼상 18:30).

⑤ 사울 왕이 자기의 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했을 때 자신은 비천하고 무가치한 자라고 고백할 만큼 겸손한 한 자(삼상 18:18,23).

⑥ 계속되는 사울의 살해 음모에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원을 호소할 만큼 늘 기도하며 그의 도움을 간구하는 신앙인(시 34:1-22;56:3;59:1-17).

⑦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울을, 오히려 자기가 죽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지라도 기름 부음 받은 그를 죽이지 않을 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인(삼상 24:1-22;26:1-25).

⑧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원수 관계인 애굽인이 병들어 눕게 되자 그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여 생명을 구해줄 만큼 긍휼과 자비를 갖춘 자(삼상 30:11-15;롬 12:20).

⑨ 왕이 된 후 요나단과의 약속에 따라 사울의 유족에게 은총을 베풀 만큼 자비롭고 신실한 자(삼상20:14,15;삼하 9:1-13).

⑩ 평안하자 하나님을 잊고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고, 또 인구 조사를 실시할 만큼 교만해진 자(삼하11:1-27;24:1-25).

⑪ 자신의 범죄를 솔직히 고백하고, 하나님께 철저히 회개할 만큼 영적 각성이 빠른 자(삼하 17:7-23).

5. 구속자적 지위

①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적 조상이 됨(눅 1:69).

② 통일 왕국의 제2대 왕으로서 왕국의 질서와 체제를 정비, 이스라엘의 번영을 가져옴(대상 27:1-15).

③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稱함을 받음(행 13:22).

④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최대의 왕으로 세움 받음. 이는 비천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왕같은 제사장으로 택함 받은 성도의 모형이 됨(고전 1:26-31;벧전 2:9).

⑤ 끊임없는 위기와 고난을 거쳐 왕이 됨. 이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까지 위기와 고난을 통해 단련되어질 성도의 길을 예표함(롬 5:2,3).

6. 주요 공적

① 이스라엘 통일 왕국을 세움(삼하 5:1-5).

②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법궤를 옮겨와 군사적․정치적․종교적 중심지로 구축함(삼상 6:1-23).

③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물매 돌로 쳐죽임으로써 전쟁은 여호와께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확증함(삼상 17:45-49).

④ 요나단의 약속에 따라 왕이 된 후 사울의 유족에게 은총을 베품(삼하 9:1-13).

⑤ 많은 시편을 남김.

7. 실수

①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하고, 이를 숨기고자 우리아를 전장에서 죽게 함(삼하 11:1-12:25).

② 많은 아내와 첩을 둠으로서 결국 자식간의 싸움을 야기함(삼하 13:1-39;대상 3:1-9).

③ 이복 누이를 강간하고, 서로 죽이며, 아비의 왕권에 반역하는 자녀가 생길 정도로 자녀교육에 실패함(삼하 13:1-29;15:1-12).

④ 이스라엘의 번영이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인 양 교만해져 9개월 20일간 인구조사를 실시함(삼하 24:1-25).

8. 평가 및 교훈

① 다윗은 이새의 여덟째 아들로서 양을 치는 보잘 것 없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진실함과 겸손함이 있고, 또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을 때 형들을 제치고 왕으로서 택함을 받았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성실히 받은 바 책임을 다하고,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신 자를 당신의 일꾼으로 선택하심을 알 수 있다(삼상 16:6-13;마 6:8).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일꾼이 되도록 날마다 현재의 맡은 일에 열심을 다하고, 자신을 정결하게 준비해야 하겠다.

② 다윗이 칼과 창없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전쟁에 임했기 때문이다(삼상 17:45-54). 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역경과 환난을 당할 때에도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히 나아가는 자가 되자(삼상 26:24).

③ 다윗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무찌른 후에도, 사울이 전쟁에서 승리하던 자기 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제안할 때에도, 또 그 약속이 거듭 불이행될 때에도 항상 겸손하였고, 결코 자신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된 후 나태하고 교만해졌을 때는 남의 아내를 범하고, 야심에 의해 인구 조사를 실시하는 등의 죄악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삼하 11:1-27;24:1-25). 이처럼 겸손할 때에만이 아무런 실수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섬김의 도를 다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기를 철저히 쳐서 하나님 앞에와 사람들 앞에 더욱 겸손한 자가 되도록 하자(잠 29:23;마11:29).

④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오히려 자기가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차례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이유 때문에 그를 해하지 않았다(삼상 24,26장). 이는 그가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또 그분의 말씀과 권위를 얼마나 인정하며 따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이는 목회자와의 갈등이 심화되어 소란함을 일삼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권위와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 어떠한 모습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고전 16:16;살전 5:13).

⑤ 다윗이 사울의 살해 음모에 따라 10여 년을 도피 다녀야 했던 근본적 이유로는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고, 자기의 본분인 바 블레셋의 침입 때마다 지혜롭게 행했다는 것밖에 없다(삼상 18:1-30). 이처럼 세상에서는 선을 행하여도 도리어 악으로 대가를 받게 되는 역설적인 일들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과 역경이 무가치한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비록 다윗이 오랜 시간 동안 사울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고난받았으나, 결국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서 통일 왕국의 정치적․종교적 기반을 든든히 다지는 업적을 이루게 되었다. 이처럼 선을 행하고자 열심을 다하는 성도의 앞길에도 때로는 고난과 역경의 장벽들이 계속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역경을 통한 하나님의 축복이 예비되어 있음을 의지하여 낙심치 말고 끝까지 인내하는 자가 되어야겠다(요 16:33;계 21:7).

⑥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함을 받을 정도로 신실한 신앙인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의 아내를 범하는 성(性)적인 실수를 하게 된 것은 불완전한 인간의 한계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삼하 11:1-2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더욱 자신을 돌아보며, 육적인 욕망과 모습을 십자가에 못박는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해야 하겠다(고후 4:16;갈 6:14).

⑦ 다윗은 자신의 권력으로 나라를 세우려는 인간적 동기로서 인구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그 후에 마음에 자책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며 단을 쌓아 제사를 드렸다(삼하 24:1-25). 이처럼 우리에게도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를 진정 회개하고 행동까지 돌이키는 모습이 필요하다(눅 19:8). 혹여 당신은 건성으로 회개하며 또다시 같은 실수와 죄악을 범하고 있지는 않는가?

⑧ 다윗은 자기가 왕이 되고 이스라엘의 국위가 높아진 원인이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기인한 것임을 고백했다(시 41:11). 실상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들은 많으나 그 은혜를 깨닫는 자는 적다. 지금 당신은 지금까지의 살아온 행적과 안정과 번영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닫고 감사를 드리고 있는가?(살전 5:18).

9. 핵심성구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 13:22).

압살롬 ― 아비의 완권에 대적한 자

1. 인적 사항

① 압살롬은 ‘평화의 아버지’라는 뜻

② 그술 왕의 딸인 마아가 에서 태어난 다윗의 셋째 아들(삼하 3:3).

③ 자녀로는 3남 1녀가 있었으나 아들 셋은 일찍 죽음(삼하 14:17).

④ 다윗 군사와 싸우다 전사함(삼하 18:14,15).

2. 시대적 배경

다윗이 통일 왕국의 왕으로 등극하여 대외적으로 막강한 세력을 끼치던 때인 B.C.1003년-975년 경에 살아간 인물. 당시 이스라엘은 국제 정세상 대외적으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지만, 내적으로는 다윗 자손들 간의 분쟁과 반목이 심화됨으로써 민심이 어수선했다. 압살롬의 반란은 바로 그러한 시대상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3. 주요 생애

 

헤브론에서 출생

삼하 3:2,3

누이를 욕되게 한 암논을 살해

B.C.990년

삼하 13:1-33

그술로 도망

B.C.986년

삼하 13:37-39

귀환하여 다윗과 화해

B.C.983년

삼하 14:21-33

사병을 예비

B.C.983-979.

삼하 15:1

백성들의 환심을 삼

"

삼하 15:2-6

헤브론에서 반역

B.C.979년

삼하 15:7-12

예루살렘 장악

"

삼하 15:37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

삼하 16:20-23

다윗을 칠 계략을 세움

삼하 17:1-14

길르앗에서 진 침

삼하 17:26

다윗과 싸움도중에 죽음

삼하 18:9-15

 

4. 성품

①누이 다말을 욕되게 한 이복 형 암논을 살인할 만큼 누이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고 적극적인 자(13:1-33)

② 잔치 자리에 초청한 후 사환으로 하여금 암논을 죽이도록 할만큼 교활한 자(삼하 13:23-29).

③ 망명 생활 끝에 궁으로 귀환한 뒤 자기의 과오를 반성하기보다는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에 반감을 가질 만큼 무오하고 파렴치한 자(삼하 14:28-15:6).

④ 부친의 왕위를 넘보고 반역을 꾀할 만큼 교만하고 허영심이 강한 자(삼하 15:1-12).

⑤ 백성들의 민심을 사로잡을 만큼 술책이 뛰어난 자(삼하 15:6,12).

⑥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부친의 후궁들을 욕보일 만큼 부도덕한 자(삼하 16:20-23).

5. 평가 및 교훈

① 압살롬은 누이 다말을 극진히 사랑하고 위했다. 그래서 누이를 욕보이고 내 쫓은 암논을 용서하지 못한 채 은밀히 살해하기까지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누이를 사랑하여 이루어진 그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보고 정의롭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수단과 방법이 악했음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정당한 행동일지라도 동기와 수단과 결과, 그 하나라도 바르지 못하다면 결코 합당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의 생활가운데 나타나는 이러한 모습은 없는가?

② 압살롬은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아비 다윗을 반역하여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장악하였다(삼하 15:13,14). 그는 한낱 허영과 교만에 사로잡힌 결과 부모에 대한 효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모두 짓밟아 버린 것이다. 혹여 당신도 허영과 교만에 의해 부모님을 경시하고 있지는 않는가? 참 신앙인 은 위로 하나님을 바로 섬길 뿐만 아니라 보이는 부모와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자임을 기억하라(요일 4:20).

③ 압사롬은 온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머리털로 뭇 사람의 칭찬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 아름다운 머리털 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자랑거리는 때로는 치명적인 화근이 될 수도 있다.

④ 압살롬은 살아 있을 때 자기를 널리 과시하고자 자기의 비석을 세웠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이 자신을 높인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든 성도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의해서 살아간다.

 

아히도벨 ― 뛰어난 모사였으나 결국 실패한 자

1. 인적 사항

① 아히도벨은 ‘어리석은 형제’라는 뜻. ② 유대지역 길로 사람(삼하 15;12).

③ 다윗 왕의 30인 용사 중 하나인 엘리암의 아버지(삼하 23:34).

④ 밧세바의 조부(삼하 11:3). ⑤ 다윗 왕의 모사(삼하 15:12).

2. 시대적 배경

대략 B.C.1020-927년 경에 활동. 이 시기는 사울 왕정의 붕괴와 다윗 왕정의 수립, 그리고 다윗의 정복 활동 등의 역사적 사건들이 점철되던 시기였다. 또한 다윗의 영적 나태와 밧세바 사건으로 인해 민심이 어수선해지기도 했는데, 이 때에 아히도벨은 다윗과 압살롬의 모사로 활동. 이스라엘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3. 주요 생애

 

출생

다윗 왕의 모사가 됨

대상 27:33

뛰어난 지혜로 인정을 받음

삼하 16:23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함

B.C. 979년

삼하 15:12

다윗의 후궁과 압살롬과의 간음을 계략함

"

삼하 16:21,22

다윗 군대를 섬멸할 계략을 세움

삼하 17:1

전략이 기각되자 고향으로 내려감

삼하 17:23

목매어 자살함

삼하 17:23

 

4. 성품

① 그의 모략이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동일하다고 인정받을 만큼 책략과 지혜가 뛰어난 자(16:23).

② 다윗의 모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문제로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할 정도로 경솔한 자(삼하15:12).

③ 압살롬에게 아비의 후궁들을 백성을 앞에서 간음토록 제안할 만큼 부도덕한 자(삼하 16:21,22).

④ 자신의 전략이 기각되자 전쟁의 패배를 직감하고 스스로 목을 맨 것으로 보아 자존심이 강하고 사태파악에 민감한 자(삼하 17:23).

5. 구속사적 지위

두 왕을 섬기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자(삼하17:23). 이는 왕되신 그리스도를 끝까지 섬기지 않는 자에게 임할 심판을 예표함.

6. 주요 공적

다윗 왕의 모사로서 왕의 통치 전반에 걸쳐 지혜를 다함(삼하 16:23).

7. 실수

①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왕을 배신함(삼하 11:2-5;15:15).

②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해 불의한 계략을 세움(삼하 15:31).

8. 평가 및 교훈

① 아히도벨은 이스라엘 중 가장 뛰어난 모사였다(삼하 16:23). 그러나 그가 하나님이 택하신 왕 다윗을 배반하고 떠남으로써 그의 지혜는 악한 일과 죄만을 계획하게 되었고, 결국은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다. 이처럼 그 아무리 훌륭한 지혜와 계략을 갖추었다 해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지혜가 헛될 뿐이다(고후1:9). 그러므로 우리는 주어진 능력과 지혜를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야만 하겠다(딤후 2:2).

② 아히도벨은 다윗과 압살롬이 화해하게 될 때에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을 생각하고, 다윗을 죽이려는 악한 계략까지 자행했다(삼하17:1-4). 그러나 그의 뛰어난 계략도 다윗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는 무위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실로 악한 세력이 우리를 해하려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엎드러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를 당신은 깨닫고 있는가 ③ 아히도벨은 자신의 책략이 압살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전쟁의 실패를 직시하고 스스로 목을 매었다(삼하17:23). 이를 통해 악인에게는 환난날에 찾을 도피처가 없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가 도피처로서 자살을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한 행위이다(시36:9).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고통끝에 자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하나님 앞에 죄악임을 명심해야 한다

 

요압 ― 권력에 집착이 강했던 장군

 

1. 인적 사항

① 요압은 ‘여호와는 아버지심’이라는 뜻. ② 다윗의 이복 누이 스루야의 맏아들(삼하 2:18)..

③ 형제로는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음(대상2:16). ④ 다윗 왕의 군대 장관(삼하8:16;대상11:6).

.2. 시대적 배경

요압의 주활동 연대는 B.C.1010-970년 경으로서 다윗의 도피 시기로부터 솔로몬의 즉위 등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였다. 그러니까 요압은 다윗 왕정의 수립부터 솔로몬 왕정의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하던 군대 장관으로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을 치렀던 시기의 위대한 장군이었다. 반면에 그는 권력에의 지나친 집착으로 인하여 민심 수습과 정치적 안정이 절실히 요구되는 역사적 과도기에 아브넬 살해 사건, 아마사 살해 사건, 아도니아 반란사건 등을 일으켰다.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 큰 혼란을 야기시켰던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3. 주요 생애

 

출생

다윗 도피 시절에 다윗과 함께 함

삼하 23:18,24

이브넬과의 싸움에서 승리

B.C.1005년.

삼하 2:14-28

동생을 죽인 아브넬을 살해

"

삼하 3:27

다윗에게 비난과 저주를 받음

"

TKAGK 3:28,29

여부스족의 성읍을 점령

B.C.1003년

삼하 5:6;대상11:6

군대 장관이 됨

"

대상 11:6

다윗 성을 중수

"

대상 11:8

에돔을 점령

삼상 8:13,14

아람․암몬과의 전쟁을 지휘

삼하 10:6-14

다윗의 우리아 살해 음모에 가담

B.C.991년

삼하 11:14-17

압살롬을 환궁케 함

B.C.986년

삼하 14:1-23

압살롬의 반역시 다윗을 도움

B.C.979년

삼하 18:1-5

압사롬을 죽임

삼하 18:9-15

군대 장관직을 잃음

삼하 9:13

세바의 폭동을 진압

삼하 20:7-22

군대 장관으로 복직

삼하 20:23

다윗의 인구조사를 반대

삼하 24:3

인구조사 시행

B.C.973년

삼하 24ㅣ4-8

아도니아를 왕으로 지지

B.C.971년

왕상 1:7;2:28

솔로몬의 명으로 죽임 당함

B.C.970년

왕상 2:29-34

 

 

4. 성품

① 여부스족을 몰아내고 에돔, 암몬 동맹군 등을 격파한 것을 볼 때 용감하고 책략이 뛰어 난 자(삼하 10:9-14).

② 압살롬의 귀환을 위해 다윗과의 중재에 나섰으나, 압살롬의 왕이 될 가망성이 희박하자 곧 압살롬을 외면할 정도로 처세술에 능하고 약삭빠른 자(삼하 14:1-33

③ 죽은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귀순한 아브넬을 간첩으로 조작하여 살해한 것을 볼 때 잔인하고 비열한 자(삼하 3:22-30).

④ 압살롬의 반역 시에 다윗 왕을 끝까지 돕고, 비윤리적일지라도 왕의 우리아 살해 음모를 전적으로 도울 만큼 왕께 충성을 다한 자(삼하 11:14-17;18:1-5).

⑤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일 만큼 성격이 급하고 방자한 자(삼하 18:5,14).

⑥ 세바의 반란 때 아마사를 죽이고 군대 장관으로 복직을 꾀할 정도로 권모 술수에 능한 자(삼하 20:7-20).

⑦ 다윗 왕의 인구 조사를 반대하고, 또 전쟁에서의 노략물을 성별 하여 하나님께 바친 것을 볼 때 신앙적 통찰력을 지닌 자(삼하 24:3;대상 26:28).

5. 구속사적 지위

① 다윗 왕정 수립시 군대 장관으로서 공헌한 자(삼하 20:23).

② 사울 왕가와 다윗 왕가가 합쳐질 시기에 아브넬을 살해함으로써 이스라엘 통일에 방해된 자(삼하3:27).

③ 솔로몬을 반대하고 아도니아를 왕으로 추대한 자(왕상 1:7).

6. 주요 공적

① 여부스, 에돔, 암몬, 아람 등의 주변 이방족속을 평정시키고, 세바의 난을 진압함(삼하5:8).

② 다윗 왕과 압살롬과의 화해를 중재함(삼하 14:1-23).

7. 실수

① 자신의 명예와 감정에 의해 귀순한 아브넬과 군대 장관 아마샤를 무모하게 죽임(삼하 3:27;20:7-22).

② 부하 장수 우리아를 전장에서 혼자 죽게 만듦(삼하 11:14-17).

③ 왕위 계승을 둘러싼 분쟁시에 아도니아를 지지함(왕상 2:28).

8. 평가 및 교훈

① 요압은 다윗의 군대 장관으로서 여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뛰어난 책략가였다. 그러나 권모 술수를 행하며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나쁜 버릇으로 인하여 결국은 불의의 피값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왕상2:34). 혹여 우리에게도 매사에 이처럼 자신의 영광과 이익을 위해 권모 술수가 자행되고 있지는 않는가? 술수로 인한 기쁨은 수난적인 것에 불과함을 기억하라!(욥20:5).

② 다윗 왕에게 충성을 다하였던 요압은 충신 우리아를 죽이라는 왕의 그릇된 명령에까지도 맹종했다. 여기에는 전적으로 다윗의 잘못이 크나,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게 된 부하를 위해 탄원하지도 않은 채 권력에 아부하고자 했던 요압의 행위 역시 크게 잘못되었다(삼상11:16-21). 이같이 세상에서는 때로 불완전하고 잘못된 것들이 우리에게 맡겨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결코 이러한 죄악을 묵과하거나 타협․동조해서도 안되겠다.

③ 요압은 그의 용맹과 지혜를 다하여 이방 족속을 격파하고 이스라엘의 평정을 이룩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삼하5:8;8:13). 이는 주님의 군사된 성도들 역시 사단과의 싸움에 있어 용맹과 지혜를 다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보여 준다. 지금 당신은 사단의 유혹 가운데 승리를 거듭하고 있는가? 혹여 영적 싸움 중에 자꾸 실패하게 되는 문젯거리는 없는가?

④ 다윗 왕을 위해 충성을 아끼지 않았던 요압이 나이가 든 후 어리석게도 아도니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그를 왕으로 지지하게 되었다(왕상2:18). 이처럼 나이 들거나 어떤 고비를 지나 안주하고 싶어질 때 어이없게도 사단의 유혹에 빠져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모습은 성도의 신앙태도에도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주위 가족이 교회 다니는 것을 극심히 반대할 때에는 열심히 신앙 생활하다가도, 오히려 핍박이 없을 때는 나태해지거나 사단의 유혹에 쉽게 귀기울이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평안할 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더욱 성경 말씀을 상고하여 힘을 얻는 자 되자(요 5:39;히 2:1-4).

9. 핵심 성구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 머리로 돌려보낼 것은 저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왕상 2:32).

 

나단 ― 충직한 하나님의 예언자

1. 인적 사항

① 나단은 ‘하나님이 주셨다’는 뜻. ②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선지자(삼하7:2;왕상1:38-40).

③ 다윗 왕의 궁중 고문(대상 29:29). ④ 아사리아와 사붓의 아비(왕상4:5).

2.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다윗 왕 통치 초기 B.C.1010년부터 솔로몬 왕의 통치 초기 B.C.970년에 이르기까지 선지자로서, 활약한 인물. 즉 나단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전부를 차지하고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기반을 확고히 하던 시기에 종교 지도자로서 그 역할을 훌륭히 감당했던 자였다.

3. 주요 생애

 

출생

다윗에 대한 하나님 계시 전달

삼하 7:2-13

다윗의 밧세바 간음을 책망

B.C.991년

삼하 12:1-14

솔로몬을 ‘여디디야’로 명명

B.C.990년

삼하 12:25

다윗의 시종 행적을 기록

대상 29:29

성전에 악기를 배치

대하 29:35

솔로몬의 왕의 계승을 지지

B.C.971년

왕상 1:11-46

솔로몬에게 기름 부음

"

왕상 1:38-40

아들들이 솔로몬의 관직 수행

왕상 4:5,6

죽음

 

4. 성품

① 다윗 왕의 성전 건축 계획을 즉흥적으로 인정한 것을 볼 때 성급함을 지닌 자(삼하7:2,3).

② 다윗의 음행과 우리아 살해를 과감히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할 정도로 대담한 자(삼하12:1-15).

③ 아도니아의 반역 음모를 간파하고 솔로몬의 왕위 계승을 위해 밧세바에게 계교를 베푼 것을 볼 때 지혜롭고 충성심이 강한 자(왕상 1:11-31).

④ 다윗의 행적을 기록하고 성전의 악기 배치를 도울 정도로 재능이 탁월한 자(대상 29:29).

5. 구속사적 지위

① 디윗과 솔로몬 시대에 걸쳐 충직한 충고자로, 하나님의 선지자로 활동함(삼하7:12;왕상 1:11-30).

② 다윗 언약을 체결할 때에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등 다윗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 역할을 담당한 자(삼하7:4).

③ 솔로몬이 성공적으로 다윗 왕위를 계승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세운 자(왕상1:11-30).

6. 주요 업적

① 다윗 왕의 잘못을 지적, 회개토록 함(삼하12:1-15). ② 다윗 왕의 시종행적을 기록함(대상29:39).

③ 성전 음악 발전에 기여함(대하 29:35). ④ 솔로몬의 왕위 계승을 확보함(왕상1:11-30).

7. 실수

다윗 왕의 성전 건축 계획을 듣고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찬성함(삼하 7:2,3).

8. 평가 및 교훈

① 나단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활동했던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왕의 권세 앞에서도 항상 당당하게 말씀을 전하였다(삼하7:4-17;12:7-15). 이렇듯 맡은 바 직분에 충성을 다하였던 나단과 같이, 땅 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이 되도록 선택 받은 우리도 항상 성실하고도 담대하게 주의 말씀을 증거 해야 하겠다(행1:8).

②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기를 원하고, 이를 선지자 나단에게 일렀을 때 나단도 기뻐하며 이에 찬동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뜻을 허락지 않으시고, 다윗의 후손이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삼하7:2,3). 이처럼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합당하고 좋은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합당치 않은 것들이 있기에,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일까?’하고 물어야 한다.

③ 나단이 다윗의 잘못을 지적하여 그를 위대한 왕으로 이끌어 주었듯이, 오늘날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도 불의를 보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의로운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입을 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삼하10:12).

아도니야 ― 솔로몬의 왕위에 도전한 자

1. 인적 사항

① 아도니야는 ‘나의 주는 여호와시다’라는 뜻. ② 다윗․학깃에게서 출생한 다윗의 넷째 아들(삼하3:4).

③ 헤브론 태생(대상 3:1,2). ④ 용모가 극히 준수한 자(왕상 1:6).

2. 시대적 배경

다윗 왕의 말년에 그 왕위 계승권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즈음 B.C.971년 경을 주활동 배경으로 한다. 당시 아도니야는 용모가 준수했을 뿐 아니라 다윗의 총애를 한껏 받고 있었다. 더욱이 다윗의 넷째 아들인 그는 맏형 암논이 다말 사건으로 인해 압살롬에게 피살되었고(삼하 13:29), 압살롬 역시 아비 다윗에게 반역을 꾀함으로써 다윗 군대의 요압 장관에게 죽임 당했으며(삼하18:14) 셋째형인 길르압도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대상3:2) 왕자들 중 왕위 계승 서열이 1위였다. 이에 그는 스스로 왕이 될 것을 자처하고 나섰으나 솔로몬이 다윗 왕의 후계자가 됨으로써 그의 왕위 계승은 실패하고 만다. 그는 결국 솔로몬 왕위에 계속 도전하다 죽임을 당하기에 이른다.

3. 주요 생애

 

출생

삼하 3:14

준수한 용모로 성장

왕상 1:6

병거와 기병과 50명의 호위병을 예비함

B.C.971 년

왕상 1:5

다윗의 노년에 왕위 계승을 음모함

"

왕상 1:7

나단과 밧세바에 의해 거사를 실패함

"

왕상 1:15-49

솔로몬에게 용서받음

B.C.970 년

왕상 1:50,51

솔로몬에게 다윗의 첩 아비삭을 요구함

B.C.970 년

왕상 2:13-24

반역죄로 죽임 당함

"

왕상 2:25

 

4. 성품

① 아비 다윗이 늙자 스스로 왕이 될 것을 꾀할 정도로 교만한 자(왕상 1:5).

② 용모가 준수하고, 다윗이 그에게 섭섭하게 한 일이 한번도 없을 정도로 매사에 뛰어나고 총명함을 지닌 자(왕상 1:6).

③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병거와 기병, 호위병을 예비하고, 측근을 포섭하여 치밀히 음모할 만큼 주도 면밀하고 정치적 능력이 뛰어난 자(왕상 1:5-9).

④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도 계속해서 왕권을 탐할 정도로 야심이 강한 자(왕상 2:13:24).

⑤ 왕위에 대한 도전으로서 아비의 첩 아비삭을 아내로 원한 것을 볼 때 간교한 자(왕상2:13-18).

5. 구속사적 지위

① 다윗의 왕위를 임으로 계승하려다 실패한 자. 이는 다윗의 왕위는 다윗의 언약에 따라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 후손만이 왕이 될 수 있으며 그러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인간의 어떠한 계책에도 실패치 않음을 보여줌(삼하 7장;왕상 1:30,49,50).

② 하나님이 세우신 솔로몬의 왕권에 계속 도전하다 멸망당한 자. 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섭리를 거슬릴 수 없음을 예표함(왕상 1:6-53;2:15-25).

6. 평가 및 교훈

① 아도니야는 표면적으로 볼 때 왕위 계승 순위가 1위였고, 또 정치적 야심이 강하여 왕위 계승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동생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것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해 다윗의 위(位)를 잇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왕상 1:30). 이처럼 인간들이 온갖 조건과 방법을 다한다 할지라도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주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겸손히 구하여야 하겠다.

② 아도니야는 용모가 심히 준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부친 다윗의 총애를 받던 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뛰어난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솔로몬의 신실한 마음 중심을 사랑하셨다. 이처럼 사람들의 총애를 받거나 용모가 뛰어난 것은 하나님 앞에 아무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삼상 16:6,7). 그런데도 혹여 우리는 마음 중심보다는 외모를 보이려 애쓰고, 또 외적인 자랑거리로 인해 교만해 있지는 않는가?

③ 아도니야는 하나님이 솔로몬을 왕위로 세우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서열상 왕위 계승자임을 내세워 계속적으로 왕위 찬탈을 음모하였다(왕상 2:13-24). 이처럼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의 뜻을 순복하기보다는 자신의 헛된 욕망만을 공고히 한자.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자는 결국 멸망을 당한다(시 107:10,11).

솔로몬 ― 이스라엘 최고의 영광과 지혜의 왕

1. 인적 사항

① 솔로몬은 ‘평화로움’, ‘화평함’ 이란 뜻. ② 통일왕국 이스라엘의 제3대 왕(왕상 2;12).

③ ‘여디디야’(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도 불림(삼하 12:24,25). ④ 예루살렘 출생(대상3:5)

⑤ 다윗과 밧세바 사이의 두 번째 아들(삼하12:24;대상3:5)..

⑥ 이방 여인과도 결혼, 700명의 아내와 후궁을 취함(왕상11:3). ⑦ 르호보암이 왕위를 계승(왕상 11:43).

