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강의실 3학기

CYBER SCHOOL OF THEOLOGY

학부강의실 3학기

제목실천신학 운영자 2019-03-072022-07-13 17:06
작성자 Level 10

실천신학

 

 

실천신학연구 총론

 

이 글은 루돌프 보렌이 편집한 신학연구 총론 이라는 책의 실천신학이라는 제목하의 글이다. 이 책은 신학이ecumenical(에큐메니칼=세계교회주의)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할 현실과 관념론적 신학이 부딛힌 한계 속에서 신학은 교회의 실천을 전제로 해야 할 실천적 학문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는 새대적 요청 가운데 쓰여졌다.

 

그래서 이 글은 모든 신학분야는 실천신학의 전제가 되어야 하고 또 그것으로 귀결되어야 함을 힘주어 표현하고 있다. 또한 신학이 "교회"만을 섬기는 학문이 아니라 "세계"까지도 섬겨야 하는 학문이 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실천신학은 선교학이나ecumenics(에큐메닉스=교회재통일신학)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실제적인 모임과 보냄 받음을 다루는 학문이다." 실천신학은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교회의 참여를 다루는 학문이다.

 

I. 학문으로서의 실천신학

 

모든 신학은 전제성과 상관성, 그리고 통일성이란 지평에서의 독자성을유지하여야 한다.

 

1. 실천신학의 우위성

모든 신학은 실천성 여부에 따라 그 본질이 규명된다.

"신학이 교회적인 학문인 이상 교회와 관련을 맺을때에만 객관성을 인정받는다."

-- 그러므로 실천신학이 모든 신학의 전제가 된다.

 

1) 교회를 아는 것이 모든 신학적 통찰력의 전제가 된다.

2) 신학이 교회에서 나온것 , 그러나 신학이 교회를 규정하기도 한다.

** 항의

 

1) 실천신학을 강조함으로써 신학의 학문성에 위협을 주는 것은 아닌가 ?

-- 그러므로 전제인 것은 사실이나 한계점은 아니다.

2) 실천신학이 필요한가 - 신학자 모두가 신학자일 수 있지 않은가

-- 그러나 실천신학의 전문성, 깊이를 상실할 가능성 있다.

 

2. 다른 신학 분야의 우위성

 

실천신학이 교회의 현실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다른 신학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다른 신학분야는 실천신학의 객관성을 보증하는 전제"가된다. 그러나 실천신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실천신학은 프락시스라는 측면에서 다른 분야들을 결실로 이끄는 작업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실천신학은 "교회를 위한 모든 학문적이고 신학적인 연구의 실현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독자적인 학문성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실천신학은 신학 전반을 비판하는 기능을 갖는다.

 

II. 실천신학과 교회

 

실천신학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령과 말씀의 역사를 대상으로 삼는다. 교회의 선포, 행위, 제도는 말씀 안에서 진실한가를 신학적으로 비판,검토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개혁하는 신학. 교회의praxis(프락시스=실천)가 진정 성서가 말하는 바와 일치하는가. 비신화화 할 수도 있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전통주의에 빠지고 외면당할 것임

 

2. 교회 행위의 방향제시

 

" 실천신학은 교회를 향한 명령의 신학" 듣고 배우는 자세, 모범적인 실천행위 주도면밀한 선택 , 구체적인 방법의 제시, 셩령을 염두에 둔 교회의 미래 설계 - 실천신학은 미래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

 

실천신학은 또 투쟁하는 교회로서의 전략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는 항상 계획적이어야 한다.

 

III. 실천신학과 세계

 

두가지 생각할 점

 

1. 교회를 섬기는 세계

 

성령과 말씀은 교회 밖에서도 역사한다. 실천신학은 이러한 역사를 음미하면서 그것이 교회를 위해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다른 신학분야들과 협동하여야 한다.

 

2. 세계를 섬기는 교회

 

실천신학은 그 관심점을 교회 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두어야 한다. – 그 시대정신과 언어를 터득해야 한다. 그리고 비판도 해석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실천신학은 그 시대상을 가늠할 줄 알고, 활동영역을 찾아 갈 수 있는 기준을 명확하게 수립해야 한다.

