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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주일설교(1) 운영자 2019-03-092022-07-13 11:43
작성자 Level 10


쉬지 말고 기도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5~22)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는 기도하는 일입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땅에는 중단해야 될 일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쁜 생각과 나쁜 습관, 하나님의 계명에 위반되는 것과 불신앙에 대한 것, 어두움에 관한 것 등등 이러한 것들은 빨리 중단할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중단해서는 안 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육체가 호흡을 함으로 존재하듯이 영적 생활에서 가장 귀한 것은 바로 기도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 쉬는 것을 죄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삼상 12:23) 그는 기도 쉬는 것을 큰 죄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기도를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어떠한 의미일까요?

첫째,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3:11에 보면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라고 말씀했습니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친한 벗이라도 대화가 중단되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고 또 정(情)도 멀어집니다. 우리는 항상 대화 속에 이해를 서로 주고받게 되고 정(情)도 서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영적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가 없이는 신앙생활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숨을 거둔다는 것은 바로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중단하는 것은 바로 신앙을 자살시키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떠한 환경과 처지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에서가 아버지 이삭에게 받을 축복을 야곱이 가로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머니 리브가 곁에 있으면서 대화를 자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생활을 통해서 늘 하나님과 영적인 대화를 계속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역대상 10:13에 보면 사울의 죽은 기록이 나옵니다. 사울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아 왕까지 되었지만 그가 결정적으로 생명을 잃게 된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고 신접한 사람 즉 귀신 들린 사람에게 가르쳐주기를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기도의 대상을 분명히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방신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 올리는 경배를 중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1년에 몇 번 정기적으로 드리고 끝나면 안됩니다. 우리는 평생토록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이 되어서 늘 경배하는 생활을 지속해야 합니다. 시편 95:6에 보면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경배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무릎을 꿇는 것은 기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가 계속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경배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안전한 시간, 가장 하나님께 보장 받는 시간은 바로 예배하는 시간입니다. 예배가 살면 믿음이 삽니다. 예배가 살면 교회가 삽니다. 예배가 살면 여러분의 인격도 변화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했습니다(요 4:2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일을 숨질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경배’라는 말은 ‘꿇어 엎드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 예배는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또 ‘주인의 발 앞에 하인 된 위치에서 엎드려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주인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중단하지 않는 가정과 교회와 민족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예배가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로움을 계속 올려드리라는 것입니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시 141:2) 기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예물입니다. 요한계시록 5:8에도 보면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기도가 얼마나 귀하면 금 대접에 담았을까요? 옛날에 귀한 음식은 임금님의 상에 올라갔다고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귀하면 하나님의 보좌에 올라가겠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항상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매일처럼 올라가는 기도의 향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기도를 하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게 되고, 기도 속에서 신앙이 성장하게 되며,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기도의 줄이 잡힌 사람은 항상 미리 예방의 기도도 하고, 처방의 기도도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고 졸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시험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기도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항상 기도함으로 깨어있기 때문에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도로 깨어서 주님과 영적 대화가 이어짐으로 여러분의 아름다운 기도의 향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 항상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라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항상 하나님께 의탁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55:22에 보면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맡기는 것과 버리는 것은 다릅니다. 전당포에 맡기는 것은 다시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맡겨 버리는 것은 다시 찾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올림픽대로를 타고 공항에 가다 보면 난지도에 쓰레기를 버리는 차량은 많이 보았지만 그 버린 쓰레기를 다시 싣고 가는 차량은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무거운 짐을 다 주께 맡겨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기도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잠언 16:3에도 보면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말씀했고, 시편 37:5에도 보면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라고 말씀했으며, 베드로전서 5:7에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것을 기도로 하나님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인간이 견디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이를 때에도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계속하고, 하나님 앞에 올리는 경배를 중단하지 말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의 향을 계속 올려드리고, 항상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어서 늘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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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혈의 능력 (엡1:7-10)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능력을 부여해주셨습니다. 이를테면 말씀을 통해서 또는 찬송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또 그 능력 안에 살고 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베푸신 능력 중에 가장 귀한 능력은 보혈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능력을 친히 체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은 어떠한 능력이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7절) 아무리 황금만능시대라고 하지만 그리고 이 땅에 독재와 권력이 난무하는 이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의 죄는 절대로 어떤 인간의 권력이나 무력이나 지력이나 체력이나 금력에 의해서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의 피의 능력에 대해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해줍니다. 요한1서 1:7에 보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의 보혈의 피만이 인간의 죄를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구속이란 말은 원문에 보면 용서한다, 석방시켜준다, 탕감해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죽을 죄를 범한 사람도 삼일절이나 광복절에 대통령 권한으로 특사가 내려지면 그분은 10년 징역을 받았든지, 종신형을 받았든지,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할지라도 용서받아서 자유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십자가 보혈의 공로에 의해서 모든 죄를 탕감 받았습니다. 빚이 있는 사람은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어서 하인 노릇, 노예생활을 하고, 죄인같이 그 앞에 무릎 꿇고 고개 숙이고 사는데 그 빚을 다 없는 것으로 탕감해주는 싸인만 하면 그 분은 그 때부터는 그 빚 때문에 조금도 고통을 당할 리가 없습니다.