2.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이 정치․경제․문화․군사적으로 크게 안정을 누리던 시기로, 다윗 왕의 뒤를 이은 B.C.970년부터 B.C.930년까지를 주 활동 배경으로 한다. 솔로몬이 활동할 당시 이스라엘은 선왕 다윗의 활발했던 정복 사업 덕택에 근동 지역에서 명실 상부한 최강대국으로 군림했었다. 당시 애굽은 제 21왕조 시대로서 국내적 혼란으로 말미암아 그 세력이 매우 미약하였고, 또 앗수르도 국내의 혼란과 함께 아직 제국으로서의 세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팔레스틴 지역의 대부분의 약소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속국으로서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솔로몬은 정치, 경제, 문화적 전성기를 주도하였으며 활발한 외교와 무역 사업으로 이스라엘의 국내적인 지위를 한층 드높였다. 이같은 배경 하에서 그는 거대한 성전과 왕궁 건축, 그리고 기타 건축 사업들을 훌륭히 수행해 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 경제적 기반 위에서 모든 건축 사업을 실시했으나 무리한 백성들의 부역 동원으로 솔로몬은 많은 원성을 사기도 했으며, 그 영향은 그 아들 르호보암 때에 가서 본격적으로 표출되게 되었다.

한편 솔로몬이 그의 통치 후반기에 이방 우상인 아세라 여신과 암몬 족속의 몰록과 밀곰을 섬기는 우상 숭배로 타락하게 됨으로써 이스라엘은 영적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왕상11:6-8). 이와 같이 경제․사회․문화․국방의 면에서는 솔로몬의 통치 40년 동안 이스라엘 최고의 영광과 부와 권위를 누렸지만 영적으로 타락의 길로 들어감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급기야는 그 아들 대에 가서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갈라지게 되는 위기를 자초하게 된다.

3. 주요 생애

 

출생

B.C.990년

삼하 12:24

예루살렘 궁전에서 성장

대상 3:5

나단 선지자의 신앙 교육을 받음

삼하 12:25

왕위 계승

20세, B.C.970년

왕상 1:43-47

반역한 아도니야를 사면함

"

왕상 1:49-53

아비 다윗의 임종을 맞음

왕상 2:10-12

성전건축의 유언을 받음

대상 22:6-19

왕권을 강화함

왕상 2:25-46

바로의 딸과 결혼

왕상 3:1

1천번제 드림

왕상 3:4

하나님께 지혜를 약속 받음

왕상 3:5-15

관직과 행정구역 정비

왕상 3:16-28

국방력 강화

왕상 4:26

7년간 성전 건축

B.C.966-959년

왕상 5,6장

법궤 안치식 거행

31세, B.C.959년

왕상 8:1-66

13년간 왕궁 건축

B.C.959-946년

왕상 7:1;9:1

무역과 상업을 장려

왕상 10:11-29

스바 여왕의 방문

왕상 10:1-13

많은 이방 여인과 결혼

왕상 11:1-3

우상 산당을 건축

왕상 11:4-8

하나님의 징계 경고받음

왕상 11:9-13

하닷의 반역

왕상 11:14

르손의 반역

B.C.938년

왕상 11:23

여로보암의 반역

왕상 11:26-40

죽음

60세,B.C.930년

왕상 11:43

 

 

 

 

 

4. 성품

① 아도니아의 소원에 담긴 간계를 파악하고 그를 처형한 것을 볼때 현명하고 결단력이 있는 자(2:22-25).

② 백성들을 통치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린 것을 볼 때 하나님 중심에 신앙관을 가진 자(왕상 3:4). ③ 하나님께 다른 여러 가지를 구하지 않고, 왕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할 만큼 사명감이 투철하고 겸손한 자(왕상3:5-13). ④ 한 아기를 둘러싼 두 여인의 친모 주장을 탁월한 기지로서 해결하고, 또 다른 나라의 통치자들이 그 지혜를 배우러 왔을 정도로 뛰어난 지혜를 소유한 자(왕상3:16-28). ⑤ 다윗 때에 이루지 못한 이스라엘의 숙원 사업인 바 성전과 왕궁 건축을 20년에 걸쳐 완성한 끈기있고 주도 면밀한 자(왕상 9:10). ⑥ 주변 국가와 우호를 다지고, 이스라엘의 최고의 번영을 도모할 만큼 정치․경제․외교적 수완이 뛰어난 자(왕상 9:11-28). ⑦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채 이방 우상을 숭배하며, 그 산당을 건축한 것을 볼 때 지속족인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자(왕상 11:3-8).

5. 구속사적 지위

①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제3대 왕으로서, 이스라엘 왕들 중 최고의 부귀와 영광과 지혜를 소유한 왕(왕상 2:12). ② 뛰어난 지혜와 명철을 소유한 솔로몬은 만왕의 왕이시요 참 빛과 진리를 계시하여 주시는 주님의 모형임(왕상 3:12;요1:9;6:37). ③ 솔로몬 왕국의 영화와 부귀는 성도가 누릴 영원한 천국의 영광을 예표함(롬 14:17). ④ 시작은 좋았으나 말년에 하나님의 축복을 저버리고 타락의 길을 감(왕상 11:9-13). 이는 인간 지혜와 나약함을 증거함.

6. 실수

① 외교를 위해 바로 왕의 딸을 아내로 맞음(왕상 3:1).

② 選民으로서, 왕으로서의 성결됨을 잊고 1,000명에 달하는 처첩을 취함(왕상 11:1-3).

③ 노년에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부귀와 향락과 우상 숭배를 도모함(왕상 11:4-8;전2:8).

④ 과중한 건축과 소비 생활로 백성들을 힘겹게 하여 결국 왕국 분열을 야기함(왕상 12:1-4).

7. 평가 및 교훈

① 솔로몬은 왕으로서 백성들을 통치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헌신을 다짐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자세를 하나님께서 무척 기뻐하심을 볼 수 있다. 곧 하나님께서는 헌신을 다짐하는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응답하신 것이다(왕상.3:2-15). 참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원하는 성도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예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무슨 일을 하는 데 있어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헌신을 다짐하며, 그 손길을 따라 일을 행할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하겠다(약 4:3). 그리할 때 솔로몬이 구하지 않았던 부와 영광까지 받았듯이 우리도 차고 넘치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② 솔로몬은 당대의 가장 뛰어난 지혜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지혜로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뜨거운 신앙으로서 왕에게 필요한 지혜를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또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다(약1:5).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향하여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까지도 보여 주신다고 하셨다(렘33:2,3,). 그러므로 우리도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부여받아야 하겠다.

③ 솔로몬은 왕이 된 후 첫 번째 사업으로서 이스라엘의 숙원 사업인 성전 건축에 역점을 두었다(왕상6:1). 곧 그는 자기의 궁을 짓기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모범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처럼 성도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마 6:33). 더욱이 솔로몬이 가장 아름답고 값진 것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것과 같이 우리의 값진 바 된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드려 하나님의 사역을 이뤄나가야 하겠다.

④ 솔로몬의 말년은 온통 실패 투성이다. 곧 그는 성결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방 여인을 처첩으로 거느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우상의 산당을 짓는 가증한 죄악을 자행하였다(왕상11:1-8). 이러한 실패는 그가 축복으로 얻은 바 된 부귀와 영광을 한순간 자기의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성도의 본분을 망각한 채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나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생명의 근원인 바 우리의 마음을 힘써 지켜야 하겠다(잠 4:23).

⑤ 솔로몬은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신앙을 소유하였을 때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말미암아 가장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먼 곳 남방에서 스바 여왕이 그의 지혜를 듣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가 신앙에서 떠나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을 때 그는 누구보다도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았다(왕상 4:30;11:9). 인간적인 지식은 뛰어 났는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선을 행치 못하고 악만 행하는 가장 어리석은 자가 된 것이다.

여로보암 ―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1대 왕

1. 인적 사항

① 여로보암은 ‘백성을 더하게 하소서’라는 뜻. ② 에브라임 지파 출신(왕상11:25).

③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22년간 통치(왕상12:2;14:20).

④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모친은 수루아(왕상 11:26).

⑤ 고향은 세겜의 서쪽 사마리아 스레다임(왕상 11:26). ⑥ 아들로는 아비야와 나답이 있음.

2. 시대적 배경

여로보암 당시 이스라엘은 대변혁을 겪었다. 즉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됨으로써(B.C.930) 남왕국은 남왕국 대로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정비를 막 서두르게 되었고, 북왕국은 북왕국대로 정치적, 종교적 정비를 서두르던 때였다. 또한 이런 국내적 대격변과 함께 국외적으로도 솔로몬 말기부터 서서히 이스라엘을 침공해 오던 주변 국가들의 세력이 강성해짐에 따라 상당히 위기감이 고조되어 있던 때였다. 그러나 솔로몬 때까지 탄탄했던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남북 왕국 분열 직후인 이 당시에는 아직 외적의 침입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남북 왕국간의 적대 감정이 매우 높아 잦은 전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시기에 여로보암은 새롭게 북왕국을 창건한 자로서 정치적으로는 매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으나 종교적으로는 악한 선례를 만듦으로써 북왕국 멸망의 근본 원인을 재공하고 말았다.

 

출생

요셉 족속의 노역을 감독

왕상 11:28

자신의 왕됨을 예언 받음

왕상 11:30-32

솔로몬에게 반역함

B.C.938 년

왕상 11:26

애굽으로 도피

"

왕상 11:40

북쪽 열 지파의 요청으로 애굽에서 나옴

왕상 12:1-3

르호보암에게 노역 완화를 요구

왕상 12:4-15

북쪽 열 지파의 왕으로 추대됨

B.C.930 년

왕상 12:20

세겜과 브누엘을 요새화함

왕상 12:25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움

왕상 12:27-30

레위인의 제사장직을 폐함

왕상12:31;대하11:14

장막절의 날짜 변경

왕상 12:32

벧엘 제단 훼파 예언 들음

왕상 13:1-10

아히야에게서 재앙이 예언됨

왕상 14:7-10

르호보암과의 전쟁을 계속함

왕상 14:30

애굽 왕 시삭의 침입을 받음

왕상 14:25

유다 왕 아비얌과의 전쟁에서 패함

B.C.913 년

대하 13:1-20

죽음

B.C.910 년

대하 13:20

 

 

4. 성품

① 솔로몬 왕의 인정을 받아 공사의 감독자로 발탁될 만큼 부지런하고 유능한 자(왕상11:28).

② 이스라엘 분단에 대한 아히야의 예언을 듣고 곧 반란을 일으킬 만큼 정치적 야욕이 강한 자(왕상 11:26-32). ③ 애굽 망명 후 유다 지파와 솔로몬 통치에 대한 백성들의 반목을 충동질하여 정권에 도전할 만큼 계략이 뛰어난 자(왕상12:2-4). ④ 이스라엘 열 지파의 추대를 받고, 북왕국의 초대 왕이 된 것을 볼 때 정치․군사적 지도력이 뛰어난 자(왕상12:1-3, 20).

⑤ 왕이 된 후 성막을 가진 유다로부터 종교적으로도 독립하는 동시에 왕권도 강화하기 위하여 북쪽 지역에 많은 산당과 우상을 만들만큼 대담한 인본주의 자(왕상 12:27, 31).

⑥ 하나님의 책망조차 무시할 정도로 교만한 자(왕상 13:1-10).

 

5. 구속사적 지위

①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후 북왕국의 초대 왕이 됨(왕상 12:20).

② 왕권 강화를 위해 벧엘과 단에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들까지도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게 한 왕(왕상 12: 28).

③ 여로보암과 그 집을 향한 하나님의 재앙이 선포됨. 이는 세상적 정욕만을 추구하는 자에게 임할 심판의 표징이 됨(왕상 14:7-16).

 

6. 주요 업적

① 솔로몬의 ‘밀로’ 건축과 예루살렘 성벽 수축 공사를 감독함(왕상 9:15).

② 세겜과 브누엘을 건축하여 군사적인 요새를 강화함(왕상 12:25).

 

7. 실수

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강요함(왕상 12:27-29).

②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음(왕상 12:31;13:33).

③ 후세들에게 악한 선례를 남김으로써 결국 북왕국 멸망의 원인을 제공함(왕상 14:10).

 

8. 평가 및 교훈

①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왕상12:28,29)고 하며 이를 경배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한 채 자신의 생각과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은 곧 우상 숭배와 동일한 죄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완악한 마음이나 자신의 이해 관계가 앞서지 않도록 하며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그 분을 섬겨야 한다.

② 여로보암은 일찍이 솔로몬 왕의 인정을 받아 요셉 족속의 역사를 감독할 만큼, 또한 북쪽 10지파의 추대로 왕이 될 만큼 부지런하고 유능한 자였다(왕상 11:28;12:20).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지도자요 존경을 받던 그였지만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이를 통해 하나님 없이는 인간의 지혜와 칭찬이 헛됨을 깨닫게 된다. 더욱이 하나님을 버리는 자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자신도 버림받게 됨을 기억해야 하겠다. 참으로 일이 형통할 때에 더욱 하나님을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자.

③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왕권에 대적하여 북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로써 그는 후세들에게 이스라엘의 분열이라는 좋지 않은 전통을 남겼고, 더더욱 우상 숭배를 조장함으로써 백성들의 신앙을 변절시켰다. 혹시 우리도 여로보암 처럼 그릇된 신앙의 모습을 신앙의 후배들에게 남기고 있지는 않는가?

 

9. 핵심 성구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취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왕상 11:31).

 

 

 

 

 

 

르호보암 ― 남북 왕국 분열의 장본인

 

1. 인적 사항

① 르호보암은 ‘백성이 늘다’의 뜻.

②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마지막 왕이자 남유다의 제1대 왕(왕상 14:21).

③ 솔로몬과 암몬 여자 나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왕상 14:21. 31).

④ 처 18명, 후궁 60명, 아들 28명과 딸 60명을 둠(대하 11:21).

⑤ 그리스도의 조상(마 1:7).

 

2. 시대적 배경

르호보암이 통일 왕국의 왕위에 오를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번영과 부를 누리고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각 지파들간의 갈등의 심화와 솔로몬 때부터 쌓였던 세금과 부역 등으로 인한 수많은 불평들이 백성들 안에 잠재해 있었으며 이것이 남북 왕국 분열의 근본 원이 되었다. 또한 종교적으로도 여호와 신앙이 극도로 와해된 채 이방 신앙에 젖어 들고 있었다.

한편 솔로몬 전성기 때까지만 해도 거의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던 이스라엘은 솔로몬 말기부터 주변 국가들의 침입을 받기 시작하다가 르호보암 때에는 애굽 왕 시삭의 대 규모의 침입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은 외적의 위협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으며, 대신 남북 왕국간의 계속된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

 

 

3. 주요 생애

 

출생

B.C.971년

 

왕위를 계승함

41세, B.C.931년

왕상 11:43

강제 노역 제도의 개혁을 거절함

"

왕상 12:4-14

열 지파의 반역을 겪음

"

왕상 12:16-19

남 유다를 다스림

"

방비용 성읍들을 건축

대하 11:5-12

3년간 번영을 이룸

B.C.930-928년

대하 11:17

우상을 숭배함

왕상 14:21-24

애굽 왕 시삭의 침략을 받음

46세, B.C.926년

왕상 14:25-28

죽음

59세, B.C.913년

왕상 14:31

 

 

 

4. 성품

 

① 노인의 교도를 무시하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의 의견만을 들을 만큼 어리석은 자(왕상 12:8-11).

② 백성들의 불만과 지파간의 갈등을 무시한 채 무모한 강압 정치만을 단행할 만큼 권력욕이 강하고 경솔한 자(왕상 12:14).

③ 아들 아비야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나머지 아들들에게 각 성읍을 다스리도록 하여 국력을 강화시킨 것을 볼 때 책략이 뛰어난 자(대하 11:22, 23).

④ 나라가 강성하여 지자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자신을 의지하고 나갈 만큼 교만한 자(대하 12:1).

5. 구속사적 지위

①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최후의 왕인 동시에 분열왕국 남유다의 최초의 왕.

② 동족간의 전쟁을 항상 치룬 대표적인 왕(대하 12:15).

③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마 1:7).

④ 이스라엘 왕국 분열의 주범(대하 10:10-14).

 

6. 주요 업적

① 15개 성읍을 건축하고 군대를 정비함(대하 11:5-11).

② 아비야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지혜롭게 처신함으로써 아들들 간의 왕위 쟁탈전을 사전 방지함(대하 11:22).

③ 즉위 3년 동안 하나님께 순종하고 국력을 강화시킴(대하 11:17).

 

7. 실수

① 백성들의 민의 와는 달리 획일적인 강경책을 고수함으로써 왕국 분열의 비극을 초래함(왕상 12:13-17).

② 나라가 강성해지자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리고 온갖 우상을 숭배함(왕상 14:22-24;대하 12:1,2).

③ 선민의 왕으로서 많은 처첩을 거느림(신 17:7;대하 11:18-21).

 

8. 평가 및 교훈

① 르호보암은 왕이 된 후 주위 백성들의 탄원과 원로들의 진언을 무시한 채 강압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을 초래하였다(왕상 12:3-20). 이처럼 자신의 명에와 권력에만 급급하는 자는 지혜자의 말도, 사태의 정도도 도무지 알지 못한 채 우매한 길로만 나아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도자 된 자가 판단력을 상실했을 때는 그 결과가 극히 치명적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혹여 우리 가운데도 그와 같이 자신을 위한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가 돌아보아야 하겠다.

② 르호보암은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자 교만에 빠져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렸다(대하 12:1). 이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의 머리와 지혜로 견고히 쌓았던 요새화된 성읍과 국방이 하나님이 보내신 바 된 애굽 왕 시삭의 파괴 아래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풍요롭고 형통할 때 자칫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외면하기가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 함이 허사임을 깨달아(시 137:1) 형통할 때에 더욱 스스로를 겸비해야하겠다.

 

9. 핵심 성구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 받은 지라”(대하 12:1).

 

 

 

 

 

 

 

아사 ― 종교 개혁을 단행한 제3대 유다 왕

1. 인적 사항

① 아사는 ‘치료라는 뜻. ② 남유다 제3대 왕으로 41년간 통치(왕상15:9). ③ 그리스도의 조상(마1:7).

④ 르호보암의 손자. 아비얌과 마아가 사이의 아들(왕상15:8,10). ⑤아들 여호사밧이 왕위를 계승함(15:14).

2.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왕국 분열 이후 계속되어 오던 남북 간의 전쟁이 북왕국 여로보암 왕에 대한 남왕국 2대 왕 아비야 승리로 일단 중단되고, 남북간의 어느 정도 정치적 평화를 누리고 있던 때였다. 이러한 때에 아사 왕은 선한 통치로 남왕국 최초로 종교 개혁을 실시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더욱이 B.C.901년 구스 사람 세라의 대규모 공격이 있었으나 그것을 훌륭히 막아냄으로써 가일층 종교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왕실 내에까지 개혁을 실시하는 개가를 울렸다. 그러나 아사는 이와 같은 대내외적인 선정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교만하여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고 질병에 의해 죽고 말았다.

3. 주요 생애

 

출생

왕위 계승

B.C.910년

왕상 15:8

제1차 종교개혁

"

왕상 15:12

10년간 정치적 안정을 누림

B..C910-900년

대하 14:1

건축 사업 실시

대하 14:6

세라의 침입을 격퇴

B.C.901년

대하 14:12

제2차 종교개혁

대하 15:16

아람 왕 벤하닷과 동맹, 북왕국 공격

B.C.884년

왕상 15:16-22

선견자 하나니의 책망을 들음

"

대하 16:7-9

선견자를 옥에 가둠

"

대하 16:10

일부 백성을 학대함

"

대하 16:10

발에 병이 남

B.C.871년

대하 16:12

죽음

B.C.869년

대하 16:14

 

4. 성품

① 즉위 후 10년 동안 우상을 타파하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도록 할만큼 믿음을 소유한 자(대하14:1-4). ② 평안할 때에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여 힘써 견고한 성읍들을 건축한 것을 볼 때 매사에 안일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에 충성한 자(대하14:6,7). ③ 자신의 종교 개혁에 따르지 않고 우상을 숭배한 모친조차도 태후의 자리에서 축출할 정도로 결단력 있고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행동한 자(대하15:16). ④ 자신이 이방 군대와 동맹한 것을 선견자가 책망하자 그를 옥에 가둔 것을 볼 때 말년에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과신한 자(대하16:7-10).

5. 구속사적 지위

① 남유다의 제3대 왕으로서 41년간 통치(왕상15:9,10).

② 이스라엘 남북 분단 이후 최초로 국가적 종교개혁을 단행한 왕(대하 15:8-15).

6. 실수

① 악한 이방 국가 왕과 동맹을 맺음(왕상15:16-22). ② 자신을 책망하는 선견자를 옥에 가두고 일부 백성을 학대(대하16:10). ③ 통치 초기에는 하나님만을 의지했으나 말년에는 하나님을 떠남(대하16:7-12).

7. 평가 및 교훈

① 아사는 즉위 초기에 외적으로 온갖 우상을 파괴하였고, 내적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지켜 행하도록 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 백성들은 10년 동안 평화를 누릴 수 있었는데, 여기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음을 깨닫는다. ② 아사는 종교개혁을 단행할 때에 자신의 모친이라 할지라도 우상을 숭배한 죄에 대하여는 단호히 처단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과 또 자신과 관련된 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한 채 다른 자들만 정죄 하기에 급급한 현세대에 좋은 귀감이 된다. 참으로 우리는 아사와 같이 어느 누구가 되었던지 간에 악에 대해서는 분별력 있게 결단할 수 있어야 하겠다(고전10:6). ③ 즉위 초기의 아사는 종교개혁을 실시하고 구스의 백만 대군을 격퇴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선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즉위 말기에 교만해져서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과신․타락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대하14:1-12;16:7-14).

오므리 ― 북왕국 최대 왕조의 시조

1. 인적 사항

① 오므리는 ‘여호와께 예배하는 자’라는 뜻. ② 북이스라엘의 6대 왕으로 12년간 재위(왕상 16:23).

③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 왕조의 설립자(왕상16:29). ④ 엘라 왕 때 군대장관을 지냄(왕상 16:16).

2. 시대적 배경

B.C.885-874년까지 약 12년간 북왕국의 제6대 왕으로 통치한 인물. 이스라엘 왕국 분열 이후 북왕국은 이 당시까지 계속된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왕국으로서 기반이 매우 약했다. 그러나 군대장관이었던 오므리가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면서 그의 놀라운 군사적 역량에 의해 북왕국의 분산되었던 힘들이 하나로 규합되면서 사마리아 성읍을 수도로 하여 강력한 강력한 국가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또 대외적으로 활발한 정복 사업을 펼침으로써 북왕국의 국제적 지위도 많이 격상시켜 놓았다. 이로 인해 ‘오므리 왕조’하면 북왕국의 대명사로 멀리 예후 왕 때까지도 사용되었다. 또한 북왕국 제7대 왕인 아합 왕이 정치, 경제적으로 큰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오므리 왕의 공헌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3. 주요 생애

 

출생

엘라 왕의 군대 장관이 됨

B.C.886년

왕상 16:16

모반자 시므리를 처단함

B.C.885년

왕상 16:9,10,15-20

왕으로 추대됨

B.C.885년

왕상 16:16

반란자를 죽이고 전 이스라엘을 통일

B.C.885년

왕상 16:22

사마리아 성읍 건축

B.C.880년

왕상 16:24

아람 왕 벤하닷 1세와 전쟁

B.C.880년

왕상 20:34

모압 정복

B.C.880년

왕하 3:4

죽음

B.C.874년

왕상 16:28

 

4. 성품

① 시므리의 반란시 백성들에게 왕으로 추대된 것으로 보아 용감하고 뛰어난 명성을 지닌 자(왕상16:16).

② 반란자들을 죽이고 북의스라엘의 내란을 평정할 정도로 군사적 지략이 탁월한 자(왕상 16:21,22).

③ 앗수르 문서에 이스라엘이 ‘오므리의 땅’으로 표현될 정도로 대외적으로 정책이 능했던 자.

④ 우상 숭배와 악한 율례를 세워 하나님의 노를 격발케 할 정도로 완악한 자(왕상 16;25,26;미 6:16).

5. 구속사적 지위

① 정치적으로는 북이스라엘 왕국을 다스린 가장 유능한 왕들 중의 하나였으나, 신앙적으로는 악의 대명사가 된 왕(왕상 16:23-27). ② 북이스라엘의 수도로 사마리아 성읍을 건축함(왕상 16:24).

③ 후대에게 불 신앙의 대표적 모습인 ‘오므리의 율례’를 남김(미 6:16).

6. 주요 업적

① 북왕국이 분열되었을 때에 나라를 하나로 결집함(왕상 16:21,22).

② 사마리아를 수도로 세워 북이스라엘의 기강을 확립(왕상 16:24,27).

7. 실수

① 우상 숭배의 정도가 역대 왕보다 심함(왕상 16:25).

② 후대에게 사악한 율례를 남겨 혼합적 신앙을 야기함(왕상 16:25).

8. 평가 및 교훈

① 오므리는 정치․군사적인 면에서 볼 때 무척 뛰어난 왕이었다. 즉 그는 사마리아를 건설하여 이스라엘의 기강을 확립하였고, 당시 앗수르인들이 이스라엘을 ‘오므리의 땅’이라 부를 정도로 대외적인 안정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이렇듯 훌륭한 업적을 쌓았을지라도 그는 하나님 앞에 온갖 불의한 일을 행하였기에 악의 대명사로서 평가될 수밖에 없다(왕상16:24-27).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이 없이는 다른 어떠한 것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결국 심판을 피할 길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역시 소속된 집단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으나, 정작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불의를 행하고 있지는 않는가?

② 오므리는 이전의 모든 왕들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고, 그가 남긴 사악한 전통과 우상 숭배는 그의 아들 아합 왕 때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왕상 16:25-34). 결국 이러한 종교적 전통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가져오게 하였는데, 우리는 먼저된 자가 이룩해 나가는 전통이 후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엘리야 ― 바알 종교 훼파를 이룩한 선지자

 

1. 인적 사항

① 엘리야는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 ② 북왕국 이스라엘의 대 선지자.

③ 길르앗의 디셉 사람(왕상17:1). ④ 엘리사의 스승(왕상19:19-21).

⑤ 북왕국 이스라엘의 7대, 8대 왕인 아합과 아하시야 시대에 활동함(왕상17:1;왕하 1:3,4).

⑥ 몸에 털이 많은 사람(왕하1:8). ⑦ 죽지 않고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자(왕하 2:11).

2. 시대적 배경

오므리 왕조의 두번째 왕, 곧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7대 왕인 아합 왕 통치 때(B.C.874-853년)부터 8대 아하시야 왕(B.C.853년)과 제 9대 여호로암 왕의 통치(B.C.852-842년) 초기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사역을 감당함. 당시 이스라엘은 막강한 군사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번영과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는 극도로 타락한 시대였다. 즉 오므리 왕조의 뿌리를 굳히려고 주변 국가와 결혼 동맹을(왕상11:1) 맺음으로써 백성들에게 바알 등의 우상 숭배를 강요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북이스라엘은 정통적인 여호와 신앙이 멸절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시어 아합 왕의 가증한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선포하시고, 백성들을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이끄려 하셨다.

3. 주요 생애

 

출생

아합 왕에게 가뭄을 예언함

B.C.872년

왕상 17:1

그릿 시내에서 은거 생활을 함

왕상 17:3-17

사르밧 과부집에 기거

왕상 17:8-16

과부의 아들을 소생시킴

왕상 17:17-24

아합에게 바알 선지자와의 대결을 제의

B.C.870년

왕상 18:19-24

바알 선지자 450명과 대결하여 승리

왕상 18:25-40

비를 내리게 함

왕상 18:41-45

이세벨을 피해 호렙산으로 도피

왕상 19:1-8

하나님의 위로로 재차 사역길에 오름

왕상 19:9-14

엘리사가 수종 들음

왕상 19:19-21

아합의 멸망의 예언

왕상 21:17-26

아하시야 왕의 죽음을 예언

B.C.853년

왕하 1:34

남유다 여호람 왕에게 심판을 선언

대하 21:12-15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움

왕하 2:1-11

승천

왕하 2:15

 

4. 성품

① 긴 가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으며 견디어 낼만큼 인내심이 강한 자(왕상17:4;18:2).

② 그 동안 자신을 공궤한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에 그를 살리고자 혼신을 다할 만큼 의리 있고 뜨거운 사랑을 지닌 자(왕상17:19-22).

③ 아합 왕에게 나아가 이스라엘 기근이 그의 죄과임을 지적하고 책망할 만큼 용기 있고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한 자(왕상18:1-18).

④ 혼자서 이방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울 만큼 담대하고 강한 믿음을 소유한 자(왕상18:19). ⑤ 신약 성경에 기도의 모본으로 기록될 만큼 기도에 힘쓴 자(왕상18:42;약5:17,18). ⑥ 이세벨을 피해 호렙 산으로 도피했을 때 낙담하여 하나님께 원망한 것을 볼 때 인간적 나약함도 지닌 자(왕상19:4).

5. 구속사적 지위

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데 자신을 아끼지 아니한 북왕국 이스라엘 최대의 선지자.

② 이방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하나님만이 유일신임을 입증해 보인 불의 선지자(왕상18:36-40).

③ 그의 강림이 예고됨. 이는 신약의 세례요한을 예표함(말4:5,6;마11:14).

④ 신약의 모범된 기도의 사람으로 기록된 자(약 5:17,18).

⑤ 죽지 않고 승천한 구약의 두 인물 중의 하나(왕하 2:11).

⑥ 신약시대 변화 산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말씀한 자(마17:1-4).

6. 주요 업적

①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백성들에게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을 심어줌(왕상18:19-40).

②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고, 또 사르밧 과부의 믿음을 자라게 함(왕상17:19-24).