 

교회가 해야할 적절한 말과 행동을 연구하고 지원하는 것이 바로 실천신학의 임무이다.

 

* 실천신학자는 쌍방의 중재자요 신학, 세계 쌍방의 가교를 이어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 대변자인 동시에 중재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VI. 실천신학의 연구방법

 

1. 다른 분야의 연구가 있어야 한다.

2. 타성에 젖지 않아야 한다. 실험정신 필요함

3. 자유롭게 의문을 제기하고 연구하는 자세

4. 교회의 전반적인 차원을 고려하며

5. 비판적인 참여

6. 모범사례, 전기에 대한 연구

7. 주변의 세계와 새대 현상들을 신학적으로 고찰

8. 현지 실습

다른 분야들과 의 공동 문제대처

 

. 실천신학의 분야

1. 기독교 생활론

2. 설교학

3. 교회 교육학

4. 예배학

5. 목회학

6. 사역학

7. 교회 행정학

 

 

VI. 신학과 실천

 

 

신학과 실천이라는 문제는 신학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되었다. 특히 근래에 와서 실천신학이라는 분야는 모든 신학자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해방신학자들에게서 정통 프락시스로서의 신학에 대해서 듣고 있다. 이는 신학일반으로 하여금 더욱 현실과 관련을 맺도록 하며, 이론과 실천, 사상과 생활, 고전적인 신학분야들과 실천신학등의 괴리를 메꾸려는 갈망이 커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팔리는 "목사의 패러다임 밖에서의 신학과 실천"이라는 논문 속에서 실천신학이 "목사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실천신학은 목사의 패러다임 안에서가 아니라 세계 속에서의 교회의 삶에 보다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그의 논문을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신학에 대한 많은 표현들은 서로 다른 목표들을 지향해 왔다. 그래서 신학에 대한 언급은 많은 혼돈을 가져왔는데, 그 모호성은 두가지 원인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신학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그것이 활용되고 있는 상황, 맥락을 명시하지 못한데서 왔다는 점이다. 둘째는 신학 분야의 모호성이다.즉 그 신학이 어떤 종류의 것인가 하는 점이다. 팔리는 여기에서 신학의 네가지 형태를 들면서 신학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를 기술하려고 한다.

 

1) habitus(습관,버릇) 로서의 신학 ( 영혼 자체의 기질, 능력, 또는 행위 .."지혜" )로서의 신학

 

2) 단일한 과학으로서의 신학 ( 철학, 수사학, 천문학 ... )

 

3) 종교개혁, 계몽운동 이후 : "비판적 원리"가 수립되면서 habitus로서의 신학과 단일한 과학으로서의 신학은 다양한 신학적인 "과학"들로서 대체되었다. 예를들면 구약, 신약, 교회사 등의 학과들이었다. 그래서 신학은 비교적 독립적인 일단의 학과들을 총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4) 현대에 와서 habitus로서의 신학은 신학으로서가 아니라 통찰, 실존적 지식, 이해 등으로 잔존하게 되었다. 또한 과학으로서의 신학은 단일한 과업으로서가 아니라 여러가지 학술적인 분과들로서 이해 되어지게 된다.

여기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점은 신학의 분야 자체가 명확히 제시되어있지 않을 때, 신학과 실천에 관해서 어떠한 명확한 해명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가 역설하는 점은 habitus로서의 신학의 상실과 그 결과 나타나는 신학의 협소화 경향의 결과들에 대한 것이다. 신학이란 용어가 일단의 연구들의 학과로 명명되고 나자, 그것은 더이상 인격적-실존적인 habitus지혜나 또는 단일한 과학으로서 다루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쉴라이에르마허에게 있어서도 habitus의 신학이나 과학으로서의 신학에 대한 관심은 사라져버렸고 그 결과 신학의 편협화, 교직화 (clericalization)와 그 결과로 교회에 실천의 관건을 종속시키게 하는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habitus 로서의 신학이 상실됨으로 말미암아 통합적 이해가 상실되었고, 신학이 독립적인 학문 영역들로 분산됨으로 말미암아 분야가 모호하게 되었다. 또한 신앙이 배재된 신학은 그 실천적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또 분석하기를 실천에는 세가지 차원 즉 인격적- 실존적 차원, 사회적- 정치적 차원, 교회적 차원이 있는데 신학 교육의 문제점은 교회적 차원이 인격적 - 실존적 차원과 사회적 - 정치적 차원을 배제시켜 버릴만큼 지배적이었다는 사실이다