짐 중에 가장 무거운 짐은 바로 죄의 짐입니다. 이 죄 짐 때문에 수고하고 고통을 당하며, 슬픈 비극이 오고, 내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며 천국에 이를 수 없게 되는데, 예수님의 그 보혈의 피가 우리를 구속하시는 능력이 되어주셨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5에 보면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죄가 남의 죄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죄입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1:18, 19에 보면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 가운데 그 피가 맘속에 큰 증거됩니다.(186장)라는 가사가 있지요. 하나님 앞에 십자가 구속의 은총을 감사하고 그 피로 씻음 받게 되는 것을 깨닫는 자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되고 복된 자가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입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7절상) 만약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사유함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은혜에 참여할 수가 없는 죄인으로서 심판을 받고 형벌과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입니다. 여기에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인데, 이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되고, 천국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가지고 사용할 수 있는 선물의 종류가 많이 있지만 영생에 관한 선물은 이 땅에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이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날마다 찬송해야 됩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요한복음 1:14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은혜가 충만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언제 어느 때,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라도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시고 은총을 입게 하시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릴리와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 사도행전 13:43에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권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객지에 있는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많이 있지요. 항상 건강 조심해라. 음식 조심하고 길 조심하라. 때를 거르지 말고 밥을 먹으라. 좋은 친구 사귀라. 위험한 곳에 가지 말아라. 차 조심해라 등등 말입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기를 바랍니다. 바로 주님의 은혜가 나의 피난처요, 영원히 누릴 안식처입니다.

주의 은혜를 벗어나는 것은 물을 떠난 고기와 같습니다. 은혜를 벗어나는 것은 땅에서 뽑힌 나무 뿌리와 같습니다. 은혜 안에서 거하며, 일평생 주여, 나는 주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주의 은혜를 벗어나서 나는 한순간도 존재할 수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습니다.하고 날마다 주의 은혜를 사모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되 인색하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풍성하게, 부요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릇만 되면 언제든지 채워주시고, 입만 벌리면 언제나 채워주시고,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만족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4:16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구하는 모든 자에게 값없이 풍성하게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신 능력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4)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우리였는데, 보혈의 능력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을 받게 했습니다. 자유를 누리게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율법 아래 있으면 죄에 대한 징계, 저주, 심판을 받게 되지만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그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떠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산다 할지라도 참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물질의 부요함이 우리에게 참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비록 가진 것이 적어도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자만이 참 만족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3에 보면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구속받은 자녀이기 때문에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저주가 없습니다.

잠언 26:2에 보면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어떤 저주도 참새의 떠도는 것과 같이, 제비의 날아가는 것과 같이 이르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구속의 은혜를 찬송하고 감사의 찬송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4:4,5에 보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그를 믿고 영접하는 자로 하여금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을 받게 하셨습니다.

넷째,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능력입니다.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호 13:14)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에게 왜 귀합니까?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에게 음부의 권세와 사망의 형벌을 면케 하여주셨고, 영생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없으면 부활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우리를 사망의 저주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죽음이 사실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는 영원토록 누리는 영광만이 있습니다. 천국은 저주도 없고 눈물도, 죽음도, 이별도 없는 곳입니다.

D. L 무디는 임종 때에 울고 있는 가족들을 향해서 왜 이렇게들 울고 있느냐? 저 천국이 보이지 않느냐? 천국이 저렇게 좋은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일찍 못간 것이 후회되는데, 나 무디는 천국으로 이사가는 것이다. 내일 무디가 죽었다고 신문에 나거든 믿지 말아라. 죽은 것이 아니라 나는 천국으로 이사가는 것이다.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지옥에 들어가지 못하게 지옥문을 막아버리고 천국문을 열어놓았습니다. 그 구속의 은혜를 일평생 우리는 찬송해야 됩니다. 숨쉬는 순간마다 찬송해야 합니다. 눈을 뜨는 순간마다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생활 속에 그 은혜를 항상 우리가 누리면서 주께 영광 돌리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마음 속에 이 구원의 기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10절) 주님의 보혈의 능력은 둘이 하나되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골로새서 1:20에 보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십자가의 피는 화평을 이루고 통일되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우리 민족의 통일도 정치나 이데올로기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 속에서 하나가 되고, 그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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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받으라(엡5:15-18)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으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인간으로서 일생을 마쳐서 흙으로 사라지는 창조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생령의 사람이 되게 하여주셨습니다. 본문 18절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고 말씀했습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단회적인 사건이지만 성령의 충만은 계속적으로 성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술취한 사람이 술의 힘에 자신을 내맡기고 행동하듯이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힘을 의지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을까요?

첫째,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을 인간들에게 실제로 적용시키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예수 믿는 모든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위에 임하여 주시고 역사하는 사실을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2:12에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어두움의 영을 받은 자입니다. 이런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에 생각도 악하고, 행동도 악하고, 어두움의 영과 함께 고통과 형벌 속으로 마지막 심판 날에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3:3에 보면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나타냈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 신앙을 고백한다면 여러분들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한 자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이 항상 여러분들에게 수시로 왕래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성령은 생명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 성령은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주심으로써 구원하는 일을 하는 생명의 영이십니다. 약소국가가 강대국의 억압을 당하고 포로를 당하는 것도 불행하지만 이보다 더 불행한 것은 바로 어두움의 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온전히 해방시켜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지옥에 가는 정죄를 할 수 없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오늘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오늘 성령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똑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점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 믿고 생명을 얻은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서 새생명을 얻은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 새생명, 예수 안에 구원과 소망, 영생, 용서와 긍휼, 응답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이 생명, 주 안에서 거듭난 이 생명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6:63에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성령은 살리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성령은 우리의 영을 살려주십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 활동이 있고, 은혜가 있고, 생산이 있고, 전진이 있습니다. 죽은 곳에는 언어도 없고, 생산도, 활동도 없습니다. 오늘 성령에 의해서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여러분 가정의 생활도 힘차게 뻗어나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축복을 부여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하게하십니다.
영이란 헬라어에 보면 생명의 약동을 의미합니다. 생명이 있는 곳은 꿈틀거리고 움직이고 전진하고 무진장한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생명의 영이신 성령을 받으면 주의 능력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말씀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만이 결실이 있고, 열매가 맺힐 수 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교회는 성장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성도는 믿음이 성장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가정에 축복과 행복이 넘치게 됩니다.

