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원 5학기

CYBER SCHOOL OF THEOLOGY

신대원 5학기

제목존 웨슬리의 실천신학: 거룩한 사랑의 신학 2022-07-13 16:58
작성자 Level 10

존 웨슬리의 실천신학: 거룩한 사랑의 신학

Kenneth Collins, 박창훈 옮김

신학자로서의 존 웨슬리의 위치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1961년 웨슬리안 전통의 중요 문제를 제기한 이가 바로 감리교 역사학자인 故 알버트 아우틀러였다. 웨슬리는 당연히 주요 신학자일 뿐만 아니라 그의 신학 방법론과 동기가 명백히 동시대 신학에 중요했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아우틀러는 오늘 우리에게도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우틀러가 감리교 역사를 매우 잘 알았으면서도 초기 작품에서 웨슬리를 다른 교파의 신학자들과 함께 놓는 데 망설이고 있음을 추적할 수 있다.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웨슬리는 “신학적 거장이 아니라, 조직을 한 사람이 아니라, 신학자의 신학자가 아니라, 계획과 의도에서 대중신학자였다”라는 주의를 주고 있다.
1970년대에도 계속 아우틀러는 웨슬리를 루터나 할레 경건주의자들과는 달리 학문적 기초가 없고, 칼빈이나 녹스와는 달리 정치적 기반이 없는 대중신학자로 묘사했다. 사실, 감리교전통을 제외하고는 웨슬리는 역사신학자들에게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18세기 신학자는 어떤 학파에 속하지도, 어떤 학파를 만들지도 않았기에, 신학자의 신학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10여년, 아우틀러는 여전히 웨슬리를 대중신학자로 그렸으나 이 탁월한 신학자는 선교와 실천 양자를 강조하는 현대교회를 위하여 웨슬리의 신학하는 방법이 적합하다는 새로운 평가에 도달했다.

웨슬리 신학의 열쇠로서의 역사적 사고

故 토마스 랭포드가 지적한 것처럼 역사적으로 감리교를 향한 일반적인 비난은 신학이 없다는 것이다. 메소디스트들은 진리보다는 유용성에 관심있는 교회안의 실용주의자들로 여겨졌다. 그리고 사실보다 더 자극적인 관찰을 통해 랭포드는 “연합운동에서 감리교의 기여는” 신학도 교리도 아니라, 바로 “돈”이라고 주시했다. 그러나 주로 감리교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결핍하다는 기준은 아마도 계속 나타나는 가치 있는 판단과 전망의 주인공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자주 주장되듯이, 단지 특별한 경우 신학하는 방법에 있어서만 우월하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사실, 현대의 교회사가들은 신학의 규칙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수많은 주요한 변화로 나타나는 풍부하고 다양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a) 인간지식 전체를 그리스도에 근거한 것으로 총괄하는 이론적 규칙이나, 교회가 세상에 대한 속죄의 선교를 하도록 돕는 실천적이고 구원론적인 규칙으로 드러나는 신학의 내용(content) 자체; b) 교회나 학문의 영역에서 신학이 발생하는 맥락(context); c)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았거나 스스로 독립적인 사상가로 이해되는 규칙을 실천하는 사람들(subjects).
신학역사에 대한 내 자신의 연구로 보건대, 두 기간이 중요하다. 12-13세기를 포괄하는 첫째 기간에 신학이 엄숙한 규칙으로 분리되는 것을 목격했는데, 여기서 “지식으로부터 감정성”이 분리되듯 영성(웨슬리는 후에 실천신학이라 칭했음)이 신학으로부터 분리되었다. 그 예로, 중세의 위대한 종합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영적인 경험의 주제를 신학대전의 2부에 놓았고, “거기서 교의신학으로부터 원칙들을 이끌어내는 도덕신학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러한 작업의 결과 모든 신학의 영역이 되기보다는, “영성은 신학의 일부분의 지류로서 나타나게 되었다.” 게다가 이 기간 서유럽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다시 소개하면서, 특히 그 방법과 관심의 측면에서 철학 자체가 신학 범주의 명료한 근거로서 성서의 경쟁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철학은 교회로부터 학교로 쉽게 이동하였다.
이 첫째 기간에 신학의 주제를 다시 정렬하는 새로운 방법과 그 결과가 나타났다면, 두 번째의 기간은 17세기와 18세기의 이성의 시대를 아우르며 신학 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이해력을 낳았다. 그리하여 실천적 이성으로부터 이론적 이성을 구별한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저서 [이성의 한계내의 종교]에서, 인간 주체를 신학과업의 중심에 놓았다. 인간 이성의 형식적 요소들과 지식에 대한 기여를 강조한 인식론에서 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는 현상학적 영역으로부터 하나님을 배제하여 후에 물자체로서만 규정하게 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의 개념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질서를 부여하는 원칙이 되었고, 모든 실천적 목적을 위한 인간 지식의 한계가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이러한 배경에서 특히 인식론에서 인간의 자율이 강조되고, 처음의 주체요, 불러일으키고, 참여하며, 신자들을 친밀하게 부르시는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이론적 이성의 한계 너머로 갔고, 이 모든 것은 조용히 계몽의 이름으로 옆으로 밀려났다.
존 웨슬리는 여러 면에서 시대의 사람이었지만, 칸트의 상대적 불가지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칸트는 대륙에서 활동한 반면, 그는 영국의 물을 깊이 마셨는데, 즉 1688년 명예혁명에서 나타난 온건한 계몽주의뿐만 아니라, 17세기 제레미 테일러, 로버트 샌더슨, 란슬롯 앤드류스와 같은 캐롤라인 신학자 등의 성공회 신학을 음미했다. 그로 인해 웨슬리는 그의 신학을 교회의 과업에 실천적으로 적용하고, 로크와 영국의 경험론이 지배했던 시대의 경험철학에 이론적으로 적용하는 것의 가치를 보았다. 게다가 신학적 사고의 원천으로서 니케아 이전 교부의 통찰력을 축적한, 웨슬리의 시대에 잘 발전된 성공회의 실천으로 인해, 웨슬리는 그가 말한 실천적-사변적인 것에 반하는-신학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감리교의 지도자는 이러한 선호에 대해 바로 아들에게 조언한 수잔나 웨슬리에게 도움을 받았다: “공개적인 대중에게 무엇을 정의할 때는 주의하거라. 왜냐하면 그와 같은 것은 설교의 진정한 목적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교의 목적은 사람의 삶을 치료하는 것이지, 쓸모없는 사변으로 사람의 머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란다.”