 

팔리는 실천신학이 "목사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목사가 교회 내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설교학,예배학, 교리교육, 목양학 등의 특수한 기술들과 실천신학을 결합시키는 쉴라이에르마허 이후의 경향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팔리가 실천신학의 중심을 "교회의 현존"의 현상학에 둘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실천신학이 교회 내의 삶에 배타적으로 집중되는 데서 벗어나 세계속에서의 교회의 삶에 보다 더 중점을 두고자 함이다. 팔리는 지혜로서의 신학의 구심성을 회복시키고, "교회의 구속적 현존"의 현상학에 실천신학을 둠으로써 그것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하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 실천신학이 성직자의 패러다임에 의해 포로가 되는 것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실천신학은 목회자의 기능에 대한 신학의 차원을 넘어서 총체적인 시각을 가져야야 할 것이며, 이론과 실천의 역동적 과정 속에서 세계를 섬기는 기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팔리의 지적은 자칫 기술적인 모습으로 흐를 수 있는 실천신학을 총체적인 실천에 대한 학문의 영역으로 개방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역할을 감당하리라고 보여진다.

 

 

VII. 목사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신학과 실천

 

 

신학과 실천이라는 문제는 신학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되었다. 특히 근래에 와서 실천신학이라는 분야는 모든 신학자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해방신학자들에게서 정통 프락시스로서의 신학에 대해서 듣고 있다. 이는 신학일반으로 하여금 더욱 현실과 관련을 맺도록 하며, 이론과 실천, 사상과 생활, 고전적인 신학분야들과 실천신학등의 괴리를 메꾸려는 갈망이 커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팔리는 "목사의 패러다임 밖에서의 신학과 실천"이라는 논문 속에서 실천신학이 "목사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실천신학은 목사의 패러다임 안에서가 아니라 세계 속에서의 교회의 삶에 보다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그의 논문을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신학에 대한 많은 표현들은 서로 다른 목표들을 지향해 왔다. 그래서 신학에 대한 언급은 많은 혼돈을 가져왔는데, 그 모호성은 두가지 원인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신학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그것이 활용되고 있는 상황, 맥락을 명시하지 못한데서 왔다는 점이다. 둘째는 신학 분야의 모호성이다. 즉 그 신학이 어떤 종류의 것인가 하는 점이다. 팔리는 여기에서 신학의 네가지 형태를 들면서 신학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를 기술하려고 한다.

 

1) habitus 로서의 신학 ( 영혼 자체의 기질, 능력, 또는 행위 ... "지혜")로서의 신학 2) 단일한 과학으로서의 신학 ( 철학, 수사학, 천문학 ...) 3) 종교개혁, 계몽운동 이후 : "비판적 원리"가 수립되면서 habitus로서의 신학과 단일한 과학으로서의 신학은 다양한 신학적인 "과학"들로서 대

체되었다. 예를들면 구약, 신약, 교회사 등의 학과들이었다. 그래서 신학은 비교적 독립적인 일단의 학과들을 총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4) 현대에 와서 habitus로서의 신학은 신학으로서가 아니라 통찰, 실존적 지식,이해 등으로 잔존하게 되었다. 또한 과학으로서의 신학은 단일한 과업으로서가 아니라 여러가지 학술적인 분과들로서 이해 되어지게 된다.