셋째, 성령은 영광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성령을 받은 사람은 비록 가문이 좋지 않고, 직업이 천하고, 생김이 못생기고 어눌하고 바보 같아도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 좋은 자리에 초대를 받으면 뭐라고 말합니까? 이 좋은 자리에 불러주셔서 영광스럽습니다.라고 하지요? 그 영광은 잠깐뿐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귀한 영광은 영광의 영이 머무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사람,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그분은 영원히 영광이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잠시 왔다가 가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성령은 여러분 가운데 머물고 계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항상 여러분의 에너지가 되시고 무진장한 가능성으로 여러분 가운데 역사하고 계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벤저는 말하기를 인생의 인도자는 성령이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령의 조명에 의하지 않고는 우리가 예수를 알 수도 없습니다. 죤 칼빈이 말한대로 성령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알게 조명해주고, 믿도록 조명해주고,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도록 조명해주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수치와 멸시와 천대를 받으신 주님의 구속의 십자가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천한 자가 높임 받고, 멸망 받을 자가 구원받게 되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된 것을 할렐루야 찬송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4:15,16에 보면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시내산이 좋아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머문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오르매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으며 또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 이유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출애굽기 40:34에 보면 성막에서 예배하는 자들에게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했습니다. 오늘날 예배하는 가정에 여호와의 영광이 임합니다. 예배하는 자에게 여호와의 영광이 임합니다. 예배하는 교회에 여호와의 영광이 임합니다. 성령이 영광으로 여러분 곁에 계셔서 역사해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넷째, 성령은 보혜사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제자들은 예수님이 곁을 떠난 일에 대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3일만에 부활하실 것에 대해서 약속하신 말씀을 자꾸 들을 때 지금 주님이 그들 곁을 떠나시는 일에 대해서 매우 초조와 불안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가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바로 그 보혜사는 성령인데, 왜 성령을 보혜사라고 했을까요?
보혜사란 함께 한다, 도와준다, 위로한다 라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위로하고 도와주기 위해서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계시는 곳에는 위로가 있고, 도우심이 있습니다.

성령이 계시는 곳에는 절대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독이란 있을 것이 없으면 고독해지는 것이고, 고통은 없을 것이 있을 때 고통이 옵니다. 몸에 가시가 하나 박혀 있으면 그것을 뽑아낼 때까지 고통이 따릅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데 고독하거나 외롭고 쓸쓸하고 살맛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령은 ①우리 연약함을 도와줍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②우리의 생각을 도와주십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성령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을 하도록 해서 우리에게 생명과 평안을 주십니다.

③시험받는 자를 도와주십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도와줄 자가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생명의 영이요, 영광의 영이요, 도우시는 보혜사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성령의 충만함 받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남은 일생에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여러분에게는 한없는 축복이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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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매오의 부르짖음 [막 10:46~52]

오늘 본문에 보면 소경 한사람이 등장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유대 사회에서 소경들은 대개 거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육체적 노동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 대부분이던 당시의 상황으로는 신체가 온전치 못한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소경을 정죄하는 풍조마저 있었기 때문에(요 9:1,2) 그들이 정상인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지나가실 때에 그 예수님을 향하여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은

첫째, 올바른 신앙고백이 있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47절) 그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한 이 말은 정통성이 있는 신앙고백을 보여줍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호칭은 메시야와 서로 동의어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디매오의 이런 호칭 속에는 예수가 왕으로 이 땅에 임하신 메시야란 신앙 고백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올바른 신앙고백입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을 따르고 또 예수님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님 당시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 16:14) 여기에 보면 한사람도 올바로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워 주님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도 이 질문을 하실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지체하지 않고 담대하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구주이시고,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통치하시는 주관자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참된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바른 신앙의 고백이 있을 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둘째, 때를 놓치지 않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46절) 여기에 보면 예수님이 들어오실 때가 아니라 나가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도중이었습니다. 이 때 소경 바디매오는 이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성공자는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자가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회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은혜 베풀 때 은혜를 받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구원의 날에 구원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해주실 때 기도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심어야 할 때 심는 사람에게 거두는 축복이 있습니다. 충성할 때 충성을 하면 하나님의 상이 있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5:16에 보면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고 말씀했고, 골로새서 4:5에 보면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고 말씀했습니다. 세월을 아껴 선한 일을 하고, 영혼 구원을 위하여 전도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4:2에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일은 복음 전하는 일입니다.

셋째, 겸손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47절) 여기에서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이 말은 소경 바디매오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소경 바디매오의 이 겸손한 부르짖음은 주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주님의 인자하신 마음이 그에게 쏟아지게 했으며, 그의 눈이 떠지는 체험을 하게 했습니다.

욥기 22:29에 보면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느니라고 말씀했고, 시편 147:6에 보면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기도를 응답해주십니다.

