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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BER SCHOOL OF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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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일설교(2) 운영자 2019-03-092022-07-13 11:43
작성자 Level 10

제목 : 초대교회의 위력 (사도행전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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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우리 교회 표어는 ‘말씀, 사랑, 기도로 전진하는 해’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교회 표어에 맞는 성구입니다. 초대교회는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얕잡아 보거나 함부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비방과 조롱을 일삼던 자들이 오순절 사건과 뒤따르는 표적과 기사로 인하여 오히려 성도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믿음을 칭찬하며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 받았습니다(행 2:47). 그러면 어떻게 해서 초대교회가 이러한 위력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말씀의 토대 위에서 전진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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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42절) 사도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주님께로부터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딤후 3:17).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으로 사도들에게 배웠습니다. 초대교회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토대가 되어 생명의 역사를 나타내는 가운데 전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초가 되어 있는 사람은 신앙이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유혹과 이단에 흔들리지 않고, 이방종교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환난과 핍박 중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상고하며 사랑했습니다. 사도행전 17:11에 보면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뢰아 사람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영혼을 감동시킴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위력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4:4에 보면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느 말씀으로 한순간에 5천명을 감동시켜서 하나님을 만나게 해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로 하여금 변화시켜서 하나님을 믿게 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온성도 일만독 성경읽기운동’을 통해서 현재 5000독을 돌파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성경을 많이 읽는 가운데 믿음이 성장하고 견고해져서 그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크게 임하고 있습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여러분들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무슨 일이든지 내 생각으로 판단하지 말고 주위 환경 여건 조건에 의하여 모든 것을 결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지혜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들의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세워지고 전진하며 열매를 맺고 축복된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집니다(마 5:18).
시편 107:20에 보면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치료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회복의 능력, 변화의 능력, 축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위경에서 건짐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게 해주시는(잠 24:16) 기적을 일으켜주실 뿐 아니라 날마다 승리로 이끌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편 119:165에 보면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근심, 걱정, 고통, 불안과 같은 장애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다 제거해주시기 때문에 큰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함으로 오는 큰 평안을 체험할 수 있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뜨거운 사랑의 교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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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42절) 여기에서의 교제는 성도간의 뜨거운 사랑의 나눔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 재물을 아끼지 않고 가난한 자들을 돕는 뜨거운 사랑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고 말씀했습니다. 죄인 되었던 우리를 불러서 의인이 되게 해주시고, 지옥 갈 우리를 천국 가도록 구원해주셨으며, 수많은 허물과 죄악에서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수많은 대적에게서 우리를 보호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도 실천해야 합니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형제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9:19에 보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빌립보서 2:2에도 보면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은 일치입니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8에 보면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잠언 10:12에 보면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셋째,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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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42절)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에 전혀 힘썼습니다. 요즘 직업도 보면 전문직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면 전문의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전문적인 것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성도들의 모든 힘의 원천입니다(막 9:29).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기도가 선행조건이 되고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4:6에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보다 염려가 앞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염려보다 기도가 앞서야 합니다.
시편 50:15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앞세울 때 좋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야고보서 5:13에도 보면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든지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생각할 때와 기도하지 않고 생각할 때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환난에서 건져주실 뿐만 아니라 병에서도 치료 받게 합니다(약 5:14). 또 욥기 8:5,6에 보면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형통하게 해주시고 창대한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욥 8:7).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업에 부도가 나서 실패해도, 또 카드 빚을 졌다 할지라도 다 해결됩니다.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밤을 새워 철야하면서 기도해보세요. 무슨 일이든지 다 해결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매튜핸리는 ‘기도는 신앙의 유모’라고 했고, 종교개혁자 죤 낙스는 ‘네가 생명을 사랑하거든 기도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초대교회가 말씀과 사랑과 기도로 전진했을 때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게 되고, 성전을 중심으로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며,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배워 믿음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며, 항상 기도에 힘써 전진함으로 초대교회의 위력이 교회와 여러분에게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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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 9: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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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신앙생활은 운동 경기하는 자가 경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운동 경기의 비유를 들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얻기 위해서 자유를 절제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모든 운동 경기자가 영광의 승리를 얻기 위해 부단한 연습과 극기의 훈련을 통해 자신을 철저히 절제하는 것과 같이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면류관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마치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선수와 같이 전진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달려가야 할까요?

