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자료실 1

CYBER SCHOOL OF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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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으로 헌신한 사람 (헌신예배) 운영자 2019-03-082022-07-13 10:14
작성자 Level 10


성령으로 헌신한 사람
로마서17장3-5절

옛날 백여 년 전 어떤 부자 집 여인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읽었습니다. 그는 매우 부자였
지만 또한 매우 검소했습니다. 그런 여인이 자기 집에 제일 먼저 전기를 가설하겠다고 하자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드디어 전기를 가설하고 몇 주 후 계량기 검침원이 찾아왔습니다. 검침원이 전기가 잘 들어
오고 있는지 묻자 여자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검침원이 다시 물었습니다.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군요. 부인 댁 계량기는 거의 제자리걸음입니다. 전기를 쓰고 계신 겁니까?\"
\"물론이죠.\" 여자가 말했습니다. \"저녁마다 해가 지면 촛불 붙이는 데 필요한 시간만큼 전
깃불을 켜지요. 그리고는 꺼버립니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이 여인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똑같은 실수를 하고 있
지는 않습니까? 성령 충만한 은혜를 약속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나약한 삶
을 살고 있지 않으세요?
어떤 안타까운 부자처럼 전기를 가설해 놓고도 여전히 촛불을 켜고 살 듯이, 성령 충만함을
축복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력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님은 우리의 삶을 촛불 인생에서 전기 인생으로 그 능력의 등급이 달라지게 해주십니
다.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능력이 흘러 넘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은 능력의 영이
십니다
나의 한계를 훨씬 능가하는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성령님은 창조적 인생을 살게 해주십니
다.

존 맥스웰이 쓴「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워라」에 한 등대지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암벽 해안에서 일하던 등대지기는 한 달에 한번씩 기름을 받아 등댓불을 지켰습니다. 등대
가 마을에서 멀지 않다 보니 손님들이 자주 왔습니다. 하루는 어떤 여자가 난방에 필요하다
며 기름을 구하러 왔습니다. 또 하루는 어느 남자가 등잔불을 켠다며 기름을 청했습니다.
모두 그럴듯한 요구인지라 이 등대지기는 달라는 대로 기름을 다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등대의 불을 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여러 척의 배가 암초에 부딪쳤습니다. 그래서 상부에서는 이 등대지기를 다음과
같이 질책했습니다. \"당신에게 기름을 공급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즉 등대를 밝히라는 것이
었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신 것은 헌신하라고 주신 능력입니다. 우리는 그
기름을 잘못된 일에 소모해서는 안됩니다. 등대의 기름은 배들이 항구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데 쓰이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곧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목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좀 더 거룩한 일에 헌신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성령의 감동으로 충만함을 입은 후부터, 전 인생을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사도들이 성령 충만함을 입은 후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전도를 위해 헌신했습니
다.
바울도 성령의 능력세례를 받은 이후로 그는 목숨을 다 바쳐 전폭적인 헌신의 삶을 살았습
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그런 한 인물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그들 역시 사도 바울을 만나 성령세례를 받자마자 자신들의 인생을 전적으로 헌신하였습니
다.
자신의 인생을 과감하게 헌신했습니다. 크게 헌신했습니다. 미련 없이 헌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오직 성령 충만함을 입을수록 후회 없는 헌신의 삶을 살게 합니다. 할렐루야!