잠언 22:4에 보면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겸손하게 살면 마음이 참 평안합니다. 이사야 57:15에도 보면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한다 고 말씀했습니다. 겸손한 자가 되어 믿음도 일어나고 사업도 일어나고 건강도 회복되고 좋은 일만 있기를 축원합니다.

넷째, 환경을 초월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48절) 이것은 바로 환경을 초월한 기도입니다. 바디매오가 주위 사람들의 책망과 제지에 굴복했더라면, 결코 그는 예수님을 만나서 치유의 은총을 입을 수 있는 기회를 두 번 다시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앙인은 절대로 후퇴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신앙인은 타협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신앙인은 굴곡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반드시 신앙인은 전진만 있을 뿐입니다.

실낙원을 저술한 밀턴은 시각장애자였습니다. 나중에는 복낙원까지 저술했습니다. 세계적인 유명한 음악가 베토벤은 청각장애자였습니다. 천하를 정복한 알렉산더는 곱추였습니다. 바다를 휩쓴 넬슨제독과 유럽을 휩쓴 나폴레옹, 세계적인 문호 세익스피어도 모두 다리 지체장애자였습니다. 이들은 저들의 생애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초월하여 더욱 적극적이고 간절한 태도로 예수님께 부르짖었던 바디매오처럼 응답받을 때까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께 끝까지 부르짖는 자가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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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성도의 기도생활 [행 1:14,4:31]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 중에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생활입니다. 예배생활 중에도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에 임하면 영안이 열리게 되고 신령한 귀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에게 언제나 먼저 기도를 명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의 사건은 성령의 사건이면서 그 성령의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게 하고 저들에게 기도를 시켰습니다.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4,5)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기도생활을 통해서

첫째, 성령을 받게 했습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기도하는 성도에게는 항상 주의 성령이 그에게 감동과 감화를 주고, 능력으로 역사하게 하시며 은사로 역사하게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고 오랜 신앙 연륜을 가지고 아주 든든한 기초 위에서 모범된 신앙 생활을 할지라도 기도가 부진하면 자연히 신앙생활이 나태해지게 됩니다. 자동차가 아무리 좋아도 에너지가 다 소모되면 자동차는 세워야 되고 폐차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성령의 에너지를 공급받게 되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하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여주시고 그의 능하신 팔로 역사하여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얼굴에도 빛이 납니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공포심리와 고통 그리고 사탄의 올무를 하나님께서 제거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에게는 마음에 자연히 기쁨이 있게 되고, 항상 소망이 넘치도록 성령이 도와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가 저들의 모든 생활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기도하면서 적게 일을 해도 열매가 크게 될 수도 있고, 기도하지 않고 발버둥치며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해서 일을 해도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보장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장해주시면 전후좌우의 모든 것을 좋은 결과로 만들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여서 전심으로 기도할 때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행 2:4).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니까 저들의 혀가 성령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생각이 성령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4:31에도 보면 저들이 빌기를 다했을 때 모인 곳이 진동하면서 무리가 성령이 다 충만하게 되었고, 성령이 충만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담대하게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자는 무슨 일에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병들었다는 천체적인 진단의 기록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의사가 청진기를 귀에 대고 지구를 진단한 결과 지구는 병들었다 라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지구의 현실을 파헤친 것입니다. 오늘 이 지구는 어느 곳이나 병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 병을 누가 치료해줄 수 있을까요? 주님만이 치료해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오늘 우리의 병든 마음과 병든 환경을 치료해주시고 죄악으로 만신창이가 된 인류를 고쳐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항상 기도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둘째, 환난 날에 보호를 받게 했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길 가다가 사고를 당할 때만 환난 날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총체적으로 환난의 시대입니다.

디모데후서 3:1∼4에 보면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디에 가도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노아의 홍수 시대에 방주에서 나온 비둘기가 어디에 정착하려고 보니 동을 봐도 썩고 서를 봐도 썩었습니다. 다 고기 썩은 것, 사람 썩은 것 홍수 이후에 전체가 다 썩은 것뿐이었습니다. 바로 이렇게 부패가 되었으니까 비둘기는 할 수 없이 방주로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사람, 주의 영을 모신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주님께 더 가까이 대화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여러분들의 모든 일을 도와주시고 역사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것에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환난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의 손이 함께 하여 주셔서 환난 날에도 건져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육체적인 환난도 고통스럽지만 정신적인 환난은 더 고통스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앓고 있습니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마음의 병과 마음의 아픔을 기쁨으로 바꾸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환난 날에 기도해야 됩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은 여러분과 저를 이끌어주실 줄 믿습니다. 사실은 세상이 주는 고통도 크지만 주님이 주시는 능력은 더 큽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더 큽니다. 세상의 위험이 아무리 파도처럼 밀려올지라도 주님께서 천군천사와 불말과 불병거로 우리를 보호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보고 물 위를 걷다가 풍랑을 보았을 때 빠져들어갔습니다. 풍랑이 두려우니까 믿음이 약해진 것입니다. 믿음이 강하면 세상의 어떠한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약하면 조그만한 시험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명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수많은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환난을 이기신 주님께서 저들을 보호해주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