③ 3년반 동안의 기근과 가뭄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하고, 기도로서 비를 내리게 함(왕상18:45)

④ 엘리사를 선지자로 양성하고, 사무엘이 세운 선지 학교를 계속 이어나감(왕상19:16;왕하 2:1-9).

7. 실수 : 이세벨이 죽이려하자 나약해져 호렙 산으로 도망함(왕상19:1-4).

8. 평가 및 교훈

① 엘리야는 그의 사역을 다하기까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나갔던 믿음의 사람이다. 곧 그는 3년반 동안의 긴 가뭄과 도피의 생활 속에서도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고,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놓고 이방 선지자 850명과 우상 숭배에 물든 백성들 앞에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담대히 증거 했다. 이렇듯 그 많은 대적 앞에 비록 혼자 일지라도 엘리야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신의 확고한 신앙을 나타내 보였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자신의 이익과 영광을 위해 때로는 신앙을 감춰버리는 오늘날의 세태에 참된 귀감이 된다.

②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약 5:17-18)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확고한 믿음으로 저가 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제단에 불이 내릴 것을 확신함으로써 놀라운 이적을 행할 수 있었다(왕상18:33-41). 이와 같이 주님의 놀라운 역사는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짐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힘들 때나 기쁠 때 그 어느 때나 할지라도 확고한 믿음으로 기도하는 신앙인 이 되어야 하겠다(살전 5:17,18).

③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도 이세벨이 죽이려 하는 위기에 처했을 때 낙담과 좌절에 빠지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드러냈다(왕상19:1-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엘리야에게 힘과 용기와 큰 능력을 주심으로 그가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다. 성도도 현실에 상존 하는 갈등 자체를 무시하고 나아갈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좌절과 낙심에 빠졌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심을 깨달아야 한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다(롬 8:28). 지금 당신은 낙심 중에 처하였는가? 힘주시고 일으켜 세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 보자.

④ 엘리야는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는 그가 신분이 높든지 낮든지 간에 이에 굴하지 않고 그의 죄악을 단호히 책망하였다(왕상21:20-26). 이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순종하였기에 담대히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할 때 환경에 굴함 없이 누구에게나 주님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사 44:8).

9. 핵심 성구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 5:17,18).

 

아합 ― 가장 사악한 북이스라엘 제 7대 왕

 

1. 인적 사항

① 아합은 ‘아버지의 형제’라는 뜻. ② 북왕국 이스라엘의 7대 왕, 22년간 통치(왕상16:29).

③ 오므리의 아들(왕상16:29). ④ 시돈 공주 이세벨과 결혼(왕상16:31).

⑤ 장남 아하시야가 왕위를 이음(왕상22:40). ⑥ 차남 여호람이 다시 왕위에 오름(왕하3:1).

⑦ 그의 아들 70명과 딸(아달랴)이 있음(왕하 10:1,6,7 ; 대하 21;6).

2. 시대적 배경

B.C. 874-853년까지 약 22년간 북왕국의 제 7대 왕으로 통치했던 인물.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제 6대 왕 오므리의 강력한 대내외 정책으로 인해 정치적 전성기를 누리던 때였다. 이러한 때에 아합은 베니게의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과 혼인하여 당시 문화적으로 큰 번영을 누렸던 베니게의 문명을 대거 들여왔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알 종교이다. 더욱이 그가 시돈 왕과 혼인 동맹을 맺은 또 다른 이유는 북쪽의 아람이 크게 세력을 확장하면서 팔레스틴 땅으로 남침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이외에도 아합은 남유다 왕 여호사밧과도 혼인 동맹을 맺어 팔레스틴 지역의 세력을 장악하는데도 힘썼다. 이처럼 아합은 외교적 역량을 크게 발휘하여 북왕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전성기를 가져왔으나 종교적으로는 시돈에서 바알 종교를 말살하려 했던 매우 사악한 정책을 폈다.

3. 주요 생애

 

출생

아비 오므리가 왕이 됨

B.C.885년

왕상 16:23

아비의 죽음으로 왕위를 계승

B.C.874년

왕상 16:28

이세벨과 결혼

왕상 16:31

바알 종교를 도입

왕상 16:30-33

엘리야의 심판 경고 받음

왕상 17:1

3년반 동안 가뭄이 임함

왕상 17:1,7

엘리야의 갈멜산 대결로 가뭄 해소됨

왕상 18:20-46

아람과 두차례 전투

B.C.856년

왕상 20:1-29

벤하닷을 살려줌

왕상 20:33

나봇의 포도원 강탈

왕상 21:1-16

엘리야의 심판 선고받음

왕상 21:19-24

회개하여 재앙이 연기됨

왕상 21:27-29

유다왕 여호사밧과 동맹

왕상 22:1-4

이세벨을 위해 상아궁을 건축함

왕상 22:39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전사

B.C.853년

왕상 22:34-37

 

4. 성품

① 북이스라엘의 외교 유지를 위해 이방 여인 이세벨과 결혼할 정도로 외교적 술수가 뛰어난 자(왕상 16:31).

② 바알의 광신도인 아내의 영향을 받아 바알을 숭배하고, 정책상 우상 숭배를 조장할 만큼 줏대없고 간악한 자(왕상16:31033).

③ 두 차례에 걸친 아람의 공격을 격퇴할 만큼 군사적 전략에 능한 자(왕상20:1-29).

④ 나봇의 포도원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의기 소침해져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유약함을 지닌 자(왕상 21:1-5).

⑤ 사람을 죽여서까지 자신의 욕심을 채울 정도로 탐욕과 집착이 강한 자(왕상21:11-16).

⑥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정직한 충고자 미가야 선지자를 옥에 가둘 정도로 영적으로 우매하고 교만한 자(왕상22:13-33).

⑦ 바알 선지자들과 엘리야의 대결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고서도 계속 사치와 불 신앙의 생활을 한 것을 볼 때 완악한 믿음을 소유한 자(왕상 22:39).

5. 구속사적 지위

① 북이스라엘의 제 7대 왕(왕상16:29,30)

② 바알 종교 장려 정책과 함께 여호와 종교를 말살하려 했던 자, 즉 여호와의 구속 사역을 끝까지 방해하려 한 사단의 획책에 종노릇한 자(왕상16:31).

6. 주요 업적

① 두 차례에 걸친 아람 군대의 공격을 격퇴(왕상20:1-29).

7. 실수

① 열렬한 바알 숭배자인 이방여인과 결혼함(왕상16:31).

② 바알을 숭배하고 우상 숭배 정책을 실시함(.왕상16:31-33).

③ 아내의 악을 방관함(왕상18:4;21:7-10). ④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함(왕상21:1-16).

⑤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아람 왕 벤하닷을 살려줌(왕상20:34,42).

⑥ 진실을 말한 선지자 미가야를 옥에 가둠(왕상22:13-33).

8. 평가 및 교훈

① 아합은 왕위에 오른 후 하나님을 모욕하고 북 이스라엘을 파멸시킬 온갖 극악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아합의 행동 배후에는 열렬한 바알 숭배자였던 아내 이세벨의 영향이 무척 컸다(왕상21:25). 곧 그는 오므리 왕조를 굳건히 하려는 외교 정책의 일환으로 이세벨을 선택했지만 그의 결국은 온갖 죄악과 불 신앙으로 인한 파멸뿐이었다. 이처럼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탐욕이 신앙보다 앞설 때 이의 결국은 심판에 이르게 된다. 또한 이는 성도에게 있어 배우자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잘 보여 준다. 당신에게는 신앙 여부가 배우자 선택의 조건이 되고 있는가?

② 아합은 열렬하게 바알을 숭배하고,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조장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북이스라엘은 여호와 신앙이 멸절될 위기까지 놓였고, 결국 하나님의 징계로 3년반 동안의 극심한 가뭄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재앙에도 불구하고 아합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박해하며 바알만을 좇았다(왕상17:1;18:4) . 이러한 아합의 어리석음을 보면서 성도는 환난을 당하였을 때 먼저 그 원인이 자기에게 있지 않은가 돌이켜 보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③ 아합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살인까지도 불사하며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다(왕상21:1-16). 이처럼 인간의 헛된 욕망은 분별력을 상실하고 또 다른 죄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탐욕만을 위해 도모하는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고, 오직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만을 향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롬13:13,14).

④ 아합에게는 권력욕에 사로잡혀 그에게 간계를 일삼았던 아내가 있던 반면,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고 잘못된 길을 지적하던 엘리야와 미가야 등의 정직한 충고자도 있었다(왕상17:1 ; 21: 25;22:27,28). 그러나 그는 끝끝내 정직한 자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아내 이세벨의 궤계에 더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멸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정직한 자의 충고를 분별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깨닫게 된다.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해 주는 자의 소리를 분별하는 지혜가 있는가?

9. 핵심 성구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음이라(왕상21:25).

 

엘리사 ―기적적 능력으로 조국을 지킨 선지자

 

1. 인적 사항

① 엘리사는 ‘하나님은 구원이시다’의 뜻. ②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왕하 2:15).

③ 엘리야의 제자(왕상19:19,20). ④ 머리가 벗어졌음(왕하 2:23)

⑤ 요단 골짜기 계곡 아벨므홀라 城 출신(왕상2:23).

2. 시대적 배경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여호람 왕의 통치시기에 활약하기 시작하여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왕 즉위 초까지인 B.C.852년 경부터 B.C.798년 경까지 활동했다.

엘리사 활동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아합의 죽음과 함께 점차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속국들의 배반과 함께 당시 북방 지역에서 크게 세력에 확장해 오던 아람의 잦은 침입으로 곤욕을 치루던 때였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바알 종교의 영향이 한풀기가 꺾이긴 하였으나 우상 숭배가 여전하게 행해져 극도로 타락하였다. 이러한 때에 엘리사의 사역은 북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로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기다리시며 계속해서 북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출생

아벨므홀라에서 밭을 갈던 농부

왕상 19:16,19

엘리야의 제자가 됨

왕상 19:20,21

엘리야의 후계자가 됨

왕하 2:2-11

엘리야의 승천을 목격

왕하 2:11-13

첫 이적을 행함

왕하 2:14

선지자로 인정받음

왕하 2:15

조롱하는 아이들을 저주함

왕하 2:23,24

여리고 물을 정화시킴

왕하 2:19-22

한 가난한 과부의 기름을 채움

왕하 4:1-7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림

왕하 4:17-37

국의 독을 해독함

왕하 4:38-41

떡 20개로 100명을 먹임

왕하 4:42-44

문둥병자 나아만 치유

왕하 5:1-19

도끼를 물위로 떠오르게 하는 이적을 행함

왕하 6:1-7

자신을 잡으러 온 아람 군대를 생포함

왕하 6:10-23

재난 중 사마리아 城 구원 예언함

왕하 7:1-20

아람 왕 벤하닷의 죽음 예언함

왕하 8:7-10

예후에게 기름부음

B.C.841년

왕하 9:1

요아스 왕에게 이스라엘 승리 예언

왕하 13:14-19

죽음

왕하 13:20

 

 

4. 성품

① 엘리야를 만난 후 농부의 신분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엘리야를 따를 만큼 결단력이 있는 자(왕상 19:19-21).

② 엘리야를 끝까지 따르며 은혜 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을 만큼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자(왕하2:4-9).

③ 엘리야의 승천 때에 갑절의 영감을 구하여 얻을 만큼 지혜롭고 충성된 자(왕하 2:9).

④ 선지자로서의 사역뿐만 아니라 선지학교를 통해 후진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인 것을 볼 때 성실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왕하 4:38-44).

⑤ 비록 자신의 사환이라 할지라도 범죄 하였을 때 단호히 정죄하고 문둥병의 형벌을 내릴 만큼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지 않고 공의를 실천하는 자(왕하5:20-27).

⑥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을 때 자기의 몸을 맞대어 그 아이를 살아나게 한 것을 볼 때 실천적인 사랑을 소유한 자(왕하4:32-35).

⑦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을 정도로 신실한 믿음을 지닌 자(왕하 6:17).

⑧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게 포위되었을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왕과 백성에게 선포할 만큼 담대한 신앙의 소유자(왕하 6:24-33;7:1).

5. 구속사적 지위

① 갑절의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을 이룬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

② 뛰어난 영력으로 국가에 공헌함, 곧 아람으로부터 북이스라엘을 보호함(왕하 6:10-12,18).

③ 수많은 이적들을 행사함(왕하2:14-6:23). 이는 예수의 권능을 예표함.

6. 주요 업적

①국가적 위기 때마다 뛰어난 영력을 다해 이방의 침입을 저지하며 나라를 지킴(왕하3:16-19).

② 한 과부의 그릇에 기름을 채우고,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소생시키고 나아만 장군을 구원케 하는 등 갖가지 이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냄(왕하2:14-6:23).

③ 하나님으로부터 갑절의 능력을 받아 위대한 선지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함(왕하 4:38-44).

7. 실수

엘리사 당시 왕들의 악정에 대해 강하게 비판치 않음

8. 평가 및 교훈

① 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부름을 받자 지체치 않고 열정적으로 그를 따랐다(왕상 19:20,21;왕하 2:1-11). 이는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실 때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좇은 사실과도 같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 지체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더욱이 엘리야의 아무런 강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끝까지 스승을 좇으며 갑절의 능력을 요구하지 않았는가? 이처럼 주저하지 않고 끝까지 은혜를 사모하는 열정이 우리 가운데도 넘쳐야 하겠다.

② 갑절의 영감을 받은 엘리사는 선지자로서의 사명에 충실함으로써 사람과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왕하 2:14,15;4:9;6:17). 이러한 인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진실하고 담대하게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온전한 순종과 담대함으로 하나님을 섬겨 사람과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자.

③ 여러 가지 권능을 나타낸 엘리사는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는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주었다(왕하 5:1-14). 이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마 6:44)을 몸소 실천해 보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비록 나를 비방하는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지혜를 함께 나누며 주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④ 엘리사는 국가적 위기 때에 자신의 영력을 다하여 조국 이스라엘을 보호하였고 힘써 하나님께 기도하였다(왕하 6:8-23). 이와 같이 성도들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도 자신의 능력을 다하고, 하나님께 늘 지켜 인도하실 것을 힘써 기도해야 한다. 당신의 기도 가운데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간구가 어느 정도나 포함되고 있는가?

 

9. 핵심 성구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왕하 2:9).

 

 

나아만 ―문둥병 치유받은 아람의 군대 장관

 

 

1. 인적 사항

① 나아만은 ‘즐거움’이란 뜻.

②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이며 구국공신(왕하 5:1).

③ 엘리사에 의해 문둥병을 고침 받음(왕하5:14).

 

2. 시대적 배경

나아만이 아람의 군대 장관으로 활동하던 B.C.850년경, 아람은 지금까지 군소 도시 국가로서 존립한 관계로 그리 큰 세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대제국이던 앗수르가 국내 문제로 인하여 그 세력이 급격히 약화된 탓에 근동 지역에서 막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또 다윗과 솔로몬 시대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쳐오던 아람이 이제 이스라엘의 왕국 분열 이후 급격히 그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북왕국 변방 지역을 자주 침입함으로써 이스라엘과 적대 감정이 한창 고조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때에 나아만이 이스라엘로 찾아오자 북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아람이 북 왕국을 칠 빌미를 잡으러 온 줄로 알고 옷을 찢으며 극도의 공포감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로 나아만이 문둥병 치유를 받게 됨으로써 그가 북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는 당시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과 섭리의 경과가 아닐 수 없다.

 

3. 주요 생애

 

출생

군대 장관이 됨

왕하 5:1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승리

B.C.853년

왕하 5:1

문둥병에 걸림

왕하 5:1

문둥병 치유차 이스라엘을 방문

왕하 5:2

이스라엘 왕에게 치유 요청

왕하 5:6,7

엘리사의 집 방문

왕하 5:9

엘리사에 의해 문둥병을 고침 받음

왕하 5:14

여호와를 섬기기로 결심함

왕하 5:17

죽음

 

 

4. 성품

①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아람을 구원한 것으로 보아 군사적 지략이 뛰어난 자(왕하 5:1).

② 계집 종의 말을 믿고 이스라엘까지 갔으며, 또 종들의 간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아 아랫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겸손한 자(왕하 5:2-7, 13-14).

③ 엘리사에게 직접가지 않고 이스라엘 왕에게 간 점이나 자신의 모습을 화려하게 하여 엘리사를 찾아간 것을 볼 때 자신의 높은 신분에 대해 자만한 자(왕하 5:6,7).

④ 여호와의 은혜로 나음을 입었을 때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아 매우 순수한 자(왕하 5:15).

5. 구속사적 위치

① 이방인이라도 하나님께 나아오면 구원 얻게 됨을 보여준 자(엡 3:6).

②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할 때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와 은총을 받은 이방인으로써 후에 그리스도의 칭찬을 받은 자(눅 4:27).

 

6. 주요 업적

① 앗수르로부터 아람나라를 구함(왕하 5:1).

②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함(왕하 5:15-18).

 

7. 실수

① 요단 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는 엘리사의 말에 노하여 돌아가려함(왕하 5:10-12).

 

8. 평가 및 교훈

① 나아만은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아람을 구원하였는데 이에 대해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한다(왕하 5:1).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신다. 그런데 이렇게 크신 하나님, 이방인까지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매일의 기도 속에서 나만의 하나님, 내 나라만의 하나님으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는가?(시 103:17-19).

② 나아만은 엘리사가 요당 강에 몸을 씻으라 하였을 때에 노하여 돌아가려 하였다(왕하 5:11). 그러나 만약에 그대로 돌아갔더라면 그는 결코 문둥병을 고침 받지 못했을 것이다. 노함(분냄)은 이렇게 어리석은 일을 행하게 한다. 성경에도 분노는 다툼을 일으키고 급기야는 죄를 짓게 하므로 합당하지 않은 행위라고 말씀하고 계신다(잠29:22;요4:4). 우리들의 행동에도 노하기를 속히 하는 어리석음이 있지는 않은가? 실로 분노가 일어났으나, 이를 떨쳐버리고 선지자의 말에 순종함으로써 병고침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나아만 을 기억하자.

③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그의 말에 순종하게 된 데에는 일차적으로 아랫 사람의 지혜로운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던 그의 겸손함이 선행되었다. 솔로몬도 잠언에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신다(시 10:17;잠3:34)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도 내 생각만을 주장하려 하고, 나만 높아 지려하는 모습은 없는가? 성경은 겸손한 자에게는 권고를 듣는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잠11:2;12:15).

 

9. 핵심 성구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왕하 5:15).

 

 

 

 

 

 

 

 

 

하사엘 ―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의 도구

1. 인적 사항

① 하사엘은 ‘하나님이 보심’ ② 벤하닷 2세의 궁정 대신이었음(왕하8:7-9).

③ 아람 나라의 왕이 되어 48년간 통치(8:14,15). ④ 그의 아들이 벤하닷 3세가 됨(왕하13:24).

2. 시대적 배경

아람 왕 하사엘(B.C.843-798)은 북왕국 아합의 아들 여호람, 예후, 여호와하스 당시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당시 아람은 군소 도시국가 형태에서 벗어나 다메섹을 중심으로 크게 세력을 확장하던 때로서 외적으로 많은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한동안 국내 문제로 잠잠했던 메소포타미아 북방지역의 앗수르제국이 살만에셀 3세에 의해 안정을 되찾고 다시금 팔레스틴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해 오는 바람에 하사엘의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세력을 크게 확장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하사엘은 살만에셀 3세의 침공을 완강하게 막아내면서 동시에 북왕국 이스라엘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가려는 놀라운 투지를 발휘해 그 세력을 잘 유지해 나갔다.

3. 주요 생애

 

출생

벤하닷 2세의 궁정 대신이 됨

왕하 8:7

엘리사를 만나 예언을 들음

왕하 8:8-13

벤하닷 2세 살해

왕하 8:14

아람 왕 즉위

B.C.841년

왕하 8:15

길르앗 라못 공격

왕하 8:28

예후 군대 격퇴

왕하 10:32

이스라엘 계속 침입

왕하 13:3,22

예루살렘 침공

왕하 12:17

죽음

B.C.798년

왕하 13:24

 

 

4. 성품

① 이불을 적셔 왕을 암살하고 사고처럼 보이게 한 것으로 보아 사악하고 교활한 자(왕하 8:15,16). ② 통치 기간중 여러 싸움에서 승승 장구하고, 권세를 강하게 했던 것을 보아 군사적 지략이 뛰어난 자. ③ 하나님의 백성들을 잔인하게 학대한 것으로 보아 교만하고, 잔인한 성품의 소유자(왕하8:12;13:22).

5. 구속사적 지위

① 범죄한 아람 왕가를 징계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징계의 도구로 삼으신 자(왕상19:17).

② 일생동안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자로서 사단의 도구로 사용된 자.

6. 교훈

① 왕이 되리라는 엘리사의 예언을 듣고 하사엘은 자신을 ‘개’라고 표현하면서 필요 이상의 겸양을 나타내었다. 이 태도는 그가 그 다음날 왕을 암살하고 왕위를 찬탈한데서 곧 위선임이 드러난다(왕하 8:13-15). 이와 같이 사람 앞에서의 거짓과 위선은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이다. 더구나 우리 믿는 자들은 그 마음 중심까지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늘 꾸밈이 없는 솔직함을 가지고 진실 되게 행해야 하겠다.

② 하나님께서는 범죄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기회들을 주기 위해서 하사엘을 사용하셨다. 이때 하사엘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는 하였으되 의의 도구 평화의 도구가 아닌 악한 도구,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할 자들이다. 혹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다가 그 마음이 악하여져 하사엘처럼, 또 예수님을 판 제자 유다처럼 악한 도구로 사용되어 지지 않도록 늘 겸손하며, 선한 도구로 쓰임 받기를 위해 간구하는 자들이 되자.

예후 ― 북이스라엘 10대 왕

1. 인적 사항

① 예후는 ‘그는 여호와시다’라는 뜻.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 10대 왕이며, 예후 왕조 창시자.

②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왕하9:2). ③ 여호람 휘하의 군대 장관이었다(왕하 9:25).

④ 엘리사에게 기름 부음 받음(왕상 19:16).

2. 시대적 배경

B.C.841-814년까지 약 28년간 북왕국의 제 10대 왕으로 통치한 자. 당시 북왕국과 남왕국은 아합 때부터 서로 동맹 관계에 그것은 외적의 침입을 공동적으로 대처한다는 목적에서였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잦은 아람의 침입으로 남북 왕국은 모두 그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있었다. 따라서 보다 강력한 통치권자가 절실히 요청되던 때에 예후는 연약해진 아합 왕가와 함께 당시 동맹 관계에 있던 남유다의 아하시야 왕을 처형함으로써 강력한 정부를 구축하였다.

3. 주요 생애

 

출생

아합의 군대 장관

왕하 9:25

엘리사의 생도에게 기름 부음 받음

B.C.841년

왕하 9:1-10

아합 가문의 심판의 명을 받음

왕하 9:7-10

왕으로 추대됨

왕하 9:13

유다 왕 아하시야 살해

왕하 9:4-24

이세벨 살해

왕하 9:33

아합의 왕자 70인을 살해

왕하 10-6-8

아합 권속 진멸

왕하 10:11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 42인 살해

왕하 10:12-14

여호나답의 도움 받음

왕하 10:16

바알 숭배자 진멸

B.C.835년

왕하 10:18-25

바알 산당 훼파

왕하 10:26

금송아지 숭배

왕하 10:29

아람 왕하사엘의 침공 받음

왕하 10:32,33

죽음

B.C.814년

왕하 10:35

 

4. 성품

① 남북 왕국에 속한 왕족들을 철저하게 진멸할 만큼 대담한 자(왕하 9:14-10:14).

② 아합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과정을 볼 때 너무 잔인하고 포악한 자(왕하 9:33,34).

③ 자신의 반역 소식이 왕궁에 도달되기 전에 병거를 황급히 몰아 왕궁에 쳐들어 간 것을 볼 때 자신의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적인 자(왕하 9:20;10:16). ④ 멸시를 받을지라도 이를 분개하지 않고 일을 진행시킬 만큼 사고가 냉철한 자(왕하9:31). ⑤ 바알 숭배자를 진멸하였을지라도 자신은 금송아지를 숭배한 것을 볼 때 위선 되고 이중적인 신앙을 소유한 자(왕하 10:29-31).

5. 구속사적 지위

① 바알 숭배와 여호와의 예언자들을 죽인 오므리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도록 선택받음.

6. 평가 및 교훈

① 예후는 여호와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또 바알을 숭배하며 극도로 타락했던 아합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기 위해 선택받았다(왕하9:7-10).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행한 대로 반드시 보응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이를 위해서는 때에 따라서 악한 자라 할지라도 공의를 선포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하나님만이 전 역사의 주관자요 절대자 되심을 깨닫게 된다.

② 예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바알 숭배자들을 진멸했을지라도 자기 자신은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이중적인 신앙태도를 지녔다(왕상10:29). 이로 보아 하나님의 뜻대로 남북 왕조를 심판하고 바알 숭배자들을 진멸한 그의 행동은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이 아니라, 자신의 야망과 영리가 계산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자신의 영리를 계산한 채 종교 생활에 힘쓰는 위선 된 성도들이 있다. 진정 당신은 계산된 이익의 추구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신앙 생활에 힘쓰고 있는가?

히스기야 ―신앙을 회복시킨 남유다 13대 왕

 

1. 인적 사항

① 히스기야는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는 뜻.

② 유다 왕 아하스와 아비야 사이의 아들(대하29:1).

③ 25세에 유다 제 13대 왕으로 즉위, 25년간 통치(왕하 18:1,2).

④ 아들 므낫세가 왕위를 계승(왕하 20:21).

⑤ 그리스도의 조상(마 1:9).

2. 시대적 배경

국내적으로는 극도의 종교적 타락으로 병들고, 대외적으로는 앗수르에 의해 위협을 받던 시기인 B.C.728년부터 B.C.687년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는 B.C.722년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에 의해 북왕국이 멸망함과 동시에 그 여세를 몰아 앗수르가 남유다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위기감이 한참 고조되어 있던 때였다.

3. 주요 생애

 

출생

섭정 왕으로 등극

B.C.728년

왕하 18:2

단독 통치 실시

25세, B.C.715년

왕하 18:13

성전 수리와 종교개혁

대하 29:3-36

우상 제단 제거

왕하 18:4

유월절 준수

대하 30:1

블레셋 정복

왕하 18:8

앗수르의 1, 2차 침공

왕하 18:9-19:34

성 안에 수로 건설

왕하 20:20

죽을 병에 걸림

B.C.701년

왕하 20:1

기도 응답으로 생명을 15년간 연장 받음

왕하 20:2-11

생명 연장 감사의 글을 씀

사 38:9-22

바벨론 사신에게 유다의 보물을 자랑함

왕하 20:12-15

이사야의 남유다 멸망 예언

왕하 20:16-21

죽음

54세, B.C.687년

왕하 20:20,21

 

 

4. 성품

① 우상 숭배에 빠졌던 부친과는 달리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큼 여호와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정직히 행한 자(왕하 18:3-6).

②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고, 우상 숭배의 단을 제거하며, 유월절을 다시 제정할 만큼 과감한 개혁을 시도한 결단력 있는 자(왕하 18:4;대하29:3).

③ 앗수르 침공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 또 자신이 병들었을 때 기도함으로 해결함을 받을 만큼 전적으로 기도에 힘쓴 자(왕하 19:15;20:2,3).

④ 왕의 신분으로써 선지자 이사야 에게 모든 것을 의논하며 기도를 요청할 만큼 겸손한 자(왕하 19:1-4).

⑤ 앗수르의 침입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안에 수리 시설을 갖춰 적의 공격에 대비할 정도로 침착하고 세밀한 지도력을 겸비한 자(왕하 20:20).

⑥ 바벨론 사자들에게 유다의 보물을 공개하며 자랑한 것을 볼 때 허영심 있고 경솔한 자(왕하 20:15).

 

5. 구속사적 지위

① 남유다의 제13대 왕으로서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한 자(왕하 18:3-6).

② 죽을 병에 걸렸으나 기도함으로 생명을 15년 연장 받은 기도의 사람(왕하 10:6).

③ 기도 응답으로 해 그림자가 십도 물러선 이적을 체험한 자(왕하 20:11).

④ 생명이 연장되었으나 교만과 허영으로 그 시간을 살아감으로써 바벨론 침입의 계기를 만든 자(왕하 20:12-19).

6. 주요 업적

① 우상 숭배를 척결하고 선전을 청결케 함(대하 29:6-36).

② 성안에 수로, 곧 실로암 굴(the Siloam Tunnel)을 건설함(왕하 20:20).

③ 유월절을 준수하고, 14일 동안 남․북 이스라엘이 함께 기쁨을 누리도록 함(대하 30:1-23).

④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를 의지하다가 앗수르에게 망한(17:4-6) 것을 보면서 반 앗수르 정책, 곧 정치적 개혁 운동을 시행함(왕하 18:7,8).

⑤ 앗수르 침략의 위협 속에서도 블레셋을 쳐서 지경을 넓힘(왕하 18:8).

⑥ 기도로써 앗수르의 침입에서 나라를 보호하고 생명을 연장 받음(왕하 19:14-19).

⑦ 교만해져서 범죄한 후 즉시 회개함(대하 32:26).

7. 실수

① 바벨론의 사자에게 자기 나라의 보물고와 무기고를 다 보여줌(왕하 20:12-15).

② 아들 므비보셋에게 바른 신앙을 심어주지 못함(왕하 21:2).