첫째, 오직 앞만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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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선수가 앞을 보고 달리지 않고 옆을 보거나 뒤를 돌아보면서 달리면 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전진해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예수 안에 참된 기쁨이 있고, 구원과 영생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3,14에 “형제들아, 나는 …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좇아가노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면 주께로부터 삶의 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사명을 위해 전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24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의 길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 사명을 위해 전진해야 합니다. 그 사명을 위해서 전진할 때 모든 능력의 공급자이신 주님께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부어주십니다(빌 4:13).

둘째, 최선을 다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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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24절) 여기에서 ‘달음질’이라는 말은 ‘돌진하다, 힘써 전진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달리기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최대의 극기심과 최상의 준비로 경기에 임하여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앞을 향해 힘껏 달려가되 중단하지 않는 성실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썩지 않는 승리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과 환경과 조건 속에 안주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꾸준히 달려가야 합니다. 신명기 6:5에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안됩니다.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계 2:10). 그러나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렘 48:10)고 말씀했습니다. 면류관과 저주 차이는 바로 충성하느냐 게으르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의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욥기 8:7에 보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시작’이라는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역사는 아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작을 하는데 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시작을 할 때에 창대한 역사가 일어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주일 지키기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있게 해주시고, 십일조 생활 잘하는 사람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며, 전도를 실천하는 자에게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5:58에 보면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말씀했고, 로마서 12:11에 보면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했습니다.

셋째, 상을 얻도록 달려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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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24절) 우리는 상을 얻도록 달려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11:6에 보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세상의 면류관은 썩어 없어지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은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으로 의의 면류관(딤후 4:8), 영광의 면류관(벧전 5:4), 생명의 면류관(계 2:10)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4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넷째, 모든 일에 절제하며 달려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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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25절) 여기에서 ‘절제’라는 말은 달려갈 때에 속도를 줄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규정을 따라서, 힘이 들어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자기의 길을 포기하지 말고, 잘 견디면서 달려가라는 말입니다. 오늘 어려움이 있어도 잘 참는 자에게 축복이 임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즐기고 싶은 것을 다 즐기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서 승리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절제하듯이 신앙의 경주를 하는 우리도 승리의 삶을 사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1에 보면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말씀했고, 누가복음 21:19에도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요한계시록 3:10에 보면 장차 시험의 때가 오는데,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시험의 때에 승리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힘이 들어도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핍박이 있어야 견뎌야 합니다. 고난이 있어도 주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찬송하면서 힘차게 달려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앞만 향해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사명을 위해 전진하고, 주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상을 얻도록, 모든 일에 절제하고 인내함으로 주님 부르시는 그 날까지 신앙생활에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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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자유함을 누릴 사람 (고후 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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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서 자유를 속박당하고, 또 자유를 누리지 못한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국가가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어 그 주권을 빼앗기게 되면 개인의 이름도 나라의 모든 물자까지도 빼앗겨버리고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가 상실됩니다. 또 사람이 질병으로 인하여 병석에 누워있을 때에 얼마나 부자유스럽습겠습니까? 부자유스럽다는 것은 자유를 잃었다는 말입니다. 또 자기의 영이 어두움의 영에 사로잡혀서 시달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귀신이 지저귀는 대로 따라서 입술이 같이 움직여집니다. 그리고 갈 곳과 안갈 곳을 분간하지 못하고 귀신이 이끄는대로 돌아다니고 길거리에 방황하는 그런 사람들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이러한 모든 것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죄악에 포로가 되어서 항상 죄를 범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죄로 인해서 기쁨을 상실합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통이 단절되면 심령의 기갈과 생활의 빈곤이 오게 되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축복을 상실해버립니다.