셋째, 시험에서 승리하게 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 우리가 기도하면 어떠한 시험에서도 다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이 가져다 준 세 가지 시험을 이기신 이김은 바로 우리에게도 이런 시험이 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또 이미 주님이 이겨놓은 이김을 우리가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하게 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당하신 시험은 ①물질시험입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 인간이 가장 많이 받는 시험은 경제적인 시험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 때문에 걱정하다가 병이 들어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질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사람은 물질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물질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우리는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창세기 1:28 말씀대로 물질을 마음대로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서 경제적인 시험뿐만 아니라 어떠한 시험도 이기게 해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명예의 시험입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8,9)

자기에게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우리 생활의 철학으로 삼고 살아야 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그도 영광된 사람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성령은 베드로전서 4:14의 말씀대로 영광의 영이기 때문에 주의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자기가 영광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넷째, 하나님의 교회가 설립되어 부흥케 했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 9:31)

교회는 기도하는 자를 통해서 부흥됩니다. 사도행전 1:14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전혀 기도에 힘썼다 고 했고, 2:3에 보면 저들이 열심히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체험했으며, 3:1∼8에 보면 제 구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켰고, 4장에 보면 저들이 주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병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복음을 능력있게 전파하게 해달라고 빌기를 다하고 나니까 하나님이 그곳에 역사하셔서 3000명, 5000명씩 무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9장에 가서는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되는데 교회들이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복음이 널리 전파되기 시작했고, 10장에 보면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게까지도 기도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부흥회를 다녀보면 기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교회가 평안합니다. 회의 많이 하는 사람이 있을수록 그 교회는 분쟁이 심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아름다운 마음을 주시고, 기도하는 자를 통해서 교회를 평안하게 하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게 하여 교회를 부흥케 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의 은사를 받아 더 큰 기도의 능력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생각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세요. 일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세요. 결정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세요. 기도 속에 하나님을 만나시고, 기도 속에 축복을 받으시고, 기도 속에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자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기도 자체가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줍니다. 기도 많이 하면 생각이 부드러워집니다. 성품이 온유하게 됩니다.
끊임없는 기도생활을 통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환난 날에 보호를 받으며, 시험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더욱 부흥케 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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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충만의 지속생활 [엡 5:15-20]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중에 성령 충만의 은혜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 충만의 은혜를 매우 사모하여 기도하다가 성령 충만, 찬송하다가 성령 충만, 말씀 듣다가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심령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그들의 침체된 신앙이 깨어나서 교회를 설립하고, 교회를 부흥시키고, 나가서 예루살렘과 안디옥, 구브로, 사방에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려고 애쓰지만 우리 육신은 연약함과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도 실패했고, 다른 제자들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저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 순교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파하며 승리했습니다.

여러분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서 환난 많은 이 세상, 사탄이 최후로 발악하는 이 세상, 어두움의 영이 온 세상을 덮어 천재, 인재, 한재, 풍재 등 종말의 현상들이 곳곳마다 나타나는 이 세상에서 승리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성령 충만의 은혜가 귀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 성령을 소멸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에베소교회를 통해서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첫째, 세월을 선용해야 됩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16절) 여기에서 ‘아끼라’는 것은 선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세월을 악용하거나 헛되이 보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어린 시절로 한 번만 더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황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곧 세월입니다. 세월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엄청난 이 선물을 우리가 허송해서는 안됩니다. 악하고 어두운 생활, 거짓되고 불의한 생활, 방탕한 생활을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대로 주어진 삶을 선용해야 됩니다.

영국의 성직자 T.유드는 말하기를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유일의 무기이다’라고 했습니다. 기회를 놓쳐버리면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기회를 잘 선용할 때 바로 선두주자가 될 수 있습니다.

유명한 그리이스의 웅변가 데모스 스트니스는 말하기를 ‘내뱉은 말, 엎지른 물, 쏘아버린 화살, 흘러간 세월 이 네 가지는 영원히 다시 돌이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가는 세월, 유수같이 흘러가는 이 세월을 아껴 선용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17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줄 알 때 모든 생활에 기쁨과 감사와 소망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2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따라서 살려고 애쓰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은사를 가지고 선과 악이 무엇이며,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과 마귀가 기뻐하는 일이 무엇이며, 영의 일과 육의 일이 무엇이며, 천국의 일과 세상의 일이 무엇인가를 잘 분별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주관, 내 생각, 내 경험 등 나에게 표준을 맞추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표준을 맞추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면서 살아갈 때에 성령 충만한 삶을 지속하게 될 줄 믿습니다.

셋째, 썩은 것에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18절) 여기에서 ‘술’은 마시는 술도 의미하지만 더 깊은 의미는 ‘썩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절대 썩은 것을 좋아하면 안됩니다. 쌀 물이 안 썩으면 감주가 되고, 썩으면 막걸리가 됩니다. 보리액이 안 썩으면 보리텐 음료수가 되고, 썩으면 맥주가 됩니다. 포도가 안 썩으면 포도즙이 되고, 썩으면 포도주가 됩니다. 매실이 안 썩으면 매실음료가 되는데, 썩으면 매실주가 됩니다. 오늘 이 세상에는 썩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마음속에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만, 사탄 즉 어두움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썩은 것을 좋아하고 부패된 것을 좋아합니다.

오늘 우리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 진실된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천만금을 주어도 불의한 것은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분토같이 여겨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된 마음에 보화를 담아 주십니다. 깨끗한 마음에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넷째, 찬송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19절)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평안이 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마음에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임합니다. 죄를 지으면 불안과 공포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인간에게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신앙을 저버리게 하여 두려움과 슬픔, 죽음과 멸망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은 의롭고 진실한 삶을 살게 하고, 찬송하는 생활을 하게 합니다.

