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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설교 논지에서 설교까지(2) 운영자 2019-03-092022-07-13 11:37
작성자 Level 10

설교 논지에서 설교까지(2) 



두 번째 설교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사람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받은 사랑은 표현되어야 한다. 그것이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시험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가? 그래서 너무도 소중한 아들을 바칠 정도로 사랑하는가?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치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경험하게 된다.

1단계
제목 : 산제물
논지 : 받은 사랑으로 살라.
1)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2) 사랑은 희생과 드림으로 확인된다.
3) 사랑은 희생과 드림으로 성장한다.

2단계
제목 : 산제물
논지 : 받은 사랑으로 살라.
사랑은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다. 예수께서 그렇게 하셨다. 그러한 사랑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일까? 아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에게만 있는 생명을 주셨다. 그것이 사랑이다.
1)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 필레오, 에로스, 아가페 등 여러 말을 하지만 사랑은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다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2) 사랑은 희생과 드림으로 증명된다 :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은 거기 반응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 사랑이 자기 속에 있음이 증명된다. 이 결단을 통해 사랑은 자란다.
3) 사랑은 희생과 드림으로 성장한다 : 사랑은 드림으로 산다. 그것이 본질이다. 이삭은 드림으로 사랑을 확인하고 다시 그 사랑으로 인해 산다. 그래서 산제물이 된다.

3단계

산제물

가정을 가장 가정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이것이 가정을 작은 천국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랑, 이것은 어느 모임이나 가정처럼 만들고 천국처럼 만들어준다. 특별히 영적인 가정, 교회라면 이 사랑이 반드시 요구된다. 사랑이 없다면 교회는 교회의 일을 하지 못한다. 만약 가정에서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교회에서라도 찾아야 한다.
뉴욕 데일리 뉴스는 예방 의학 전문가 피터 한센 박사의 연구를 보도했다. 건강을 위해서는 건강 음식, 규칙적 운동, 나쁜 습관 버리기 등을 50점으로 보고 남은 50점은 \"사랑\"에다 주었다. 사랑은 사람을 건강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웃 사랑은 도덕이 아니라 건강의 문제이다.\" 성경은 사랑을 그 이상의 영적인 건강과 번영으로 본다.
사랑을 간단히 말할 수는 없다. 오늘은 그 중에 한 요소만을 찾아 함께 느껴보려고 한다. 사랑은 표현된다. 빛이 감추일 수 있는가? 소금이 그 맛을 감출 수 있는가? 미움은 아무리 사랑으로 가장해도 그 빛깔이 나오기 마련이다. 사랑은 아무리 감추어도 나타난다. 눈빛이 분위기가 말을 한다. 행동으로 나타난다. 상대를 유익하게 하려 한다.
사랑은 무엇인가 주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그리고 희생한다. 자기를 불태우는 촛불이 사랑의 속성을 말해준다. 자신은 사라지고 없더라도 사랑하는 대상이 조금이라도 밝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교회는 사랑의 힘을 주고 그 사랑을 행동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사랑의 힘과 행동, 그것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주고 받아야 할 보물이다.

1)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온다.

아가페니 필레오니 단어로 사랑을 말하지 말라.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 있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농도가 짙은 사랑이다. 2년 간 안암동의 10층 아파트에서 불이 났다. 어머니와 두 아들이 창틀에 매달렸다. 이미 복도와 집안까지 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아들들은 화분 놓는 곳에 섰다. 어머니는 그 밑에 매달렸다.
고가 사다리가 다가가자 어머니는 떨어졌다. 다행히 밑에 천막이 있어서 부상은 당했지만 목숨은 건졌다. 기자가 인터뷰한 것을 들었다. 화분 놓는 곳에 서면 쉽지만 자식들을 위해서 양보하고 밑으로 내려간다. 고가 사다리가 다가오자 자식들을 먼저 구하라고 손을 놓고 떨어진다. 말도 안 되는 이 행동이 왜 나오는가? 사랑이요 희생이다.
사랑은 자신을 유익하게 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대상만을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을 소모품처럼 버리고 만다. 그 어머니는 허리와 다리를 다치고 평생을 고생하리라. 하지만 아픔이 일어날 때마다 더욱 자식들을 위해서 축복하고 감사하리라. 이것이 사랑이다. 자기의 손해와 부끄러움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희생한다.
상대를 향해 사랑이 없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교회나 목사가 사랑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본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다. 주는 것이다. 해주어도 모른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하지 않고 있다. 사랑에 무슨 불평이 있으랴. 사랑 받음으로만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사랑을 모른다. 주고 또 주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사랑이다.
우리 모두 이러한 사랑을 가정에서 기대한다. 그리고 영적 가정인 교회에서 기대한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얼마나 우리 속에 사랑이 결핍되었던가! 우리 속의 사랑은 흔적뿐이다. 본래 우리에게는 그 힘이 있었다. 인격도 완전하였고 지혜도 충만하였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교제하여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나님처럼 사랑할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모두가 한계 속에서 힘들어한다.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건 조금이라도 받아보려고 한다. 그래서 애인을 찾고 가정을 찾으며 사람들 틈에 끼어서 한 통속이 되어보려고 한다. 하지만 모두가 다 비슷한 상황인데 어찌 사랑할 힘이 있겠는가. 북한 사람들처럼 아무 것도 없는데 어찌 남에게 베풀 수 있는가.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신다. 내게로 와서 받으라. 그러면 산다. 여러 천년 전에 아브라함도 그리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그의 백성이 되었다. 하나님은 결핍된 그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이미 늙은 그에게 아들을 주었다. 더 많은 것도 약속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에 쪼이면서 결핍은 치료된다. 처음에는 받는 사랑의 단계이다.
사랑을 받으며 아브라함의 삶은 퍼져 나간다. 풍족한 삶이 펼쳐진다. 재산은 많아진다. 빈손으로 고향을 떠난 그였다. 생활도 안정되고 늙은 몸이 아들도 낳았다. 이제 앞으로 모든 것이 더 좋아질 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음 단계로 그를 올리시기를 원했다. 지금까지의 축복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주는 사랑의 단계로 나가야 했다.