 

여기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점은 신학의 분야 자체가 명확히 제시되어있지 않을 때, 신학과 실천에 관해서 어떠한 명확한 해명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가 역설하는 점은 habitus로서의 신학의 상실과 그 결과 나타나는 신학의 협소화 경향의 결과들에 대한 것이다. 신학이란 용어가 일단의 연구들의 학과로 명명되고 나자, 그것은 더이상 인격적-실존적인 habitus지혜나 또는 단일한 과학으로서 다루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쉴라이에르마허에게 있어서도 habitus의 신학이나 과학으로서의 신학에 대한 관심은 사라져버렸고 그 결과 신학의 편협화, 교직화 (clericalization)와 그 결과로 교회에 실천의 관건을 종속시키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habitus 로서의 신학이 상실됨으로 말미암아 통합적 이해가 상실되었고, 신학이 독립적인 학문 영역들로 분산됨으로 말미암아 분야가 모호하게 되었다. 또한 신앙이 배재된 신학은 그 실천적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또 분석하기를 실천에는 세가지 차원 즉 인격적- 실존적 차원, 사회적- 정치적 차원, 교회적 차원이 있는데 신학 교육의 문제점은 교회적차원이 인격적 - 실존적 차원과 사회적 - 정치적 차원을 배제시켜 버릴만큼 지배적이었다는 사실이다

 

팔리는 실천신학이 "목사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것은 목사가 교회 내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설교학,예배학, 교

리교육, 목양학 등의 특수한 기술들과 실천신학을 결합시키는 쉴라이에르마

허 이후의 경향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팔리가 실천신학의 중

심을 "교회의 현존"의 현상학에 둘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실천신학이 교회

내의 삶에 배타적으로 집중되는 데서 벗어나 세계 속에서의 교회의 삶에 보

다 더 중점을 두고자 함이다.

 

팔리는 지혜로서의 신학의 구심성을 회복시키고, "교회의 구속적 현존"의

현상학에 실천신학을 둠으로써 그것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하고자 한다. 그

렇게 함으로 실천신학이 성직자의 패러다임에 의해 포로가 되는 것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실천신학은 목회자의 기능에 대한 신학의 차원을 넘어서 총체적인

시각을 갖아야 할 것이며, 이론과 실천의 역동적 과정 속에서 세계를 섬기

는 기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팔리의 지적은 자칫 기술적인

모습으로 흐를 수 있는 실천신학을 총체적인 실천에 대한 학문의 영역으로

개방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역할을 감당하리라고 보여진다.

 

VIII. 신학과 실천 의 기초적인 관점들 

 

2. 기초적인 관점들

4. 실천신학의 기초들 / 데이비드 트레이시

1. 신학의 본질

트레이시는 공적인 신학 (public theology)으로서의 실천신학을 위한 기초족 도식을 제한하려 한다. 실천신학은 신학적 윤리와 인간 변혁의 프락시스적 표준을 규명함으로써 공적인 특성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먼저 실천신학이 프락시스의 영역에 이르는데 필요한 실제적인 이론들을 밝힘으로써 프락시스가 단지 이론을 적용하거나 또는 부정하는데서 벗어나 이론(기초신학과 조직신학)을 승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

 

* 이것을 위한 기본전략

 

실천신학은 "적용신학"일 뿐이다. 프락시스가 단지 실천에 그치는것. 프락시스 우위의 입장, 이론을 거부. 프락시스가 진리 추구에 필요한 표준을 제공한다. 

단점:프락시스 속에 불가피하게 이론이 존재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

 

# 제 3 의 대안

이전의 신학적 이론들 밝히기 ; 신학적 이론들은 변혁적 프락시스와 윤리적 반성의 표준에 관한 관심의 영역으로 옮거 갈 때에 사용 가능.

"신학으로서"(as theology)의 신학이 무엇인가에 관한 이론

신학의 우선적인 두 소분과들(기초신학, 조직신학)의 표준과 특성에관한 이론.

 

이는 실천신학에서 발전되는 변혁의 표준과 신학적 윤리학을 통하여 적절한 승화를 수용하게 된다. 신학은 기독교의 사실과 현대적 상황사이의 상호 비판적인 상호 관계를 해석학적으로 규명하는 분과이다.