실천신학자로서의 존 웨슬리

웨슬리 자신은 분명히 우리가 선호하는 잘 정의된 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신학”을 언급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편지나 연설이나 저술의 서언 등 자신의 글에서 웨슬리는 신학적 사고의 전 영역을 표현하면서 “실천적인,” “사변적인,” “논쟁적인,” “긍정적인,” “상대적인,” “신비한” 그리고 심지어 “평이하고 오래된 성서신학,”이라는 용어를 썼다. 이러한 용례에서 “실천신학”이라는 용어가 특히 압도적인데, “실천신학의 걸작의 발췌와 요약”으로 구성된 웨슬리의 [기독교총서]뿐만 아니라, 많은 사랑을 받는 [메소디스트라 불리는 사람들의 찬송시집]을 설명할 때도 사용되었다.
다른 경우에도 웨슬리는 경험적인 신학과 실천적인 신학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면서, 경험이 그의 신학에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에서 감각경험에 기초하는 경험적 지식은 로크의 개념과는 구별되어야 함에 주의하라. 왜냐하면, 적어도 어떤 면에서 그와 같은 지식이 “객관적인” 관찰자와 관련해서 공적으로 증명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경험적인 또는 실천적인 신학은 참여하고 관여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그리스도 공동체라는 상황에서 (믿음을 통한 은혜로 말미암는) 내적 종교에 관한 성서의 진리를 실현하고 증명하는 것을 뜻한다. 즉 웨슬리에게 있어서 실천신학은 사람들이 “스스로 성서의 진리를 시험”할 수 있는 은혜로운 수단이다. 그리고 도슨이 잘 지적했듯이, 그와 같은 지식은 결코 심리학적이거나 주관적이지 않다. 신자들은 원래 “경험적으로 숨겨져 있더라도 객관적인 실재와 접촉”하는 상태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은혜의 열매인 믿음은 하나님의 신비와 존재를 받아들이고 끌어안는 보는 눈이요, 듣는 귀가 된다. 다시 말해, 이는 공과 사, 마음과 정신, 개인과 사회 등 성서의 진리를 증명하는 다양한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인 생활 전체이다.
신학에 대한 이와 같은 접근으로 웨슬리는 교부작가들과 같이 분명히 성서로 향하게 되었다. 즉, 성서의 진리는 개인적인 생활과 더 넓은 공동체에서 그리스도 닮음을 증가시키는데 실현되고 작동되어야 한다. 앞 시대의 프레드릭 맥도날드가 웨슬리는 “본래적으로 성서신학자”라고 주장했다. 그 보다 최근에 故 프랭크 베이커는 (캐롤라인 신학자 제레미 테일러와 란슬롯 앤드류스가 중요한 역할을 한) 성공회 신학의 앞선 모델 가운데서 웨슬리 신학의 천재성을 구분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 때 옥스퍼드의 강사가 “영혼의 치료”를 매우 진지하게 다룬 죄와 구원의 교리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을 지적함으로 웨슬리 실천신학의 본질을 추적했다.
이것 이상으로 현재의 학자들은 웨슬리의 실천신학이 교회의 선교로 방향을 정하고, 성서적 진리를 실현하는데 주의하며, 가난한 자들에게 봉사하는 신학을 하는 매우 실용적인 방법이라 제안한다. 그리고 수년전에 아우틀러가 웨슬리는 “그의 세기에 가장 중요한 성공회 신학자”였다고 주장할 때, 웨슬리가 조직신학자이거나 모든 인간 지식을 종합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체성을 보이려고 했다는 주장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와는 반대로, 웨슬리의 실천신학은 설교, 예배, 기도, 신조, 부정기적인 작품, 일지, 편지 등에서 성공회적인 방식으로 살이 붙어서 인식론적인 정향이라기보다는 분명히 구원론적인 정향이다. 실제적으로 거창하게 사변적으로 구성된 원리를 거부하는 이러한 집중된 관심은 명백히 웨슬리의 [설교전집] 서문에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나는 다음의 설교들안에, 하나님의 방법을 사람이 만든 모든 것들과 구분하는 관점에서, 내가 성서 안에서 하늘로 가는 길에 관하여 발견한 것을 옮겨 놓았다. 참되고 성서적이고 경험적인 종교를 묘사하려고 노력하면서, 그 안의 진실한 것은 아무 것도 빼지 않고, 진실 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더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하여 사변적이기 보다는 실천적인 신학자 웨슬리는 시간과 영원, 현재의 것과 미래의 것을 말하면서, 작은 자에게까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