1. 인생의 목적이 달라진 헌신의 사람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천막제조업이라는 사업상의 이유로 사도 바울을 만났습니다. 그
리고는 헌신의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은 이후로 인생의 목적이 확연하게 달라진 것입니다. 그들은 사업상의 동
업자가 사역상의 동역자로 바뀐 것입니다(행 18:1-4. 딛 3:13).
그래서 사도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이렇게 고급하게 소개합니다(3절).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다.』
여기 동역자라는 헬라어는 \"짐을 같이 지고, 매를 같이 맞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본문 4절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들은 생명을 바쳐 헌신하는 동역
자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예수 믿고 성령 충만 받은 후에 주업이 바뀌었습니다. 돈을 추구하는
대신에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대신에 이웃의 생
명구원에 헌신하는 자로 바뀌었습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는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면서 독
학을 했습니다. 독학을 하면서도 그는 여러 나라의 언어를 꾸준히 공부하여 능숙하게 구사
할 수 있는 능력까지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케리의 친척 동생이 자기가 들어가기로 한 옥스퍼드의 단과대학에 케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은 단과 대학의 한 유명한 어학교수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
다. 대화 중에 그 교수는 케리의 어학 실력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케리에게 \"
당신이 이 학교에 들어오면 이 나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오. 그리고 이 나라의 여왕
께서도 당신을 기뻐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말에 케리는 이렇게 거절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여왕을 말씀하셨는데, 제게는 이미 저의 전 생애를 건 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저는 여왕보다 더 높으신 분의 부
름을 받았고, 그분을 향한 저의 충성은 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케리는 그 교수의 제의를 거절하고 세계 선교를 위해서 인도로 떠났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내 인생의 비전과 목적에 새로운 헌신의 도약이 있기를 바
랍니다.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해 달
려가는 고귀한 인생』(빌 3:14)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부부가 함께 헌신한 사람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신약성경에서 여섯 번이나 소개됩니다. 참 훌륭한 부부입니다.
바울 서신에 세 번 소개되고(롬 16:3. 고전 16:19. 딤후 4:19), 누가가 쓴 사도행전에 세
번 소개됩니다(18:2,18,26).
그런데 여섯 번 모두 다 부부의 이름이 동시에 부각됩니다. 물론 여섯 번 중에서 네 번은
아내의 이름이 먼저 소개되는 이색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아마도 브리스가가 헌신의 주도자
였을 것입니다.
여하튼 부부 중 누군가가 헌신의 주도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이 먼저 헌신을
주도하면 결국 함께 헌신하는 축복을 누립니다.
그래서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그들의 이름이 항상 함께 언급됩니다.
성경에 이런 케이스가 흔치 않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부부가 함께 열정적으로 헌신했음을 상기시켜주는 메시지입니다.