스페인의 한 극작가는 ‘자유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유’란 히브리어에 보면 ‘붙들어맨데서 풀어준다, ‘구속되어 갇힌데서 석방을 받는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어딘가에 결박되어 있습니다. 기쁨이 결박되어 있고, 하나님이 주신 사랑마저도 결박되어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도 모르고 누릴 줄도 모르는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딘가에 갇혀있습니다. 이 넓고 넓은 우주 공간에 살면서도 어딘가에 갇혀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넓고 넓은 우주 공간의 무대를 멋진 연기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각본으로 하여 천군천사와 함께 잘 연출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자유함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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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17절) 하나님은 영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안보이는 것 같아도 항상 우리 곁에 능력과 권세로 역사해주시고, 사랑과 은총과 긍휼과 자비로 역사해주시며, 한없는 축복으로 우리 곁에서 역사해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16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죄에서 해방의 길을 열어주셨지만 주의 영이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고, 또 육신의 인성과 혈기와 그리고 육신의 욕망 속에서 욕망의 늪을 헤매다가 지쳐 쓰러져 탄식하고 후회하며, 낙심하고 슬퍼하면서 좌절과 절망 속에 일생을 마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얼마나 자기 삶이 괴로우면 스스로 자기 삶을 포기하는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얼마나 분노와 혈기가 강하면 스스로 자폭 테러범이 되겠습니까? 오늘 이 땅에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어딘가에 매여서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를 상실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기본적인 축복마저 상실해버리고 어려움 가운데 사는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사시기 바랍니다. 물질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질병으로 인하여 속박되지 말며, 악한 사람들이 가슴에 상처 준다고 그 일 때문에 잠 못 이루는 그런 불행의 밤이 되지 말고, 악한 자들의 꾀임에 빠져서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성령의 능력 안에서 늘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자유함을 누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다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교회에 다녀도 주의 영이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로마서 8:9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령 안에 참 자유가 있고, 성령 안에 참 기쁨이 있습니다. 성령 안에 새생명의 역사가 함께 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함께 하면 악한 자는 선하게 되고, 강퍅한 자는 부드러워집니다.
인간의 노력과 수단과 방법으로 안돼도 하나님의 성령은 되게 하시기 때문에(슥 4:6) 이 세상에서 제일 성공자는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성령님을 앞세우는 사람입니다. 가장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언제나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기쁨을 줄 뿐만 아니라 나를 미워하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십니다.
몽테스키는 ‘자유란 법이 허용하는 것은 무엇이나 할 수 있는 권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 허락한 것은 다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했는데, 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삽니까? 기쁨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평안하라고 했는데, 왜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삽니까? 평안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복된 자가 되라고 했는데 왜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한 생활을 합니까? 복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의 성령이 함께 함으로 모든 빼앗긴 것을 회복하고 참 자유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율법에서 벗어나 주의 은혜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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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15,16절) 여기에서 말하는 수건은 ‘율법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율법이 가장 강조한 것은 바로 메시야입니다. 율법의 수건이 벗겨졌을 때 은혜의 주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율법적인 사람보다도 은혜적인 사람이 더 좋습니다. 무슨 잘못한 것을 지적해서 책망하려고 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남을 책망만 하다가 죽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가 책망하면서도 자기를 모릅니다. 남을 칭찬하다 보면 자기의 좋은 점을 계발시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도 기쁨이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율법의 잣대로 재면 흠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다 죄인이고,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롬 3:10). 그러나 주님께서는 죽을 사람을 살게 해주시고, 망할 사람을 성공하게 해주십니다. 살인 강도와 창녀도 다 주의 나라에 임할 수 있도록 축복의 길과 영생의 길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세계에 거할 때에 강 같은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셋째,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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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사람, 이 사람이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전에는 다 죄의 종이었습니다. 이 죄를 누가 해결해줄 수 있을까요? 예수의 피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요일 1:7). 요한일서 1:9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로마서 8:2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해방’은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자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이제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입니다. 우리는 신분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요한복음 5:24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이미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롬 8:15).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요한복음 3:16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됨으로 주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행동한다고 자유가 아닙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질서 안에서 우리에게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갈 때에 하나님은 저들로 하여금 각 지파별로 족장과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우고 항오를 지어서 전진하게 하셨습니다. 통신수단도 발달되지 못한 시대에 얼마나 통솔하기가 어려웠겠습니까? 그래도 질서있게 전진했을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도 모두 50명씩 질서있게 앉게 한 후 축사하고 나누어주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4:33). 귀신들은 어지럽고 복잡한 것을 좋아합니다.