 

기독교 사실에 대한 해석의 의미

진리와 현대적 상황에 대한 해석의 의미

진리 사이의 비판적인 상관관계를 -- 규명하는 분과이다.

 

이러한 신학은 추상적인 것을 다루는 근본신학과 진리의 해석학적 표준을 제시하는 조직신학, 그리고 구체적인 프락시스적 표준에 관계하는 실천신학으로 나눌 수 있다.

근본신학 (추상적인 것) ; 필연적이고 추상적인 표준(초월적, 형이상학적)

조직신학 (진리의 해석학적 표준)

실천신학 (구체적인 것) ; 인격적,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자연적 변혁과 윤리적 반성으로서의 진리의 구체적인 프락시스적 표준

 

* 신학 정의에 있어서 고려되어야할 요소들

상호 비판적인 상호관계 (mutually critical correlation)

쌍방이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으며, 각기의 질문들과 대답들 사이에도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해석된다" (interpreted) : 기독교의 사실과 현대적 상황 모두에 적용됨 기독교의 사실 ------------------------ 현대적 상황

해석 해석

* 우리는 이 양 실재를 중재하고 재표현하고 따라서 해석해야 한다.

"의미와 진리" (meaning and truth) : 단순한 가정은 안됨 but 제시되고 진술되어야 함

 

"기독교적 사실" (the cristion fact)

사실 : 기독교는 우리가 발명해 낸 어떤것이 아니라는 것

이는 기독교적 사실의 모든 영역을 포함한다

 

"현대적 상황" (contemporary situation)

상황이 항상 이미 어떤 전통의 어떤 해석에 관련되어 있다

그 상황의 실제적인 다원주의를 상기시켜 준다.

 

2. 근본신학

"근본신학"은 명백한 공적인 방식으로 신학의 상호 비판적인 상관관계들을 정립한다. 구체적인 것으로 부터 필요한 것을 추상화 시키는 데 관련되어 있다.

 

근본신학의 논점은 공개적인 기초 위에서 다루어 져야 할 것이다. 이성의 개념이 중요함.(포괄적 개념의..)

 

3. 조직신학

"조직신학"은 특수한 상황 속에서의 & 특수한 상황을 위한 특수한 종교적 전통의 해석이다. 핵심은 '해석'의 개념이다. 이 해석은 공적인 행위가 되어야 한다.

 

사실상 본문, 사건, 또는 상징이 인간 정신의 어떤 고전적 표현인 한, 본문 자체가 바로 특수성을 통해서 공인성에 도달할 수 있다. 여기에는 다원주의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공개적인 토의에 임하게 된다.

 

이러한 조직신학의 해석학적 특성에 관해 말한다는 것은 의미에 관해서 말한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진리에 관해서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학적 결과들은 실천신학을 위한 의미를 내포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보다 포괄적인 이성의 개념은 프락시스를 통해서 적용의 검증에 개방적인 것이 된다.

 

4. 실천신학

근본신학의 필수적이고 추상적인 표준들 및 노출의 구체적인 해석학적 표준들을 가지고, 실천신학자는 뚜렷한 임무 수행에 들어간다. 실천신학의 임무는 이 전망을 검증하고, 그 검증 속에서 그것을 변혁시키는 것이다.

 

* 실천신학의 발전에 대한 제안

1. 인간 변혁의 모형들을 발전시키는 협력적인 노력. 다른 학문간에 서로간의 적합성에 관한 상호 비판적인 상관관계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2. 협력적인 기초 위에서, 인간 변혁의 공개적인 주장들에 대한 분석을 발전시켜야 할것이다. 협력적으로 검증될 수 있을 것이다.

3. 해석학적 요소의 중요성

4. 이 세 단계들은, 해방적 지향성을 가진 도덕적 프락시스의 세속적 모형들과 기독교적 신앙의 프락시스 사이에서 얻을 수 있는 상호 비판적 상관관계에 대한 엄격한 반성 속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모든 신학의 협력적 성격은 (근본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의 어디에서든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할 것이다.