웨슬리의 실천신학 스타일

폴 틸리히가 상관방법을 사용하거나 에밀 부루너가 신/인간 상응의 패러다임을 사용한 식으로 웨슬리의 신학에는 원대한 체계적인 원리의 특징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의 제한적인 구원론적 관심 내에는, 특히 지속적인 실천신학의 관심 안에는 아우틀러가 모든 부수적인 교리들이 집중된 중심 주제라 부른 것이 나타난다. 보다 엄밀히 말해, 웨슬리의 구원론적 중심 주제는 그의 구원의 길을 배경으로 펼쳐지며, 그 구원의 길에서 지속적으로 완성되어가는 일관성을 찾는다. 그러나 웨슬리의 실천신학의 중심 주제의 형식적인 요소를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웨슬리의 많은 신학적 사고의 스타일, 실제로 그가 선호하는 주제를 암시하는 스타일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면에서 성공회 신학자 웨슬리는 조화된 감성, 즉 그의 여러 신학적 사고에서 일방적인 학식을 피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즉 펠라기우스의 낙관론과 어거스틴의 비관론에 대해, 아우틀러가 “제 3의 선택”이라 부른 것을 추구하면서, 웨슬리는 진리의 다양성을 긴장 감 있게 붙잡으려고 정교할 뿐만 아니라, 엄밀히 그 다양성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그의 해석자들을 때로 혼란스럽게 만드는 신학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사실, 몇몇이 선호하는 신학적 전통의 렌즈를 통해 중심적으로 그를 보려는 일방적인 시도들이 많다: 셀에게 있어 칼빈주의, 힐데브란트에게 있어 루터란, 럽에게 있어 청교도, 매독스에게 있어 동방교부들. 흥미롭고 매력은 있지만 이러한 해석 각각은 다양성, 즉 분리된 신학전통 한계 너머의 웨슬리 실천신학적 사고의 실제적인 내용이 되는 요소 전체의 순전한 “타자성”을 붙잡지 못한다. 명백히 다양한 모순적인 진리들이 긴장 속에서 유지되는 이런 다양함과 절충적인 스타일은, 아우틀러가 “모든 것 자체를 특별히 한 방법으로 모으는” 것이라 주장한 웨슬리의 전반적인 신학적 성향에서 매우 기본적이다.
다른 것들 가운데, 이와 같이 많은 면에서 정교하고 함축적인 신학적 사고의 스타일은 웨슬리는 “연합의” 신학자라는 호칭을 낳았다. 웨슬리 신학에 대한 가장 뛰어나고 일관적인 해석은 “어느/하나”가 아니라, “둘/모두”의 형태라는 것에 나타난다. 사실 웨슬리가 공들여 수고한 복합적인 신학적 종합은 그의 신학적 이력의 전부분의 과업, 즉 “믿음으로만”과 “거룩한 삶”으로 표현되는 과업을 함께 모은 것이다. 아우틀러는 말한다:

믿음만으로와 거룩한 삶을 함께 아우르는 웨슬리적 관점의 독창성을 놓치기 쉽다. 여기 sola fide를 설교하며 바로 동시에, 그의 회심자들에게 완전에로 나아가 이생에서 이룰 것을 기대하라고 가르치는 위대한 복음전도자가 있었다! 그를 비판하는 자들은 곧 이러한 이상한 이동에 주목했고, 웨슬리가 일관적이지 않다는 증거로 삼았다. 사실 웨슬리의 특징적인 “제 3의 선택”의 다른 면이요, 아마도 그의 가장 독창적인 면이다.

상징적인 그의 3의 길 웨슬리 신학에 있어 다른 종합은 초기의 칭의와 최후의 칭의뿐만 아니라, 법과 복음, 은혜와 선행, 선물과 능력으로서의 은혜, 칭의와 성화, 순간적이고 점진적인, (선행적) 은혜의 보편성과 제한적 (구원의) 실재, 하나님의 주도권과 인간의 응답 등을 포함한다. 현대적 의미에서 웨슬리는 조직신학자는 아닐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의 스타일은 실천신학의 영역에서의 그의 정교함을 암시한다.

웨슬리 실천신학의 중심주제

웨슬리의 신학 스타일이 매우 중요하고 그의 신학적 사고의 많은 부분의 형태를 암시하는 반면, 우리는 아우틀러가 주장하듯 그 스타일이 고유한 자체의 방법을 이룬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신학의 스타일은 중심 주제를 설명하는 힘이 부족하다. 즉, 중심 주제는 보다 방법론적으로 중요하며, 신학의 스타일과는 구분될 수 있다. 다소 중요한 방법으로, 특별히 그 안에서 다른 주요 교리들이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도록 조명하여 포괄하는 역할을 하는 구원론적인 주동기를 특징화하는 방법으로. 그렇게 이해된다면 중심 주제는 사람이 추진해야 할 적절한 신학적 배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18세기 다양한 배경에서 실천된 신학으로서 웨슬리의 목회 스타일의 본질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아우틀러는 은혜 자체가 웨슬리 신학의 중심 주제이며, 그의 모든 사고의 초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한편 매독스는 아우틀러의 작업을 다소 변화시켜 모든 것의 지도 원리인 “책임이 따르는 은혜”라고 주장했다. 이제 이 두 제목이 웨슬리의 전체적인 신학을 조명하고, 매우 설득력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판단에 이 둘은 웨슬리의 중심 주제에 있는 다양성과 풍부함을 제대로 잘 포괄하지 못하며, 그 결과 웨슬리가 선호하는 신학적 스타일을 묘사하지도 못한다. 다시 말해, 다른 신학적 관심과 떨어져 있는 은혜를 웨슬리 신학의 동기요 주요 주제로 보는 것은 18세기의 배경보다는 현재의 배경과 선호, 그리고 판단을 잘 설명하는 것이 될 것이다.

성결과 은혜의 중심 주제


웨슬리 실천신학의 중심 주제
성결
은혜
거룩한/사랑
값없이 주시는/협력하는 (책임이 따르는)
이러한 최근 학자에 대조적으로 우리는 웨슬리 신학의 종합적인 맛이 그가 선호하는 중심 주제, 즉 단순히 은혜가 아니라 성결과 은혜, 곧 그 다양한 성격으로 인해 성결과 sola fide라 설명되는, 웨슬리 인생 전반의 신학적 과업을 암시하는 중심 주제 안에 놓여 있다고 주장하려고 한다. 더욱이 실천신학을 하는 웨슬리의 스타일이 매우 광범위해서 성결과 은혜라는 이 중심 주제의 측면조차도 각각의 요소 자체는 때로 무시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종합을 이룬다. 따라서 성결의 개념은 웨슬리가 그의 저서를 통해 사용할 때, 실제로는 요약된 표현이며, 긴장은 있지만, 거룩한/사랑의 종합을 암시한다. 유사한 방법으로 중심 주제의 또 다른 축인 은혜에 대한 웨슬리의 이해는 단순히 일인극의 방법이 아니라 다시 종합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값없이 주시는/협력의 은혜라는 긴장이 나타난다.