잠언 5:22에 보면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악인은 죄의 줄에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주를 믿는 자에게는 죄의 사슬에서 풀어주셨습니다. 이사야 53:5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직분이 부여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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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후 3:9) 의의 직분이란 복음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직분입니다. 이 직분은 영광의 직분입니다. 하나님의 직분이 부여된 자에게 하나님께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여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좀 부족해도 채워주십니다. 여러분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일할 수 있도록 배후에서 역사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의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아멘’으로 순종하고 나서기만 하면, 하나님께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충성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고린도후서 4:1,2에 보면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이 직분을 감당할 때에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후회하면 안됩니다. 가나안을 향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이 전진한 것처럼 직분의 길에서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4:18,19에 보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주의 성령이 임한 여러분이 복음을 전함으로 죄의 포로된 자가 죄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저주 받을 자가 축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성령 충만하여 성령과 함께 하며, 율법에서 벗어나 주의 은혜에 거하고,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며, 하나님이 주신 직분이 부여되었을 때 ‘아멘’으로 순종하고 열심히 충성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참 자유를 영원토록 누리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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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 영으로 부어주리라 (행 2: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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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초부터 세말까지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와 역사 안에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더욱 크게 임하시는 복된 이 해가 계속 전진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말세’란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런 시기가 다가오는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과 또 하나님께서 창조한 인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저들이 멸망과 저주를 받거나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 저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고 둔하고 강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아 구원의 은총을 입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이유는

첫째,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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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 지구상에는 아직도 구원의 주님을 알지 못하여 멸망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순간 지식인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전혀 관계없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선지자 혹은 제사장, 사사 등 특정한 사람에게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만민들에게 다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32:15에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고 말씀했습니다. 누구든지 준비되고 사모하기만 하면 다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입니다.
또 시편 72:6에 보면 “땅을 적시는 소낙비같이 임하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소낙비는 한순간에 전 대지를 적시게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조금만 더 마음 문을 열고 사모해보십시오. 좀 더 큰 그릇을 준비해보십시오. 그릇대로 구한대로 다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요엘 2:28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본문 17절에는 모든 육체에게 부어준다고 했고, 요엘 선지자는 만민에게 부어준다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흑인종, 황인종, 백인종의 차이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을 부어주셔서 주님을 믿게 하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주이심을 믿게 합니다. 사도행전 4:12에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주이시요, 인류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 담당하여 그를 믿는 자의 죄와 허물을 사함 받게 하고 구원을 얻게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늘의 권세를 입혀주시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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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22절)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내신 그 권능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그 능력을 힘입게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1:8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권능은 바로 권세입니다. 이 권세는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권세와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오늘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늘의 권세를 받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권세는 세상도 이기고, 마귀도 이기고, 환난과 시험도 이기고, 죄악과 모든 불안 심리도 이길 수 있고, 어떤 질병 권세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절대로 약한 자가 아닙니다. 어리석고 둔하고 빈곤한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똑바로 모신 사람은 주님의 권세가 곧 그분의 권세요, 주님의 능력이 곧 그분의 능력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은 항상 주의 이름으로 능력, 사랑, 믿음, 축복, 마음의 기쁨 등 모든 것을 구하여 받으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을 받는 것만큼 주의 사명을 맡겨주시고,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이 책임져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예수 잘 믿는 집사님 한 분이 성령을 충만히 받고 광부로서 탄광에서 일하면서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먹기 전에 주위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탄광에서 일하는 아주 성격이 급한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은 꼴도 보기 싫다고 하면서 이 놈이 여기까지 와서 이런 짓을 한다고 그 분의 도시락을 밖에 내동댕이쳤다고 합니다. 이 때 예수 믿는 그 집사님은 기도를 다 한 후에 던진 도시락을 주우러 밖에 나갔습니다. 나간 그 순간에 탄광이 무너져서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고, 밖에 나간 그 집사님만 살았다고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 같아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롬 8:28)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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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성령을 받게 되면 예수를 높이고 복음을 전파하도록 역사해주십니다.