이사야 43:21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시편 22:3에 보면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찬송할 때 하나님께서 찬송 중에 거하실 줄 믿습니다. 찬송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영의 문이 열리고, 마음 문이 열려서 기도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시편 119:164에 보면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찬송을 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도, 기쁠 때도, 위험이 있을 때도, 실패할 때도 찬송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십니다.

다섯째,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20절) 신앙생활은 바로 감사생활의 연속입니다. 감사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이루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있는 사람이 신앙이 살아있는 사람이요, 감사가 있는 사람은 인격적으로 모든 사람 앞에 존경을 받을 사람입니다.

강철왕 카네기는 미국의 수직공의 아들로 태어나서 얼마나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전생애는 감사의 생활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오직 감사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수직공으로 있을 때도 감사했고, 세계적인 재벌이 되었을 때도 감사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는 전기불을 주시고, 전기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는 태양빛을 주신다. 태양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는 천국의 영광으로 함께 하여 주신다’라고 말했습니다.

늘 우리는 감사하는 말을 많이 해야 됩니다. 에베소서 4:29에 보면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이 때에 사탄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성령 충만의 생활을 지속해야 합니다. 세월을 아껴 선용하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살고, 썩은 것을 좋아하지 말고, 찬송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함으로 성령 충만한 삶을 지속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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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리라 [마 3:11-12]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소개할 때에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11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성례(聖禮)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와 성찬입니다. 이 세례와 성찬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주님께서 그것을 제정하시고 집행하시게 했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베푸는 세례 중에 하나는 물세례입니다. 이 세례는 신앙을 고백하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푸는 예식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음 받는 표시이고, 세상과 단절하고 예수님과 새 생명 가운데 산다는 결심의 표시입니다. 또한 성령과 불로 주시는 세례가 있습니다. 성령과 불로 주시는 세례란

첫째, 육으로 난 자가 영으로 다시 나는 세례입니다.

육으로 난 자는 각각 성이 다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김씨, 이씨, 박씨, 최씨, 오씨 … 등등 말입니다. 그러면 김씨는 왜 김씨일까요? 김씨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바로 육으로 난 이런 많은 다양한 인간을 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갈라디아서 5:19,20에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3:6,7에 보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반드시 인간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고 말씀했습니다(요 3:3,5).

우리가 성령으로 다시 나게 되면 ①신분이 달라집니다.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되고, 지옥 갈 사람이 천국 입국자로, 저주 받을 사람이 축복 받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②성품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의 강퍅성, 포악성, 잔인성, 살인성, 나태성, 교만성 이런 것들이 성령을 받으면 미워하는 마음이 사랑의 마음으로 바꾸어집니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이 겸손한 마음으로 바꾸어집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든지 분노, 시기, 질투가 있다면 아직도 마음이 변화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교리에 관한 말씀이지만 중생은 즉각적으로, 성화는 점진적으로 되어집니다. 신분이 변화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 즉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성화는 즉각적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육의 사람이 한꺼번에 천사처럼 변화되지 않습니다.

은혜 받고 성령을 체험했을 때 기뻐서 찬송하고 감사해서 눈물 흘리고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하면서 복음을 전하다가도 믿음이 떨어지면 육성이 또 나타나서 세상 근심 불안 공포 환난 질고 고통을 당할 때 낙심하고 연약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내 맘이 약하여 늘 넘어지기 쉬우니’ 이러한 찬송을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또 은혜 충만, 능력 충만 받으면 기쁨이 넘쳐서 ‘내게 강 같은 평화’ 복음성가를 부릅니다.
또 때로는 멀리 멀리 주님을 떠나서 외롭고 슬프고 처량하고 고달플 때에 ‘멀리 멀리 갔더니’ 찬송을 부르며 또 주님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또 다시 회개하고 능력 받아서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하고 열심히 찬송을 부릅니다. 그러다가 또 좌절하고 낙심되면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고 찬송을 부르며 주님을 의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능력과 은사를 다 동원해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잠시라도 우리는 주님을 부르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 맡기지 않고는 안전이 없습니다. 주님께 의지하지 않고는 보호가 없습니다. 부르짖는 가운데 날마다 주의 손길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성품이 빨리 변화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리게 변화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③생활이 달라집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 거짓과 속임으로 살던 옛 생활이 변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 안에서 의로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손해가 되어도 거짓말할 줄 모르고, 좀 버림을 받아도 혈기를 내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에게 천대 멸시 받아도 겸손하게 살다가 보면 주께서 지위를 높여주시고 영광의 세계로 이끌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④내세가 달라집니다. 안 믿는 사람은 지옥을 향해 가고 있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비록 길이 좁고 험한 길이지만 찬송하면서 걸어갑니다.

요한복음 5:24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왜 주일을 지킬까요? 구원받으려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주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까? 지옥 가고 멸망 받을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권세를 받는 세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여기에서 권능은 ‘권세’를 의미합니다.

대통령이 되면 그에 준하는 권세가 있듯이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①하늘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저는 고속도로를 다니면서 교통순경의 권세가 얼마나 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달리는 차를 손가락 하나로 마음대로 세우기도 하고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 세상 권세는 땅에 관한 것만 좌우하지만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사람은 귀신들과 병마도 내쫓을 수가 있습니다. 환난 걱정 근심 불안 공포도 예수 이름으로 이길 수가 있습니다.