거룩한 사랑으로서의 성결: 중심 주제의 반쪽

웨슬리는 종종 성결의 개념을 그리스도인 생활의 종착이요 목표라 묘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의 주제에서 그는 이 말을 거룩한 사랑이라는 요소로 나누었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에서 발견되는 진리를 바꾸어, 1745년 “존 스미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웨슬리는 말한다: “하나님께서 먼저, 성령의 영감으로, 그것 없이는 아무도 영광에 들 수 없는, 그 거룩한 사랑으로 우리 마음에 역사하셨다.” 그리고 웨슬리가 도덕법이 어떻게 믿음으로 세워지는가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라는 설교에서 고려할 때, 이 법은 바로 “사랑의 법,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거룩한 사랑”과 다르지 않다고 명기했다. 이보다 더 나아가, 속죄의 과정에서 믿음의 생생한 역할을 보이면서 웨슬리는 또 다른 곳에서 믿음은 “그 안에서 사람이 원래 창조되었고, . . . 우리 마음에 새로 사랑의 법을 놓아 그 목적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사랑을 회복하는 위대한 수단”이라 지적했다. “거룩한 사랑”이라는 구문에 대한 웨슬리의 수많은 구체적인 사용의 또 다른 예들이 인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결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웨슬리는 암시적으로 거룩한 사랑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기에 사랑의 측면에서 성결의 의미뿐만 아니라 성결의 측면에서의 사랑의 의미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눈에 띄는 종합의 첫 국면에 관하여 토마스 오드와 마이클 로달은 “성결의 고전적 의미-그리스도인의 완전, 완전 성화, 제2의 축복 그리고 성령세례는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붙잡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학자들은 전통적인 성결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여,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을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의 마음과 상상력”에 제공하려 한다. 확실히 성결의 측면에서 주의 깊게 웨슬리의 말을 타당한 맥락에 놓는 것은 이후의 세대와 여러 공간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가치있는 과업에서 오드와 로달은, 우리의 평가로는, 그 문제에 관한 웨슬리 자신의 최고의 생각을 제대로 담지 못한 성결의 정의와 함께 끝난다. 왜냐하면 웨슬리가 단순함과 순결함을 “그리스도인의 성결”로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드와 로달은 이러한 생각을 거부하고 정적이고 관계적이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나머지 “사랑은 성결의 핵심”라는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
웨슬리의 신학에서 성결이 사랑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두 개의 개념은 오드와 로달이 주장하듯이 실제로 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사랑(성결)은 사랑이라는 등식에 따라 기본적인 동어반복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성결은 실제로 사랑이라는 단순한 단어가 전달할 수 없는 “거룩한 사랑”의 구문으로 무언가를 더 한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신자들로 하여금 신적인 사랑이라 오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것이라 여기는 실수를 막는다. 사실, 성결과 사랑을 웨슬리가 사용할 때 두 개의 다른 계층의 단어를 대표한다: 하나는 관계의 질을 표현하는 간접적인 관계이며, 다른 하나는 직접적인 관계이다. 그리하여 성결을 순결함으로 보는 웨슬리의 관점은 사랑의 관계의 총체성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질적인 호칭을 나타낸다. “성결은 은폐된 영광이요, 영광은 드러난 성결이다”고 웨슬리는 쓴다.
더 나아가, 성결이라는 단어의 묘사적이고 무한하고 초자연적인 (신비한) 능력이 그것을 특별하게 조명하고, 사랑이라는 단어의 다른 쓰임으로부터 구분하여 사랑을 품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히 십자가에서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고려될 것 같지가 않다. 다시 말해, 웨슬리가 이해하듯 성결의 질적인 특징이 없다면 그렇게 이해된 사랑은 자기 의지, 감수성, 또는 인간 이성이 선하고 수용할만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알려질 것이다. 성결과 사랑이란 단어 사이에 동어반복과 기본적인 동등가치를 두었기에, 이러한 최근의 연구는 웨슬리 자신이 그 단어들을 사용할 때 암시하는 종합, 또는 긴장조차 구별하지 못했다.
“거룩한”이라는 단어의 최근 연구는 “세속의”에 반대되는 것, 즉 엄밀하게는 순결함을 위한 분리운동을 암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이해는 포괄적인 것을 선호하는 최근의 청자들에게는 어려운 짐이다. 그러나 20세기 스위스의 변증법적 신학자 에밀 부루너는 그의 연구에서 이와 같은 분리의 생각을 표현했다: “하나님의 성결은 본성적으로 절대적인 차이일 뿐만 아니라, 능동적인 자기 구별이며,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것들에 대립해서 온전히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의지력이다.” 또 리차드 테일러는 최근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성결에는 거룩하지 않은 것을 참지 못하는 도덕적 강렬함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 사랑은 계시, 참여, 그리고 최고의 상태에서의 교제의 운동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사랑은 외향적이고, 끌어안으며, 포괄적이다. 사랑은 “자신을 벗어나서, 아래에 서는 운동이다: 이는 하나님의 자기희생이며, 자기-소통이다.” 결과적으로 웨슬리처럼 부르너, 테일러 같은 이들은 “거룩한 사랑”이라는 단어가 단순하고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순결함을 위한 분리와 사랑을 위한 교제라는 생각 안에 표현된 종합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러므로 하나는 다른 하나를 무시하지 않으며, 둘은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그와 같이 최선으로 그리고 최고로 정확히 요약하는 단어와 구문이며, 웨슬리의 궁극적인 해석은 때때로 주장되는 사랑이 아니라, 거룩한 사랑이다.
둘째로, 성결이 사랑을 알리듯이 사랑 역시 성결을 알린다. 사실, 웨슬리에 따르면, “그 어떤 그리스도인의 성결도 그 기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그리하여 그의 설교 “성령의 증언 I”에서 웨슬리는 “우리가 거룩해 지기 전에,”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하며, “이것이 성결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너무도 친밀하게 성결과 연결되어 있고, 형태를 제공하는 이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의 마음에 심겨져 있어서 성령의 은혜로운 도움으로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즉, 신자들은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모든 인류에 대한 사랑을 발산하는 성령에 의해, 모든 성결한 갈망과 모든 신적이고 천상적인 기질로 인도 된다”고 웨슬리는 지적했다.
이제, 웨슬리의 실천신학에서 사랑과 성결이 거의 변증법적인 형태로 매우 가깝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법적인 것(칭의)과 참여적인 것(성화)의 차이와 같은 구조는 때로 부적절하게 적용된 것이고, 사랑, 성결, 칭의 사이의 적절한 관계를 구별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 예를 들어, 웨슬리의 판단으로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성결의 뿌리로서 “용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부터로만 나온다.” 사실, 의롭게 하는 믿음은 법적인 주제인데, 다른 것들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로 인해 죽으셨고, 그가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으셨다는 신뢰와 확신”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의롭게 하며 구원하는 믿음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으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확신에 다름 아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웨슬리는 그의 저서와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으셨다는 신적인 증거와 확신은 의롭게 하는 믿음에 본질적이다”라는 관찰을 통해 반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칭의의 관계를 끌어낸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의 사랑은 성결의 근원이듯이 칭의의 근원이기도 하다.
한편, 성결(그 문제에서는 칭의)을 교제와 교감을 끝없이 추구하는 하나님의 포괄적인 사랑과 구별하여 이해한다면, 모든 인간에게는 격리된 집과 같을 것이며, 순결함을 위한 구분은 바로 소외와 무관심으로 인도하는 혹독한 종교가 되고 말 것이다; 최고 존재자의 의지의 표현으로서의 하나님의 거룩한 법은 규칙, 규약과 문화적 금기로 표현될 것이다; 그리고 교제와 교감의 목적,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자기-몰두와 영적 자기연민 안에서 실종될 것이다. 다시 말해, 성결과 분리된 사랑은 연약하고, 순진한 바램이며, 자기방종이다. 사랑에서 분리된 성결은 소멸하는 불이다. 그리고 성결과 은혜로 향하는 웨슬리의 관심의 전반부에 관하여, 성결 자체는 거룩한 사랑의 종합, 즉 하나님의 본질뿐만 아니라 견실한 그리스도인의 생활 자체를 잘 묘사하는 아름다운 균형을 암시하는 것으로 가장 잘 이해된다.