사도행전 1:8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지상명령은 바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우리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될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 지구촌은 곧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될 사역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우리에게 합당한 능력을 부여해주십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은 전도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주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성령 안에서 부여해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맡았을 때 자기의 지혜나 경험, 환경, 시간 등을 대조해서 ‘저는 시간이 없는데요, 저는 경험이 없는데요. 하면서 이런 것을 앞세우면 주님이 싫어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능력을 자기의 능력 안에 제한하고 배격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못해도 주님은 하신다, 나는 할 수 없어도 주님은 할 수 있게 하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우리가 주의 말씀을 순종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역사해주십니다.
디모데후서 4:2에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말씀했습니다. 상대방이 듣든 안듣든, 믿든 안믿든 그것은 그 분의 일이고, 우리는 전해야 될 사명만 감당하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하나님께서 다 적절하게 처리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 전하기를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자기가 잘했다고 교만해서도 안되고, 실패했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누가복음 10:19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능력이 부여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권세로 우리는 강퍅한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고, 어두운 사탄에 사로잡힌 자라도 빼앗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를 핍박하는 자라도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절대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말, 긍정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민첩하게 행동하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며, 자기 맡은 일에 일사각오의 순교의 정신으로서 믿음을 가지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넷째, 우리의 육체를 희망에 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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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26절) 사실 육체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성경에 많이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는 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자는 육체도 희망에 거하게 됩니다. 똑같은 육체지만 성령이 함께 하는 자는 성령의 전이 되는 것입니다(고전 6:19).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의 나팔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손과 발과 몸을 바치고 헌신하는 자는 하나님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자는 아름다운 일, 좋은 일, 가치 있는 일, 영광된 일, 선한 일과 위대한 역사들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생을 일회용 컵처럼 잠깐 쓰임 받고 버려지는 삶을 살지 말고, 금 그릇처럼 값있게 쓰임 받는 생애가 되도록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의 영광이 나타나는 삶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축복하고, 그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삶이 성령 안에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자는 육신의 생각만 하다가 사망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는 자는 성령의 생각을 함으로 육체도 희망에 거하여 생명과 평안을 누리며 삽니다(롬 8: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세에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이유는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게 하고, 하늘의 권세를 우리에게 입혀주셔서 승리하게 하시며, 구원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게 하시고, 우리의 육체를 희망에 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항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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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자유함이 있는 곳 (고후 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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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어딘가에 얽매이고 구속을 당하여 거기에서 이탈하고 벗어나고 탈출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생명을 바치기도 하고, 또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또 뭔가 얽매여 있는데서 벗어나고 탈출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과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자기가 추구하는대로 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평생을 질병 속에 결박되어 살다가 불행하게 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고, 어떤 분은 가난에 결박되어 생활고로 인하여 인간답게 기를 펴지 못하고 남의 도움이나 신세를 지고 살다가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악령에게 사로잡혀서 평생을 사탄의 노예가 되어 고통을 당하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받은 우리 인생이 자유를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레위기 25:10에 보면 “제 오십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자유를 갈망하고 추구하기 때문에 세계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조약을 맺기도 하고, 심지어 미국에서는 자유의 여신상을 세워서 자유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외치기도 합니다. ‘자유’란 헬라어(아네시스)에 보면 ‘사슬에서 풀린다, 얽매인데서 벗어난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무엇인가에 얽매여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결박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오늘 이 말씀과 함께 주님의 이름으로 자유를 주셔서 창공을 나는 독수리처럼 신앙의 행보가 진행되어지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떠한 곳에 자유함이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주의 영이 계신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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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17절) 이 말씀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주의 영이 없는 곳에는 자유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주의 영’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우리 눈에 안보이고 어떤 색깔로도 나타나지지 않지만 분명히 계십니다. 창세기 1:2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신’은 곧 성령입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이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은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어떠한 것에 결박되어 있을지라도 그것을 풀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상에는 보고 만져서 느끼는 실체보다도 보이지 않는 실체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공기나 바람, 우주 공간에 꽉차있는 전파, 성도들간에 서로 나누는 주의 사랑 등등 말입니다. 선이 없어도 리모콘을 가지고 비행기를 띄우기도 합니다. 