8. 평가 및 교훈

① 히스기야는 부왕 아하스의 타락한 정치의 전철을 밟지 않고 왕으로서 먼저 종교 개혁을 과감하게 실행하여 국가적인 신앙의 회;복을 꾀하였다. 이는 물질 문명의 노예 상태에 빠져있는 현대인들에게 주위의 여러 악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심을 잘 보여 준다. 이세대의 영향을 따르지 말고, 오직 정결한 주의 자녀답게 신앙자세를 지켜나가야 하겠다(롬 12:2).

② 히스기야는 국가 존망의 위기에 있어서 겸손하게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고(왕하19:4;사36:4). 또 자기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기도하는 신앙을 나타내 보였다(대하32:26). 참으로 히스기야는 기도함으로써 앗수르 군을 격퇴하였고, 해 그림자가 십도 물러서는 초자연적 현상을 목도하였으며, 그 생명이 15년이나 연장되었다. 이처럼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며 기도하는 신앙의 모습은 하나님을 하나의 신앙 수단으로 삼으려는 현대인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도 매사에 하나님께 엎드려 그의 긍휼을 간구하는 자가 되자.

③ 히스기야는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이 위문의 사신들을 보냈을 때 교만과 허영심에 의해 그들에게 군기고 와 모든 보물을 공개해 보이며 자랑했다(대하 32:25). 즉 당시의 정황으로 보아 히스기야가 그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는 자신이 소유한 금과 은과 보물을 자랑하면서 세속적인 방법으로 나라의 부강을 과시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는 성도가 신앙생활할 때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보다는 세상 나라의 부귀를 앞세워 생각할 때 교만의 올무에 걸리게 됨을 잘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형편이 나아졌다고 해서 그러한 형편과 명성 때문에 시험 들지 않도록 더욱 겸손히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하겠다(마6:33).

9. 핵심 성구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왕하 19:5).

 

요시야 ―남유다의 마지막 개혁자

 

1. 인적 사항

① 요시야는 ‘여호와께서 도와주심’이라는 뜻.

② 남유다 제16대 왕, 8세에 즉위하여 31년간 통치(왕하 22:1).

③ 므낫세 손자, 유다 왕 아몬의 아들(왕하 21:24).

④ 모친은 보스갓 아다야의 딸인 여디다(왕하 22:1).

⑤ 아들로는 요하난과 여호야김과 시드기야, 살룸이 있음(대상 3:15).

⑥ 그리스도의 조상(마 1:10).

2. 시대적 배경

유다 왕국의 마지막 시대로 접어든 B.C.640년경부터 왕국 분열 후 유다 역사상 가장 부흥했던 시기인 B.C.609년까지를 주활동 배경으로 한다. 당시의 대외 정세는 남유다를 계속하여 위협하던 앗수르의 세력이 매우 약화된 때였다. 즉 앗수르는 무리한 대외정복 정책으로 국력을 많이 낭비하게 되었고 급기야 B.C.612년에 바벨론에 의한 수도 니느웨 城 함락(陷落)으로 멸망한다. 그리고 신흥 바벨론이 앗수르를 제치고, 새로운 국제 질서의 주도권을 잡고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세력이 활발하여지는 요시야 왕 말기부터였다. 그러므로 8세에 왕에 오른 요시야 왕 때에는 앗수르의 힘은 약화되었고, 아직 바벨론은 대외적으로 큰 영향을 행사하지 못하던 때였다. 그러므로 요시야 통치 초기의 유다 왕국은 평화로운 중에 여호와의 신앙을 제정할 수 있었다.

3. 주요 생애

 

여로보암 때에 출생이 예언됨

B.C.926년경

왕상 13:1,2

출생

B.C.647년

부왕 아몬이 암살 당함

8세, B.C.640년

왕하 21:23

왕이 됨

왕하 21:24

1차 종교 개혁 실시

20세, B.C.628년

대하 34:3

성전 수리

26세, B.C.628년

왕하 22:3-6

율법 책 발견과 대각성

왕하 22:8-13

백성들과 언약 체결

왕하 23:1-3

대대적인 종교 개혁 단행

왕하 23:4-15

유월절을 지킴

왕하 23:23

므깃도에서 전사

왕하 23:29

예루살렘에서 장사됨

왕하 23:30

 

4. 성품

①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으로 즉위한 뒤 선왕들과는 달리 다윗의 율례를 모범으로 삼아 그 율례대로 선정을 베푼 것을 볼 때 어질고 신실한 자(왕하 22:2).

② 율법서를 발견한 후 말씀을 읽으며 옷을 찢고 눈물로 회개할 만큼 겸손하고 순종적인 자(왕하 22:10-13).

③ 백성들과 더불어 여호와 앞에서 말씀에 순종했다는 언약을 맺을 만큼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뢰하는 자(왕하 23:3).

④ 대대적인 회개 운동 후에 우상 숭배의 제단과 그 형상, 또 이를 주관하는 자들까지도 제거할 만큼 결단력 있고 실천적인 자(왕하 23:4-15).

⑤ 하나님 말씀에 굳게 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을 만큼 가치관이 확고한 자(왕하 22:2).

⑥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신의 판단으로 전쟁에 참여한 것을 볼 때 일면 경솔한 자(왕하 23:29).

5. 구속사적 지위

①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신앙 개혁운동을 주도한 남유다 제16대 왕(왕하 23:4-15).

② 신앙적 암흑기에 여호와 예배 의식을 회복하고,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언약을 갱신한 지도자(왕하 23:1-3).

③ 이스라엘 분열 왕국 이후 유다 역사상 최대의 종교적 부흥기를 꾀한 왕(왕하 23:25).

 

6. 주요 업적

① 성전을 깨끗이 수리하고, 이 때 율법 책을 발견함(왕하 22:3-8).

②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 책을 읽어 자신뿐만 아니라 우상 숭배에 빠져있던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함(왕하 22:8-19).

③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갱신함(왕하 23:1-3).

④ 남방만 아니라 북방 이스라엘까지 온 이스라엘의 우상을 제거하고 정결케 함(대하 34:3).

⑤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사 시대 이후 처음으로 모세의 율법을 따라 유월절을 지킴(23:21-23).

 

7. 실수

애굽 왕 바로느고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끝까지 므깃도 전투를 감행하다 죽임을 당함(대하 35:20-24).

 

8. 평가 및 교훈

① 요시야 왕은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을지라도 선왕의 악행을 따르지 않고, 오직 다윗의 본을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 없이 하나님만을 섬겼던 현군이었다(대하34:1-7). 곧 그는 즉위 후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하고, 또 온갖 이방 신을 다 제하여 버렸을 뿐만 아니라, 온 나라의 하나님의 율법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세대에 물들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결단력 있고 진취적인 신앙의 기상을 잘 보여준다. 당신에게도 이러한 신앙의 결단과 행동이 살아있는가? (롬12:2).

② 요시야 왕은 말씀에 대해 순종하겠다는 결심과 함께, 나아가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왕하 23:21-25). 이러한 요시야의 모습은 말씀에 대한 지식은 많지만 그 말씀대로 실천하지 않는(약 2:14) 오늘날 많은 성도들에게 참 신앙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보여 준다. 실로 우리도 그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③ 요시야는 왕으로서 권위를 내세우는 개혁이 아닌, 자신부터 말씀에 근거하여 철저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방 우상 숭배에 젖어 있던 백성들을 회개시키고 국가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다(왕하 22:11-13). 이처럼 성도들도 먼저 겸손하게 자신을 말씀 앞에 복종시켜 변화하는 가운데 교회와 사회를 예리한 말씀으로 변화시켜 나아가야 한다(히 4:12). 실로 요시야가 오직 말씀에 준거하여 모든 개혁을 일으켰듯이 우리 역시 말씀에 근거하여 변화하는 모습과 노력이 있을 때 진정 이 사회가 하나님 앞에 무릎꿇어 경배드릴 수 있는 것이다.

 

9. 핵심 성구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

 

아비새 ― 용감한 다윗의 용사

 

1. 인적 사항

① 아비새는 ‘나의 아버지는 이새’라는 뜻. ② 다윗의 이복 누이 스루야의 둘째 아들(대상2:15,16)

2. 시대적 배경

B.C.1020년 경 사울로 인한 다윗 도피 시절부터, B.C.971년 다윗 통치 말기까지 다윗의 30인 용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3. 주요 생애

 

출생

다윗의 용사가 됨

대상 11:20

십광야에서 사울을 죽이려함

삼상 26:8,9

귀순자 아브넬 살해

삼하 3:30

암몬과 아람족 징벌

대상 19“15

압살롬의 난을 평정

삼하 18:2

블레셋 전투에서 다윗의 생명을 구함

삼하 21:15-17

죽음

 

4. 성품

① 다윗의 피난 시절부터 통치 말기까지 그와 동고동락한 것을 볼 때 의리 있고 충성된 자(삼상 26:6).

② 300명의 적을 단숨에 물리친 것을 볼 때 매우 용감한 자(대상 11:20).

③ 귀순한 아브넬을 동생의 원수를 갚고자 살해한 것으로 보아 분별력이 부족한 자(삼하 2:18-3:30).

④ 기름부음 받은 사울 왕을 서슴없이 죽이려할 만큼 경솔한 자(삼상 26:8).

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다윗을 구한 것을 볼 때 책임감이 강하고 헌신적인 자(삼하 21:15-17).

5. 구속사적 지위

① 목숨을 걸고 다윗을 섬긴 다윗의 가장 용맹스러운 용사(삼하 21:15-17). 즉 주의 군병된 성도들이 어떠한 자세로 주를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준 자.

② 불의 한 방법으로 동생의 원수를 갚음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악행 하는 자라고 책망들은 자(삼하 3:17-30).

6. 주요 업적

① 다윗의 도피 시절부터 통치 말기까지 다윗에게 충성함(삼상 26:6).

② 다윗의 생명을 구함(삼하 21:17).

7. 실수

①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귀순한 아브넬을 모함․살해함(삼하 3:22-30).

② 기름부음 받은 사울 왕을 죽이려함(삼상 26:8,9).

8. 평가 및 교훈

① 아비새는 다윗이 도피하던 시절부터 늘 힘써 그를 섬겼다. 더욱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윗의 생명을 구하기까지 충성한 그의 희생과 용맹은 십자가 군병 되어서 예수를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갖춰야 할 기상이다(딤후 4:7).

② 아비새는 용맹했으나 일면 분노를 자제하지 못함으로써 많은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다. 이처럼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일 때 우리는 불의하고 비겁한 방법을 마치 정의인양 착각하게 된다. 마음을 다스려 매사를 성급히 분내지 말고 무엇이 바른가를 분별하도록 하자(잠 16:32).

여호사밧 ― 개혁자 남유다 제 4대 왕

 

1. 인적 사항

① 여호사밧은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라는 뜻

② 남왕국 유다의 제 4대 왕으로 25년간 재위(대하 20:31).

③ 선왕 아사와 실히의 딸인 아수바의 아들(대하 20:31).

④ 북왕국 아합 왕과 사돈을 맺음(왕하 8:18,26).

2. 시대적 배경

B.C. 872-848년까지 통치. 북이스라엘 왕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과 동시대의 인물이다. 제 3대 왕 아사 때까지 만해도 남북 왕국은 계속 긴장 관계에 있었으나 여호사밧 때부터는 남북 왕국 사이의 관계가 상당히 우호적이 되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당시 북쪽에서 아람의 세력을 크게 확장하여 위협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공동 대처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간의 동맹 관계가 상당히 우호적이 되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당시 북쪽에서 아람이 세력을 크게 확장하여 위협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공동 대처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간의 동맹 관계가 여호와를 전적 의뢰하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악한 왕에 의지한 결과라는 점에서 선지자 예후는 여호사밧 왕을 크게 책망하였다(대하 19:2).

 

3. 주요 생애

 

출생

등극

B.C. 872 년

왕상 21:41

국방력 강화

대하 17:1.2

종교개혁 실시

대하 17:3-6

교육 사업 착수

대하 17:7-9

요새와 국고성 건축

대하 17:10-19

아합과 결혼 동맹 체결

B.C. 853 년

대하 18:1-3

아합과 동맹, 길르앗 라못 전투 참여

대하 18:2-19:3

사법, 행정 조직 정비

대하 19:4-11

모압과 암몬 연합군의 격퇴

대하 20:1-30

아하시야와 상업 동맹 체결

대하 20:35-37

죽음

B.C. 848 년

대하 21:1

 

 

4. 성품

① 모세 율법에 따라 사법 제도와 통치 체제를 정비한 것으로 보아 정치적 역량이 뛰어난 자(대하 17:6-9).

② 국제 정세를 파악하여 성읍에 수비대를 주둔하고, 평화시에 방위수단을 구축한 것으로 보아 지혜롭고 준비성이 뛰어난 자(대하 17:1,2).

③ 아합의 권유를 들었을 때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 것이나 위기 중에 여호와의 도와주심을 확신한 것으로 보아 여호와를 의뢰하는 신앙을 가진 자((대하 18:4;20:1-25).

④ 자국의 안정을 위해 북이스라엘과 결혼 동맹을 맺은 것을 볼 때 일면 신앙보다 정치․외교를 앞서 생각한 자(대하 18:1;20:35-37).

⑤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도 무리하게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전했다가 패한 것으로 보아 고집 있고 경솔한 자(대하 18:12-34).

5. 구속사적 지위

① 모세 율법에 의해 사법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신정 국가로서 남유다 왕국의 면모를 새롭게 한 자.

② 북왕국과의 결혼 동맹과 길르앗 라못 전투에 동맹참전한 일로 인한 여호사밧에 대한 선지자 예후의 책망에서 보여주듯(대하19:2), 악한 자와의 동맹이 믿음의 의로운 길로 가야할 신자들에게는 치명적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영적 교훈을 보여준 자.

 

6. 주요 업적

① 전면적인 종교 개혁을 실시(왕상 22:46;대하 17:3-6).

② 유다의 전 국토를 요새화하고 국방력을 강화(대하 17:1,2).

③ 교육 사업과 사법 제도를 정비(대하 17:7-9;19:5-11).

④ 모압과 암몬 연합군의 침략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겨냄(대하 20:1-37).

 

7. 실수

① 산당을 페하지 않음(대하 20:33).

② 배교자요 우상 숭배자인 북이스라엘의 아합, 아하시야 왕과 동맹을 맺음(대하 18:1).

 

8. 평가 및 교훈

① 이방 연합군의 침입이라는 대위기 앞에서 여호사밧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 절대 절명의 위기로부터 유다를 구원시켰다(대하 20:3-30). 이처럼 어떠한 곤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여호와께서 우리에 구원자 되심을 확고히 믿는 자에게는 그가 분명 도우시는 손길로 함께 하심을 알 수 있다(삼상 26:24;욥 5:19;요 16:33). ② 여호사밧은 극도한 우상 숭배자 아합과 동맹을 맺는 일생 일대의 실수를 범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실한 왕이라는 인정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선견자 예후의 책망을 들었을 때 즉시 회개했기 때문이다(대하 18:28-19:3). 이와 같이 우리도 혹 연약함으로 인해 죄를 짓게 되더라도 다른 자를 통해 하나님의 책망을 들을 때에 즉시 하나님 앞에 무릎꿇을 수 있는 겸손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

③ 여호사밧이 아합과 동맹을 맺었을 때 아합은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 길르앗 라못을 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호사밧을 충동하였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끝까지 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했던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대하 18:1-27). 이와 같이 우리도 어떤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사람들을 의식하기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노력하는가?

 

9. 핵심 성구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거하더니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에 순행하며 저희를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대하 19:4).

 

 

 

 

 

 

 

 

여호람  정략 결혼을 한 남유다 제5대 왕

 

1. 인적 사항

① 여호람은 ‘여호와는 존귀하시다’라는 뜻. ② 여호사밧의 아들로 (요람)(왕하 8:16).

③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대하 21:6). ④ 남유다 제5대 왕으로 8년간 통치(대하21:5).

2. 시대적 배경

B.C.848-841년까지 통치, 북이스라엘 왕 요람과 동시대의 인물이다. 여호람은 선왕 여호사밧이 아합과 맺은 경혼 동맹의 제물이 된 자로서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하였다. 이 결과 여호람 당시 남왕국 유다는 북이스라엘과 밀접한 동맹을, 혈연 관계에 있게 되었고 또 북왕국의 바알 종교도 들어오게 되었다. 이 당시의 국제 상황은 여호사밧 때와 유사하다.

 

3. 주요 생애

 

출생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

대하 21:6

반대 세력 제거

B.C. 848 년

대하 21:4

에돔과 림나의 반역

B.C. 845 년

대하 21:8

우상 숭배 조장

대하 21:11

블레셋과 아라비아의 침입

B.C. 842 년

대하 21:16,17

창자의 중병으로 사망

B.C. 841 년

대하 21:18-20

 

 

4. 성품

① 등극 후 세력 강화를 위해 잠재적인 반대 세력이라고 판단되는 모든 아우와 방백 몇 사람을 살해한 것을 볼 때 잔인하고 정권욕이 강한 자(대하 21:4).

② 속국들이 독립하고, 또 블레셋과 아라비아의 침입을 받은 것으로 보아 통치력이 부족한 자(대하 21:10,16,17).

③ 아내의 사주를 받아 바알을 숭배하며 악정을 행할 만큼 신앙이 유약하고 주관이 없는 자(대하 21:6, 11).

5. 구속사적 지위

아내 아달랴로 인해 남유다를 바알 종교로 물들여 놓은 자.

 

6. 평가 및 교훈

① 여호람은 선왕 여호사밧의 신실함을 본받지 못하고 폭정을 가하며, 우상을 숭배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했다. 이는 아무리 부모의 신앙이 신실하다 해도 자신의 신앙은 스스로의 경건에 대한 훈련에 좌우됨을 증거 한다.

② 여호람의 모든 악행의 원인은 수상숭배자인 아내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는 성도가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가를 교훈 하는 것이다.

③ 여호람은 다윗의 자손임에도 불고하고 우상 숭배로 일관하며 선지자의 경고조차도 무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여호람은 중병에 걸려 죽고, 또 열왕의 묘실에 묻히지도 못하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불신자의 종말이 어떠한가를 잘 보여준다.

 

7. 핵심 성구

“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대하 21:6).

아달랴 ― 왕위를 찬탈한 남유다 제7대 왕

 

1. 인정 사항

① 아달랴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라는 뜻. ② 아합과 이세벨의 딸. 오므리 왕의 손녀.

③ 남유다 제5대 왕 여호람의 아내, 아하시야 모친. ④ 유다 열왕 중 유일한 여왕(대하 22:12).

2. 시대적 배경

B.C.841-835년까지 통치, 북이스라엘 왕 예후와 동시대의 인물이다. 정략 결혼에 의해 다윗 가문으로 시집 온 아합의 딸로서 한동안 북왕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예후의 반역으로 인해 아달랴의 친정 가문인 아합 가문이 몰락하게 됨으로써 아달랴는 북왕국과의 관계를 단절하였다. 한편 이 시기는 아람이 세력 확장을 위하여 계속해서 남․북 왕국을 침입해 오던 시기이다.

3. 주요 생애

 

출생

여호람과 결혼

왕하 8:16,17

남편의 우상 숭배 조장

대하 21:6

남편의 죽음

B.C. 841 년

대하 21:19

아들의 우상 숭배 조장

대하 22:3

아들의 죽음

B.C. 841 년

대하 22:9

다윗 왕가의 자손 진멸

B.C. 841 년

왕하 11:1

6년간 통치

왕하 11;3

여호야다의 혁명에 의해 살해됨

B.C. 835 년

왕하 11:14-16

 

 

4. 성품

① 남편을 충동하여 우상을 숭배케 하고 악정을 하게 할만큼 사악한 자(대하 21:6).

② 다윗 왕가로 시집왔으나 친정의 교훈대로 아들을 양육한 것으로 보아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이 센 자(대하 22:3.4).

③ 아들의 통치 기간 중 섭정을 행하고 아들이 죽자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학살을 자행할 만큼 잔인하고, 권력욕이 강한 자(왕하 11:1).

④ 6년 동안 외세의 간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왕좌를 지킨 것을 볼 때 정치적 역량이 뛰어 났던 자(대하 22:12).

 

5. 구속사적 지위

① 여호람 당시 남왕국 유다에 바알 종교를 들여온 결정적인 자.

② 다윗 가문의 씨를 진멸하려 함으로써 다윗 가문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방해하려 한자(대하 22:10,11).

③ 남왕국 유다 역사상 유일한 여왕(대하 22:12).

 

6. 평가및 교훈

① 사악한 아달랴의 비참한 최후는 악인은 그 심은 행위대로 열매를 거두게 됨을 깨닫게 된다(갈 6:8).

② 다윗 가문으로 시집 온 아달랴가 유다 왕국을 바알 종교로 물들이며, 또 다윗 가문을 진멸하려 한 사실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하는 것이 자신과 후손에게 불행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신앙 생활에도 큰 장애가 됨을 보여준다(고후 6:14).

요아스 ― 은혜를 원수로 갚은 유다 제8대 왕

 

1. 인적 사항

① 요아스는 ‘주께서 주셨다’는 뜻. ② 유다 왕 아하시야와 브엘세바 사람 시비아의 아들(왕하 12:1).

③ 고모 여호세바에 의해 생명을 건짐. ④ 남유다의 제8대 왕으로 40년간 통치. ⑤두 아내를 둠(대하24:3)

2. 시대적 배경

B.C.835-796년까지 통치, 북이스라엘 왕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와 동시대의 인물이다. 북왕국과의 관계가 단절된 이후 요아스 때에도 북왕국과 그리 우호적인 관계를 갖지는 못했다. 이 시기는 가나안 땅 북방에 위치한 아람이 계속 남쪽으로 세력을 펼치던 시기로서 요아스 당시에도 아람 왕 벤하닷의 한 차례 큰 침입을 받았다.

3. 주요 생애

 

출생

B.C. 841 년

여호세바가 구출

대하 22:11

숨겨져 6년간 양육

대하 22:12

여호야다에 의해 왕위에 오름

7세, B.C. 835 년

대하 23:11

두 아내를 취함

대하 24:3

성전을 수리

대하 24:5

여호야다의 죽음

대하 24:15

우상을 숭배

대하 24:18

선지자의 경계 거절

대하 24:19

여호야다의 아들 살해

대하 24:20,21

아람군의 침입

대하 24:23

암살됨

B.C. 796 년

대하 24:25

 

4. 성품

① 여호야다의 조언에 따라 정직히 행하고, 성전을 수리할 만큼 현명하고 하나님을 사랑했던 자.

② 성전 수리가 지연되자 재정관리 방법과 책임자를 달리하여 마침내 성전을 복원시킨 것으로 보아 행정력과 지도력을 갖춘 자(대하 24:5-14).

③ 여호야다가 죽자마자 신하들의 간언에 마음이 흔들려 우상을 섬길 만큼 심지가 유약한 자(대하 24:17).

④ 선지자 징계를 듣지 않고 더욱이 은혜를 베푼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인 것으로 보아 경솔하고 배은 망덕한 자(대하 24:20-22).

5. 구속사적 지위

① 아달랴로 인하여 다윗 가문의 멸절위기에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구출됨으로써 다윗 가문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어가게 된 자.

② 유다 열왕 중 처음으로 성전을 수리한 자.

③ 여호야다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를 성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인 자로서 하나님의 종을 핍박한 자.

6. 평가 및 교훈

①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서 자신에게 조언을 베풀 동안은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여호야다 사후에는 바알의 지도자들과 방백의 충동에 따라 악정을 행하였음을 보게 된다. 이는 요아스의 믿음이 여호야다가에게 깊이 의존되어 하나님과의 주체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음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도 눈에 보이는 신앙 인물이나 지도자에게 우리의 신앙을 의존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 나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리할 때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버티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② 현명하고 분별력 있었던 요아스가 통치 말년에는 배은 망덕하고 잔인한 인간으로 변모했다. 이는 요아스가 처음과는 달리 주님의 훈계로 자신을 부단히 경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보다 현재에 더 경건한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진정 주의 말씀아래 겸손히 나를 살펴서 항상 오늘보다 더 경건한 내일을 만들어야 하겠다.

웃시야 ― 문둥병에 걸린 남 유다 제 10대 왕

 

1. 인적 사항

① 웃시야는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는 뜻. ② ‘아사랴’라고도 불림(왕하 15:1).

③ 아마샤 왕과 예루살렘 사람 여골리아의 아들(대하26:1-3). ④ 남유다 제 10대 왕으로 52년간 통치.

2. 시대적 배경

B.C.791-739년까지 통치,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와 동시대의 인물이다. 이 당시는 가나안 북방의 앗수르가 아람을 공격하며 그 세력을 견제하던 시기로서 상대적으로 가나안 땅은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된 시기였다. 이와 같은 정치적 호황기를 맞아 북왕국 여로보암과 남유다 웃시야 왕은 활발한 정복 전쟁에 의해 솔로몬 때만큼 이스라엘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암몬과 모압 등을 제압함으로써 국제적인 지위 향상과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3. 주요 생애

 

통 치 초 기

출생

등극

16세, B.C. 791 년

대하 26:1

영토 확장 전쟁 실시

대하 26:6-8

암몬의 조공 받음

대하 26:8

부국 강병책 실시

대하 26:9-15

통 치 후 기

제사장 직분 침해

대하 26:16

문둥병에 걸림

대하 26:19

별궁에 거함

대하 16:21

요담의 섭정

대하 26:21

죽음

B.C. 739 년

대하 26:23

 

4. 성품

① 16세에 왕위에 올라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으로 보아 신실한 믿음을 소유한 자(대하 26:4,5).

② 블레셋, 아라비아, 마온을 치고, 암몬의 조공을 받는 등 국위를 떨친 것을 보아 군사, 외교 능력이 뛰어난 자(대하 26:6-8)

③ 평안할 때에 망대를 세우고 샘을 만들며, 병기구들을 준비, 전력을 정비한 것으로 보아 평소 직무에 충실하며 준비성이 뛰어난 자(대하 26:9-15).

5. 구속사적 지위

① 솔로몬 이후 남유다에 가장 큰 정치적 번영을 가져온 자. ② 제사장의 직분을 침해하여 문둥병의 징벌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자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 자.

6. 주요 업적

① 블레셋, 아라비아, 마온까지 영토 확장, 군대를 재정비(대하 26:6-9).

② 농업과 공업 진흥 등 다각적인 유다의 번영을 꾀함(대하 26:10-15).

7. 그의 실수

① 나라가 강성하자 교만해져서 제사장의 직분을 침해함(대하 26:16-19).

8. 평가 및 교훈

① 통치 초기에는 신앙이 투철했던 웃시야가 통치 후기에는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문둥병의 징벌까지 받았다. 이는 처음 하나님을 믿을 때의 신앙도 중요하지만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변함없이 신앙을 잘 지키며 신앙인격을 성숙시켜 가는 일이 중요함을 교훈 한다.

② 웃시야는 왕이라는 자신의 직책을 넘어 제사장의 일을 침해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대하 26:-23).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역할을 인정하고 귀히 여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교훈 한다.

9. 핵심 성구 : “저가 강성하여 지매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 하되 곧 여호와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대하 26:16)

 

아하스 ― 가장 사악했던 남유다 제 12대 왕

 

1. 인적 사항

① 아하스는 ‘여호와께서 사로잡으셨다’라는 뜻. ② 요담 왕의 아들(왕하 16:1).

③ 남유다 제 12대 왕으로써 20세에 즉위하여 16년간 통치(왕하 16:2).

④ 아들 히스기야가 왕위 계승(왕하 16:20;대하 28:27).

 

2. 시대적 배경

B.C. 731-716년까지 통치, 북이스라엘 왕 베가와 동시대의 인물이다. 이 시기는 가나안 북방의 앗수르가 신흥 강대국으로서 세력을 확장해 오던 시기였다. 이미 앗수르와 적대관계에 있던 아람은 북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고 강한 반앗수르 정책을 폈으나 남유다 왕 아하스는 도리어 친앗수르 정책으로 앗수르의 보호를 받고자 했다. 이 결과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강한 적대적 관계가 되었으며, 또 앗수르의 우상과 문물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3. 주요 생애

 

등 극 이 전

출생

등극

B.C. 731 년

대하 27:9

등 극 이 후

바알 숭배 자행

대하 28:2,4

아들을 제물로 헌납

대하 28:3

아람, 이스라엘 연합군 침입

대하 28:5-8

에돔과 블레셋의 침입

대하 28:17,18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요청

대하 28:16-21

성전 기구 훼파

대하 28:23,24

죽음

B.C. 716 년

대하 28:27

 

 

4. 성품

① 아들을 제물로 바치고, 성전 기구들을 훼파 한 것으로 보아 사악하고 이교에 사로잡힌 자(대하 28:2, 3, 24).

② 이사야의 예언을 듣고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거부한 채 앗수르를 의지할 만큼 하나님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운 자(사 7:2-12).

③ 통치 중 주변국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고, 말년에는 앗수르의 허수아비가 되어 섬긴 것을 보아 군사, 정치적 능력이 전무한 자(대하 28:5, 17-21).

④ 반 앗수르 동맹이 별 득이 없음을 깨닫고 오히려 친 앗수르 정책을 폄으로써 전쟁의 위기를 모면할 만큼 약삭빠른 자(왕하 16:9).

 

5. 구속사적 지위

① 앗수르에 굴복함으로써 남유다를 앗수르의 속국이 되게 한 자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자.

② 성전 기구 훼파 및 성전 문을 닫음으로써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한 자. 이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늘 방해하는 사단의 획책에 따른 것이다.

6. 평가 및 교훈

① 아하스가 이방신을 섬기고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가증한 일을 행하는 등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람과 에브라임을 들어 유다를 징벌하셨다(대하 28:1-7). 이는 여호와를 섬겨야 할 성도가 세상의 것을 좇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악한 것을 들어서라도 성도를 치심을 교훈 한다.