법과 은혜

성결과 은혜라는 웨슬리의 중심 주제는 잘 정리된 법과 은혜라는 부수적인 종합, 즉 종교개혁으로부터 성장한 서구신학 대부분의 관심의 종합안에 상세하게 열거되어 있다. 그러므로 웨슬리 신학에 대한 역사적으로 가장 정확하고 묘사적인 읽기는 웨슬리의 신학적 관심과 목회적 책임의 배경안에서, 은혜와 종합되는 도덕법의 작용을 탐구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에서 웨슬리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분명히 중요하며, 도덕법에 대한 그의 이해를 알려줄 수많은 근거의 측면에서, 다시 한 번, 웨슬리는 자신의 성공회 전통에 눈을 돌렸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실, 존 노리스와 존 스미스 같은 캠브리지 플라톤학파의 가르침은 웨슬리의 생각에 도덕법에 관한 정보를 주었고, 그가 도덕법을 “최고 존재자의 영원한 마음과 가시적 아름다움의 복사”와 같은 “플라톤적” 감각으로 생각하게끔 했다.
게다가 그의 비판의 내용을 제공한 라빙턴 감독을 놀라게 한 식으로, 개신교의 특별한 문제, 즉 “복음 설교자들”의 문제는 그가 설명하기를, 대개 하나님의 은혜를 불안정하고, 광신적이고, 율법무용론적 형태, 즉 도덕법의 조명하고 안내하는 힘으로부터 분리된 채로 선포하는 이들이라 믿었던 사람은 다름 아니라 바로 웨슬리 자신이었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은혜는 모양이 없게 되고, “창조되고 계속 창조될 모든 것에 영원히 알맞는” 형태를 결여하여, 자기추동 즉 “열광적인” 개념이나 실천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잠재적인 실수에 직면해서, 웨슬리는 은혜를 매우 자주 “규범적인” 은혜라 주장했다. 다른 말로, 은혜는 가치판단적이고, 규정적인 배경에서 자라고 꽃피우며, 하나님의 도덕법 즉 집단적인 차원에서 다양한 공동체의 노예적인 민족중심주의와 계급중심주의를 초월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욕망을 초월하는 기준에 의해 조명된다. 다시 말해, 이 종합의 다른 한 편이 없다면, 이른바 단순히 은혜라는 중심 주제는 추정, 자기의지, 감정, 그리고 최악의 경우 웨슬리가 한탄해 할 율법무용론에 쉽게 빠지고 말 것이다. 그의 설교자들 가운데, 이 신학적 질병을 막기 위해 웨슬리는 1751년 죄인을 확인시키기 위하여 도덕법을 가장 우선하며 중요한 수단으로 삼는 일련의 지시를 내렸다. 은혜 또는 복음이 모든 율법의 목적에 대한 답이기에, 율법은 필요없다고 설교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웨슬리는 대답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 분명히 반대한다. 그것[복음]은 율법의 최초의 목적, 즉 인간에게 죄를 확인시키는 것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 . . 하나님의 일반적인 방법은 율법, 그것으로만 죄인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1744년 첫 메소디스트 연회에서, 웨슬리는 그의 조력자와 돕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전 사역을 설교하고, “신자나 불신자 모두에게 복음뿐만이 아니라 율법까지 선포할” 것을 조언했다. 이 조언에서, 도덕법은 죄인들을 확인시키는 것에서 뿐만 아니라,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머물도록 하는 위대한 가치를 지닌다. 즉, 웨슬리는 칼빈에게서와 유사한 율법의 규정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루터에게서와 유사한 율법의 고발하는 기능 모두를 강조한다. 한쪽은 죄인을 그리스도에게 데리고 오며, 다른 한쪽은 신자들이 주님 안에서 살도록 한다.
웨슬리에게 있어, 도덕법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복종은, 물론 받아들임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풍부한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서, 실천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요구된다. 그리고 웨슬리가 실제로 율법의 규정적인 용도, 즉 셋째 용도를 발전시켰다는 것은 그의 연구에서 분명하다: “각각은 계속 나로 다른 한 편으로 가게 한다.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로 그리스도는 율법에게로.” 쉽게 말해, 도덕법을 통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기초 놓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하고 중생하게 하는 그 믿음의 필요열매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믿음에서 도덕법을 통한 하나님께 대한 복종과 사랑과 자비의 선행이 나오지 않으면 웨슬리에게 있어, 적어도 그것은 죽은 것이고 살아있는 믿음이 아닌 것이 분명하며, 이는 하나님과 이웃의 세상에서 활동적이지 못하다. 다시 말해, 성결과 은혜의 보다 넓은 주요 주제에 대한 반영으로의 법과 은혜는 웨슬리 실천신학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사실 웨슬리 신학 공식의 타당함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이 주요하고 주의 깊은 종합이다.