 

5. 실천신학의 차원들 : 의미, 행동, 자아 / 토마스 오글트리

오늘날의 신학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들은, 신학 연구의 학술적인 측면과 실천적인 측면을 연결하는 데에 있다. 우리는 비판적인 사고와 삶의 주요한 관심사들 사이를 연결시키는 감각을 잃어버리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의 실천적 사고에 있어서 "기술"에 우선적인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신학의 실체를 이데올로기화 시키고 있다.

 

우리가 시도하는 것은, 신학적인 작업에 있어서 이론과 실천의 관계 (구분 및 연관성)에 있어서 새로운 이해를 재건 하는데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보다 포괄적이고도 풍부한 의미의 실천으로서, 실제적인 참여 속에서 기술이 나타내는 역할을 전문화시키면서도 제한시키지 않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 저자의 목표는 신학 연구의 주요한 특징들을 상호간의 관계 속에서 재건하는데 공헌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이끌어가는 주제는, 모든신학은 - 적절하게 인식되는 한 - 실천신학이며, 이 시점에서 확실히 목사의 교육이 조명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천신학은 신학의 여러 부분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오히려 실천적이라는 말은 전체로서의 하나의 신학이

추구하는 중심적인 의도로 특징지어진다.

 

신학은 그 모든 표현이 인간실존의 기본적인 문제들에 관계된다는 의미에서 실천적이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삶의 순례에 관계를 맺는다.

 

이론신학은 우리가 경험으로부터 간격을 둠으로써 우리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보다 정확히 보기 위한 것이다. 본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보는 활동 속에서 우리 경험의 다양한 측면들을 보다 더 충분히 우리의 지식, 행동, 존재 속으로 결합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론적인 연구들은 '실천적인 과업들 속에 속하되 간격을 두는 움직임(distancing movement)으로서 보는 것이 더 낫다. 우리의 목표는 인간 이해의 역동성 속에서 그것들이 차지하는 역할을 파악하는 데 있다. 우리가 이론적 발판의 기반을 우리의 실천적 삶의 참여에다 둘 때에, 그 임무를 달성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게 될 것이다.

 

* 실천신학의 세 가지 차원들

 

1. 의미의 차원

이것은 세계 속의 우리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관계되어 있다. 이 이해들은 많은 부분이 전통에 의해서 형성된다. 여기서 중요한 관심사는 진리에 있는데, 이 진리는 존재의 의미, 그리고 그 속에서의 우리의 위치를 노출하는 것 (계시적인 성격을 지닌다.) 과 관계가 있다.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은 진리 뿐이다. 그러한 진리는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것이다. 진리의 분별은 항상 구속의 사건과 함께 일어난다.

 

진리를 파악하고 표명하는 데는 이론적인 연구들을 필요로 한다. (격리)

 

* 그것은 다음 "세가지 고찰"을 통해 이루어 진다.

 

우리에게 진리를 입증해 주는 전통들은 본문들 속에 침전되어 있다.

이를 격리의 차원에서 연구하지만, 그것들은 우리의 상황에 우리의 진리가 되는 한에서만 진리를 말할 수 있다.

 

신앙에 주어진 진리를 비판적으로, 우리의 나머지 경험에 일관성 있게 관계시키려는 시도. 우리의 연구는 신앙에 주어진 진리를 해방시키는 데 대한 긍정과 인식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 목적은 "제 2의 순진성"(리꾀르)으로서, 이 속에서 우리는 거룩한 존재 앞에 아이처럼 서게 된다.

 

언어적 인식 가능성의 요청 ; 우리가 파악하는 진리들을 진술하기 위하여 명백성, 논리적 일관성, 개념적인 일관성의 분과들을 채택한다.

 

우리는 각 세대마다 신앙 내용을 새롭게 확정하려는 모험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문화에 새롭게 도전한다. 그리함으로 우리가 존중하는 신앙의 폭발적인 힘이 다시 한번 언어 속에 표현될 수 있도록 한다.