② 유다를 침입한 이스라엘 군이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노략해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오뎃을 들어 이스라엘을 책망케 하시고 에브라임 두목을 들어 유다 백성들이 놓임 받게 하셨다. 이는 아하스의 통치하에 유다 백성의 수많은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아무든지 임의대로 다루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기인한 것이다. 이를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거룩한 백성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얼마나 담대하게 하는지 모른다. 이 세상의 어떠한 권세든지, 심지어 사단조차도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우리를 빼앗길 수 없는 것이다(롬 8:31-39).

③ 유다가 연합군의 침입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아하스는 여호와께 의지하기보다는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난국을 타개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도움이 될 줄 알았던 앗수르는 도리어 유다를 점령하여 막대한 공물을 요구하는 등 유다를 더 비참한 지경에 이르도록 했다(대하 28:16-25;사7:3-12). 마찬가지로 성도가 현실적인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세상 권력이나 방법을 의지할 때 도리어 이 세상의 악의 올무에 빠지게 된다(잠 11:5,6).

④ 아람과 에브라임의 동맹 침입 소식을 듣고 아하스는 선지자 이사야의 충고를 거절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앗수르의 도움을 의지하다가 비참한 지경에 이른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지혜로운 자의 충고를 멸시하는 자는 스스로 멸망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자임을 교훈 한다(잠 1:7).

 

7. 핵심 성구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 하여”(대하 28:22).

 

 

 

 

 

 

 

 

 

 

 

 

 

 

 

 

 

 

 

 

므낫세 ― 말년에 회개한 남유다 제14대 왕

 

1. 인적 사항

① 므낫세는 ‘망각케 하는 자’의 뜻. ② 선왕 히스기야와 헵시바의 아들(왕하 21:1).

③ 남유다 제14대 왕으로 12세에 등극하여 55년 간 통치(왕하 21:1).

2. 시대적 배경

B.C.697-642년까지 통치, 므낫세는 선왕 히스기야가 반 앗수르 정책을 편 것과는 달리 친 앗수르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이는 당시 앗수르가 두로와 애굽 등 지중해 지역 국가들을 거의 다 정복하는 등 앗수르 역사상 강력한 대 제국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3. 주요 생애

 

회 개 이 전

출생

등극

12세, B.C. 697 년

왕하 21:1

우상 숭배 장려

왕하 21:2-7

아들을 제물로 드림

왕하 21:6

무죄한 자들을 처형

왕하 21:16

앗수르의 3차 침입

B.C. 650 년

대하 33:11

바벨론 포수

대하 33:11

회 개 이 후

하나님께 참회

대하 33:12

예루살렘으로 귀환

대하 33:13

건축․방위에 몰두

대하 33:14

종교개혁 시도

대하 33:15-17

죽음

67세, B.C. 642 년

대하 33:20

 

4. 성품

① 통치 초기에 각종 이방 종교를 들여오고 사술과 우상을 숭배한 것으로 보아 이교에 몰두한 자.

② 자신 뿐만 아니라 백성을 꾀어 악을 행하게 한 사악한 자(왕하21:9).

③ 하나님의 징계와 회개 후에 이방신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길 것을 백성에게 명한 것으로 보아 결단력 있고 적극적인 자(대하 33:15,16).

④ 왕위에 복귀한 뒤 건축․방위․행정 개혁에 몰두한 것을 보아 정치적 통치 능력도 갖춘 자(대하33:14).

5. 구속사적 지위

① 바벨론 포수와 회개 사건 이후 왕위에 다시 복귀된 자로서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 자.

6. 주요 업적

① 우상숭배를 돌이킴(대하 33:15). ② 앗수르와 동맹을 맺음으로 물질적 번영을 이룸.

7. 실수

① 통치 초기 각종 이방종교를 장려함(왕하 21:2-7). . ② 무고한 선지자를 박해함(왕하 21:16).

8. 평가 및 교훈

① 남유다 역사상 가장 사악했던 우상 숭배자 므낫세는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아 앗수르의 포로 신세가 되어 혹독한 시련을 당하였다(대하 33:11).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짐작할 수 있다.

② 우상 숭배에 빠졌던 므낫세는 결국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충고를 무시함으로 파멸을 자초했다(왕하21:10-16). 이는 먼저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 힘써야 하지만 혹 실수로, 또한 연약하여 죄에 빠졌다 할 지라도 하나님이 돌이킬 기회를 허락하셨을 때 그 때를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함을 교훈 한다.

③ 하나님 앞에서 온갖 가증한 일을 행하고 백성까지도 악의 길로 인도했던 므낫세가, 포로 생활 중에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왕위에 복귀되도록 은혜를 베푸셨음을 알 수 있다(대하 33:12, 13).

시드기야 ― 두눈이 뽑힌 유다 왕국 최후의 왕

1. 인적 사항

① 시드기야는 ‘여호와는 정의이심’의 뜻. 본명은 ‘맛다니야’(왕하24:17). ② 요시야와 립나 예레미야의 딸 하무달의 넷째 아들(대상 3:15). ③ 조카 여호와긴의 뒤를 이어 즉위(대하 36:10). ④ 유다의 마지막 왕 으로 11년간 통치(왕하 24:18).

2. 시대적 배경

B.C. 597-586년까지 통치. 이 당시는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 긴장이 극도로 고조된 시기였다. 시드기야는 애초에 바밸론에 의해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친 바벨론 정책을 썼으나 애굽이 바벨론보다 어느 정도 우세한 듯 하자 바벨론을 배반하고 친애굽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보복으로 남유다는 멸망하게 된다(B.C.586년).

3. 주요 생애

 

바 벨 론 배 반 이 전

출생

바벨론의 침공

B.C. 597 년

왕하 24:10

개명 및 등극

21세, B.C. 597 년

왕하 24:17

바벨론에 충성 맹세

대하 36:13

반 바벨론 동맹 맺음

렘 52:3

바 벨 론 배 반 이 후

예레미야 경고 무시

렘 37:6-9

애굽 왕과 동맹

겔 17:15

느부갓네살의 침입

B.C. 589 년

왕하 25:1,2

예레미야 감금

렘 38:1-6

예루살렘 함락

B.C. 586 년

렘 39:1-3

아들들의 죽음 목격

렘 39:6

눈을 뽑힘

렘 39:7

바벨론으로 끌려감

렘 39:7

죽음

 

4. 성품

① 자신을 옹립한 느부갓네살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나 주변 국가의 권유로 바벨론을 배반한 것으로 보아 우유 부단하고 주관이 없는 자(대하 36:13).

② 친 바벨론 정책에서 친 애굽 정책으로 전환하여 유다의 존속을 꾀하였으나 결국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으로 보아 국제 정세에는 어두운 자(겔 17:15;렘39:5-7).

5. 구속사적 지위

① 남유다 최후의 왕. ②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의 결국이 어떠함을 가장 절실하게 보여준 자.

6. 평가 및 교훈

① 시드기야는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는 예레미야의 경고를 끝까지 거절하고, 애굽을 의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인간의 권유에 따라 애굽을 의지했던 그는 결국 유다의 멸망이라는 대비극을 자초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떠한 것을 의지할 때 우리는 시드기야의 전철을 밝게 될 것이다.

②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서도 방백들이 두려워 이를 외면하였고, 또한 그를 감금하였다(렘 38:1-6). 이는 무엇보다도 신앙인 들에게 있어 의를 알면서도 주위의 이목이 두려워 이를 행치 않거나, 또 다수에 의해 충동되어서도 안됨을 교훈 한다. 오직 진리의 푯대를 바라보고 흔들림이 없이 전진하는 모습을 갖추자.

③ 유다의 최고 지도자였던 시드기야가 선지자의 예언을 거부하고 방백들의 요구를 따르는 불 신앙적인 선택을 하였을 때 시드기야 한사람만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통치를 받던 유다 전체가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를 볼 때 우리는 지도자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된다. 지도자 한 사람이 굳건한 신앙 위에 서서 올바른 통치를 받는 자들까지도 평안 가운데 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지도자가 말씀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통치를 하도록 늘 기도하고 권면해야겠다.

 

에스라 ― 제2차 귀환을 지도한 학자

 

 

1. 인적 사항

① 에스라는 ‘여호와가 도움’의 뜻. ③ 스라야의 아들(스7:1).

③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으로 사독 계열의 제사장(스7:1-15). ④ 바사의 율법학자 출신(스7:6).

⑤ 제2차 포로 귀환 때 유다인을 인솔한 지도자 중 한 사람.

 

2. 시대적 배경

바사 왕 아닥사스다 Ⅰ세(B.C.464-424년) 당시에 활동한 인물. 제2차 바벨론 포로 귀환(B.C.458년)을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느혜미야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제3차 포로귀환(B.C.444년) 이후에도 유다 백성들의 율법 교육과 개혁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3. 주요 생애

 

예 루 살 렘 귀 환 전

출생

왕의 신임 받는 학사

스 7:6

예루살렘 귀환이 허락됨

스 7:11-26

바벨론 출발

B.C. 458 년

스 8:1

아하와 강에서 레위 자손 모집

스 8:15-20

무사히 귀환하여 금식기도 시도

스 8:21

예루살렘에 도착

스 8:32

예 루 살 렘 귀 환 후

성전 기명들 계수

B.C. 458 년

스 8:33

번제와 속죄제 집전

스 8:35

일대 개혁 단행

스 9,10장

율법의 가르침

느 8:2-5

죽음

 

 

4. 성품

① 유다 포로귀환 지도 직무를 맡을 정도로 신임을 받은 자(스7:6).

② 율법에 익숙한 학사이며 제사장이면서도 율법을 꾸준히 연구하며 준행한 겸손한 탐구자(스 7:6,10).

③ 연구한 것을 백성에게 가르쳐 그들의 과오를 깨닫고 회개케 한 뛰어난 교육자(스10,느8장).

④ 귀환시 여러 가지 바사 왕의 도움도 사양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한 상실한 믿음의 소유자(스 8:21-23).

⑤ 귀환에 앞서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귀환 후에도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금식하며 회개한 것으로 보아 기도에 철저한 자(스 8:21-23; 9:3-15; 10:1-15).

⑥ 백성들의 잘못을 자신의 죄인 양 애통해 하며 회개한 것으로 보아 참사랑을 소유한 자(스 9:1-15).

 

5. 구속사적 지위

① 제2차 바벨론 포로 귀환 주도자(스 8:15-34).

② 율법 교육과 종교 개혁을 통하여 포로 귀환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민으로의 면모를 회복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자.

③ 이방인과의 통혼 등 귀환 백성들의 타락 실태를 보고 하나님께 회개 기도한 자로서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 자(스 9:1-15).

 

6. 평가 및 교훈

① 에스라가 바사 왕의 포로이면서도 성실히 왕을 섬기며 율법을 연구하여 율법에 익숙해질 때에 하나님께서는 에스라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의 귀환을 지도하게 하셨다(스7:6-28).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실히 준비하며, 겸손하게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자에게 큰 일을 맡기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마25:21). 우리는 나에게 맡겨진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가?

②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백성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하나님 앞에 신실한 신앙의 삶을 살았다(스8:21-13;9:3-15). 이는 예수님이 가장 싫어하신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삶과는 반대되는, 가르침과 삶이 일치하는 모습이다. 자칫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는 잘 전하면서도 전작 우리자신은 그대로 행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때가 많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그 말씀 앞에서 먼저 나부터 돌아보아야 하겠다.

③ 에스라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귀환할 때에 그의 지식이나 왕의 군사에 의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손에 의존하여 금식하며 도우심을 요청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그 간구에 응답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이 어려움 당하지 아니하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다(스8:21-34).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의 명철과 지혜를 의지하고, 하나님 없이 우리 자신의 계획대로만 살려고 할 때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우리의 지혜와 계획이 아무리 뛰어 날지라도 여호와께서 이루지 아니하시면 모든 것이 허사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잠16:1).

④ 에스라는 백성이 하나님 앞에 죄악을 저질렀을 때에 마치 자신이 잘못한 것인 양 옷을 찢고 금식하며 회개했다. 이는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는 지적하기 좋아하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갖게 한다. 우리도 이렇게 이웃의 아픔이 마치 나의 아픔인양 감싸주며 도리어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스9:5; 마7:1-5).

⑤ 에스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방인과의 통혼에 대한 소식을 듣고 회개를 독려한 후에 이방여인들을 돌려보내도록 단호한 개혁을 단행했다(스10:3). 이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임이 명백할 때는 비록 인간적인 정이 얽혀 있을지라도 단호히 배격하는 용기가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때로 우리는 그것이 죄임을 알면서도 순간적인 즐거움과 죄의 달콤함 속에 머물러 있기를 원할 때는 없는가?

 

7. 핵심 성구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기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스7:10).

 

 

 

 

 

 

 

 

느헤미야 ― 신앙과 행정력을 겸비한 지도자

 

1. 인적 사항

① 느헤미야 ‘여호와의 위로’란 뜻. ② 유다지파 하가랴의 아들(느1:1).

③ 동생은 예루살렘의 통치자가 된 하나니(느7:2). ④ 아닥사스다 왕의 술관원(느1:11).

⑤ 유다의 총독이며,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지도자(느 5:14;2:1-8).

2. 시대적 배경

바사 왕 아닥사스다 1세(B.C.464-424) 당시에 활동한 인물이다. 당시 바사는 애굽을 정복, 헬라와의 평화 조약 등으로 극도의 번영을 누리고 있던 때여서 속국들에게 매우 관대함을 보였다. 이런 배경 하에 느헤미야는 제3차 바벨론 포로 귀환(B.C.444년)을 주도하였고 또한 국가의 주변 회복에 상당하는 의미를 가지는 수도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를 이룩하였다.

3. 주요 생애

 

성 벽 재 건 이 전

출생

아닥사스다 왕의 술관원이 됨

느 1:11

성의 황폐소식을 듣고 금식하며 기도함

B.C. 445 년

느 1:2-11

유다 총독으로 임명

B.C. 444 년

느 2:1-8

1차 귀국

느 2:11

성벽 재건 독려

느 2:12-20

재건 방해 공작 받음

느 4:1-23

유다의 개혁 주도

느 5:1-19

성벽 재건 완성

느 6:1-19

성 벽 재 건 이 후

성 방비 책임자 임명

B.C. 444 년

느 7:1-4

1차 귀환자 계수

느 7:5-23

범 회개운동 주도

느 8-10장

종교 제도 정비

느 11-12장

페르시아로 복귀

B.C. 433 년

느 13:6,7

2차 귀국

B.C. 432 년

느 13:6,7

마지막 개혁 주도

느 13:1-31

죽음

 

 

4. 성품

① 수산궁의 안락한 생활 중에 있으면서도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고 슬퍼하며 금식한 것으로 보아 애국심이 강한 자(느1:2-4).

② 왕이 느헤미야의 수심을 알아차린 것이나 그의 요구대로 모든 것을 허락한 것으로 보아 평소에 책임감 있고 근실히 행한 자(느2:1-6).

③ 성벽 건축을 시작하기 이전에 은밀히 성벽을 답사하고 성의 훼파정도를 파악할 만큼 신중하고 계획적인 자(느2:11-16).

④ 대적들의 잇따른 방해 공작과 음모에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성벽 건축을 완성시킨 것으로 보아 굳은 심지와 인내력을 갖춘 자(느 4장-6장).

⑤ 외적으로는 대적들의 방해와, 내적으로는 유다인의 불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52일만에 역사를 필한 것으로 보아 탁월한 추진력과 지도력을 갖춘 자(느 6:1-19).

⑥ 귀인과 민장까지도 단호히 책망한 것으로 보아 잘못에 대하여는 엄하고 공평하게 처리하는 자(느 5:1-13).

⑦ 동족에게서 고율의 이자를 취한 귀인과 민장에게 자신의 행적을 들어 책망하고 그들을 부끄럽게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청렴 결백한 자(느 5:1-19).

⑧ 에스라로 하여금 율법을 낭독케 하여 이스라엘의 신앙을 회복시키고 개혁을 단행한 것으로 보아 영적인 지도력을 갖춘 자(느8장-10장)

 

5. 구속사적 지위

① 제3차 바벨론 포로 귀횐의 주도자.

②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통하여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의 독립성을 회복케 한자(느6:1-19).

③ 학사 에스라와 더불어 종교 개혁을 주도, 신정 국가 이스라엘의 외적, 내적 면모를 회복케 한 자(느8장-10장).

④ 이스라엘의 신정 국가로서의 면모를 회복케 한 자로서 장차 자기 백성들을 영원한 평화와 생명이 있는 메시야 왕국으로 인도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자.

 

6. 평가 및 교훈

① 느헤미야는 궁궐에 안락한 생활 중에 있으면서도 곤경에 처한 동포를 돌아보았고, 고국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슬픔으로 기도하며 금식하였다(느1:2-11). 이는 그가 언약 백성으로서의 책임을 깨닫고 동포애와 애국심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연대의식을 가지고 형제들의 곤경과 어려움에 마음 아파하면서 그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벧전 3:8).

② 느헤미야는 하나님 말씀과 언약에 근거하여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였다(느1:8-11).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의 내용은 어떠한가?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뤄지기를 바라는 가도를 드리고 있는가?

③ 느헤미야는 성벽공사를 와해시키려는 계속적인 이민족의 음모와 조롱, 방해공작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굳건히 믿고 역사를 진행시킴으로써 그 큰 성벽공사를 52일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완공하는 기적을 이뤘다(느4-6장). 이는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으며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이 때에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역사에 더욱 힘써야 할 우리가 어떻게 그들의 공격을 대처해야 할 지를 교훈해 준다. 실로 우리도 느헤미야와 같이 흔들리지 아니하는 믿음으로 반석 위에 굳건히 서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물리칠 수 있어야 겠다(벧전 5:8,9).

④ 느헤미야는 확실히 모든 일에 앞서 먼저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도와 아울러 인간의 해야할 바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었다(느4:7-23).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모든 일이 저절로 잘되리라고 오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모든 일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되, 우리가 해야할 바엔 최선을 다하는 삶의 모습을 갖추어야 하겠다(눅 19:17).

⑤ 느헤미야는 에스라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선포케하여 말씀의 권위를 회복하고, 이 말씀에 입각하여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이스라엘을 회개케 하고 신앙을 부흥시킬 수 있었다(느 8-10장). 참으로 진정한 개혁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성도의 생활을 온전케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엉뚱하게도 성경 말씀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써 신앙을 개혁하고자 애쓰지는 않는가? 오직 주의 말씀만이 내 발의 등이며, 네길에 빛이 됨을 기억하자(시 119:105).

 

7. 핵심 성구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 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귀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느1:6).

 

에스더 ―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의 여인

 

1. 인적 사항

① 에스더는 ‘별’을 뜻하는 바벨론 식의 이름, 히브리 이름의 ‘하닷사’(에 2:7).

② 바베론에 포로로 잡혀간 베냐민 사람 아비하일의 딸(에 2:15).

③ 사촌 모르드개 밑에서 자람(에 2:7). ④ 바사 왕 아하수에로의 왕비(에 2:17).

2. 시대적 배경

바사 왕 아하수에로(Xerxes, 485-464) 당시 왕후로 있었던 인물이다. 이 당시는 B.C.586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지 약 100여년이 지난 때이며, B.C.537년 스룹바벨에 의한 제1차 바벨론 포로 귀환이 있은 지 약 60년이 지난 때이다. 바사 제국은 아하수에로의 통치하에 지중해 지역에서 경제적, 정치적으로 극도의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이러한 번영된 바사 제국 하에서 많은 이스라엘 포로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희망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의식도 거의 상실한 채 일신(一身)의 안일만을 도모하며 안주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뜻밖에 하만에 의해 온 유대 백성들이 멸절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에 왕후로 있던 에스더의 활약으로 그 위기에서 구출되는 위대한 구원 사건을 체험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유대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임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이방 지역에서도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 인도하시고 계심을 체험하게 되었다.

3. 주요 생애

 

하 만 의 유 대 인 암 살 음 모 이 전

출생

모르드개에 의해 양육

에 2:7

후궁의 처소에 거함

에 2:8-15

바사 왕의 왕비가 됨

B.C. 479

에 2:16-18

왕 암살 음모를 방지

B.C. 478

에 2:20-23

하 만 의 유 대 인 암 살 음 모 이 후

유대인 말살 음모를 들음

B.C. 474

에 4:4-8

유대임을 위한 중재 약속

에 4:15-17

3일간 금식

에 4:15-17

왕의 뜰에 나아감

에 5:1-3

왕의 잔치에 초청

에 5:4

두번의 연회를 베품

에 5:5-7:2

하만의 음모 폭로

에 7:3-7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일임

에 8:1-3

유다 백성을 위해 진언

에 8:4-6

유대인의 승리를 가져옴

에 8:9-9:16

부림절을 제정

B.C. 473

에 9:17-32

죽음

 

 

4. 성품

① 자기를 양육시켜 준 모르드개를 공경하고, 왕후가 된 후에도 변함없이 순종한 것을 볼 때 겸손하고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자(에 2:20;4:10-17).

②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을 볼 때 용모가 아름답고 성품이 온순한 자(에 2:15).

③ 유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나아갈 용기 있고 동족애가 강한 자(에4:16).

④ 왕에게 나아가 백성을 위해 진언하기 전에 백성에게 3일간 금식을 선포하고 자신도 그렇게 한 것으로 보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한 자(에 4:15,16).

⑤ 두 번의 연회를 통해 하만의 음모를 폭로하고 유대 백성들을 구할 지략을 짠 것으로 보아 치밀하고 지혜로운 여인(에 7:3-6;8:3-8).

5. 구속사적 지위

① 포로 출신의 연약한 처녀의 몸이었으나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도구로 사용된 자(에4:14).

② 한 제국의 왕후라는 지위조차도 하나님의 신앙과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해 초개같이 버릴 만큼 신앙 인으로서 참된 삶의 모범을 보인 자(에 4:13-16).

③ 비천한 포로 출신으로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대제국 바사의 왕후라는 지위에 오름으로써 궁극적으로 모든 시대의 성도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얻게 될 영광을 예표적으로 보여 준 자.

6. 평가 및 교훈

① 에스더는 자신을 양육한 모르드개에게 이후에도 변함없이 순종하였고, 또 동족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저버리지 않았다(에2:20;4:10-17). 이는 환경과 여건이 좋아졌을 때 그 동안 받은 바 은혜를 쉽게 망각하고 더 나은 생활만을 추구하려 드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그렇다면 이 시간, 지금 내게 주어진 부와 명예로 인해 지난날 하나님과 사람에게 받아왔던 은혜에 대해 소홀히 해 온 부분은 없는가 돌이켜 보자.

② 에스더는 유대 백성을 구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목숨을 건 진언을 하기 이전에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참으로 두려움이 그녀를 감쌀 때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매어 달렸던 것이다(에 4:15,16). 그렇다면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크고 두려운 일을 앞두고 어떠한 행동을 취하는가? 인간의 생각대로 머리를 짜기 이전에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잠 16:1-3).

③ 에스더는 왕후라는 부와 권력을 지닌 자리에서도 자신의 안일만을 꾀하지 않고 위급함을 당한 민족을 생각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랑을 표현하였다(에 4:15-5:4). 이는 사리사욕을 위해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는 풍조가 만연된 오늘 날에 큰 귀감이 된다. 우리도 삶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보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삶의 모습이 나타나야 하겠다.

④ 동족이 전멸될 위기 속에서 목숨을 건 에스더 한 사람의 용기는 온 동족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했다(에 8:9-14). 이는 올바른 일을 위해서는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참다운 용기를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때에 참다운 용기를 가지고 행동해야 하겠는가? 죄를 척결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그때에 바로 이러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⑤ 전멸의 위기에 처한 유대 백성은 믿음이 있는 한 사람 에스더로 인하여 구원받을 수 있었다. 소돔성에 의인이 열 명안 있으면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으시겠다 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 날도 믿음이 있는 의인 열 명을 우리 가운데서 찾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악으로 패역한 사회를 보며 한탄할 것이 아니라 나 하나라도 믿음이 있는 의인이 되기 위하여 믿음의 모습을 지켜 나가도록 힘써야 하겠다(창 18:32).

⑥ 민족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였던 에스더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 훌리며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해 준다. 남북의 분단이 고착화되고 갈수록 죄악이 만연되는 이 상황에서도 우리는 끝까지 구국의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할 것이다(삼상 7:8,9).

⑦ 일면 에스더는 동일한 포로 시대의 인물들인 에스라,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인물들(스8:21,22;단1:8-16;3:13-18;6:10)에 비해 신앙적인 절개를 그렇게 굳건히 지킨 인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방인 왕과 혼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피치 못할 이유로 자신의 신분을 밝혀야 하기까지는 유대 민족이라는 사실과 또 여호와 신앙을 가진 자라는 사실을 감추며 살았기 때문이다(에2:20).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부족한 에스더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도구로 삼으신 사실을 돌이켜 볼 때, 우리들 자신도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으나 그분의 크신 은총으로 주의 일에 동참케 된 사실과 아울러 다시 한번 그 은혜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7. 핵심 성구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너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5,16).

 

하만 ― 바사의 교만한 총리대신

 

 

1. 인적 사항

① 아각인 함므다다의 아들(에 3:1). ② 바사 왕의 총리대신(에 3:1). ③ 열 아들을 둠(에9:10).

2. 시대적 배경

바사 왕 아하수에로(B.C.485-464년) 당시에 바사의 제2인자로 약 6년간 활동했던 고관이다.

3. 주요 생애

 

유 대 인 암 살 음 모 이 전

출생

총리대신이 됨

에 3:1

유대인 학살 음모

B.C. 474 년

에 3:2-6

유 대 인 암 살 음 모 이 후

진멸 조서 반포

B..C 474 년

에 3:7-15

에스더의 연회 참석

에 5:1-8

모르드개를 매달기 위한 나무 세움

에 5:9-14

모르드개 앞에서 굴욕을 당함

에 6:10-14

두 번째 연회에 참석

에 7:1

처형됨

에 7:2-9

 

 

4. 성품

① 자신의 지위를 내세워 경의를 요구할 만큼 교만한 자(에 3:1,2)

② 개인 감정 때문에 한 민족을 멸하려한 옹졸하고 잔인한 자(에 3:6).

③ 무안을 당했을 때 복수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매우 완악한 성경의 소유자(에3:2-6).

④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갈 만큼 교활하나 일면 어리석은 자(에 7:9).

5. 구속사적 지위

① 포로 생활 중 하나님의 선민을 궤멸하려 한 자로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방해하는 사단을 예표한 자.

② 모르드개의 활약에 의해 결국 처형 당한 자. 이는 악인이 종말에 하나님 심판석 앞에서 처할 심판을 예표함.

6. 평가 및 교훈

① 바사국의 제2인자라는 높은 권세를 지닌 하만이 교만하여졌을 때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셨다. 이 사실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났으며, 그 권력이 하나님의 공의를 대행하지 못했을 시엔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됨을 보여준다(시 119:81-88).

② 왕 다음가는 권세와 부를 누렸던 하만은 그 권세와 부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더 많은 것을 바라다가 스스로 불행한 삶을 자처하였다. 이 세상에 어떤 것이 인간에게 참다운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참된 기쁨과 참된 만족은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여호와로 인하여 얻게 됨을 기억하자(합 3:18).

 

7. 핵심 성구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대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에 3:6).

 

 ― 동방의 의인

 

1. 인적 사항

① ‘욥’이라는 이름은 ‘적을 가진 자’, ‘회개한 자’, ‘울부짖는 자’라는 뜻.

② 족장 시대 초기(약 B.C.2000년 경), 아브라함과 동시대의 인물로 추정됨.

③ 동방 우스 땅에 거주한 자.

 

2. 시대적 배경

욥의 생존 시대에 관해 성경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로 인해 그가 아브라함과 동(同)시대를 살았다고 추정(推定)할 수 있을 뿐이다.

첫째로, 욥의 생애에 대한 정보를 주는 욥기에 모세의 율법이나 율법에 준하는 종교 의식에 관한 기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욥은 모세 이전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둘째로, 욥은 시련을 통과한 후 140년을 더 살았다고 하는데(욥42:16) 결국 그가 산 연수는 약 200년 안팎이었을 것인 바, 사람이 이렇게 장수하던 때는 초기 족장 시대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욥은 아브라함과 동시대 인물이었을 것이다.

 

3. 주요 생애

 

시 험 받 기 전

출 생

열 자녀를 둠

B.C. 2000 년경

욥 1:2,3

동방 우스 땅의 부자

시 험 받 은 후

하나님의 허락 하에 사단이 욥을 시험

B.C. 2000 년경

욥 1:11,12

사단의 1차, 소유 및 자녀에 대한 시험

욥 1:13-15,19

사단의 2차, 신체에 대한 시험

욥 2:7,8

아내를 통한 시험

욥 2:9

친구를 통한 시험

욥 4-35장

끝까지 신앙을 고수함

욥 23:10

회개함

욥 42:6

고난 이전의 두 배의 축복을 받음

욥 42:10-17

 

 

4. 성품

① 고난 가운데서 자신이 태어난 날을 원망할 지언정 결코 하나님께 대한 불 신앙적인 태도나 직접적인 원망은 발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매우 순전한 믿음의 소유자임(1:21,22;2:10).

② 아내와 친구들에게 버림을 받고 질책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믿음의 순전함과 자제력을 잃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인내심이 강함(6:10:23:10).