은혜: 주요 주제의 다른 반쪽

웨슬리 신학의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주요 주제는 물론 단순히 성결(그리고 도덕법)만이 아니라 또한 은혜를 포함한다. 그리고 성결이 거룩한/사랑의 종합이란 측면에서 표현되었듯이, 은혜도 다음의 표가 지시하는 것처럼 웨슬리 신학의 수많은 주요 종합의 요약이다.

은혜의 종합
값없이 주시는 은혜
협력하는 은혜 (책임이 따르는)
하나님 혼자의 일
신/인 협력 (신인협동설)
호의가 두드러짐
능력부여가 두드러짐
받는 것
응답하는 것
순간적
점진적
개신교의 강조
가톨릭의 강조


하나님 혼자의 일/신인협동설

웨슬리의 실천신학은 광의의 알미니안의 한 종류로서, 하나님과 인간이 속죄의 과정에서 언제나 함께 일하는 협력하는 은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주장되어 왔다. 그리고 웨슬리 신학에 대한 최근의 평가는 엄밀히 이러한 의미의 은혜를 전하는 춤의 이미지를 부여하였다. 하나님의 주도권을 강조하는 이러한 협력의 이미지는 웨슬리 신학의 어떤 면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웨슬리가 이해한 은혜 전체 영역을 나타내지는 않고 결국 그가 선호하는 신학적 스타일을 다시 묘사하지도 않는다. 즉 웨슬리는 은혜를, 그의 설교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룸에 관하여”에 나타나는 것처럼, 협력적인 것으로 볼 뿐만 아니라, 그는 은혜를 종합적 방법으로 하나님 호의를 암시하고, 그리하여 실제적 의미에서, 특히 그의 설교,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서 하나님 혼자의 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와 같이 은혜는 “받은 이의 선행 또는 의로움이나, 그가 한 것이나 그가 하고 있는 것에 결코 달려있지 않다.” 여기 개신교 성공회의 유산과 모라비안과 독일 경건주의의 통찰력이 웨슬리 신학으로 들어와서 필요한 균형을 가져왔다. 확실히 철저한 신인협동설주의자나 “가톨릭” 모델이 협력과 과정을 선호하기에, 온전한 방법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은 바로 홀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단도직입적으로 주장한다: “의롭게 하고, 성화하고, 영화하는 것은 하나님 혼자의 일이며, 이 셋은 구원 전체를 포괄한다.” 결국, 웨슬리 신학을 보다 정확히 읽으면, 하나님과 인간의 활동을 포함하는 신인협동적인 틀은 보다 큰 종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드러나며, 여기서 모든 인간의 선행으로부터 떨어진, 하나님 혼자의 활동에 대한 개신교의 강조점이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호의/능력부여

웨슬리의 폭넓은 은혜 개념 안에 있는 두 번째 종합은 하나님의 “호의”와 “능력부여”라는 주제에 관한 것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먼저 은혜를 “분에 넘치는 하나님의 호의”로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한 모든 축복은 단순히 은혜, 풍성함, 그리고 호의, 즉 그의 값없이 주시는 분에 넘치는 호의, 즉 모두에게 분에 넘치는 호의 . . . 이다.” 그렇게 이해된다면, 최고의 존재는 결코 인간의 빚을 지지 않고 모든 피조물에 대한 선한 의지와 호의를 아낌없이 사용하신다. 사실, 아우틀러가 지적하듯이, “웨슬리를 펠라기우스와 구분 짓고, 그 점에 있어, 알미니우스와 에피스코피우스로부터 구분 짓는 것은 바로 영적 통찰력과 신적 은혜의 완전한 수여다.” 즉,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완전히 인식되고 느끼기 전에 이미 주어져 있다. 그리하여 선행적인 것은 하나님의 호의라는 것을 암시할 뿐만 아니라, 선물로서의 은혜를 강조하는 것이다.
게다가 참여와 생활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부여를 강조하는 포괄적인 가톨릭 전통(성공회, 로마, 그리고 희랍)에 대한 상당한 독서를 통해서, 웨슬리는 은혜를 또 다른 방법, 즉 사람들이 하나님의 길을 걷도록 돕는 “성령의 능력”으로 보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은혜는 놀랍도록 능력이 있는데, 이는 성령의 존재에 의해서만 신자들에게 전해지는 전능자의 구원의 능력이다. 아우틀러가 웨슬리 설교 서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웨슬리 신학의 ‘가톨릭적인 본질’은 참여의 주제이다--모든 생명은 은혜요, 모든 은혜는 성령에 의한 그리스도의 중보이다.” 결과적으로, 웨슬리에게 있어, 은혜는 죄인들에게 한없는 하나님의 호의로부터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성결하게 그들의 마음을 실제적으로 변화시키고, 돕고,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학자들이 웨슬리 실천신학의 그와 같이 전체의 부분인 은혜에 대한 두 가지의 의미를 안다면, 종종 이를 법적인/치료적인 축을 따라 표시한다. 이러한 구도에서 하나님의 호의로서의 은혜는 원칙적으로 칭의에서의 법적인 주제에 상응하고, 하나님의 가능케하는 능력으로서의 은혜는 중생과 완전 성화에서의 참여적 주제에 상응한다. 그러나 뭉뚱그려 설명하는 그와 같은 도식은, (The Theology of John Wesley: The Holy Love and Shape of Grace의) 5장과 6장에서 보이는 웨슬리 실천신학의 복합적인 성격과 미묘함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젊은 모라비안 지도자였던 피터 뵐러가 웨슬리에게 자신의 성공회 교회의 기본 진리, 즉 칭의는 하나님의 한없는 호의를 나타내는 것이요, 그러므로 믿음을 통한 은혜로 받는 것이라 다시 일러 주었던 것을 잘 알고 있을찌라도, 뵐러가 웨슬리에게 중생 또는 신생은 “참여적” 주제이지만, 그럼에도 바로 또한 최고 존재자의 한없는 호의요, 그러므로 믿음을 통한 은혜로 받는 것이라 가르쳤던 것은 아마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신생(그 문제에 있어 완전 성화)은 완전하고 철저한 선물이며, 믿는 자들에게 그와 같은 선물을 아낌없이 주시는 완전한 사랑의 하나님의 호의를 나타내는 것이다. 규칙, 결심, 그리고 신실함으로 성결로 나아가고자 했던 조지아 경험으로부터 나와, 웨슬리는 중생과 칭의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며, 믿음만으로 받는 것이라는 모라비안의 가르침을 마치 “새로운 복음”처럼 올려보았다.
그러므로 이른바 속죄의 법적인 측면과 치료적인 측면으로 나누는 작업이 웨슬리의 주의 깊은 미묘한 신학에 적용된다면, 다시 또 효과를 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호의로서의 은혜는 칭의, 중생, 그리고 완전 성화를 전하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관점에서, 웨슬리는 그의 설교, “성서적 구원의 길”에서 평행하는 구조를 채택했고, 실수없이 분명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처럼 그렇게 정확히, 우리는 믿음으로 성화되는 것이다. 믿음은 조건이요, 성화의 유일한 조건이며, 칭의에 대한 것과 같이 바로 그렇다.” 그렇다면, 그것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의롭게 하고 성화시키는 은혜에 대한 웨슬리의 두 개념이 주요 종교개혁의 통찰력에 의해 올바로 알려졌다면, 이와 같은 통찰력은 배타적인 가톨릭의 신인협동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는 것 또한 지적되어야 한다.