지난번 이라크 전쟁 때는 무인정찰기가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또 사람이 타지 않고 수색하는 소형전차가 왔다 갔다 했을 때 이라크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로마서 8:2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왜 성령을 생명이라고 했을까요? 성령은 죽은 영혼을 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곧 실패와 좌절, 절망과 고통 속에 있는 자라도 온전히 일으켜 세우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강퍅한 사람이 자기 마음을 고치려고 아무리 애써도 고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면 그 강퍅한 마음이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곧 살리는 영입니다. 에베소서 2:1에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이사야 61:1에 보면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사역에 대해서 미리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에 보면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 죄인들을 모두 심판해서 그 죄값으로 고통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 그리고 모든 죄인들을 부르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누리게 해주셨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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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여기에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은 죄와 사망, 거짓과 저주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함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생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음 받기 전에는 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진리가 있는 곳에 바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새생명이 부여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좀 부족하고 미련하고 어리석고 둔해도 그리고 뭔가 사람이 좀 모자란 듯해도 정말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 사람이라면 결과는 좋아집니다. 모든 것을 다 잃었어도 예수님을 잃지 않았으면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입니다.
100년 전에 시카고에 화재가 났을 때 D. L. 무디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그는 19C에 시카고를 거점으로 전 세계의 복음 선교지로 삼았는데, 이 시카고는 나무가 아주 많은 곳이라 바람이 불면 나무끼리 서로 부딪혀서 산불이 자주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화재가 나서 기자들이 뭐 잃은 것 없느냐고 질문하는데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제일 중요한 것은 안 탔습니다.” 그러자 “그것이 무엇입니까? 옷입니까? 책입니까? 가구입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것은 다 탔습니다.” “그럼 안 탄 것이 무엇입니까?” “제일 소중한 예수님은 안 탔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의 것은 있다가도 한순간에 없어질 수 있지만 정말 예수를 잃지 않고 산다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19:142에 보면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법이 곧 진리입니다. 또 요한복음 17:17에도 보면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에베소서 1:13에도 보면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사유(赦宥)하심이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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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 죄를 담당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1:4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라고 말씀했고, 이사야 53:5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은 자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여 영원히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씨가 교도소에 있는 동안 예수 믿는 좋은 간수를 만났습니다. 그 간수는 그에게 로마서 5장 8절 말씀을 계속해서 전해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그 주님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을 계속 전하는 중에 그가 이 말씀에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특별사면조치로 죄에서 사유함을 받아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저희 교회에 와서 간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영이 계신 곳,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 그리스도의 사유하심이 있는 곳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삶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영원토록 누리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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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네가 다시 흥하리라 (욥 22: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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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흥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흥하기를 원하십니다. 창세기 1:28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욥은 극한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승리하여 갑절의 축복을 받은 자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고난 중에 있는 욥에게 찾아와 다시 흥하게 되는 비결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다시 흥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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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21절) 여기에서 ‘화목’이란 말은 히브리어에 보면 ‘밀착시킨다, 아주 가까워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사람이 지위가 높은 사람과 자리를 같이해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감히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는 이 자체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야고보서 4:8에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아버지의 품을 떠나게 되면 모든 것을 다 허비하고 폐인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탕자가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갔을 때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혹시 하나님을 멀리하다가 사업에 실패하여 절망과 좌절 속에 있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기만 하면 반드시 다시 흥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5:5에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을 때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면 흥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①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믿음은 하나님을 만나는 채널이요, 믿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복을 받을 수 있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②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의지해야 합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되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13에 보면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라고 말씀했고, 에베소서 2:16에 보면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말씀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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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22절) 어떤 분은 하나님을 말씀을 듣고 귀에만 혹은 머리에만 두었다가 흘려버리거나 곧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9:20에 보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15~17에도 보면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자는 축복이 있습니다. 