③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어리석음과 죄악을 깨달은 즉시 회개한 것으로 보아 겸손한 자임(42:1-6).

④ 자신을 그렇게 호되게 공박했던 친구들이었지만 즉시 그들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위하여 중보 기도까지 드린 것으로 보아 관용이 풍부한 자임(42:7-9).

 

5. 구속사적 지위

① 죄악 되고 유한한 인간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숱한 삶의 문제들을 결코 다 이해할 수 없으므로 오직 창조자요 우주와 역사의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절대 신뢰하며 절대 순종해야 함을 보여준 자.

②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갑작스런 고난을 당할지라도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여 고난을 초극할 때 단련한 정금같이(23:10) 신앙이 성숙됨을 보여준 자.

③ 성도는 마땅히 사람 앞에서 끝까지 신앙의 순결을 지켜야 하며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항상 근본적으로 죄인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준 자.

④ 시험을 통과한 후에, 처음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은 그의 생애는 시험에서이긴 자가 하늘 나라에서 받을 상급에 대한 소망을 제시하여 준다(42:12-17).

 

6. 주요 업적

① 가혹한 시련을 잘 견디어 인내의 귀감이 됨(약 5:11).

②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입술로 범죄치 아니한 그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환난 때에 취하여야 할 신앙 태도에 대한 표본을 제시한다(약 1:12).

③ 자신을 호되게 공박했던 친구들을 위해 번제와 중보기도를 드림(42:7-9).

 

7. 실수

① 고난의 초기에 욥은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세 친구의 질타와 정죄가 거듭되자 그에 대항하여 그만 과도하게 자기 의를 주장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교만 죄를 범했다. 사실 아담의 범죄이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절대 의를 주장할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롬 3:10).

② 욥은 자기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에 대한 무지 때문에 비록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실수를 범했다.

 

8. 평가 및 교훈

① 인생을 살아가면서 전혀 고난과 마주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고난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 처한 이 고난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 가이다. 욥은 자신의 엄청난 고난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순전함을 잃지 않고 인내로 고난을 극복하면서 큰 신앙의 성숙을 얻게 되었다(42:5). 이러한 욥의 신앙 자세는 동일하게 여러 가지 고난을 만날 수밖에 없는 우리 성도들에게 반드시 요청되는 것이다.

② 유한한 우리 인간에게는 불합리하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절대 선하신 섭리가 있다. 따라서 이성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그 뜻을 저버리지 말고 일단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 성도의 맛당한 도리라 하겠다.

③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육체적, 정신적 시련 속에서도 결코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욥이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갑절의 복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서도 전적으로 의뢰하고 부르짖는 자들을 결코 외면치 않으시는 분이심을 깨닫고 오직 그분께만 구원을 호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④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이 비록 모두 구체적인 어떤 죄에 대한 직접적인 하나님의 보응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태초 아담의 타락 이후로부터 비롯된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욥이 근본적으로 자신의 죄성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갑작스런 고난을 당했을 때 거듭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했던 것처럼 고난 중에 원망하거나 좌절할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하여 우선 자신의 근본적인 죄성을 깨닫고 그 죄된 습성을 고쳐 점차 신앙 성숙에로 나아가는 보다 적극적인 신앙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사야 ― 희망과 복음의 선지자

 

1. 인적 사항

① 이사야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 ② B.C.760년경 예루살렘에서 출생했을 것으로 추정됨.

③ 아모스의 아들9사 1:1). ④ 여선지인 아내와 두 아들 스알야숨, 마헬살랄하스바스를 둠(사 7:3;8:3).

⑤ 귀족 출신. 예루살렘 중심 사역. ⑥ B.C.739-680년경(웃시야,요담,아하스,히스기야,므낫세)예언 활동.

⑦ 므낫세의 치세 기간 중 톱으로 몸이 둘로 잘리어 순교 당했다고 전해짐(히 11:37).

2. 시대적 배경

이사야는 남왕국 유다의 제10대 왕인 웃시야가 죽던 해인 B.C.739년부터 제14대 왕인 므낫세(B.C.679-642년)가 통치하던 시기인 B.C.680년경까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남유다에서 활동한 선지자이다. 이때 당시의 국내외 정세는 한치 앞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였다.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3세는 B.C.745년 권좌에 오른 이후 강력한 정복 전쟁을 추진하여 팔레스틴도 그 영향을 받았다. 그리하여 B.C.722년에는 북 이스라엘까지 멸망하게 된다. 그리고 남유다는 아하스(B.C.731-716)의 친앗수르 정책으로 인해 아람․북이스라엘 동맹군의 침공을 받으나(733년경) 앗수르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애굽에서는 구스의 사바카(Shabaka)가 전애굽을 통일하고 제25왕조를 건설한 후에 팔레스틴 주변국가들을 규합하여 동맹을 맺고 반앗수르정책을 펴나간다. 이때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B.C.715-687년)역시 이 동맹에 가입한다. 그러나 동맹국들은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 멸망 일보직전에 이르렀다가 하나님의 이적적인 구원으로 간신히 구원을 받게 된다. 이사야는 이러한 정치․종교적 배경 하에서 남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악한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과 회개를 전제로 한 구원을 선포한 것이다.

 

3. 중요 생애

 

소명 이전

출생

선지자로 소명 받음

B.C.739년경

사 6장

소명 이후

아하스 왕의 앗수르 동맹 계획을 반대함

B.C.734-716년경

사 7:1-25

유다와 이스라엘의 멸망 예언

메시야 예언

사 7:14;11:1-10

열방국가들의 멸망 예언

B.C.715-715년경

사 13:1-23:18

3년간 벗은 몸과 발로 생활함

B.C.713-711년

사 20:1-6

히스기야 애굽 동맹 반대

B.C.705년경

사 30, 31장

바벨론 포로 생활과 회복을 예언함

B.C.701년

사 39장

믿는 자에게 주어질 미래의 축복을 예언함

B.C.702-679년경

사 55:6-9

므낫세 통치시기에 순교함

B.C.680년경

 

 

4. 성품

① 왕의 정책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경우에는 막강한 권력 앞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주장을 외치는 올곧은 성품의 소유자(사 7:1-25).

② 하나님께 대한 무한한 경외심과 신뢰를 가졌던 불굴의 믿음의 소유자(사40:12-31;41:21-29).

③ 다윗 왕조를 향한 불타는 충성심과 애국심을 소유했던 자(사 31:1-9).

④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포 중에도 위로의 약속을 주며 하나님께 중보를 쉬지 않을 만큼 긍휼이 충만한 자(사 62:1; 63:17-19; 64:8-12).

⑤ 자신의 선지 소명에 대해 굳센 의지와 열성을 소유한 자(사 6:8; 62:1).

⑥ 장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유다와 열국에 대한 심판 예언을 행한 것으로 보아 역사에 대한 통찰력과 국내외 정세에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자(사 13:1-23:18).

⑦ 유다의 죄악을 고발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예언한 것으로 보아 택한 백성의 장래에 대한 확고한 소망과 신념을 가진 자(사 30:18-33; 35:1-10; 66:1-14 등).

5. 구속사적 지위

① 이스라엘에게 미래에 대한 예언을 줌과 동시에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촉구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소명 받은 선지자(사 6:8-10).

②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가장 많이 남긴 복음의 예언자(사 7:14,15; 11:1-10; 42:1-3; 53:1012).

③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서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대언자적 직분을 행함과 동시에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여 하나님과 그들 간에 화목을 조성하려는 중보자적 역할을 감당한 자(사 1:1-31; 56:9-57:21; 58:1-14 등).

 

6. 평가 및 교훈

① 이사야는 성전에서 예배하던 중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사 6장). 그는 비록 처음부터 그의 임무가 결실 없는 경고와 권유가 될 것으로 알았지만, 즉각적으로 소명에 응답했으며 그 위임을 수락하였다(사 6:9-13). 이는 오늘날 철저하게 계산적 사고 방식에 길들여진 우리 성도들에게 순종하는 자의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본을 제시한다.

② 이사야는 사랑하는 조국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하는 모습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견딜 수 없는 안타까움과 사랑을 가지고 온 힘을 다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패역함을 책망하며 애끓는 경고를 선포하였다(사 1:2-31; 2:5-11 등). 오늘날 사회적 불의가 만연한 시대에 우리 성도들은 이사야처럼 이러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③ 이사야는 동족의 오해를 살만큼 획기적인 발언과 행동을 서슴치 않으며 조국의 패역상을 고발하고 멸망을 경고하는 한편 장차 도래할 회복과 구원도 잊지 않고 설파하였다(사 40:1-31).

이처럼 오늘날의 교회는 이 사회의 죄악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회개 후의 소망과 위로도 함께 주어야 한다.

④ 이사야는 자신들이 처한 역경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강대국들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왕들을 향해 그들의 어리석음과 비신앙적 발상에 대해 강하게 질책하였다(사 7:13; 31:3; 39:3-7). 그들은 하나님의 회복이 예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숙된 신앙을 가지지 못하여 그 예언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현재의 나는 어떠한가? 고난이나 역경이 닥치면 하나님을 의뢰하기보다 다른 것들 ― 재물이나 권력 또는 자신의 명철 ― 에 의지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⑤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순종한 자이다. 이러한 순종은 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을 향해 준비된 마음을 가진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순종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떠한가? 만일 하나님께서 당장 당신을 쓰고자 하신 다면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적으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⑥ 이사야는 장차 올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갖고 그를 기다리며 메시야의 생애에 관하여 가장 많은 예언을 남기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성도들도 가져야 할 소망인 바, 우리들은 이제 곧 재림하실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갖고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준비된 생활을 하여야 한다(마 25:1-13).

7. 핵심 성구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예레미야 ― 눈물의 선지자

 

1. 인적 사항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세우시다’라는 뜻. ② 제사장 아비아달의 후손으로 추정됨(왕상 2:26).

③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베냐민 땅 아나돗에서 출생(렘 1:1).

④ 남 유다 요시야 왕 제13년 곧 B.C.627년부터 예루살렘 멸망(B.C.586년) 이후 유다 남은 백성들이 애굽에 이주하여 정착할 때인 B.C.580년까지 약 50여 년 동안 사역함.

⑤ 선민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많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까닭에 소위 ‘눈물의 선지자’라고 불림.

⑥ 유대 전승에 의하면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말년에 애굽에 끌려가(렘 43:5-7)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함.

2. 시대적 배경

예레미야 사역 초기 국제 정세는 갈대아와 앗수르가 세력 다툼을 하느라고 남 유다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유다로서는 다소 평화로운 상태였다. 또한 내적으로는 善王(요시야)이 등극하여 성전을 정결케 하고 우상을 제거하는 등 내실을 다지던(건축)시기였다. 그러나 B.C.609년 요시야가 므깃도에서 애굽 왕 느고(Neco, B.C.610-595년)와 싸우다가 전사(대하 35:20-24)한 뒤로 하나님이 아닌 애굽을 의지 대상으로 삼은 이후 왕들의 악행과 失政이 계속됨에 따라 유다는 급속히 쇠퇴의 길로 치달았다. 그리하여 유다는 B.C.605년 바벨론에 의해 첫 침공을 당하여 복속된 이래 B.C.597년과 B.C.586년 거듭해서 침공을 당함으로써 마침내 멸망하고 만다. 이렇게 볼 때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이 시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참혹하고도 광범위하게 시련을 당한 비운의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에레미야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관련해서는 예레미야 서론을 참조하라.

 

3. 주요 생애

 

요시야 통치 시기

출생

B.C. 647 년경

선지자로 소명 받음

B.C. 627 년

렘 1:4,5

요시야와 함께 종교 개혁 단행

B.C. 627-609 년

렘 11:1-8

여호야김 통치 시기

여호야김의 행악을 규탄함

B.C. 609-597 년

렘 22:18,19

예루살렘 멸망 예언

렘 25:1-38

시드기야의 통치 시기

바벨론에 무조건 항복을 주장함

B.C. 597-586 년

렘 38:14,17,18

바벨론 포로 및 귀환 예언

렘 32:1-44

반역죄로 고발당해 옥에 갇힘

B.C. 587 년

렘 37:4-15

석방되어 시위대 뜰에 거함

렘 37:16-21

진흙 구덩이에 던져짐

렘 38:1-6

에벳멜렉의 상소로 구출됨

렘 38:7-13

예루살렘 멸망 및 시드기야와 유다인들의 포로됨

B.C. 586 년

렘 52:4-34

전쟁 와중에도 안전하게 보호를 받음

렘 39:11-14

죽음

B.C. 580 년경

 

 

4. 성품

① ‘눈물의 선지자’로 불릴 만큼 천성적으로 동정심이 많고 온유한 자(렘 9:1).

② 백성들의 박해로 인해 자신의 선지자직에 대해 수없이 갈등과 회의를 거듭한 내성적 성품의 소유자(렘 20:7-10).

③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전할 때에 사정없이 외치는 강인한 성품의 소유자.

④ 몇 차례에 걸친 투옥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주의 말씀을 전한 것으로 볼 때 소명 의식이 투철하고 인내심이 강한 자(렘 20:1-3; 37:13-15; 38:4-18).

5. 구속사적 지위

① 구약 선민의 후손 유다의 패역함을 깨우치기 위해 소명 받은 선지자(렘 3:11-22).

② 유다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대언자임과 동시에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여 하나님과 화목을 꾀하는 중보자적 역할을 감당한 자(렘 15:19).

③ 출생 전부터 하나님의 전적인 의지와 은혜로 인해 선택된 자(렘 1:5).

④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물론 심지어 가족들에 의해서 조차 배척받고 핍박당한 그의 생애는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고도 동족인 유대인들에 의해 핍박을 받고 끝내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생애를 예표함(렘 11:21-23; 26:6-9).

6. 평가 및 교훈

① 예레미야는 원래 내성적이고 나약한 인물이었지만(1:6절)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하실 때에는 늘 힘있고 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성도들은 자신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너무 나약하고 초라하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인간적인 나약함이나 부족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전혀 결격 사유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능력 있는 자를 부르셔서 그들의 강한 것에 의지해 당신의 말씀을 선포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연약하고 힘없는 자들을 택하셔서 소명과 함께 그것을 능히 감당할 힘도 함께 주심으로 스스로 힘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다(고전 1:27-29). 그런즉 사명을 맡은 성도들은 인간적 재능을 갈고 닦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② 예레미야가 극심한 박해로 인해 사명을 포기하고픈 지경에까지 이르렀듯이 오늘날의 사역자들도 여러 가지 모양의 고난과 고통으로 인해 사역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이는 사역자들이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장애물들로 이런 때일수록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장차 있을 상급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곁길로 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낙심과 절망 중에도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끝까지 바르게 선포한 예레미야와 같이 실로 끝까지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만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늘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이다(렘 17:5-8).

③ 바벨론에 투항하라는 반민족적 언사 때문에 예레미야는 동족들에게 많은 고난을 당해야했다. 그러나 이는 예레미야가 자기 민족을 사랑하지 않거나 세계정세에 대한 기회주의적 외교를 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에 대한 그의 깨달음에 의한 것이었다(렘18:6).

오늘날의 성도들도 많은 사람으로부터 동의를 얻지 못할 뿐더러 도리어 조롱과 비웃음의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그 분이 지시하시는 바를 반드시 선포해야할 의무가 있다.

④ 예레미야는 유다의 암담한 미래를 예언함과 동시에 회복의 소망도 외쳤다. 이는 여호와 신앙에 있어서 믿음이나 사랑만큼 소망의 중요성도 가르쳐 주는 교훈으로 제시된다. 극도의 황금만능 사상과 비윤리적인 상황으로 치닫는 오늘날, 사회의 사방에서 들려오는 암울한 상황과 암담한 현실 속에서 막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도된 우리는 복음을 높이 들어 어두운 곳에 소망의 빛을 비추어야 하겠다.

7. 핵심 성구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렘 1:10).

 

 

에스겔 ― 환상과 소망의 선지자

1. 인적 사항

①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 혹은 ‘하나님은 강하시다’라는 뜻.

② 사독 계열의 제사장 부시의 아들(겔 1:3).

③ 포로 시대 바벨론에서 활동한 제사장 출신 예언자(겔 1:1-3).

④ 환상을 많이 보았으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고 ‘환상과 소망의 선지자’로 불림.

⑤ 바벨론 2차 침입시 그발 강가의 델아빕을 중심으로 하여 22년간 예언 활동함(겔1:1,2;29:17)

⑥ 아내가 일찍 죽음(겔 24:18).

2. 시대적 배경

B.C.612년 중근동의 최대 강국이었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바벨론의 나보폴라살(B.C.625-606년)에 의해 멸망하고 애굽도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으며 신흥세력인 바벨론이 나보폴라살과 그의 아들 느부갓네살(B.C.605-562년)에 의해 급부상하고 있었다. 이 무렵 애굽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유다 왕 여호야김(B.C.609-598년)은 B.C.605년 애굽 왕 바로 느고(B.C.610-595년)를 유브라데 유역에서 쳐부순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렐론의 속국 왕이 되었다. 그는 이후 3년 동안 바벨론의 속국 왕이 되었다. 그는 이후 3년 동안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다가 배반하였으며(왕하 23:34-37; 24:1). 그후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3개월간 있다가 B.C.597년 유다의 배반을 괘씸히 여겨 제2차 출동한 느부갓네살의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바벨론으로 끌려갔다(왕하 24:14-16). 에스겔도 이 때에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B.C.597-586년)가 바벨론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이를 계기로 B.C. 586년 유다는 느부갓네살에 의해 완전히 패망하였다(왕하 25:8-21).

에스겔이 활동을 하던 시대는 이처럼 이스라엘이 역사 속에서 그 국가적 형태를 잃어버리는 비운의 시기로,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에스겔은 이스라엘이 곧 회복되어 옛 영광을 재현한다는 소망을 백성들에게 전했던 것이다.

3. 주요 생애

 

바벨론의 2차 침입 이전

출생

B.C. 623년?

바벨론의 1차 침입 목적

B.C. 605년

바벨론의 2차 침입 이후

예루살렘 함락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감

B.C. 597년

그발 강가에서 사로잡힌 백성들과 함께 거주함

겔 1:1;3:15-17

바벨론 포로 5년에 선지자로 소명 받음

B.C. 593년

겔 1:1-3

그룹들의 환상을 봄

B.C. 593년

겔 1:4-28

유다에 임할 심판 예언

B.C.593-588년

겔 4:1-24:27

쇠똥으로 구운 떡을 먹음

B.C. 593년

겔 4:4-17

이스라엘의 회복 예언

B.C.593-571년

겔 33:1-48:35

백성들에게 박해를 받음

B.C. 593년

겔 3:25

더럽혀진 성전의 환상을 봄

B.C. 592년

겔 8:11장

불에 탄 포도나무 환상을 봄

겔 15장

아내의 죽음

B.C. 588년

겔 24:16-19

열방들에 임할 심판 선언

B.C.588-585년

겔 25:1-32:32

마른 뼈의 환상을 봄

B.C. 585년

겔 37장

13년간 예언을 중단한 기간이 있음

겔 32:17;40:1

생명수 환상을 봄

B.C. 573년

겔 47장

죽음

 

 

4. 성품

① 기이할 정도의 상징적 행동으로 예언 활동을 한 것을 볼 때, 상당히 열정적인 성품의 소유자임(겔 4:4-8; 5:1-4; 6:11; 12:2-7).

② 그의 예언이 풍유적 상징이 많은 것으로 보아 감성이 풍부한 자였음(겔 4:4-17;5:1-4:37).

③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행동, 즉 쇠똥으로 구운 떡을 먹는다든지,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것 등과 같은 특이한 명령도 이행할 정도로 철저한 순종의 신앙인 이었음(겔 4:4-17; 12:3-5; 24:16-27).

④ 예언 활동을 하다 죽임을 당하였다는 전승으로 미루어 맡은 바 사명에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충실한 자였음.

5. 구속사적 지위

① 포로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등 중보자의 역할을 함. ② 제사장이며 동시에 선지자의 직분도 갖고 있는 것은 구속주로 오실 그리스도의 직분을 암시함(겔 1:3). ③ 범죄한 자기 백성의 죄를 질책하다가 그들에게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한 것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고 오셨다가 자기 백성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으신 예수의 수난의 길을 예표함(겔3:25). ④ 자신의 국가가 패망해 버린 상황 속에서도 회복의 소망을 잃지 않은 그의 생애는 악이 선을 지배하는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지켜야 하는 성도의 삶을 보여줌. ⑤ 이스라엘의 회복뿐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질 신약 교회와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있을 메시야 왕국에 대한 풍부한 예언을 보여줌(40-48장).

6. 평가 및 교훈

① 모든 일이 형통하고 삶이 풍요한 때는 누구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암울한 날들이 계속되어지고 도무지 내일이 희망차 보이지 않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어쩌면 무지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는 곧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간파한 에스겔은 국가가 패망하는 상황 가운데서도 회복의 소망을 잃지 않았다(겔33:1-48:35). 이처럼 신앙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주위에 산재해 있어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 성도는 굳게 소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②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패망이 명백히 그들의 죄의 결과임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위태로운 일이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을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을 질책하는 에스겔이 그들의 눈에 곱게 비칠 리가 없다(겔 3: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겔은 날카롭게 그들의 죄를 지적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는 자기 백성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오늘날의 성도들도 목숨이 위협 당하는 상황에서조차도 ‘죄는 죄’라고 용감하게 지적해야 하는 것이 성도의 사명임을 기억해야 하겠다.

③ 인간의 상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기이한 행동으로 메시지를 선포한 에스겔의 말씀 전파에 대한 열정은 전도에 대한 실천을 점점 소홀히 하고 있는 오늘날의 교회에 새로운 경종을 울린다(겔 4:1-3; 5:1-4; 12:3-5; 21:3,6).

④ 에스겔은 바벨론의 유다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자(使者)이며 그들의 파수꾼으로서(33:1-39:29) 정신적으로 침체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소망을 가져다주었다. 이렇듯 오늘날 세상의 염려와 근심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의 기쁜 소식 곧 복음(福音)을

전해 주어야 하는 것이 성도된 자의 마땅한 사명이다.

7. 핵심 성구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리라”(겔 1:3).

 

다니엘 ― 신앙의 절개를 지킨 선지자

1. 인적 사항

① 다니엘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

② 이스라엘 12지파 중 유다 지파에 속한 왕족 출신.

③ 대선지 자 중 한 사람. ④ 바벨론의 1차 침략 때(B.C.605) 포로로 잡혀감(단 1:1-7).

2. 시대적 배경

다니엘은 남유다 왕국의 멸망의 서곡인 B.C.605년 제1차 바벨론 유수 때로부터 바벨론 제국을 정복했던 바사왕 고레스의 통치 원년인 B.C.538년까지 바벨론 시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한 선지자이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던 해는 B.C.605년으로 이 해에 그 유명한 애굽과 바벨론 간의 갈기미스(Carchemish) 전투가 벌어졌다. 이는 바벨론이 앗수르와 애굽을 차례로 격파하고 고대 근동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당시 남 왕국 유다 는 애굽 왕 바로 느고(Necho)에 의해 즉위하게 된 제18대 왕 여호야김(B.C.609-598)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애굽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패배함에 따라 남유다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노를 사게 되어 유다의 왕족과 귀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다니엘이 바로 이 무리에 속해 있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있는 동안 교체된 바벨론 왕들의 계보를 살펴보면, 느부갓네살 2세(B.C.605 -562)에 이어 에월 므로닥(B.C.562-560). 네리글리살(B.C.560-556). 라바시 말둑(B.C.556), 나보니두스(B.C.556-539), 벨사살(B.C.550-539)이 차례로 등극하였으며, 나보니두스와 벨사살은 상당 기간 동안 공동 통치를 하였다. 그리고 바사 왕 고레스가 B.C.539년에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킴으로써 바사 제국이 근동 지역에 패권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3. 주요 생애

 

사자굴 사건 이전

출생

제1차 바벨론 유수시에 포로로 끌려감

B.C. 605

단 1:1

약 3년 동안 바벨론 왕궁에서 교육받음

B.C. 605-602

단 1:10-21

2차에 걸친 느부갓네살의 꿈 해몽

B.C. 602-562

단 2:25-45; 4:19-27

손가락으로 벽에 씌어진 글씨 해석

B.C. 539

단 5:1-5,17-28

다리오 왕에 의해 총리로 임명됨

B.C. 538

단 6:1,2

방백들의 음모로 사자 굴에 들어갔다가 살아남

단 6:3-27

사자굴 사건 이후

네 짐승의 묵시를 봄

B.C. 550

단 7:1-28

수양과 숫염소의 묵시를 봄

B.C. 547

단 8:1-27

70이레의 묵시를 봄

B.C. 538

단 9:20-27

힛세겔 큰 강가에서 일련의 묵시를 봄

B.C. 536

단 10:1-12:13

다니엘서 기록

B.C.530년경 완결

단 1:1-12:13

죽음

 

 

4. 성품

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상에게 바쳐진 왕의 진미를 거부한 점으로 불 때 신실한 신앙일 뿐 아니라 자제력이 뛰어나고 인내력이 강한 자(단 1:8-16).

②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왕의 진미를 거부한 점으로 볼 때 결단력과 담대함을 소유한 자(단1:8,9). ③ 다니엘을 시기한 관리들이 그를 고소할 흠을 찾지 못한 점으로 보거나 하루 세 번 기도하기를 쉬지 않은 점으로 볼 때 신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매우 성실했음(단 6:4,10).

④ 겔 28:3에서 그를 ‘지혜로운 자’라고 묘사한 것으로 보아 총명이 뛰어났었음.

5. 구속사적 지위

① 부와 명성에 대한 욕구는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더욱이 포로의 신분인 다니엘에게 있어 정복국 왕의 눈에 드는 일은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세속적 부와 명성을 위하여 왕의 진미라 할지라도 우상에게 바쳐진 것이기에 대한 유혹을 받으면서도 인간이 경배해야할 대상이 하나님뿐임을 주장하신 예수의 모습에 비견되는 것으로 신본주의 적인 인생관을 소유한 자의 전형이 된다(단 1:8,9).

② 구약의 선지자들 가운데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등의 4대 제국의 흥망사를 중심으로 역사의 전개 과정을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분명하게 예언한 선지자임(단 7:15-18).

 

6. 평가 및 교훈

① 다니엘이 왕의 진미를 기부했던 이유는 그것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상의 제물로 인해 자기의 몸이 더럽혀지는 것이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처럼 오늘날의 성도들도 자신의 몸을 거룩히 구별해야 하는 바, 이는 성도의 몸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려 사신 바 된 하나님의 전이기 때문이다(고전 6:19,20).

② 신실한 기도의 사람 다니엘은 그의 신앙을 인하여 방백들의 음모에 의해 사자굴 속에 던져지기까지 하였다(단 6:16-23). 이것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서 받는 고난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준다(딤후 3:12).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련 속에 있는 성도들은 시련은 잠깐이요, 그 후에 영원한 상급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딤후 2:5; 약 1:12).

③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굳은 사람은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힘이 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니엘에게 있어서 입증되는데, 그는 원수들의 간계로 인해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단 6:23). 그러므로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여!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신하고 결코 낙망하지 말자.

④ 다니엘의 입지전적(立志傳的) 삶은 자신의 무능과 나태를 은폐한 채 환경만을 탓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오늘날의 세대들에게 강한 도전을 준다. 실로 하나님은 뜻을 굳게 정하여 성실하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를 보호․인도하신다(빌1:6).

⑤ 다니엘을 시기한 방백들이 그를 고소할 틈을 찾고자 하였으나 허사로 돌아갔다(단6:4). 다니엘은 도덕적․인간적 측면에서 아무런 허물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신앙인 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전혀 본받을 만한 점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사람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바,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는 물론이요,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인 면에서도 타인의 본이 되는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마 5:16).

⑥ 이스라엘 민족의 죄악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에 금식하며 중보 회개 기도한 다니엘(단9:1-19)은 개인주의가 팽배하며 주위의 아픔을 도외시하고 주변 사람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 무감각한 현대 교회 공동체에 큰 도전을 준다. 실로 우리 자신들을 겸손하게 돌아보자. 우리는 나라와 민족의 죄 때문에 통회하고 자복한 적이 몇 번이나 있으며 함께 사는 이웃의 죄 때문에 금식하며 회개 중보 기도해 본 적은 얼마나 있는가(느9:1-3)?

 

7. 핵심 성구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사드락․메삭․아벳느고 ― 풀무불 속에서 건짐 받은 믿음의 친구들

 

 

1. 인적 사항

① 히브리 이름은 각각 ‘주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의 하나냐, ‘주께서 지금 계신다’라는 뜻의 미사엘, ‘여호와는 돕는 자’라는 뜻의 아사랴(단 1:6)이다.

②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의 세 젊은이(단 1:3).

③ 다니엘의 친구들로서 유다의 왕족 및 귀족에 속한 자들(단 1:3).

④ 사드락․메삭․아벳느고는 바벨론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2. 시대적 배경

이들은 다니엘과 동시대 인물들로서 B.C.605년 제1차 바벨론 유수 때로부터 바벨론 제국을 정복했던 바사 왕 고레스의 통치 원년인 B.C.538년까지 바벨론 제국의 수도 바벨론 시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3. 주요 생애

 

풀무불 사건 이전

출생

제1차 바벨론 유수시에 포로로 끌려감

B.C 605 년

단 1:4

약 3년 동안 왕궁에서 교육받음

B.C.605-602 년

단 1:4-7

다니엘과 함께 우상의 제물을 거절하고 채식함

단 1:12-16

교육 후 바벨론 왕을 보필함

단 1:19

금신상을 숭배하지 않아 풀무불 속에 던져졌으나 구출됨

B.C. 586 년경

단 3:1-27

풀무불 사건 이후

풀무불 사건 후에 더 높은 지위를 획득함

B.C. 586-538년경

단 3:30

죽음

 

 

4. 성품

① 목숨을 걸고 끝까지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불의한 일과는 타협하지 않은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들(단 3:13-18).