그들은 고린도에서 사업상의 이유로 바울을 만나 선교의 헌신자가 됩니다. 그리고는 바울을
따라 에베소로 갑니다. 그리고 로마까지도 같이 가서 헌신합니다.
그들은 부부가 함께 생명 걸고 헌신하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줍니다(4절).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지구촌교회 성도들은 모든 부부가 함께 헌신하는 거룩한 동역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이 함께 헌신했습니다.
사무엘의 부모 엘가나와 한나가 함께 헌신했습니다. 한나가 황소 세 마리 바칠 수 있었던
것은 남편 엘가나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십일조를 허용해준 것 자체가 헌신
입니다.
엘리사 선지자를 주도면밀하게 섬겼던 수넴 여인도 남편의 묵묵한 협조로 잘 헌신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함께 기도하며 헌신하는 경건한 부부였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부인과 함께 몸바쳐 헌신하는 거룩한 부부였습니다.
빌립 집사는 부부와 자녀들까지 다 동원하여 열정적인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우리 지구촌교회 성도들이 모두 다 이런 헌신의 동반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극단적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입니다. 그래서 부부 사이
에도 어떤 헌신이나 희생심이 없습니다. 자기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혼률이 높
아져만 갑니다.
그래서 21세기 신세대의 가치관을 PANTS 신드롬이라고 합니다.
Personal : 개인적인 것을 중시합니다. 자기를 최우선합니다.
Amusement : 흥미본위로 살아갑니다. 의미나 가치보다는 즐기는 것을 우선으로 합니다.
Natural : 자연스러움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옷도 있는 그대로 입고 다닙니다. 찢어진 옷도
입습니다
Transborder : 성별 구분이 모호합니다. 남녀의 성별과 역할 구분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Self-loving : 극단적인 자기 사랑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서로 다른 성향과 기질의 사람도 하나되게 하십니다. 한 비전, 한 꿈, 한
가슴, 한 열정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헌신과 희생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성령으로 함께 헌신하는 동역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성령 충만하고, 함께 성경공부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전도하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봉사하고, 함께 활동하는 헌신의 동역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교회 중심으로 헌신한 사람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의 성령 충만함은 최고의 이상적 모델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곧 그
들이 교회 중심으로 헌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 집을 교회로 사용했습니다. 고린도에서도, 에베소에서도, 그리
고 로마에서도 여전히 자기 집을 교회로 개방하고 있습니다(5절). \"저희 교회에게도 문안하
라.\"
그들은 자기 집 안에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6장 19절을 보면, \"그들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라고 소개합니다.
특별히 그들은 짚시 상인이었기에 나그네 인생으로 환경이 안정되지 못하였는데도, 온 가족
이 교회중심으로 헌신했던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를 세웁니다(고전 16:19). 로마교회를 세웁니다(롬 16:3). 에베소교회를 돕습니
다(딤후 4:19)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령 충만한 사람은 철저히 교회중심으로 헌신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전 중심으로
삽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부흥시키는 분이십니다. 교회 성장에 활력을 주십니다. 교회 성장에 불을
붙여주십니다. 성령님은 교회의 전도에 불을 붙여주시고, 기도에 불을 붙여주시고, 봉사에
불을 붙여주십니다. 헌신에 불을 붙여주십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더욱 사랑하는 가슴으로
불을 붙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 충만할수록 교회가 힘차게 성장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욱 더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회철학자가 우리 한국 민족성에 깔려있는 네 가지 의식구조를 잘 정리해줍니다.
1)샤머니즘적 요소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사고 패턴은 비합리적이고 초합리적인 감성주의입니다. 어떤 이성과
논리성과 상식적 차원을 떠나서 정에 이끌리는 약점이 있습니다.
2)불교적 요소입니다.
대부분 현세에 대하여 염세적이고, 부정적이며, 비관적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교는 더욱 더 삶을 즐기는 역동적 신앙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잔치 집임을 주지시켜주어야 합니다.
3)유교적인 요소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지나치게 유교 사상을 전수 받아 봉건적이고, 귀족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
입니다. 그래서 위계질서에 너무 비중을 둡니다. 군신유의, 장유유서, 부부유별 등을 강조
합니다.
옛날에는 할아버지나 아버지 밥상에서 함께 밥도 못 먹었습니다.
4)식민지 문화의 요소입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압제와 식민지 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법 지키는 것을 기피하고 싫어하
는 병리적 현상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권국가가 아닌, 피지배 국가였기에 피해의식이 강합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결정적인 약점이 있는데, 비 참여적이라는 큰 약점입니다. 그 동안 손
해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근성이 잔재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비 참여적이 됩
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 나라의 민족성을 초월하여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곧 교회중심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동체 생활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의 구원은 언제나 공동체적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 공동체, 축복 공동체로 만들어주
십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말 자체가 공동체(Ekklesia)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세 사람만 모여서 기도해도 그 공동체 중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십니
다.
성령님은 언제나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합심하여 사모할 때 큰 은혜를 주시고, 능
력으로 큰 기적을 일으켜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함께 성령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더욱 더 교회를 부흥시키고 흥왕
시켜 나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활동의 비중을 교회 중심으로 맞추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위하여 그 어떤 희생이나 헌신도 아끼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하는 사람이 곧 성령의
사람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복음 전도자 C.T. Studd는 이런 가슴 뭉클한 감동적 도전을 줍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나에게 있어서 그를 위한 어
떤 희생도 과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아낌없이 바치며 살았
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가슴 벅찬 확신을 선포해줍니다(고전 15:58).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고전 15:58)
그렇습니다. 헌신은 허비가 아닙니다. 헌신은 상급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승리가
있습니다. 영광이 있습니다. 열매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으로 헌신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은 성령 충만함을 받는 만큼 인생의 목적과 비전이 본질적으로 달라지고 있나요?
당신도 생명 바쳐 헌신하는 후회 없는 고귀한 삶을 살고 싶지 않으세요?
당신의 가정도 온 식구가 함께 헌신하는 거룩한 동반자가 되고 싶지 않으세요?
당신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로서 얼마나 교회 일에 참여적인 것 같습니까?
성령 받은 사람들은 모두 다 교회 공동체의 한 멤버가 되었습니다.
한 비전, 한 열정, 한 가슴으로 함께 헌신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오, 주님! 저로 하여금 더욱 성령으로 헌신하는 불타는 열정을 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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