시편 1:1~3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께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고 했습니다(시 119:11).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둔 자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어린이가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는 엄마 집사를 보고 ‘엄마, 뭘 걱정해? 성경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셋째, 불의를 멀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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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23절) 불의한 재물은 천만금이 자기 손에 들어왔다 할지라도 그것은 축복의 조건이 못됩니다. 그것 때문에 오히려 화가 임할 수도 있고, 그것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물은 언젠가는 다 밝혀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역사가 베어드는 ‘인류 역사 속에는 하나님의 공의의 맷돌이 돌고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직하게 살다가 좀 손해를 보고, 또 정직하게 산다고 ‘바보’라는 말을 들어도 정직하게 살면 나중에 하나님이 반드시 복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직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잠언 14:11에 보면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정직한 자는 망하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반드시 흥하게 됩니다. 욥기 8:5,6에도 보면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마음에 두며, 불의를 멀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흥하게 해주십니다. ①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분의 보배가 되어주십니다.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25절) ②경영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게 해주십니다. “네가 무엇을 경영하면 이루어질 것이요”(28절) ③그의 길이 형통하게 해주십니다. “네 길에 빛이 비취리라”(28절)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불의를 멀리하고 정직하게 살아 다시 흥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 받는 모든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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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열매 맺는 신앙생활 (창 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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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1,12) 여기에 보면 하나님이 땅에 창조하신 모든 것이 제각기 열매를 맺도록 지으시고 열매를 맺었을 때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에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찍혀 불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마 3:10). 주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기도 하셨습니다(마 21:19). 사실 우리도 어떤 면에서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피조물입니다. 요한복음 15:16에 보면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떠한 열매를 맺어야 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열매는

첫째, 성령의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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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열매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첫 번째 나타난 열매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의 열매가 맺혀지는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남을 이해할 수 있고, 동정할 수도 있으며, 남을 높일 수도 있고, 도와줄 수도 있으며, 또 서로 상대방을 수용하면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매가 맺히면 자연히 기쁨의 열매, 화평의 열매, 그리고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도 맺히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이처럼 귀한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여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교회를 창립케 하고, 또 교회를 부흥케 하며, 또 교회의 일꾼을 일으키게도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 6:3) 하나님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선택하여 세워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스가랴 4:6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전도의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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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 우리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든 사람 앞에 예수가 구주이심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분들에게 소망이요 생명임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를 영접하는 자가 바로 천국 시민이 된다는 것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온 세계가 우리의 무대입니다. 우리는 앉아서 믿지 않는 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가서 전해야 됩니다. 그리고 내 가족, 내 친척, 내 친구 뿐만 아니라 온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느 시대든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발자취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수반됩니다. 성령이 그를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그를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머리 위에 성령이 임재하심으로 말에 권세가 있게 하고, 손과 발에 이적이 나타나게 하며, 기도할 때 하늘의 보좌가 움직이게 하며, 그리고 영권과 물권을 주셔서 감당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때로는 모세에게 홍해가 갈라지게 했듯이, 요단강이 갈라지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했듯이 불가능한 것도 하나님이 가능케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신앙이 병들지 않고 부흥하게 됩니다. 교회의 사명은 전도와 선교입니다. 전도는 고기를 낚는 어부와 같이 많은 생명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생명줄을 던지는 일이고, 마귀의 결박에서 해방시켜 주는 일이며, 죄와 저주, 멸망과 심판의 구덩이에서 천국으로 옮겨주는 행위이고, 예수님과의 만남을 성립시켜주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서 최고의 축복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19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전도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특권을 부여해주셨습니다. 다니엘 12:3에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제물의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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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은 연보주머니만 보면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험에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연보’라는 말은 ‘복’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연보 시간은 곧 하나님께 복을 심는 시간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23:15에 보면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했고, 출애굽기 25:2에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말라기 3:10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이와 같이 명한 것입니다.