② 우상의 제물을 제물을 거절함에 있어서 함께 힘을 모아 뜻을 관철시킨 의리의 사나이들.

③ 하나님은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우리를 건지실 수 있는 분으로 고백하면, 또한 ‘그리아니하실지라도’ 금신상에 절하지 않겠다고 할만큼 신실하고 담대한 신앙의 소유자들(단3:17,18).

 

5. 구속사적 지위

①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절개를 굽히지 않아 죽음의 처소인 풀무불에 던져졌다가 구원받은 자들(단 3:13-27).

② 이들의 풀무불 구원 사건은 대제국인 바벨론에 속한 모든 인간들에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신은 하나님 한 분 뿐임을 소개하는 계기가 됨(단 3:28).

③ 하나님이 풀무불 속에서 건지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짐과 동시에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여호와 신앙을 버리지 않겠다는 태도를 통해 성도들이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결코 흔들림 없이 가져야 할 신앙의 正道에 대한 본을 제시한 자들임(단 3:17,18).

 

6. 평가 및 교훈

① 사드락․메삭․아벳느고가 겪은 풀무불 시험은 성도들이 겪는 ‘불 시험’(벧전4:12)을 연상시켜 준다.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이 풀무불 시험에서 믿음의 승리를 거두었던 사실은 우리 성도들이 불 시험을 어떠한 신앙 자세로 극복해야 하는가를 교훈해 주고 있다. 이같은 신앙의 연단을 통해 우리 성도들은 실로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 수난을 받으시고 지금은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벧전4:13).

② 유약한 현대의 신앙인들 은 조그만 어려움이 닥쳐도 그것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피해 버리려고 하기 일쑤이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이러한 신앙인들 에게, 하나님은 성도들이 시험 당할 때에 넉넉히 이기는 힘을 주시는 분이심을 증거 한다(단 3:17,18).

③ 만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각각 떨어져 있었다면 풀무불 가운데서 건짐 받는 위대한 신앙을 소유하지 못했을 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신앙은 성도들 간의 교제 중에서 더욱 발전하는 것인 바, 이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히 10:25).

④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은 마침내 이방 왕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토록 한다(단 3:28).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불신 자들마저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신앙의 본을 보여야 한다(마 5:13-16).

⑤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잘못된 신앙의 형태가 기복적 신앙이다. 더 많은 경제적 부를 위해서 십일조를 내고 평안한 내세를 보장받기 위해서 교회를 다닌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복’ 얻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소유한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신앙은 이런 자들에게 어떤 것이 바른 신앙의 형태인지에 대한 표본을 제사한다(단3:18). 실로 진정한 복은 이렇게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다.

⑥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실제로 이 세상에서 세상의 요구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문제로 많은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올바른 신앙을 가진 자들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늘 하나님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경건의 연습을 통해서 이러한 선택 방법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딤전 4:7,8).

 

7. 핵심 성구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 시리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호세아 ― 회개를 호소한 사랑의 선지자

 

 

1. 인적 사항

① 호세아는 ‘여호와여 구원하소서’라는 뜻.

② 잇사갈의 21대 손이며 브에리의 아들임(호 1:1).

③ 북왕국 이스라엘 출신으로 B.C.755-723년 여로보암 2세 때에 활동함

④ 음녀 고멜의 남편(호 1:3).

⑤ 세 자녀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를 둠(호 1:4-9).

 

2. 시대적 배경

북왕국의 선지자인 호세아가 활동하던 시대는 여로보암 2세(B.C.993-753)의 통치 말기 무렵부터 B.C.722년 북왕국 이스라엘 수도인 사마리아가 앗수르에 의해 함락 당하기 직전까지의 기간이다. 당시는 북방의 앗수르가 고대 근동의 최강대국으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던 때였다. 이러한 앗수르의 제일 공격 목포가 된 팔레스틴 지역의 국가는 아람(수리아)이었다. 그래서 그 동안 남․북이스라엘 두 왕국을 계속해서 괴롭혔던 아람이 앗수르의 공격으로 급격히 쇠약해진 틈을 타서 여로보암2세는 아람을 공격하여 그 수도인 다메섹을 정복하고 영토를 확장시킴으로써 그 지계가 하맛 어귀에서 이르게 되었고 이로써 북왕국은 통일 왕국 다윗과 솔로몬 이후 최고의 정치적,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호 4:7). 그러나 늘 그렇듯이 대외적으로 평온기를 맞은 이스라엘은 내부적으로는 크게 부패하여 하나님을 떠나 쾌락을 좇아 행하며(호 4:11). 패역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지자 호세아는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과 포로 생활에 대한 예언(호8:7)을 선포하면서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회개는커녕 더욱 패역을 일삼아 결국 앗수르에 의해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왕하 17:6).

 

3. 주요 생애

 

소명 이전

출생

하나님의 소명을 받음

B.C. 755년경

호 1:2

소명 이후

하나님의 소명에 응하여 고멜과 결혼함

B.C. 755-723

호 1:3

삼남매를 낳음

호 1:4-9

아내의 음행을 용서함

호 3:1-3

백성을 향한 회개의 촉구 및 심판 예언

호 4:14

호세아서 기록

호 1:1-14:9

죽음

 

 

4. 성품

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애끓는 사랑을 자기 가정 안에서 몸소 실천한 사랑과 연민이 넘치는 성품의 소유자(호 1:3; 3:1-3).

② 거듭해서 배반한 음부 고멜을 끝내 거부하지 않고 다시금 아내로 받아들인 인내와 긍휼이 충만한 자(호 3:1-3).

③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자기 가정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 점으로 보아 순종과 희생정신이 투철한 자.

④ 불우한 가정 속에서도 끝까지 선지자로서 의 사명을 잘 감당한 것으로 볼 때 맡은 바 일에 성실하고 사명감이 강한 자.

 

5. 구소사적 지위

①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 전파를 통해 회개를 촉구함으로써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간의 화목을 도모한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함. 이는 죄인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 절대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다(호 6:1-3).

② 음부(淫婦)인 고멜에 대한 호세아의 사랑은 불의한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상징한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이러한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최절정을 보게 된다(호 4:14).

③ 부패한 백성을 향한 회개 촉구의 사역을 통해 불의한 세상 속에서 오늘날의 성도들이 감당해야 하는 선지자적 사명을 일깨워 준다.

 

6. 평가 및 교훈

① 선지자 호세아가 자신의 아내로 정숙한 여인을 택하지 않고 음란한 여인인 고멜을 택한 것은 하나님께서 의인을 택하시지 않고 죄인을 택하신 것과 그 맥을 같이한다. 이는 죄인이었던 우리가 늘 감사해야 할 제목인 것이다(롬 5:8).

② 현숙한 아내에 대한 소망은 모든 남성들이 갖는 첫째 가는 소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탕한 여인을 아내로 맞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온순하게 순종하는 호세아의 모습은 자기의 소망과 하나님의 뜻을 억지로 끼어 맞추어서라도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성취하는 현대의 성도들에게 좋은 순종의 본을 제시한다(호 1:2,3).

③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그의 회개의 촉구가 결실 없는 경고임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회개를 권면한다. 이는 ‘예정된 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구원받을 것이고 유기된 자는 아무리 회개하라고 권해도 소용없는 것’이라는 논리 하에 그저 자기 자신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그만 이라는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 그릇된 사고를 가진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약의 성도들에게 부여하신 선지자적 사명이 어떠한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마 28:19,20).

④ 음란한 아내를 사랑하고 그녀를 위해 희생한 호세아의 태도는 이혼이 급증하고 가정에서조차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는 오늘날의 가정들에게 부부간에 꼭 필요한 애정과 이타주의적 정신을 새삼 강조한다(잠 5:9; 엡 5:28,33).

⑤ 집을 나가 창부가 된 아내를 찾는 남편의 심정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 가자고 그녀의 손을 붙들기보다는 한 차례 뺨을 후려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아내를 구타하는 몰염치한 자라고 규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아내를 버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도덕적으로 그리 거리낄 것이 없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결혼의 계약을 파기했고 혼인의 순결을 배반했으며 가정을 파괴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러워진 그녀를 향해 집에 가자고 손을 내미는 호세아의 행동은 선택한 백성이 비록 타락할 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내 돌이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보여준다(호 3:1-3). 이 얼마나 감동적인 사랑인가? 이제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돌이켜 매순간 경배하고 찬양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7. 핵심 성구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이에 저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호 1:2,3).

 

고멜 ― 방탕한 북이스라엘의 상징

 

1. 인적 사항

① 고멜은 종국을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완성’이라는 뜻.

② 디블라임의 딸(호1:3). ③ 선지자 호세아의 아내(호1:3).

④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의 어머니(호 1:3-9).

2. 시대적 배경

여로보암 2세(B.C.793-753년)의 통치 말기인 이 시대는 북왕국 이스라엘로서는 전에 없는 경제적, 정치적 번영을 누리던 시대였다. 그러나 종교적․도덕적으로는 우상 숭배와 부패가 극에 달하였던 바 호세아의 아내였던 고멜도 이 시대의 죄악 속에서 빠져 있던 음란한 여인이었다.

3. 조요 생애

 

호세아의 아내가 됨

B.C.755-723년경

호 1:9

세 자녀를 출산

호 1:4-9

정부(情夫)와 가출, 창부(娼婦)로 전락

호 2:1-23

호세아에 의해 집으로 돌아옴

호 3:1-3

죽음

 

 

4. 성품

① 신약의 탕자(눅15:11-13)에 비견되는 구약의 탕녀로서 음란하고 호색적임.

② 자신의 음욕을 채우기 위해 남편 호세아를 헌신짝처럼 버린 것을 보아 배은망덕한 여인.

③ 여러 남자를 거치며 사생아를 낳은 그의 행실로 보아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여인.

④ 자신의 아이들을 두고서 다른 남자와 가출을 결행할 만큼 무책임한 여인.

5. 구속사적 지위

① 계속적으로 음행을 일삼으며 뉘우칠 줄 모르는 고멜은 하나님의 회개에 대한 촉구를 뒤로한 채 우상 숭배와 부패에 몰입되어 있던 북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함.

② 더 나아가 고멜은 타락한 전 인류의 죄성의 심각성을 일깨워 줌.

③ 창부로 전락한 그녀가 남편 호세아의 의해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은 범죄 함으로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구원받고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암시함.

6. 평가 및 교훈

① 고멜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이 죄악 중에 있을지라도 그들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갖고 계시며 그들이 속히 죄에서 떠나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준다(호3:1). 지금 혹시 죄의 길에서 방황하고 있는 성도가 있는가? 음란한 고멜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회개하고 돌아오라! 분명히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② 고멜의 음행은 일차적으로는 구약 선민 이스라엘의 음란한 우상 숭배 행위를, 나아가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하나님보다 더 절대시하고 의뢰하는 수많은 것, 곧 자녀, 명예, 재물 권세나 자신을 위한 경고와 회개 촉구의 메시지임을 기억하자.

③ 고멜은 사랑 받을 만한 어떤 조건도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로부터 계속적으로 용서를 얻고 사랑을 받았다(호 3:2,3). 이렇듯 오늘날의 성도들도 구원받을 만한 아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으로부터의 일방적인 사랑과 구원의 은총을 받은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요엘 ― 여호와의 날을 선포한 선지자

1. 인적 사항

①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 ② 예루살렘 출신으로 추정. 남유다 선지자.

③ 브두엘의 아들로서 12소선지 자 중의 한 사람(욜1:1).

2. 시대적 배경

남왕국 유다의 선지자 요엘은 유다의 유약한 제9대 왕 요아스의 재위 기간인 B.C.835-796년까지 사역한 선지자이다. 이 때는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 왕국 시대의 중반기로서, 국제적으로는 강대국간의 패권 다툼이 별로 없던 다소 평온한 시기였다.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커다란 변혁의 회오리가 스치고 지나갔던 때였다. 남유다의 제7대 왕이 된 아합의 딸 아달랴를 몰아내고 7세밖에 안된 어린 요아스를 왕위에 옹립하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혁명이 있었다(왕하 11:4-12). 그리고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섭정인으로서 아달랴의 바알 숭배로 인해 훼손된 성전을 수리하고 왕과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신앙에 대한 언약을 맺게 하는 등 善政을 베풀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은 후 유다 왕 요아스는 심한 동요와 죄악에 빠져 이교의 우상 숭배를 허용하는 등 부패하게 되었다(대하 24:18). 이것은 비단 요아스 개인만의 부패가 아니었다. 이에 편승한 유다 백성들 역시 패역의 길로 치닫게 되는데, 이 때에 대 메뚜기 재앙이 닥치게 되어 백성들은 기근과 가난으로 큰 고통을 겪어야만 하였다.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소명 받은 선지자 요엘은 홀연히 일어서서 유다 백성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함과 동시에 회복의 소망에 관한 메시지를 전파한 것이다.

3. 주요 생애

 

소명 이후

메뚜기 재앙으로 인한 회개의 촉구

B.C.835-796

요엘1,2장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구원의 약속 선포

요엘 2:18-3:21

요엘서 기록

B.C.830년경

요엘 1:1-3;21

죽음

 

4. 성품

① 광야에서 회개를 선포한 세례 요한과 비교되는 인물로, 시대의 불의와 야합하지 않는 강직하고 정의 감에 불타는 성품의 소유자.

②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면서도 애끓는 심정으로 민족의 회개를 외친 것으로 보아 사랑과 민족에 대한 애정이 많은 선지자(욜 2:12-14).

5. 구속사적 지위

① 메뚜기 재앙이 같은 역사적 사건을 통해 미래에 있을 여호와의 날 심판을 경고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각성을 촉구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소명 받은 선지자(욜2;31,32).

② 여호와의 날 심판 경고와 회개 촉구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간의 화목을 도모한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한 자(욜2:13). 이는 죄인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 절대한 중보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다.

6. 평가 및 교훈

① 유다 백성이 패역하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예언자인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도록 책망하시고 경고하셨다. 이와 같은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당신의 종들을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한 메시지를 들을 때에 우리는 책망은 책망대로, 권면은 권면대로 순순히 받고 그것을 적극 실천으로 옮기는 실천적인 신앙을 소유해야할 것이다(욜2:12-17).

② 요엘은 백성들을 향해 메뚜기의 재앙을 선포하면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욜2:32)이라고 전했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주의 이름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능력의 주님의 이름을 우리는 얼마나 힘써 진실 되게 부르고 있는가?

아모스 ― 공의를 선포한 선지자

 

 

1. 인적 사항

① 아모스는 ‘무거운 짐진 자’라는 뜻.

② 베들레헴 남쪽 6.6km 지점에 위치한 드고아 출신의 목자(암1:1).

③ 남유다 출신이나 여로보암 2세 때 북이스라엘에서 활동(B.C.760-755년).

④ 호세아와 동시대의 선지자(호 1:1). ⑤ 아모스서의 저자.

 

2. 시대적 배경

선지자 아모스가 활동하던 때는 남유다 왕 웃시야와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때로서 양국 다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 이후 정치적, 경제적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러한 번영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아합 왕 벤하닷 3세(B.C.796-776)가 신흥 제국 앗수르에 패하여 그 세력이 급격히 쇠퇴하였고 이 때를 틈타 여로보암 2세가 아람을 공격하여 그 영토를 하맛까지 확장시킴으로써 이룩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경제적 번영은 역으로 전례가 없을 정도의 종교적, 도덕적 부패 현상을 초래하였다(암 2:6-8; 5:11,12). 이러한 퇴폐 풍조는 상류계층의 타락과 아울러 정의의 와해(瓦解)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걸친 부패였다. 바로 이러한 때에 아모스는 남왕국 유다 출신으러써 남유다보다 상대적으로 타락 상황이 심각했던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회복을 외쳤던 것이다.

 

3. 주요 생애

 

소명 이전

출생

드고아 계곡에서 양을 치며 뽕나무를 재배함

암 7:14

소명 이후

벧엘로 이주하여 예언 활동을 함

B.C.760-755

암 7:13

이스라엘이 받을 심판 예언

암 3:1-6:14

벧엘 제사장 아마샤의 배척을 받음

암 7:10-13

귀향후 아모스서 저작

암 1:1-9:15

죽음

 

 

4. 성품

① 드고아에서 양을 치던 도중 하나님의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으로 볼 때 자기의 삶에 매우 충실하고 성실한 자(암 1:1; 7:14,15).

②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바 없는 일개의 목자이나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국내외의 상황과 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자(암 2:10-12:5; 25-27).

③ 아마샤의 추방 위협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고 담대하게 주의 메시지를 선포한 것을 볼 때 사명감이 불타고 신념이 강한 자(암 7:16,17).

④ 공의를 저버리고 타락을 일삼는 이스라엘의 범죄를 지적하며 그들을 향한 애가를 부른 것으로 보아 정의 실현과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소유자(암 5:1-15).

 

5. 구속사적 지위

①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죄에서 돌이킬 것을 촉구한 하나님의 대언자의 역할을 담당한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

② 사회적 불화와 불법의 근본 원인이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에서 비롯되었음을 예리하게 설파한 공의의 선지자(암 5:21-24).

③ 사역 중에 제사장 아마샤로부터 중상모략을 당한 자로서(암 7:10-13) 신약 시대에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의해 핍박당하고 죽임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함.

 

6. 평가 및 교훈

① 하나님의 사역 자로 부름을 받은 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능력이나 조건을 겸비해서 택한 받았다는 우월의식을 절대 가져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일을 충분히 감당할 만큼 완벽한 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자신은 무식한 촌부(村夫)이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써 예언을 행한다는 아모스처럼(암 7:14-16) 다만 절대 무능한 자신을 하나님이 특별하신 은혜로써 사역 자로 삼아 주신 줄을 깨닫고 오직 겸손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중에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고후 12:9).

② 참다운 신앙인 이라면 성실한 생활인임에도 틀림없다. 때로 우리는 신앙 생활이라는 명분 아래 가정 생활이나 사회 생활에서 남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자들을 보게 되는데, 타인에게 덕을 끼치지 못하는 생활을 하는 자들은 그 신앙이 실로 참된가를 한번쯤 재고해 보아야 한다. 선지자 아모스는 이런 자들에게 본을 제시한 바, 그가 드고아에서 양을 치던 도중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은 예언자로 활동하기 전 그는 매우 성실한 생활을 한 사람이었음을 암시한다(암 7:14).

③ 자신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선지자라 할지라도 서슴지 않고 모함하고 핍박한 제사장 아마샤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중에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하고 담대하게 여호와의 말씀을 대변하는 기개에 찬 신앙인 아모스의 모습은 실로 대조적이다(암 7:10-17). 그렇다면 태초부터 종말까지 이어지는 구속사의 한 도정에 선 오늘날 우리 자신들의 모습은 각각 어떠한 모습으로 후손들에게 전달될 것인가? 아마샤와 같이 세상 권세와 명예를 얻기 위해 진리와 양심의 소리를 외면한 추한 인본주의자의 모습인가 아니면 진리의 전파를 위해 어떠한 위협과 불의에도 굴하지 않은 참된 신본주의자의 모습인가 돌아볼 일이다.

④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께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은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라고 간구 하였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할 정도로 패역하였으나 사하여 주시라는 중보 간구이다. 결국 아모스 선지자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두 차례나 걸쳐서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이미 확정된 심판을 연기하셨다(암 7:2,3,5,6). 이처럼 신실한 자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되어 있다. 이 기도의 능력을 당신은 소유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실로 이런 능력 있는 기도를 하시기를 원하신다(약 5:16).

 

7. 핵심 성구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 지로다”(암 5:24).

 

 

 

 

 

 

 

 

오바댜 ― 조소자 에돔에 대한 심판 선포자

 

1. 인적 사항

① 오바댜는 ‘여호와를 예배하는 자’ 또는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

② 남유다의 선지자. ③ 이름 외에는 성경에 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음.

2. 시대적 배경

오바댜는 B.C.586년경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 성 함락 당시를 배경으로 하여 주로 활동한 선지자이다. 즉 그는 국가의 멸망이라는 엄청난 시련과 좌절에 직면해 있는 남유다 백성들에게 위로와 회복의 소망을 주어 포로 생활 중에도 결코 여호와 신앙을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남유다의 멸망을 직․간접적으로 도운 에돔의 멸망에 대한 예언과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 예언을 선포하였다.

3. 주요 생애

 

하나님의 묵시 수납 이전

출생

선지자로 활동

하나님의 묵시 수납 이후

하나님의 묵시를 받음

B.C.586년경

옵 1:1

에돔에 대한 심판 선포

옵 1:1-18

이스라엘의 회복 선포

옵 1:19-21

오바댜서 기록

옵 1:1-21

죽음

 

 

4. 성품

①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교만해 있던 에돔 족속을 향하여 한마디의 회개의 촉구도 없이 오직 준열한 심판만을 선고한 것으로 보아 의협심이 강한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옵 1:1-18).

② 현재 바벨론에게 멸시와 수난을 당하고 있으나 결국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선민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확신하고 예언한 것으로 보아 장래에 대한 확고한 소망과 간한 용기를 소유한 자(옵 1:19-21).

5. 구속사적 지위

① 구약 성경 중 가장 짧은 서신을 기록한 자(옵 1:1).

② 다른 선지자들과 달리 회개에 대한 촉구도 없이 준열한 심판만을 선포한 가장 강도 높은 심판의 선포자(옵 1:1-18).

6. 평가 및 교훈

① 천연적으로 요새화된 지형, 많은 재화와 뛰어난 지혜…, 이 얼마나 좋은 것들인가? 그러나 이러한 것들로 인해 자고 해진 열국 에돔을 향해 오바댜는 단호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이렇듯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앞에서는 그 어떤 강한 것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또한 여러 가지 힘과 재능 등으로 교만하며 자고 해 있지는 않는가?

② 오바댜는 현재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멸시와 조롱을 받고 있지만 결국은 당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해 선민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이는 당시 절망 가운데 있던 유다 백성들에게 제일 큰 소망을 줄 수 있었다. 이처럼 성도들은 낙심하고 고난 가운데 처한 자들을 돌아보며 항상 하나님 나라 도래에 대한 확신과 성도의 최후 승리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복된 자가 다 되어야 하겠다(사 40:9; 롬 10:15).

요나 ― 니느웨 구원을 위해 택함 받은 선지자

 

1. 인적 사항

① 요나는 ‘비들기’라는 뜻. ② 아밋대의 아들(욘 1:1).

③ 북이스라엘 가드헤벨 출신의 선지자(왕하 14:25).

④ 여로보암 11세의 통치 기간 중 B.C.793-753년까지 사역(왕하 14:25).

⑤ 최초로 이방국가인 앗수르와 수도 니느웨에 파송된 선지자(욘 3:1-10).

 

2. 시대적 배경

요나가 활동하던 당시의 북이스라엘은 통일 왕국 솔로몬과 다윗 시대의 번영에 비견되는 만큼 번영을 누리던 그 地界가 하맛에까지 이르렀다. 한편 당시 앗수르는 살만에셀 3세(B.C.783-773년) 앗술단 3세(B.C.773-755년), 앗술니나리 2세(B.C.755-745년) 등에 왕들에 의해 통치되던 시대로서 이전의 왕들의 통치 시대에 비해 국력이 다소 약화된 때였다. 이는 북방의 신흥 국가인 아라랏과의 전쟁이 장기화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나 설상가상으로 B.C.765-759년경에 큰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었고, B.C.763년 6월 15일경에는 완전한 일식으로 앗수르 땅이 칠흙같은 어둠에 휩싸이는 불길한 징조로 인하여 민심이 상당히 동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으로 요나 선지자가 단 하루 동안만 메시지를 전파하기 전에 이미 니느웨는 소위 추수하기 적합한 ‘희어진 밭’(요 4:35)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3. 주요 생애

 

회개 이전

출생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도록 소명 받음

B.C. 793-753

욘 1:1,2

소명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피함

욘 1:3

바다에 던져져 큰 물고기에 삼켜짐

욘 1:11-17

물고기 배속에서 삼일을 지냄

욘 2:1-9

회개 이후

물고기 배 속에서 나옴

B.C. 793-753

욘 2:10

니느웨에서 심판 경고 메시지 선포

욘 3:1-10

하나님의 니느웨 심판 유보를 불평

욘 4:1-3

박넝클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음

욘 4:4-11

요나서 기록

욘 1:1-4:11

죽음

 

 

4. 성품

① 하나님의 소명에도 불구하고 그 소명이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다 하여 이를 거역하고 소명지 니느웨와는 정반대 방향인 다스로 도망한 것으로 보아 고집과 불순종의 인물(욘1:2,3).

② 이방인 성읍 니느웨에 복음 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함으로 구원 얻는 것을 크게 원망할 정도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널리 퍼져있던 바 편협하고 배타적인 선민 사상을 지닌 자(욘 4:1-3).

③ 제비에 뽑힌 후에야 비로소 풍랑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고백한 점은 그의 소심함을 반영하나 자기 죄의 대가가 죽음임을 알면서도 끝내 죄를 부인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솔직한 자(욘 1:22).

④ 고기 뱃속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니느웨 百姓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는 원망하는 등 수시로 심적 상태가 바뀌는 것을 볼 때 매우 다혈질적인 기질이 있는 자.

5. 구속사적 지위

① 최초로 이방 선교에 대한 사명을 받은 자(욘 1:2).

② 비록 달가운 마음으로는 아니지만 심판 메시지의 선포를 통해 니느웨 백성들을 회개케 함으로써 하나님과 이방인 니느웨 백성들 간의 화목을 조성한 중보자적 역할을 한 자(욘 3:1-10).

③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주야를 보낸 후에 물고기의 뱃속에서 나온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3일간 머무시다가 부활하신 것을 상징함(마 12:40).

④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제 뜻대로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회복과 구원의 은총을 받은 모든 택한 죄인들의 전형이 된 자(욘 2:10; 3:1,2).

6. 실수

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불순종함(욘 1:3).

② 하나님을 이방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단지 선민(選民)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만 아는 편협한 지식을 소유함

③ 니느웨에 재앙이 내리지 않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불평함(욘 4:1-3).

7. 평가 및 교훈

①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는 어떠한 인간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성취되어 간다. 비록 그 사명을 맡은 자가 거부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명 자에게는 비록 그것이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순종해야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시는 절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롬 8:28).

②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간 요나가 풍낭을 만나 고기에 삼킴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듯이(욘 1:15,17), 인생의 바다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들 역시 그 고초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형통한 삶을 원하는 자들은 자신의 인생의 선장 되신 주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다(잠 16:3,9).

③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간 것은 하나님을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하나님으로 아는 편협하고 배타적인 선민의식 때문이었다. 이처럼 인간의 편견과 아집은 때로 하나님의 일에 큰 장애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말씀 묵상하는 일에 열심을 내어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무엇이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소유해야 할 것이다.

④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박넝쿨을 주신 후에 그것을 다시금 거두어 가셨다. 이는 요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참뜻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는데 요나는 그저 불평만 하였다(욘 4:6-11).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도가 이러한 경우 즉 자기가 누렸던 축복이 없어져 버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다시 거둬 가신 이유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자복해야 한다(히 12:5,6).

⑤ 요나는 이방 국가인 니느웨가 회개하고 멸망을 받지 않은 것을 보고 심히 분개하였다. 이는 성도들이 지향하여야 할 바로서 하나님은 비록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회개하고 당신께 돌아오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므로(겔 18:23), 성도는 악인일수록 더욱더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촉구하여야 한다.

 

8. 핵심 성구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욘 1:17).

 

미가 ― 베들레헴에서 메시야 탄생을 예언한 선지자

 

 

1. 인적 사항

① 미가는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인가?’라는 뜻.

② 유다와 블레셋 가드 국경 사이의 시골 가드모레셋 출신(미 1:1, 14).

③ 호세아, 아모스, 이사야와 동시대에 활동한 남유다의 선지자.

④ 남유다 제11, 12, 13대 왕인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

⑤ 소선지서 미가서의 저자(미 1:1).

 

2. 시대적 배경

미가 선지자가 활동을 하던 당시, B.C.735-690년경 팔레스틴 지역은 북방의 신흥 제국인 앗수르의 본격적인 남진 정책으로 인하여 국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있던 때이다. 즉 디글랏 빌레셀 3세(B.C.745-727년)로부터 시작하여 살만에셀 5세(B.C.727-722년), 사르곤 2세(B.C.722-705년), 산헤립(B.C.705-681년) 등이 남․북이스라엘 두 왕국을 끊임없이 공격해 왔으며, 그 와중에 북왕국이 B.C.722년에 멸망하고, 남왕국은 B.C.701년 산혜립의 침공으로 멸망 직전에 위기에까지 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때에 미가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3. 주요 생애

 

사역 이전

출생

가드모렛에서 성장

미 1:1

요담 왕 재위 기간 중 사역 시작

B.C.747-731년경

미 1:1

사역 이후

남․북 왕국의 우상 숭배에 대한 심판 선포

B.C.747-687

미 1:1-16

지배 계층의 죄악에 대한 심판 선포

미 2:1-3:4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심판 선포

미 3:5-8

메시야의 베들레헴 탄생 예언

미 5:2

미가서 기록

B.C.700년경

미 1:1-7:20

죽음

 

 

4. 성품

① 남․북왕국의 우상 숭배와 부도덕함을 강하게 질타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담대하게 선포한 것을 볼 때 에국심이 뛰어나고 매우 담대한 자(미 1:1-16).