②혀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은 이후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방언으로 말하게 되었고, 그 말에는 권세가 나타났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다 혀의 권세가 있습니다. 잠언 13:2에 보면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함부로 말을 하면 안됩니다. 축복된 말, 은혜로운 말, 감사하는 말, 유익을 주는 말, 위로의 말,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말, 긍정적인 말 등 이런 말을 할 때 하나님께서 그 말에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혀의 권세를 항상 성령에 사로잡힘 받아서 사용해야 됩니다.



③자녀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우리는 이 세상의 어느 곳에 있어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부자이십니다. 없으면 하나님께 구하세요. 그리고 안되면 하나님께 맡기세요. 그리고 소망이 있으면 하나님께 모든 기대를 가지세요. 사람도 기대를 가지면 거기에 대해서 감동을 받습니다.

셋째, 은사를 받는 세례입니다.

한 순간에 성령 받으면 하나님이 평생에 들어 쓰시는데 그 쓰실 때에 육신의 지혜나 체력, 그가 가진 권세나 물질을 보고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사를 주셔서 쓰시는 것입니다. 믿음도 우리가 생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받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기적을 창조하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믿음 속에 하나님이 역사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안 되는 것도 될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사입니다. 지혜, 지식, 믿음, 병 고치는 은사, 그리고 능력, 예언, 방언, 방언 통역, 영 분별의 은사가 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은사를 통해서 큰 일을 하게 하십니다.

병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여 병자가 일어나 보세요. 동네 사람들이 ‘아,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은사를 통해 나타나서 믿지 않는 사람도 하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통한 은사는 여러분들의 눈빛에도 나타납니다.
넷째, 사명을 받는 세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이것은 사명의 부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부여하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말한 이사야 선지자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사명을 감사히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명자의 첫째조건은 성령 충만입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 6:3)

리빙스톤은 ‘나에게 사명이 있는 한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먼지도 태양빛이 비치면 빛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성령이 여러분에게 조명하면 여러분도 빛이 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사명자가 될 수 있습니다.

D.L 무디는 5천만 명에게 전도해서 100만 명을 결신시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성령 받고 타락한 영국을 구원하고 그 당시 어려울 때이지만 지구를 열 바퀴나 돌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고 육으로 난 자가 영으로 다시 나며, 하나님의 권세와 성령의 은사를 받아 능력있는 사명자,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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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성령의 주역들 [행 1:1~5, 12~14]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은 180도로 전환되었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은 활기차고 담대하게 복음 들고 외치는 자가 되었고, 또 저들은 다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자가 되어서 손과 발과 입술에 권세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할 수가 있었고, 오순절 성령의 주역들이 되어 초대교회를 탄생시키고 확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성령을 통하여 성도의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을 예표해줍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어떻게 하여 오순절 성령의 주역들이 되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했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14절) 오순절 성령의 주역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모일 때마다 기도했으며(행 2:42), 정규적인 기도시간을 지켰으며(행 3:1),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였고(행 6:4), 이방에 복음을 전할 때에 기도로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는(행 8:15) 등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연속된다는 것은 신앙의 생명이 지속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이 이어진다는 뜻이며, 하나님 앞에 날마다 새롭게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자는 항상 주님께서 모든 것을 맡아주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 밖에 있는 자는 포도나무에서 잘라진 가지와 같기 때문에 말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성도들이 주님과 교통하는 대화이자 영적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성전에 모여서 늘 기도생활을 했는데, 항상 저들이 기도하기를 전무했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세계적인 인물들을 보면 모두 기도하는 가운데 큰 능력을 체험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던컨 제임스는 13시간 동안 기도하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성령의 불이 임하여 큰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복음의 사역자로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쓰시기에 가장 좋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십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도 자신이 다스릴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성령이 도우시고, 성령의 은사도 주시고,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기적도 나타내주시며,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입혀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자들이었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오순절 성령의 주역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성령 충만했습니다. 한 두사람만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니라 120문도 전체가 다 성령 충만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성령이 충만해서 지금까지 여러분의 힘으로 되지 않았던 것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 쉽게 해결되고 이루어지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성령은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는 능치 못함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역사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각이 육성에 의해서 이루어지면 언제나 실수도 있고, 어리석음도 있고, 미련함도 있습니다. 또 고통과 괴로움도 따릅니다. 후회스러움도 있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주시는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 8:6).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했을 때 그 얼굴에 하나님의 광채가 났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치고 회개하며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에 저들은 사랑으로 모든 분들이 함께 결속이 되고 사랑으로 함께 뜻을 같이 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각각 성격과 개성, 전공, 경험 그리고 취미 오락 등이 다 다르지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전체가 다 함께 연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5:18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말세에는 성령이 충만한 자가 모든 일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날마다 성령이 충만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성령에 사로잡혀 생활하게 되면 여러분의 전생애가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열 마디 말하면 여덟 마디를 실수하던 D.L 무디가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을 결신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역, 목회사역, 교수사역에 실패했던 존 웨슬레도 성령을 받은 순간에 다시 한번 더 그가 제기하여 위대한 감리교 창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존 칼빈도 성령을 받음으로 위대한 장로교를 창시할 수가 있었습니다. 엄청난 역사를 성령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성령 충만한 자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성령의 은혜를 사모해야 됩니다.