2) 사랑은 희생과 드림으로 증명된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잡아 내게 제사를 지내라.\" 지금까지의 축복은 모두 취소되는가? 그는 살만큼 살았다. 차라리 그 자신이 죽고 말지 어떻게 자기 아들을 죽여 제사를 지내라는 것인가! 하루 밤사이에 아브라함은 죽음을 문턱에 둔 사람처럼 변해 버렸다.
여기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 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칠 줄 하나님이 모르셨던가 아셨던가? 몰랐다면 전능의 신이 아니다. 점쟁이만큼도 못한 신이다. 분명히 아셨다. 그러면 알면서 왜 그렇게 시험하는가? 고통을 주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아들은 이 과정을 통과해야 성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실히 해야 한다. 모든 역경은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이 확실한가? 그러면 그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시험을 통과하라. 절대로 그는 우리를 망하게 하지 않으신다. 힘든 과정은 다 필요한 것이다. 단지 우리는 우리의 일만 하면 된다. 바로 하라. 가장 제대로 하는 것은 의무보다 사랑으로 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재물은 어디 있나요?\" 아버지는 아프게 말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제단에 도달했다. 그러자 아들은 깨달았다. 자신이 바로 제물이었던 것이다. 이제 나이는 십여 세 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 하나님은 자신을 원하고 계셨던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순종했다. 말없이 아들은 결박을 받았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의 목에 칼을 댄다. 이제 그들은 죽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단계에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 자기 목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다. 의무나 계명은 여기까지 올 수 없다. 의무 때문에 어머니가 10층에서 떨어져 죽지 않는다.
이삭은 자기의 목숨과 구 만리 같은 자기의 여생을 바쳤다. 아브라함은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한 외아들을 바쳤다. 그들은 바치면서 느끼게 된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내 목숨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바치게 됨을 감사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생명을 드리면서 가장 고상한 신앙의 단계로 도약하는 것이다.
10층에서 손을 놓는 것은 무서운 용기이다. 사랑은 용감하다. 사랑은 알아달라고 하지 않는다. 사랑은 상대방의 반응을 보거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사랑은 말없이 그냥 드린다. 그러면서 아깝거나 억울하지 않다. 그냥 일어나는 사랑으로 인해서 감사할 뿐이다. 아무런 후회가 없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강하다. 영적 진리이다.

3) 사랑은 희생과 드림으로 성장한다.

이 때 하나님은 그들을 중지시켰다. \"그만! 그것이면 족하다. 자신을 바치는 그 마음이면 신적인 사랑이다.\" 그리고는 스스로 바칠 제물을 주셨다. 멋진 수양 한 마리였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양의 목을 따고 피를 쏟으며 양이 자신들 대신 죽음을 본다. 하나님은 그들의 사랑을 다시 더 큰사랑으로 반응하신다. 그들을 크게 하신다.
제단에 바쳐진 제물은 반드시 죽어야 했다. 하나님 자신까지도 아들의 목숨을 제단에서 끊었다. 하지만 이삭만은 유일하게 살아 내려왔다. 살았지만 죽은 것이요, 죽었지만 산 사람이 되었다. 세상 사람으로서는 죽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는 살았다. 하나님께 바쳐졌기에 그들은 거룩한 존재가 되었다. 동시에 사랑의 존재가 되었다.
이 이야기가 무엇을 가르치는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았다. 교회에 출석해 하늘의 복을 받는다. 그러나 자신의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야 참 가족으로 인정받는다. 부분이 아니다. 얼마의 돈이나 시간이 아니다. 나 전체를 다 죽여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렇게 그의 제단에서 죽고 다시 살아야 한다. 그러면 사랑의 존재가 된다.
인간적인 욕심과 미움과 한계는 죽는다. 병도 가난도 문제도 자신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힘을 쓰지 못한다. 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나게 된다. 자녀 낳기만 하면 어머니가 아니다. 사랑함으로 어머니가 된다. 자기의 전체를 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향해 전체를 드림으로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남은 여생을 살아있는 제물로 보냈다. 자신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았다. 때때로 양을 잡아서 같은 의식을 반복하며 사랑을 확인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한없이 받고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드리지 못한다면 받은 것이 없는 사랑이다. 사랑은 반응한다. 하나님이 나오도록 주고 또 준다. 이것이 산제물의 모습이다.
대만의 한 청년이 연모하는 처녀에게 2년간 매일 연애 편지를 썼다. 세계 기록이다. 처녀는 결혼했다. 우편 배달부와 글보다는 직접 접촉이 더 강한 것이다. 가정을 향해서도 그렇고 하나님을 향해서도 그렇다. 아무리 사랑해도 만나고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교회를 위해 일하고 봉사하고 교제하는 것이다. 바치는 훈련이다.
많은 분들이 이 성전을 위해서 수고했다. 재산과 물품을 바쳤다. 매일 와 청소하였다.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바친 사람은 그 마음을 유지하라. 아까워 말고 더욱 헌신하라. 하나님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세상을 주시고 아들을 주시고 자신의 영을 주셨다. 사랑으로 화답하기만 하면 된다.
그를 사랑해서 자신을 바치는 것이 바로 가족이 되는 증거이다. 나는 날마다 시간마다 외친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세상의 무엇보다도 내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나이다.\" 외쳐보라. 그러면 나의 가슴이 터지게 넘치는 것을 경험한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고 그는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