② 동족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며 자신의 옷을 찢어 내어 던지기까지 애통할 만큼 깊은 동정심과 영혼에 대해 뜨거운 사랑의 소유자(미 1:8).

③ 자신의 유익에 따라 권세 자와 부자에게 아첨하며 그 메시지를 달리했던 동시대 거짓 선지자들과는 달리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를 위하며 자신의 유익에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민족의 죄를 지적한 것을 볼 때 정의롭고 진실하며 긍휼이 충만한 자(미 3:1-12).

④ 자신의 권능, 공의, 재능이 하나님께로부터 있음을 단언할 정도로 신념과 확신에 찬 자.

 

 

5. 구속사적 지위

① B.C.700년경 이미 메시야가 탄생하실 것을 정확히 예언한 선지자(미 5:2).

②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한 최초의 선지자(미 3:12).

③ 국가 권세 자들과 종교 지도자들 및 백성들의 죄악에 대해 책망하다가 그들에게 거짓 선지자로 배척 당한 참선지 자(미 2:6).

④ 백성들의 우상 숭배와 부도덕에 대한 강한 탄핵과 책망을 통해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자(미 1:1, 9-16; 대하 29:5-11).

⑤ 장차 메시야의 도래로 인해 실현되어질 참 평화와 정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를 전한 선지자(미 4, 5장).

⑥ 억눌린 자들의 친구요 가난한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대언자.

 

6. 평가 및 교훈

① 미가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로써 끝나지 않고 그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미 2:1-11), 그 이유들은 마치 물질만능과 명에, 야망, 향락 제일주의가 판을 치는 현대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불의에 전혀 휩쓸리지 아니하고 의연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미가의 모습은 동일한 세태 속에 처한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② 미가는 종교 생활과 의식은 있으되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이 없던 백성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헛된 신앙을 책망한다. 실로 진실함과 통회하는 마음이 없는 형식주의적인 신앙 생활로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오직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길 일이다(미 6:6-8).

③ 미가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처럼 남유다도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선민의 회복에 대한 강한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미 2:12, 13). 이러한 확신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성과 자기 백성을 향한 변치 않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때때로 여러 가지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경우에도 미가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천국 축복을 소망하는 가운데 능히 이를 극복하는 신앙인들이 다 되어야 할 것이다.

 

7. 핵심 성구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미3:8).

 

 

 

 

 

 

 

 

 

 

 

 

 

나훔 ― 니느웨에 임할 심판의 선포자

1. 인적 사항

① 나훔은 ‘위로자’, ‘안위자’라는 뜻. ② 유다 남쪽 시므온 지파의 땅인 렐고스 출신(나 1:1).

③ 예레미야, 스바냐와 동시대에 활동한 선지자. ④ 남왕국 유다의 선지자로 추정(나 1:15).

2. 시대적 배경

나훔은 B.C.663-612년경에 주로 활동했는데, 당시는 팔레스틴은 물론 애굽의 옛수도 중 하나인 테베(노아몬) 정복하며 그 위세를 떨쳤던 앗수르 제국이 서서히 쇠퇴하고, 대신 나보폴라살(B.C.625-605)이 창건한 신바벨론 제국이 서서히 근동지역의 강국으로 부상하던 때였다. 그리고 나훔 선지자의 예언대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신 바벨론 제국과 메대 연합군의 공격으로 B.C. 612년에 함락되기 직전 그 말기적 현상으로 정치․사회적으로 크게 부패하고 혼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런 시기에 나훔은 니느웨 멸망을 선포함으로써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하에 있다는 사실을 선민 이스라엘에게 일깨워 주고 또 더욱 이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암시적으로 교훈 한다.

3. 주요 생애

 

사역 이전

출생

엘고스에서 성장

나 1;1

사역 이후

니느웨의 멸망 선포

B.C. 663-612년경

나 1-3장

나훔서 기록

나 1:1

죽음

 

 

4. 성품

①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면서 하나님의 절대 공의를 거듭 선포한 것으로 보아 매우 강직하고 의분이 넘치는 자(나 1:2, 3, 11).

② 붕괴의 조짐도 전혀 없고 여전히 근동의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의 멸망을 담대히 선포한 것으로 보아 담대한 믿음의 소유자(나 1:7-9).

③ 다른 예언서에 비해 세련된 시적인 형식과 회화적인 문체로써 니느웨의 멸망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자(나 1:2-10).

5. 구속사적 지위

①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나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임을 증거 함으로써 앗수르의 위협을 받던 당시대의 유다 백성들과, 더 나아가 악한 세력으로부터 고통받는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 인내와 위로를 부여한 선지자(나 1:3).

② 70여년전 요나의 심판 경고로 회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패역해진 니느웨에 대하여 철저한 멸망을 선포한 증오와 분노의 선지자임.

6. 평가 및 교훈

① 아직 붕괴의 조짐이 없는, 난공불락의 천연 요새지에 위치한 부유한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한낱 공허한 소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훔은 죄를 결코 사하시지 않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품성에 근거하여 니느웨가 멸망하게 될 것을 담대히 선포하였다(나 1:3). 이러한 나훔은 홍수 심판이 있기 120년 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치 않고 홍수 심판을 경고한 노아에게 비견될 수 있다(창 6:3). 이와 같이 우리 모든 성도에게는 눈 앞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주의 말씀을 절대 신뢰하고 순종하는 자세가 절대 요청된다 하겠다.

하박국 ― 하나님과 대화로 의심의 해답을 찾은 선지자

1. 인적 사항

① 하박국은 ‘껴안은 자’, ‘매달리는 자’라는 뜻. ② 남유다의 선지자(합1:1). ③ 하박국서 저자.

④ 레위 지파 출신의 제사장 또는 성가대원으로 추정(합 3:19).

2. 시대적 배경

하박국은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와 신바벨론 제국의 창건자 나보폴라살(B.C.625-605년)과 메대의 시악사레스(B.C.625-585년)의 연합군에 의해 함락된 B.C.612년부터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제1차 침입을 당했던 B.C.605년 사이에 주로 활동한 선지자다. 이 시기에 남유다는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의 통치 시대로서 B.C.586년 바벨론 제국에 의한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이다.

3. 주요 생애

 

출생

남유다의 종교적, 도덕적 죄악의 심각성을 인식함

합 1:3,4

남유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의뢰

B.C.612-605년

합 1:2-4

갈대아로 인한 남유다의 심판에 대한 항변

합 1:12-2:1

하박국서 기록

합 1:1

죽음

 

 

4. 성품

① 자기 백성의 죄악 됨을 보고 징계를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랄 만큼 진정한 애국심의 소유자(합 1:2-11).

② 이해할 수 없는 신앙문제로 혼자 고민하지 않고 그 문제점을 하나님께 아뢰고 해답을 찾고자 한 것을 볼 때 용기 있고 지혜로운 자(합1:2; 2:1).

③ 자신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에 재차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하고 그 답변을 기다리고 바랄 만큼 매우 진지하고 솔직한 사색가(합 2:1).

5. 구속사적 지위

① 구약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찬송 중의 하나인 송시(頌詩)를 남긴 선지자(합3장).

②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위대한 진리를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선포한 자(합2:4).

평가 및 교훈

① 하박국은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왜 악을 허용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끊임없이 일어날 때에 혼자 고민하며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해답을 얻고자 하였고 하나님께만 끈질기게 매달렸다(합1:2-4). 오늘 우리도 성도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신앙문제로 심각한 고민과 낙심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우주와 역사를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있는 줄을 알고 그 분께 매어 달리는 하박국과 같은 참된 지혜자가 되어야 하겠다(롬 11:33).

② 자기 백성의 범죄 함을 보며 징계를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하박국처럼 우리는 이 나라와 민족의 범죄 함을 볼 때 안타까움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가? 혹 온 사회에 만연하는 불의함 때문에 오히려 넘어지고 마는 힘없는 자는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③ 하박국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증거 한다(합2:4). 이는 단지 습관적으로 입술로만 외치는 교리적 선언이 결코 아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인생의 고통과 문제를 실제로 체험하고 깊이 상고해 본 결과 가슴 깊은 곳에서 말하는 신앙고백이다. 우리도 각자의 삶 속에서 이같은 신앙고백이 항상 있어야 할 것이다.

스바냐 ― 여호와의 날을 선포한 선지자

 

1. 인적 사항

① 스바냐는 ‘여호와께서 숨겨 주신 자’, ‘보호하신 자’라는 뜻.

② 남 유다 제13대 왕 히스기야의 4대손, 아마랴의 증손, 그다랴의 손자 구시의 아들(습 1:1).

③ 남유다 제16대 왕 요시야 때 활동한 왕족 출신의 선지자.

④ 소선지서 스바냐서의 저자.

 

2. 시대적 배경

스바냐는 B.C. 630-625년경, 남유다 제16대 왕 요시야의 통치(B.C.640-609년) 때에 주로 활동한 선지자이다. 당시 근동의 패권국인 앗수르는 신바벨론 제국(B.C.625-539년)의 등장과 함께 그 세력이 급격히 쇠퇴해져 가던 때였다. 이 때에 요시야는 대외적으로는 선왕들이 친앗수르 정책을 폈던 것과는 달리 강력한 반 앗수르 정책을 폈다. 그리고 대내적으로는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는데 크게 주력하였다. 이러한 때에 스바냐는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본격적으로 개시하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책망과 열방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을 예언함으로써 그의 종교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던 것이다.

 

3. 주요 생애

 

사역 이전

출생

예루살렘 거주

습 1:1,8-11

사역 이후

남유다 백성에 대한 여호와의 날 심판 경고와 회개 촉구

B.C.630-625년경

습 1;2-2:3

열방에 대한 심판 선포

습 2:4-15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 대한 회복 선포

습 3:9-20

스바냐서 기록

습 1:1

죽음

 

 

4. 성품

①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왕과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위시하여 일반 백성들의 사회적 부패와 종교적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것으로 보아 불의에 대해 단호하고 사리 판단이 분명한 자(습 1:4-13).

② 여호와의 날에 대한 그의 메시지가 매우 힘있고 선명한 것을 보아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강한 확신을 소유한 매우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습 1:14-18).

③ 여호와의 날의 심판 예언이 흡사 죽은 자를 위해 부르는 진혼곡이나 장엄한 장송곡과도 같은 만가체(挽歌體) 운율을 갖추고 있으며, 이외에도 매우 아름다운 문장들을 많이 사용한 것 등을 볼 때 문학적 재능이 탁월한 자(습 1:12, 17; 2:4; 3:11-13).

 

5. 구속사적 지위

① ‘여호와의 날’의 심판 예언을 통해 의인과 악인이 종말에 맞이할 운명의 대조적인 모습을 매우 선명하게 예언한 선지자.

② 백성들의 죄악과 도덕적 결함과 신랄한 비판으로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자(습 1:2-3; 대하 34:3-8).

6. 평가 및 교훈

① 스바냐는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날로서 ‘여호와의 날’ 도래를 선포하고 있다. 이 날은 궁극적으로 세상 끝날에 세계 만민에게 시행될 최후 심판의 날을 예언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 최후 심판의 날에 영원한 멸망에 이를 악인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영원한 구원과 축복을 받을 의인의 삶을 살고 있는가를 두려운 마음으로 돌아볼 일이다.

② 남유다 전 지역에 걸쳐 사회․경제․종교 전반적인 부패함이 퍼져 있던 때 왕족 출신의 스바냐는 안일하게 그 사태를 방관한 것이 아니라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먼저 왕국 주변의 사람들이 부패와 종교 지도자들의 범죄 함으로 날카롭게 비판하였는데, 범국민적인 각성과 회개를 촉구하였다. 이는 부정 부패와 타락과 향락의 일변도로 치닫는 오늘의 이 사회 속에서 성도된 우리가 행해야 할 마땅한 본분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습 2:1-3).

③ 스바냐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심판 예언을 준엄하게 선포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한번 택한 백성을 결코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시며 징계 중에도 반드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사실도 확신 중에 선포한다. 이는 실로 현재 시험으로는 고난받는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힘써 전해야 할 것이다.

 

7. 핵심 성구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오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습 2:3).

 

 

 

 

 

 

 

 

 

 

 

 

 

 

 

 

 

 

 

 

 

 

 

 

 

학개 ― 성전 재건을 독려한 선지자

 

 

1. 인적 사항

① 학개는 ‘축제’, ‘즐거움’이라는 뜻.

② 바벨론 포로 생활 중 제사장 가문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됨.

③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중심으로 한 제1차 포로 귀환 때 귀환함(대하 36:23; 스 1:1).

④ B.C.520년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간 사역(학 1:1; 2:10).

 

2. 시대적 배경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B.C.539년에 바벨론을 함락하였다. 그 후 B.C.538년에 칙령을 내려서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선전을 재건토록 하였는데(스 1:1). 이듬해 바벨론 포로의 제1차 귀환이 이루어져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일반 회중 42,360명, 종 7,337명,노래하는 남녀 200명이 귀환하였다(스 2:1-67). 물론 이 가운데에는 학개도 끼어 있었다. 그리하여 성전 재건은 B.C.537년 유대인들의 귀환 후 바로 착공되었다. 그러나 고레스 왕이 죽은 후 귀환한 유대인들이 성전을 건축하여 페르시아를 배반하려 한다는 사마리아인들의 모함으로 인하여(스 4:11,12) 성전 건축은 곧 중단되어 B.C.520년까지 그대로 방치되었다. 그후 다리오 왕 2년(B.C. 520년)에 학개, 스룹바벨,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하려는 노력이 일었다. 때를 같이하여 사마리아 거주자들의 방해 공작이 다시 시작되었으며 심지어 백성들 가운데에서도 성전 재건에 대한 찬반이 분분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선지자 학개는 아직 성전을 재건할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핑계하면서 성전을 황폐한 채로 내버려두고 있는 백성들을 책망하여 다시금 재건 사업을 재개토록 촉구하였다. 이렇게 해서 재건하기 시작한 그룹바벨 성전은 비록 솔로몬 성전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었으나 B.C.516년 드디어 완공되었다.

 

3. 주요 생애

 

예루살렘 귀환 이전

출생

제1차 포로 귀환 때에 귀환

B.C. 537년

스 2:1-67

예루살렘 귀환 이후

중단된 성전 재건 작업을 독려함

B.C. 520년

학 1:1-15

학개서 기록

학 1:1-2:23

성전 완공

B.C. 516년

스 6:15-18

죽음

 

 

4. 성품

① 사마리아인의 방해 공작과 귀환한 유대인의 내분으로 선전 재건 작업이 마냥 지체되고 있을 때 분연히 일어나 성전 건축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임을 외치면서 성전 재건 작업을 독려한 것으로 보아 결단력과 신앙적 열심히 있는 자(학 1:12-15).

② 심각한 내분과 나태한 중에 있던 백성들도 학개의 권면을 기꺼이 청종하고 따른 점으로 보아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얻은 신실한 자(학 1:12, 13).

③ 새 성전이 솔로몬 성전에 비해 크기가 작은 것을 보고 실망한 유대인들에게 성전의 본래적 기능과 그 성전에 임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함으로써 그들에게 큰 힘을 불어넣었던 점으로 보아 미래에 대한 확고한 소망과 용기를 소유한 자(학 2:1-9).

5. 구속사적 지위

① 성전 재건에 대해 무관심하고 나태해져 있는 유대 百姓들을 각성시켜서 하루 빨리 성전을 재건토록 촉구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소명 받은 선지자(학 1:1-3).

② 유대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유대 백성에게 성전 재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과 유대 백성간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시킨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한 자.

③ 당시의 유대 총독인 스룹바벨(학 1:1;2:2,20)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고하라고 위임받은 하나님의 대언자(학 2:20, 21).

④ 패역한 유다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간 자들 중에서 여호와 신앙을 신실히 견지하여 회복된 남은 자(remnant)의 부류에 속한 자.

⑤ 하나님의 임재인 상징적 처소이며, 신약 시대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모형(엡 1:23)의 성전 재건을 이룩한 자.

 

6. 평가 및 교훈

① 선지자 학개는 상당의 고령의 나이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자이다(학2:3).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사역 자를 부르실 때는 그들의 인간적인 힘이나 재능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실하고 충성된 마음을 보심을 보여준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은 자신의 인간적인 능력을 과신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며 오직 70-80세로 추정되는 고령의 노인에게도 힘을 주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움직여 성전 재건에 임할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령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위엄 있게 선포한 학개 선지자의 열정을 가져야 할 것이다.

② 학개 선지자는 ‘판벽한 집’ 곧 벽과 지붕이 완전히 있는 집에 각양 장식으로 조각한 판을 붙인 화려한 집에 거하는 자들을 향해 그들의 최우선 순위가 하나님께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임을 지적하였다(학1:4). 오늘날 우리의 교회 내에도 부유한 자들이 많이 있다.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보다 자칫하면 세상적 쾌락을 좇을 가능성이 많은 바, 사역 자들은 그들을 더욱 더 경계시키어 자신들이 소유한 재물로 인하여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재물로 더욱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딤전 6:17-19).

③ 선지자 학개가 백성들을 향하여 여호와의 이름으로 성전을 재건할 것을 촉구하자 그들의 마음은 곧 흥분되었다(학 1:14). 이는 영적으로 어두워졌던 마음이 각성되고 일깨워졌다는 말인

바, 오늘날의 사역 자들도 영적으로 나태하고 마음이 어두워진 자들을 일깨울 수 있도록 늘 경건의 연습을 게을리 말며 주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여야 한다.

 

7. 핵심 성구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스 6:14).

 

 

 

 

 

 

 

 

 

 

스가랴 ― 포로 귀환민에게

메시야 도래의 소망을 제시한 선지자

 

 

1. 인적 사항

①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시는 사람’이라는 뜻.

② 잇도의 손자, 베가랴의 아들(슥 1:1, 7).

③ 제사장 가문 태생으로 어릴적부터 선지자 사명을 받음(느 12:1-4, 16; 슥 2:4).

④ 선지자 학개, 총독 스룹바벨, 대제사장 여호수아 보다 젊은 동시대의 인물.

⑤ 소선지서 스가랴의 저자(슥 1:1, 7).

 

2. 시대적 배경

스가랴는 B.C. 537년 제1차 바벨론 포로 귀환 때부터 이스라엘 제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된 이후, 그리고 B.C.485년 제2차 바벨론 포로 귀환이 있기 이전인 B.C.470년 경까지 주로 활동한 선지자이다. 이 시기는 신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킨 바사(페르시아) 제국이 근동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때이다.

 

3. 주요 생애

 

예루살렘 귀환 이전

출생

제1차 바벨론 포로 귀환시 예루살렘으로 귀환

B.C. 537년

느 12:16

예루살렘 귀환 이후

예언 활동 시작

B.C. 520년

슥 1:1

성전 재건 재개 촉구

스 5:1

여덟 가지 환상을 봄

슥 1:7-6:8

스가랴서 전반부 기록

B.C. 520-518년경

슥 1:1-8:23

성전 재건 완공

B.C. 516년

스 6:14,15

스가랴서 후반부 기록

B.C. 480-470년경

슥 9:1-14:21

죽음

 

 

4. 성품

① 성전 재건을 중단한 채 영적 무관심과 불신앙에 빠진 백성들을 독려하여 성전 재건을 완공할 만큼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자(스 5:1; 6:14, 15).

② 어려운 난관에 처한 백성들에게 영광스러운 미래의 소망을 선포함으로써 희망과 용기를 준 것으로 보아 확신있는 믿음과 인내를 소유한 자(슥 8:1-23).

③ 하나님께 받은 환상과 여러 명령을 구체적이고도 확신에 찬 모습으로 백성들에게 힘써 전한 것으로 보아 사명감이 투철하고 순종적인 자.

④ 여러 가지 환상을 보고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많은 예언을 행한 점으로 볼 때 영성이 깊고 뛰어난 자.

 

 

 

 

5. 구속사적 지위

① 제1차 바벨론 포로 귀환민들과 함께 성전 재건 사업을 통한 신정 국가 재건에 크게 이바지한 선지자.

② 묵시적이고 종말론적인 많은 환상과 예언을 행한 전대미문의 환상가(슥 1:7-6:8).

③ 학개 선지자와 함께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준비로써 포로 귀환민들에게 성전 재건을 독려한 선지자(스 6:14, 15 ; 슥 9:9-10:12).

 

6. 평가 및 교훈

① 성전 공사가 어려운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이라는 불평과 성전 재건에 대한 무관심과 나태 등으로 시들해가던 한 공동체의 신앙이 열정적인 말씀 선포자 스가랴에 의해 회복되었고, 이로써 성전 재건이라는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게 되었다(슥 8:9-13). 이처럼 우리 성도들 각자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신앙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열정적인 신앙인 들이 다 되어야 할 것이다.

② 스가랴는 성전 재건의 완성이 곧 영광스러운 메시야 왕국의 도래를 준비하는 것임을 나태와 실의에 빠져 있던 포로 귀환민들에게 제시하였다. 이는 또한 자칫 세상 연락에 취해 하나님의 일에 소홀히 할뿐만 아니라 현세에 대한 조급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소망조차 잃기 쉬운 현대 성도들에게도 주는 말씀인 바 이 말씀에 비추어 우리 자신들을 심각히 반성해 보는 계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마 6:10; 눅 9:62).

 

7. 핵심 성구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다”(스 6:14).

 

 

 

 

 

 

 

 

 

 

 

 

 

 

 

 

 

 

 

말라기 ―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

 

 

1. 인적 사항

① 말라기는 ‘나의 사자’, ‘나의 천사’라는 뜻.

② 말라기 선지자의 인적 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음.

③ 소선지서 말라기서의 저자(말 1:1).

 

2. 시대적 배경

말라기는 B.C. 444년 제3차 바벨론 포로 귀환 때로부터 자신의 예언서를 기록한 연대로 추정되는 B.C.430년까지 주로 활동한 선지자이다. 제3차 포로 귀환을 주도한 유대 총독 느혜미야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 첫 번째 사명으로 생각한 것은 먼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통해 제1차 포로 귀환(B.C.537년) 이후로 재건되기 시작한 신정 국가의 정치적 위상을 드높이고 또 종교 개혁을 통해 선민의 면모를 쇄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때에 말라기 선지자는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들의 부패와 십일조와 헌물규례의 정비, 이방 여인들과의 통혼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거론하여 책망함으로써 종교적 부흥 운동에 박차를 가하였다.

 

3. 주요 생애

 

사역 이전

출생

이스라엘의 타락 인식

사역 이후

제사장들의 범죄 지적과 회개 선포

B.C.444-430년경

말 1:6-2:9

백성들의 범죄 지적과 회개 선포

말 2:10-3:15

말라기서 기록

B.C. 430년경

말 1;1

죽음

 

 

4. 성품

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깊은 불신감을 불식시킨 것을 볼 때 매우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뛰어난 변론자(말 1:2-5).

② ‘보라’, ‘기억하라’, ‘명령하노라’ 등의 감탄사와 명령문이 많은 그의 예언을 통해 볼 때 매우 열정적이고 활기에 넘치는 신앙의 소유자(말 1:9 ; 2:1).

③ 모든 백성들이 성전 재건 이후 그 신앙이 나태하고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부패한 때에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예언을 확신 있게 선포한 것으로 볼 때 내세에 대한 소망이 분명한 자(말4:1-3).

 

5. 구속사적 지위

① 구약 시대 마지막 선지자로서 메시야의 도래에 앞서 세례 요한이 올 것을 예언함(말3:1; 4:4-6). 이로써 구약 시대를 마감하고 신약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교량 역할을 한 자.

② 제2성전 재건 후에도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가 즉각적으로 도래하지 않는 사실에 회의하고 영적 나태함에 빠진 자들에게 장차 임할 메시야 나라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소망을 선포한 선지자(말 4:1-3).

③ 예배 의식의 내적인 면을 강조한 다른 선지자들과 달리 외적 제사와 의식의 철저한 준수도 강조한 예언자(말 1:6-2:9 ; 3:7-12).

④ 구약 성경의 예언서 중 가장 변론적인 예언서의 저자.

 

6. 평가 및 교훈

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선지자들의 에언 대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자 많은 백성들은 절망과 회의, 그리고 영적 나태함에 빠져들어갔다. 이렇듯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다가도 즉각적으로 성취되지 않으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절망과 불신의 깊은 늪에 빠져 버리는 한계성을 자주 보인다. 그러나 말라기는 이처럼 절망에 빠져 회의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 과거에 베푸신 은혜 등을 돌아보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소망하며 인내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이는 실로 오늘날 세속적인 욕망에 쉽게 유혹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기 쉬운 우리 자신들에게 더욱 적절한 권면이라 아니할 수 없다.

② 말라기는 성의 없이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는 성전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낫다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외칠 만큼 겉치레뿐인 형식적인 의식으로서가 아니라 열심 있는 정직한 의식 준수를 강조하였다(1:6-2:9).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헌금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과 경외와 순종이 어울러진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만한 것인가를 돌아볼 일이다.

 

7. 핵심 성구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 3:1).

 

 

 

 

 

 

 

 

 

 

 

 

 

 

 

 

 

 

 

 

 

 

 

 

모르드개 ― 하만의 궤계를 물리친 민족의 파수꾼

 

1. 인적 사항

① 베냐민 사람 기스의 증손, 시므이의 손자, 야일의 아들(에 2:5).

② 에스더의 사촌 오빠(에2:7). ③ 바벨론 포로 당시 유대인의 지도자(스 2:2 ; 느7:7).

 

2. 시대적 배경

바사왕 아하수에로(B.C.485-464년) 당시에 활동한 인물이다. 이 시기에 바사는 애굽을 평정하고 헬라와의 평화 조약을 맺는 등 극도의 정치적, 경제적 번영을 누리던 때였다. 또한 이 때는 스룹바벨에 의해 이루어진 제1차 포로 귀환(B.C. 539년)이 있은 지 약 60여년이 지난 때였다. 이즈음 B.C.474년 경 하만의 흉계에 의해 바사에 거주하던 유다 백성들은 멸절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활약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는 놀라운 구원 사건이 발발하게 되었다.

 

3. 주요 생애

 

하만의 음모 이전

출생․성장

에 2:5

사촌동생 에스더를 양육

에 2:7

왕실 신복이 됨

에 3:2

왕 암살 음모를 폭로

에 2:21-23

하만의 노여움 삶

B.C. 474년

에 3:1-4

유대인 신분을 밝힘

에 3:4

하만의 음모 이후

에스더에게 민족 구원을 요청

B.C. 474년

에 4:7-14

구국금식기도 주도

에 4:15-17

바사의 총리대신 됨

에 8:2-15

새로운 칙령 선포

에 8:9

부림절 제정

B.C. 473년

에 9:21-32

죽음

 

 

4. 성품

① 에스더를 친딸처럼 훌륭히 양육하고 가르친 것으로 보아 두터운 사랑을 지닌 자(에 2:7).

② 왕의 암살 음모를 발견, 반역 사건을 저지시킨 것으로 보아 매사에 충성된 자(에2:20-23).

③ 자신은 유대인으로 하만에게 절할 수 없음을 말할 만큼 신앙에 절개를 지킨 자(에 3:2-4).

④ 하만의 유대인 암살 음모를 듣고 민족 구원을 위해 지혜를 다할 만큼 민족애가 강한 자.

⑤ 주저하는 에스더에게 용기를 주고, 민족을 구원토록 할만큼 담대하고 영적인 통찰력을 지닌 자(에 4:14).

⑥ 말살 위기로부터 유대인을 구할 때에 처음에는 스스로 생명을 보존하게 하고, 후에는 도리어 대적을 제어하게 한 것으로 보아 침착하고 치밀한 자(8:1-9:19).

 

5. 구속사적 지위

① 포로 생활 중에도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굳건히 지킨 자(에 3:2-4).

② 적 하만과 대항하여 싸워 승리한 자. 이는 궁극적으로 이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 곧 사단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함.

6. 평가 및 교훈

① 모르드개는 부모를 잃은 에스더를 친 자식처럼 양육하였고, 에스더가 왕후가 된 후에도 늘 에스더에게 관심을 갖고 하나님의 일들을 행하도록 돌보았다(에 2:6, 11 ; 4:8, 13-14). 이는 우리에게 참 이웃 사랑은 말과 혀만의 사랑이 아니요. 행함과 진실함이 뒤따라야 함을 교훈 한다(요일 3:18).

② 모르드개는 하만의 권세 앞에서도 자신은 유대인이므로 하나님 외의 누구에게도 경배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켰다(에 3:2-4). 그런데 우리는 때로 우리의 편의를 위하여 신앙을 숨긴적은 없는가? 나는 내 신앙을 지켜 나의 주 하나님께만 경배하겠다는 모르드개를 기억하자.

③ 모르드개는 유대인의 말살 음모를 들었을 때나, 또 나라의 치리자가 된 후에도 계속하여 민족을 돌아보고 그 종족의 안위를 도모하였다(에 4:1 ; 10:3). 이처럼 우리도 나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식의 편협함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민족의 구원을 위해 힘써 기도하자.

④ 모르드개는 만일 에스더가 잠잠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데로 말미암아 유다 백성이 놓임 받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에 4:14). 실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환경과 여건 중에서라도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사 41:10). 그러므로 우리는 모르드개 처럼 진퇴양난의 환난 속에서도 우리가 비록 넘어질지라도 아주 엎드려지지 않게 잡아주실 하나님의 도움과 사랑을 믿고 인내하자(롬 12:12).

 

7. 핵심 성구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존대하여 그 허다한 형제에게 굄을 받고 그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에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