받는 것/응답하는 것

신학의 패러다임은 때때로 설명 그 너머까지 작용한다. 즉, 수많은 신학적 요소를 축적하는데 좋아하고 배격하는 방법과 같다. 그렇다면, 웨슬리의 절충적인 신학에 대한 해석자들에 대한 도전은, 전 저서에 대한 진지한 독서 후에, 그의 실천신학이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그 어떤 구체적인 패러다임에도 제대로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아니 오늘날에도, 웨슬리의 신학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신인협동적인 모델아래 통합되었다. 예를 들어, 故 윌리암 캐논은 “웨슬리는 구원을 신인협동적인 것으로 묘사했고, 이는 하나님과 인간 존재 사이의 협력적인 노력이다”고 지적했다. 보다 최근에 매독스는 신인협동적인 협력은 신생 자체를 부여받는데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웨슬리에게 있어, 신생 안에서 우리 인간속성의 은혜로운 중생을 끌어내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회복하고 용서하는 관계(칭의)의 제공하심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다.” 이 최근 신학자가 책임이 따른 은혜는 하나님의 주도권을 강조하는 점에서, 협력하는 은혜로부터 책임이 따르는 은혜를 구분했을지라도, 협력하는 은혜도 가장 좋은 의미에서는 그와 같다. 그러나 신인협동적인 모델이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으로부터의 통찰력에서 나오는 웨슬리의 완전한 신학의 한 부분이기도 한 것은 바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 혼자 역사하시는 영역이다.
가톨릭의 신인협동설 패러다임과 개신교의 패러다임 양자의 종합으로, 웨슬리는 속죄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우선권에 대한 응답의 중요성을 확인할 뿐만 아니라, 주님을 기다리고, 하나님 혼자로부터의 선물을 받는 것의 가치를 강조할 수 있었다. 즉 신자들은 그들이 응답하기 전에 먼저 받아야 한다. 그리고 받는 것(그것이 칭의, 중생, 또는 완전 성화의 결정적이고, 질적으로 구분되는 은혜이든)은 실제로 인간의 “일”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거의 수동적 의미에서의 개방성이다. 이는, 앞서는 협력의 기초위에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의 기초위에서 주어진 선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모든 형태의 결정론을 거부하는) 자유의 측면에서 인간의 전체성을 보존한다. 이러한 웨슬리 신학의 주의 깊은 균형은 진정한 의미에서 보다 중요한 제 3의 선택 가운데 하나이다; 즉, 은혜는 제네바 또는 로마(그에 대한 콘스탄티노플)의 측면에서 배타적으로 이해될 수 없고, 오히려 둘 모두의 측면에서 이해된다.

순간적/점진적

웨슬리 실천신학 일반의 순간적인 측면과 특별히 은혜에 대한 이해는 종종 연대기적으로 연구될지라도, 웨슬리의 수사학에 대한 면밀한 연구, 즉 특별히 언어의 사용에 대한 연구는 이와 같은 측면도, 보다 중요하게, 즉 믿음과 행함이라는 보다 큰 주제에 대한 반영으로 구원론적인 방법에서 생각되어야 함을 보인다. 사실, 웨슬리의 구원의 길(ordo salutis)의 순간적인 요소는 하나님의 호의로서의 은혜뿐만 아니라, 죄를 용서하고 거룩하게 하시는 이는 인간이 아니라, 바로 전능자라는 궁극적인 진리를 강조하는 원칙적인 수단이다. 다시 말해, 순간적인 측면은 구원론적인 기능을 지시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활동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완전 성화의 측면에서) 순간적인 요소가 믿음과 행함 사이의 관계를 표현한다고 제시하는 그의 설교, “성서적 구원의 길”을 유비의 방법으로 살펴보자. 그는 말한다:

이 증거에 의하여 여러분은 과연 이를 믿음으로 구하고 있는지 행함으로 구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 것입니다. 만약 행함으로 구한다면, 여러분은 성화되기 전에, 먼저 무엇인가 되어야 한다고 원하는 것입니다. ‘나는 먼저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거나, 행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오늘까지 이를 행함으로 얻으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찾는다면, 여러분은 현재 그대로의 상태에서 이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현재 상태로, 이제 이것을 기대하십시오.