 

2. 행동의 차원

이는 기독교 신앙으로 하여금 교회를 세우고 세계 속에서 교회의 선교를 수행하도록 하는 일에 관계되어 있다. 의미의 차원은 행동의 차원에 대한 인식 가능성의 수평선을 제공한다. 그러나 의미의 차원이 행동의 차원을 완전히 포괄하지 못한다.

 

행동의 차원에서 우리는 일상화 되고, 유형화 되어 있는 많은 것들을 발견한다. 이것이 사회를 유지한다. 그밖의 행동들은 전략적인 것이다. 그것은 특수한 상황들에 대한 특수한 반응들이다. 이것들은 새로운 판단을 필요로 한다.

 

이 차원에 있어서 중심되는 관심은 '타당성'에 있다. 이는 도덕적인 범주 보다도 포괄적이다. 그러나 행동은 또한 기교와 내실(skills and competencies)도 전제한다. 기교란 우리가 적당하다고 판단한 그것들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며, 내실이란 세속적 사건들의 계속되는 과정 속으로

우리의 설계들을 투입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 행동의 차원 속에서 간격을 두는 "세 유형"

 

1. 역사 연구를 통해서 인습적인 타당성의 관념들로 부터 간격을 두고 그를 고찰한다.

 

2. 인문과학들은 우리로 하여금 구체적인 세속적 참여로 부터 거리를 두는 일을 촉진시켜 준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의 타당성을 활성화 시키는 문제에 관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다. 행동의 역동성을 밝혀주며, 효과적인 행동을 하는 데 필요한 기교들과 내실들에 관해 제시해 준다.

 

3. 축어록, 중대한 사건들에 관한 기록, 목회의 장치들에 대한 서술, 등의 이용은 순수한 이론적인 연구들과 연결된다.

 

3. 자아의 차원

실천신학은 궁극적으로 자아의 형성에 관심을 갖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의 삶 속에 기독교 신앙을 구현시키는 일을 다루어야 한다.

자아의 차원에서 실제적인 관심은 '신실성'이라고 본다. 나의 삶이 통합성을 가지는 한, 그 통합성은 이에 대한 나의 신실성 속에 놓여 있으며, 이것도 역시 나의 삶, 나의 존재, 나의 가치의 원천이 된다. 교역은 이를 도울 수 있고, 이는 개인의 차원 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차원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신실성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의 소산이

다.

 

* 이와 같이 실천신학에는 "세가지 차원"을 지니고 있다.

 

의미의 차원에서, 우리는 우리의 전통들에 의해 전해진 진리들을 우리자신의 의미의 세계 속에 적응시키는 일을 모색한다.

행동의 차원에서 우리는 올바르고 적합한 것에 대한 우리의 지각능력이 선택한 계획들을 현재의 세속적 사건들의 과정 속에 실현시키고자 모색한다.

자아의 차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를 구현하고, 기독교적 존재의 목적인 신실성을 다른 사람들의 존재 속에 심어주는 일을 모색한다.

 

4. 실천신학 차원의 통합

이 문제는 실천신학 차원들 사이의 관계들을 다루는 것이다. 이 과제는 바로 우리의 지식, 행동, 존재 사이의 통일성의 척도를 실현시키는 것이다.이것은 종말론적인 희망이다.

 

우리는 실천신학의 특정한 차원이 나타나는 반성 이전의 경험의 통일성을 제시하고 싶다. 지식, 행동, 존재는 본질적으로 전혀 분리되어 있거나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서로 침투하며, 조건을 만들고 형태를 갖춘다. 동시에 인간 실존의 복잡성 때문에 이 셋 사이의 관계 속에는 긴장이 발생하며, 분열과 양분현상이 생긴다.

 

이의 극복을 위해, 전체적인 교과과정과 전체적인 교육경험 지식, 행동, 존재의 통합이 분명한 주제와 우선적인 임무가 될 수 있는 특수한 장치들과 특수한 교육경험들도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경험의 재통합을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