성경에 제물을 드리는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①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②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고후 9:12) ③후한 마음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고후 9:13) 제물이란 우리의 몸도 제물이고, 시간도 제물이고, 물질도 제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재간을 드리는 것도 제물입니다. 제물의 열매를 많이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6)

넷째, 입술의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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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잠 12:14) 바이런은 ‘말은 재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떠한 말을 하며 사느냐에 따라서 가난하게 되기도 하고, 부유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언어는 완전히 없애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허락지 않습니다. 또 시험 당할 때 피할 길을 주신다고 했습니다(고전 10:13). 좀 안된다고 자기의 능력을 바라보면서 ‘이젠 끝장이다’라고 하지 말고,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안된다’고 하지 말고 ‘된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큰 일 났다’고 하지 말고 ‘별거 아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어렵다’고 하지 말고 ‘쉽다’고 말해야 합니다. 나는 어렵지만 주님이 함께 하실 때는 쉬운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열매가 달라집니다. 잠언 18:21에 보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혀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축복의 말씀을 전할 때는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게 합니다. 저주할 때는 사망의 역사가 나타나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혀의 권세를 가지고 생명의 역사를 나타내야 합니다.
에베소서 4:29에 보면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말을 할 때 항상 은혜로운 말을 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의 열매가 맺혀지고,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셔서 능력있게 주의 복음을 전하며, 믿음을 주셔서 제물을 심어 부자가 되게 해주시고, 여러분의 입술에 혀의 권세를 주셔서 은혜로운 말을 통해서 생명의 열매를 많이 맺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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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택하심 입은 자들 (벧전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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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상에 수십억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가 있고, 택하심을 입지 못한 자들이 있습니다. 택하심을 입지 못한 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죄악 가운데 방황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의 길을 가면서도 마치 마취제를 맞은 사람처럼 감각이 없이 영적으로 화인 맞아서 저들은 양심의 가책도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게 된 은혜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 2:13) 본문 2절에 나오는 ‘택하심’이란 말은 ‘구별하여 뽑아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를 구별하여 뽑아내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신 7:6) 그러면 택하심의 과정과 택하심의 목적, 택하심을 입은 자의 축복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택하심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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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모태로부터 택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1:15에 보면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라고 말씀했습니다. 본문 2절에도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혹은 우연히 택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하신 섭리 가운데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②은혜로 택하셨습니다. 로마서 11:5에 보면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택하심을 입은 것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딛 3:5, 딤후 1:9). 은혜란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은총으로 또 오직 베푸는 자의 배려에 의해서 대가가 없이 내려준 선물입니다. 본문 2절에도 보면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③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택하셨습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2절) 우리의 거룩함은 우리의 공로로 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통하여 택하심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주님께 대한 그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입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택하심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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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주렁주렁 많이 맺혀야 합니다. 빛의 열매(엡 5:9), 전도의 열매(막 16:15), 감사의 열매(시 50:23),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22,23), 제물의 열매(대상 29:21)를 많이 맺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절대로 심는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무엇을 심든지 종류와 양에 따라서 반드시 심는 대로 거두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고후 9:6). 이왕이면 우리는 좋은 것을 심어야 하고, 또 많이 심어야 합니다.
②복음을 전파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 1:1) 하나님은 복음이 여러분을 통해서 전파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받은 복음을 릴레이 경주자가 다른 사람에게 바톤을 전해주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순교의 피를 통해 받은 이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복음은 미사일보다 더 큰 위력이 있습니다. 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시고 책임져주십니다.
③예수의 이름을 증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선택된 자로서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디모데처럼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3. 택하심을 입은 자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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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산 소망이 있게 하십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3절) 세상에서의 소망은 어느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산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고 영원합니다. 산 소망은 하늘에 쌓아둔 소망(골 1:5), 영생의 소망(딛 1:2), 구원의 소망(롬 8:24)이기 때문입니다.
②보호하심을 입게 하십니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 1:5) 우리는 사는 세상은 참으로 위험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해주시고(벧전 1:5), 눈동자같이 보호해주시며(신 32:10), 손을 잡아 보호해주시고(사 42:6), 영원히 보호해주십니다(시 37:28).
③영혼의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 여기에서 ‘영혼의 구원’이란 육체를 배제한 영만의 구원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구원으로서 영과 육이 연합된 참 존재적 구원, 곧 육체적 죽음을 초월하여 영육간의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예정하신 섭리 가운데 은혜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택함을 입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고,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보호하심과 영혼의 구원을 받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