물론, 이는 속죄의 법적인 측면(칭의 또는 용서)은 순간적인 것과 일치시키고, 치료의 측면(성화)은 단순히 점진적인 것과 일치시키는 웨슬리의 구원 교리에 대한 해석으로, 역시 과녁을 정확히 맞추는 것은 아니다. 웨슬리의 속죄의 교리는 이 범주가 허락하는 그 이상으로 복합적이다. 포괄적으로 이해하자면, 성화는 과정과 순간으로 특징지어진다. 왜냐하면 (완전 성화와 함께) 신생은 과정을 포함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과 후로, 웨슬리 자신의 말을 쓰자면, “첫 순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구원론적인 순간은 연대기적으로 중생의 실재화, 즉 즉각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아마도 더 중요하게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 홀로 일하신다는 구원적인 방법에서 이 선물의 완전한 은혜로움을 강조한다. 간단히 하자면, 실재화와 즉각성을 강조하는 개신교의 패러다임이 완전 성화 자체를 조명하는 반면, 가톨릭적인 패러다임은 완전 성화로 인도하는 과정을 조명할 수 있다. 그리고 성숙한 웨슬리의 관점을 잘 나타내는 것은 엄밀하게 바로 이러한 의미의 혼합이다.
이전까지의 관찰을 통해, 이제까지 “웨슬리적 그리스도인 생활윤리의 재구성은 개신교 은혜의 윤리와 가톨릭의 성결의 윤리의 독창적이고 유일한 종합”이라는 조지 크로프트 셀의 격언은 우리의 평가에 그리 잘 들어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개신교적 (값없이 주시는) 은혜 개념과 가톨릭적 (협력하고, 책임이 따르는) 은혜 개념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단순히 가톨릭의 원천, 예를 들어 동방과 서방 교부뿐만이 아니라, 개신교적인 것, 특히 성공회와 독일 경건주의로 알려진 성결, 즉 거룩한 사랑에 대한 이해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웨슬리 신학의 천재성의 부분은 기질에 대한 규범적인 힘, 즉 가톨릭적인 강조뿐만 아니라, 은혜의 완전한 거져줌, 즉 루터, 칼빈, 크랜머의 강조점을, 오랜 고통의 죄인들에게 희망을 주지만, 동시에 삐뚤어지고 반항적인 이들에게 죄의 속임에 대한 주의를 주는 구원교리 안에서, 긴장감 있게 잘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은혜의 완전한 거져줌에 대한 웨슬리의 개신교적인 이해 없이, 그의 윤리를 “토마스적인” 덕 윤리의 이론으로만 추구하려는 최근 웨슬리 구원론 연구들은 과녁을 빗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것은 또 웨슬리의 바로 “종합적인” 신학을 붙잡지 못하는 것이다.

결론

인식론적으로 정향되어 있고, 복음의 진리를 어떤 커다란 구도로 파악하려하고, 신학적 교리의 구석구석에서 파급력 있는 원리를 다루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웨슬리의 간헐적인 단편과 그의 실천신학에서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웨슬리는 신학적 거장도 조직의 설계자도 아니었다. 아우틀러가 우리에게 알렸듯이, “기독교 지식인은 결코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정향되어 있고, 선호하는 신학적 전통을 통하여 웨슬리의 절충적인 천재성을 증발시켜 버리려 하고, 어떤 선호하는 근원이 웨슬리의 실천신학에 나타나는가를 구분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다소 당황스럽지만, 웨슬리의 신학적 판단의 넓이가 놀랍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따라서 성공회와 같은 어느 한 신학전통에 대한 확고한 신앙적 반영으로서가 아니라, 그 메소디스트 지도자가 성서의 규범적인 가치와 다양한 전통의 연관된 배경의 측면에서 다양한 목회의 과업에 애를 쓰면서, 잘 정돈되고 의지적인 종합으로서, 그 자체의 개념으로 웨슬리의 실천신학을 고려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하나의 전통을 강조하여 다른 쪽은 상처를 입혀서, 웨슬리를 “개신교”로서, 또는 “가톨릭”으로 드러나도록 하려는 것은 분명 유혹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위적이고 구성적인 시도를 떠나서 대신에 웨슬리의 복합적인 신학적 전망의 넓이와 그의 주의 깊도록 정교한 신학의 미묘함을 즐기는 것이 최선이다. 그 점에 있어서, 웨슬리 실천신학은 결국 강압적이고 왜곡으로 되어버릴 거대한 조직의 원리를 부과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듯, 우리로 하여금 그가 실제로 참여했던 구원론적인 대화의 넓이뿐만 아니라, 웨슬리 목회신학 원리의 풍부함과 복합성을 못 보게 하는 그 어떤 특권적인 신학전통의 부과에도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구원론적으로 정향되어 있고, 고통하며,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뒤틀린 죄의 짐을 지며, 정신으로는 선함을 알아 동의하지만, 마음에서 그대로 순종하지 못하는 분열된 의지에 분노와 절망을 느끼는 이들에게;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자유를 알지만, 개인적 차원에서의 자기 의지의 노예성과 집단적 차원에서의 참을 수 없는 집단중심주의만을 아는 이들에게; 교제가 은혜로운 실재이며, 소비주의와 경쟁이 나누지 못하는 선한 공동체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무관심한 물질주의적인 사회에 의해, 아무것도 아니라고 버림받아 지치고, 늙고, 외로운 이들에게; 세상이 주는, 사람들을 죄의 슬픈 영역에 남겨두고 단순히 그 족쇄만을 빛나게 하는 가짜의 자유가 아니라, 자유라는 은혜로운 단어, 진정한 자유를 열망하는 이들에게; 이와 같은 사람들 모두, 이러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존 웨슬리의 실천신학은 복된 소식이었다. 그것은 주의 은혜의 해뿐만 아니라, 포로된 자에게 바로 자유를 선포하였다. 때로 많은 이유로 존 웨슬리는 성공회 강단에서 쫓겨났지만, 가난한 이들은 그에게 즐겨 들었다. 이러한 풍부한 목회 유산의 정당한 후예들로서, 우리는 이와 같이 나가서 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메소디즘의 아버지에 의해 은혜롭고도 훌륭하게 선포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 우리를 강력하게 이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