셋째, 하늘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10절) 오순절 성령의 주역들은 땅에 살지만 항상 하늘을 우러러보고 살았습니다. 우리도 땅에 살고 있지만 ‘주여’하고 주님을 부를 때, 찬송할 때, 예배하는 순간은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것입니다. 날마다 어떤 형태든지 땀흘리고 수고하고 일을 하되 하나님을 위해서 쓰임 받는다면 그것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땅을 보고 세상을 보면 절망과 좌절이 올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보고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다가 바람을 보았을 때 무서워하며 물 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마 14:29,30). 오늘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님을 바라보면 가정도 아름다워지고, 지역사회도 아름다워집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이 함께 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자는 사막이나 메마른 땅과 같은 곳에 살아도 에덴동산과 같은 아름다움이 주께로부터 이루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스데반은 사도행전 7:55이하에 보면 돌무더기 속에서 순교를 당할 때에도 성령이 충만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주목했다고 했습니다. 하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서 그를 응원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령한 눈을 뜨고 보면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세상을 보고 상처받은 심령들은 예수를 바라보고 평안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보고 낙심하고 절망하는 자들은 주님을 바라보고 주의 도우심을 보면서 찬송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의 풍랑은 그칠 날이 없습니다.

넷째,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서 가는 곳마다 예수가 구주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증거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2). 예수님이 온 인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고 옥중에서도 증거하고, 광야에서도 외치며, 주님의 명령을 준행했습니다.

우리는 벙어리 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복음의 나팔을 불어야 됩니다. 마가복음 16:15,16에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은 주의 성령이 그곳에 역사해주십니다. 주님을 증거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소원도 이루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순절 성령의 주역들처럼 마음을 같이하여 오직 기도에 힘써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아 제2의 오순절 성령의 주역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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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축복 [출 20:18-24]

하나님이 인간을 왜 지으셨을까요? 성경 전체를 자세히 보면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하나님께 예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배하지 않는 인생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자이고, 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살 의미도, 가치도 상실한 사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배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과 단절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가 우리 생애 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부분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에 보면 ‘인생이 왜 사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자기가 누구인지, 또 내가 왜 살고 있는가, 내가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가를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뚜렷한 답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며 고민하다가 자살하려고 하는 순간에 부활절의 찬양을 듣는 순간 그곳을 찾아가서 한시간 예배하는 동안에 죽을 생각이 살 생각으로 바뀌어졌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배는 바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놓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 허전한 마음에 풍성한 은혜로 채워져서 기쁨과 소망이 넘치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배란 무엇일까요?

첫째, 인간을 창조하시고 선택해주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셨는데, 그 이끌어내신 목적은 그들이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또 바로의 압제에서 벗어나서 편안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것이 근본목적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라고 성경은 여러 차례 말씀했습니다.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출 3:12)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출 5: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7:16)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임재하셨습니다.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18절) 여기에서 우뢰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고, 번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상징하며,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을 나타내며, 산의 연기는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선택해주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 곧 예배하는 자에게 이처럼 하나님의 위대하신 모습으로 임재해주십니다.

둘째, 하나님께 받은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헬라어에 보면 ‘예배’란 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어떤 사람들은 예배를 보는 줄로 압니다. 그래서 ‘집사님, 어디 가십니까?’라고 물으면 ‘예배 보러 갑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마음과 몸과 시간과 정성을 다 드려서 예배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고(요 4:23), 제물 있는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제물을 드릴 때는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드리면 그렇게 기쁘고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 드리면 드리는 것이 왜 그렇게 아까운지 모릅니다. 제물은 축복의 씨앗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게 빈 손으로 보이지 말라(출 23:15)고 했고, 또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드리지 말라(고후 9:7)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는 큰 영광이 되고, 자신에게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 11:4)

셋째,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23에 보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아주십니다. 오늘 본문 24절에도 보면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예배하는 곳에 하나님이 강림해주십니다.

어떤 분은 대표기도하면서 ‘하나님이여, 이곳에 사람만 모였다가 헤어질까봐 심히 두렵사옵나이다.’라고 기도하는 분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기도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배하는 곳에 임하신다고 했으니까 ‘우리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가운데 임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임하신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와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잠언 8:17에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사람과 예배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주야를 기도하고 내려올 때에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그런데 산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자고 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이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하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출 32:1~6).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백성을 진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은 성령의 조명을 받아 광채가 얼굴에 광채가 나지만,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부패하고 타락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에게는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생명의 빛과 성령의 빛, 말씀의 빛, 영광의 빛을 조명해주셔서 더 아름답고 빛나는 삶이 이루어집니다. 마음이 답답한 사람들은 ‘아이구, 가슴이 답답해’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조명이 없으니까 답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성령의 조명을 받은 자들은 마음속에 강같은 평화와 샘물처럼 솟아나는 기쁨, 바다처럼 넓은 사랑을 가지고 찬송하며 사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에게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24절) 예배하는 곳에 하나님이 친히 강림하여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복 받을 욕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복은 자동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여러분들은 지금 한없는 복을 받고 계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순간에 영육간에 모든 것을 치유 받는 복을 주십니다. 베트남에 계시는 우리 교회 박천원 권사님이 오늘 1부 예배를 드리고 가시면서 ‘목사님, 지난 부활절 주일예배시간에 목사님께서 자기의 아픈 곳에 손대라고 하셔서 통증이 심한 무릎에 대고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 때 불이 확 오더니 오랫동안 관절염으로 고생하며 계단도 잘 딛지 못했는데 그 순간에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한번도 아프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기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영적인 복도 주시고, 건강의 복, 물질의 복도 주시며, 우리의 미래까지도 형통한 길로 보장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며 예배했을 때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로 그를 인도해주시고,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해주시며, 복의 근원이 되게 해주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